![]() | Home>독서토론 |
경제경영 상경
페이지 정보

본문
책소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중국을 읽는 가장 방대한 전략서!
『상경』은 14억 중국인들의 상술과 경영 정신을 일깨워준 최고의 경전이자 전략서이다. 이익을 구하되 사람의 도를 잃지 않으며, 칼날에 묻은 피를 핥더라도 더러운 돈은 손대지 않는다는 『상경』의 경영 철학은 '가장 인간적이며, 인간을 위한 자본'을 갈구하는 21세기의 요구에 가장 합당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인재를 얻어 천하를 농락하는 대륙적 기상은 중국이 아닌 '중화'로 표현되는 그들의 힘과 정신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서양에는 유태인의 상술이 있고 동양에는 중국인의 상술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모든 상술과 경영 전략을 집대성했다고 할 만한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중국으로 접근하는 유용한 통로가 될 것이다.
『상경』의 전략은 '상술'과 '상도'의 집대성이다
『상경』은 청나라 말, 홍정상인이라 불리었던 거상 호설암을 중심으로 펼쳐진 상술과 상도를 현대적 의미로 집대성하고 있다. 또한 개혁 개방 이후 불가사의한 속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전략이 담겨져 있다. '호설암 상술'을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중국 기업인들의 실천 사례는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감 있는 예문들은 비즈니스의 안목을 높이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므로 『상경』은 중국과 합작사업을 계획하거나 추진중인 기업인들이 중국의 기업 의식과 상술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상경』을 읽어야 할 이유
20세기는 중국과 중국인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련과 고난의 세기였다. 아편전쟁 이후 무수한 서구 열강의 침탈에 시달렸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항전과 국공 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로는 마오쩌뚱의 게릴라식 경제정책과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이제 중국은 100년 동안의 지속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21세기는 역사적 경험과 반성 그리고 사고의 전환을 토대로 중국이 명실상부한 경제 및 군사 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 예측된다. 이미 그 조짐이 분명한 경제 동향과 세계정세가 이러한 예측을 증명해주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고, 장차 중국의 돈을 벌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존립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은 기업 문화와 상술의 전통이 독특해 서구나 일본 지향적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제대로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개혁 개방이 시작된 초기,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뛰어든 기업이나 개인이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국의 본질, 그들이 가진 상인으로서의 진짜 속성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경』의 호설암은 누구인가?
호설암이야 말로 봉건사회의 마지막 위대한 상인이다 -노신-
호설암(胡雪巖 / 후슈에옌)은 도광道光 3년(1823)에 안휘성 적계호리績溪湖里촌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하여 따로 학문을 읽힐 처지가 아니었던 그는 독학으로 문필을 조금 익혔을 뿐이지만, 화려한 상술과 신비한 매력, 그리고 탁월한 인품으로 후대 상인과 경영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된 거상이다. 그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지모와 사상의 이치를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상업 수완을 흡수하여 성패 득실의 이치를 집대성하였다. 후에 그의 공을 인정받아 청대 상인으로서는 전무후무한 1품관직을 받아 홍정상인이라 불렸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홍정상인
호설암은 어려운 살림 때문에 관직 진출이 난감했던 왕유령에게 도제로 일하던 전장에서 수금한 은자 5백 냥을 빌려주는 의협심을 발휘한다. 이를 받은 왕유령은 상경하여 북경에서 민부우시랑으로 있던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절강성 양대총판(군식량관리부)의 자리를 얻었다. 출세를 하게 된 왕유령은 호설암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은자 5백 냥을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절강성 순무로 부임했을 때 호설암에게 군사 관계의 일을 맡기기도 했다. 호설암은 군량미와 병기 등을 군납하고, 다른 한편 금융업에 힘을 써서 관상으로서의 지위를 다져갔다. 좌종당과의 인연은 더욱 특별하다. 좌종당은 함풍 10년(1860)에 증국번의 천거에 의해 환남에서 군무에 종사했고 몇 차례의 민란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1862년에 민절 총독으로, 1869년에는 군기대신으로 신강의 군무를 감독한 인물이다. 호설암과 좌종당의 인연은 함풍 11년(1891)에 태평천국군이 항주를 함락했을 때 호설암이 좌종당에게 군수물자를 전부 바친 일에서 시작되었다. 광서 3년(1877)에 좌종당이 회족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신강성으로 출병했을 때에는 서양식 무기를 구매하여 조달하고 자금 원조도 아끼지 않아 큰 공을 세웠다. 훗날 호설암은 1품 관료임을 상징하는 붉은 산호가 박힌 모자를 수여 받았는데 청대의 상인 중에서 그만큼 출세했던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도리를 중시한 경영
호설암은 정치적 활동에 뛰어난 상인이었으며 금융업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항주에 있었던 그의 전장은 한때 스물여섯 곳에 점포가 개설될 정도로 급성장했으며 그 이익을 토대로 환전상 ·찻집 ·견직물 가게 ·약방 등 새로운 업종을 늘리며 확장해 나갔다.
호설암은 상해의 《신보》를 이용해 대대적인 광고를 펼쳐 근대적인 '마케팅' 개념에 깨어 있었으며 당시로는 획기적인 배달에 의한 약 판매도 전개했다. 또한 직접 관복을 입고 붉은 산호 모자를 쓴 채 손님을 맞이해 정성과 신의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약방(호경여당)에서는 약재의 조제 과정을 직접 감독하는 한편, 생산에서 출하와 판매까지를 일관된 공정으로 운영해 훗날 파산의 위기에서도 약방만은 건재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호설암의 경영은 한마디로 고객들과의 신용에 있었다. 호설암은 인맥도 두터웠다. 그는 상해의 대상인들과 교유했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외국 상인들과의 거래도 빈번했다. 일찍이 '양무'에 눈을 뜬 탓이었다. 그는 장사만 하면 큰 이익을 보았고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재물의 신 '활재신'이라 불렀다. 그는 민족정신이 강하여 언제나 외국 상인과 당당히 맞섰기에 중국인들은 늘 그에 대한 존경심을 포명하였다. 중국 각지에서 수해나 가뭄이 일어나면 의복 ·쌀 ·금전 등의 구호물자를 아낌없이 보냈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이를 반드시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상인 중의 특이한 존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쾌한 의협심을 보여주어 좌종당은 그를 일컬어 "상인이지만 호협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했다. 말년에 이르러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파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과실로 인한 것은 아니었으니 아무도 그를 실패한 경영인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상경』은 14억 중국인들의 상술과 경영 정신을 일깨워준 최고의 경전이자 전략서이다. 이익을 구하되 사람의 도를 잃지 않으며, 칼날에 묻은 피를 핥더라도 더러운 돈은 손대지 않는다는 『상경』의 경영 철학은 '가장 인간적이며, 인간을 위한 자본'을 갈구하는 21세기의 요구에 가장 합당한 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인재를 얻어 천하를 농락하는 대륙적 기상은 중국이 아닌 '중화'로 표현되는 그들의 힘과 정신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서양에는 유태인의 상술이 있고 동양에는 중국인의 상술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모든 상술과 경영 전략을 집대성했다고 할 만한 이 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중국으로 접근하는 유용한 통로가 될 것이다.
『상경』의 전략은 '상술'과 '상도'의 집대성이다
『상경』은 청나라 말, 홍정상인이라 불리었던 거상 호설암을 중심으로 펼쳐진 상술과 상도를 현대적 의미로 집대성하고 있다. 또한 개혁 개방 이후 불가사의한 속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전략이 담겨져 있다. '호설암 상술'을 적용하여 성공을 거둔 중국 기업인들의 실천 사례는 그들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감 있는 예문들은 비즈니스의 안목을 높이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므로 『상경』은 중국과 합작사업을 계획하거나 추진중인 기업인들이 중국의 기업 의식과 상술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상경』을 읽어야 할 이유
20세기는 중국과 중국인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련과 고난의 세기였다. 아편전쟁 이후 무수한 서구 열강의 침탈에 시달렸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항전과 국공 내전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로는 마오쩌뚱의 게릴라식 경제정책과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이제 중국은 100년 동안의 지속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21세기는 역사적 경험과 반성 그리고 사고의 전환을 토대로 중국이 명실상부한 경제 및 군사 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세기가 될 것이라 예측된다. 이미 그 조짐이 분명한 경제 동향과 세계정세가 이러한 예측을 증명해주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고, 장차 중국의 돈을 벌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존립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중국은 기업 문화와 상술의 전통이 독특해 서구나 일본 지향적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제대로 접근하기조차 어렵다. 개혁 개방이 시작된 초기,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뛰어든 기업이나 개인이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국의 본질, 그들이 가진 상인으로서의 진짜 속성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경』의 호설암은 누구인가?
호설암이야 말로 봉건사회의 마지막 위대한 상인이다 -노신-
호설암(胡雪巖 / 후슈에옌)은 도광道光 3년(1823)에 안휘성 적계호리績溪湖里촌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하여 따로 학문을 읽힐 처지가 아니었던 그는 독학으로 문필을 조금 익혔을 뿐이지만, 화려한 상술과 신비한 매력, 그리고 탁월한 인품으로 후대 상인과 경영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된 거상이다. 그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지모와 사상의 이치를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상업 수완을 흡수하여 성패 득실의 이치를 집대성하였다. 후에 그의 공을 인정받아 청대 상인으로서는 전무후무한 1품관직을 받아 홍정상인이라 불렸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홍정상인
호설암은 어려운 살림 때문에 관직 진출이 난감했던 왕유령에게 도제로 일하던 전장에서 수금한 은자 5백 냥을 빌려주는 의협심을 발휘한다. 이를 받은 왕유령은 상경하여 북경에서 민부우시랑으로 있던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절강성 양대총판(군식량관리부)의 자리를 얻었다. 출세를 하게 된 왕유령은 호설암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은자 5백 냥을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절강성 순무로 부임했을 때 호설암에게 군사 관계의 일을 맡기기도 했다. 호설암은 군량미와 병기 등을 군납하고, 다른 한편 금융업에 힘을 써서 관상으로서의 지위를 다져갔다. 좌종당과의 인연은 더욱 특별하다. 좌종당은 함풍 10년(1860)에 증국번의 천거에 의해 환남에서 군무에 종사했고 몇 차례의 민란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1862년에 민절 총독으로, 1869년에는 군기대신으로 신강의 군무를 감독한 인물이다. 호설암과 좌종당의 인연은 함풍 11년(1891)에 태평천국군이 항주를 함락했을 때 호설암이 좌종당에게 군수물자를 전부 바친 일에서 시작되었다. 광서 3년(1877)에 좌종당이 회족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신강성으로 출병했을 때에는 서양식 무기를 구매하여 조달하고 자금 원조도 아끼지 않아 큰 공을 세웠다. 훗날 호설암은 1품 관료임을 상징하는 붉은 산호가 박힌 모자를 수여 받았는데 청대의 상인 중에서 그만큼 출세했던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도리를 중시한 경영
호설암은 정치적 활동에 뛰어난 상인이었으며 금융업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항주에 있었던 그의 전장은 한때 스물여섯 곳에 점포가 개설될 정도로 급성장했으며 그 이익을 토대로 환전상 ·찻집 ·견직물 가게 ·약방 등 새로운 업종을 늘리며 확장해 나갔다.
호설암은 상해의 《신보》를 이용해 대대적인 광고를 펼쳐 근대적인 '마케팅' 개념에 깨어 있었으며 당시로는 획기적인 배달에 의한 약 판매도 전개했다. 또한 직접 관복을 입고 붉은 산호 모자를 쓴 채 손님을 맞이해 정성과 신의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약방(호경여당)에서는 약재의 조제 과정을 직접 감독하는 한편, 생산에서 출하와 판매까지를 일관된 공정으로 운영해 훗날 파산의 위기에서도 약방만은 건재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호설암의 경영은 한마디로 고객들과의 신용에 있었다. 호설암은 인맥도 두터웠다. 그는 상해의 대상인들과 교유했고,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외국 상인들과의 거래도 빈번했다. 일찍이 '양무'에 눈을 뜬 탓이었다. 그는 장사만 하면 큰 이익을 보았고 사람들은 그를 살아 있는 재물의 신 '활재신'이라 불렀다. 그는 민족정신이 강하여 언제나 외국 상인과 당당히 맞섰기에 중국인들은 늘 그에 대한 존경심을 포명하였다. 중국 각지에서 수해나 가뭄이 일어나면 의복 ·쌀 ·금전 등의 구호물자를 아낌없이 보냈으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이를 반드시 돕기 위해 노력하였다. '상인 중의 특이한 존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쾌한 의협심을 보여주어 좌종당은 그를 일컬어 "상인이지만 호협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했다. 말년에 이르러 뜻하지 않은 불운으로 파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과실로 인한 것은 아니었으니 아무도 그를 실패한 경영인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