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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400兆] 빚에 쫓기는 중산층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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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던 지난 24일 오후 서울 양재동 시민의 숲 매점 앞. 추운 날씨 속에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인터넷사이트 다음 카페의 ‘파산 위기에 힘드신 분들의 모임’(회원수 1979명)이 한 달에 2차례 갖는 정기모임. 잠깐 사이 25명으로 늘어난 이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왜 분별없이 집을 담보로 맡기거나 카드대출을 받았을까, 빚 회수에 나선 추심업체들의 횡포….
얼마 뒤 부근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이상은 꿔서 막을 길도 없고 막막해요. 사채라도 쓸까 하는데….” “사채? 그건 절대 안됩니다. 완전히 망하는 길이에요.”
대개 30~40대인 이들은 한때 ‘견실한 중산층’을 자임하던 직장인과 자영업자들. 적게는 수천만원, 많은 이는 3억원까지 빚에 몰렸다.
직장인 정 모(37)씨는 지난 9월 잠실 13평 아파트를 3억8000만원에 샀다. 전세 5000만원을 끼고 2억5000만원은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받았다. 하지만 바로 곤경에 빠졌다. 세입자가 나가겠다는데 전세가는 그 새 1000만원 이상 떨어졌고, 그나마 오겠다는 이도 없다. 아파트값도 살 때보다 3000만원이나 하락했다. 이자만 매달 100만원. 도리없이 집을 내놓았다. 그는 “다들 ‘금리가 쌀 때 꿔서라도 집 사는 게 버는 것’이라며 나서길래 덩달아 덤볐다가 엉망됐다”고 푸념했다.
분당 시범단지 아파트에 전세 살던 직장인 박 모(38)씨는 올 봄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하자 “금리도 싼데 아예 내 집을 사자”며 부근의 아파트를 3억6000만원에 샀다. 부동산업소 소개로 은행에서 연리 6.5%로 1억6000만원을 융자받았다. 한 달 이자만 90만원에 가깝지만 “내년까지 2000만∼3000만원만 올라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파트값은 원점이고, 매기도 없다. 집을 산 게 아니라, 은행 이자내며 월세 사는 꼴이다. 외식은 사라진 지 오래고 아이들 학원도 줄였다. 박씨는 “내년엔 집값 떨어진다, 디플레가 올지 모른다는 이야길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과중한 빚에 허덕이는 가정이 급격히 늘고 있다. 시발점은 IMF 이후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금융당국의 ‘저금리정책’과 은행권의 대출 경쟁. 즉, ‘빚 권하는 사회’가 낳은 ‘꾸고 보자’ 풍조의 후유증이다. 젊은층과 저소득자에 대한 카드대출 남발은 빚 독촉에 몰린 채무자들의 범죄와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미 귀결됐다. 한층 심각한 것은 재산 증식의 기대에 거액의 담보를 안고 주택을 구입한 ‘보통 가정’의 무더기 몰락 조짐이다.
재작년 말 총 118조원이던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220조원으로 늘었다. 금융 당국은 이 가운데 70%가 주택담보대출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카드빚과 할부구매 등을 합친 총 가계빚은 무려 397조5000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1%가 대출받고 있으며, 금액은 평균 5000만원에 이른다. 1년에 갚아야 할 은행 이자만 가구당 평균 300만원에 달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땐 이미 늦은, 마치 암과 같은 존재가 가계부채”라고 경고했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원은 “부채 증가는 소비 위축으로 연결되고, 다시 경제 불황과 임금 동결로 이어져 가정의 빚 갚을 능력이 더 약화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위재기자 wjlee@chosun.com ) (朴世鎔기자 se@chosun.com ) ▲모건 스탠리(지난 3월): “올 연말이면 한국의 가계대출 총액이 396조원에 달할 것이며, 금리 인상만이 거품의 재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10월 27일):“한국의 은행들이 가계대출의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 재벌에 대한 천문학적 대출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과 유사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려 하고 있다.”
▲BBC(9월 25일): “빚에 의존한 한국 소비자들의 헤픈 씀씀이에 국가 경제가 흔들릴 지경에 빠졌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11월 7일): “신용카드 붐과 부동산 담보대출의 폭증이 경제의 악재가 되고 있다.”
(方聖秀기자 ssbang@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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