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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회창 민생투어는 연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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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투어인가, 연출 투어인가
이회창 후보, 임대 아파트 방문 때 결혼정보회사에 참석자 섭외
"당초 신혼 부부라고 했던 1쌍은 서로 부부가 아닌 데다, 네 사람 모두 이 결혼정보회사 직원들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신혼 부부로 알려졌던 커플 가운데 여성은 지난해 12월, 남성은 2년 전쯤 결혼한 남남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실제 사내 연인이다."
7월11일 저녁, 민주당 장전형 부대변인은 다음 날짜 가판 신문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휘경동 임대 아파트 입주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진에 젊은 남녀 두 쌍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혼 부부가 임대 주택 입주 자격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던 장부대변인은 곧바로 '취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젊은 부부 두 쌍은 임대 아파트 주민이 아니고, 동대문구에도 살지 않는다"라는 한나라당 장광근 동대문 지구당위원장의 답변을 받아냈다. "이회창 후보가 국민을 우롱하는 '민심 조작 쇼'를 벌이고 있다"는 민주당의 공격은 이렇게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이번 간담회에는 신혼 부부를 위한 임대 주택 지원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무주택 예비 부부와 신혼 부부 1쌍씩을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참석시켰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간담회 도중 본인들이 이 지역에 살지 않고 전세 사는 신혼 부부라고 신분을 밝혔는데 무슨 연출이냐"라면서 허위 사실 유포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반박했다.
'민생투어 연출' 논란은 때마침 터진 개각과 총리 인사청문회 뉴스에 치여 '반짝 뉴스'로 끝났다. 그런데 후속 취재 결과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초 신혼 부부라고 했던 1쌍은 서로 부부가 아닌 데다, 네 사람 모두 이 결혼정보회사 직원들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신혼 부부로 알려졌던 커플 가운데 여성은 지난해 12월, 남성은 2년 전쯤 결혼한 남남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실제 사내 연인이다.
"젊은층 의식한 '그림 만들기' 강박관념이 문제"
행사 당일 이들을 인솔하고 나갔던 왕 아무개 실장은 "한나라당 전문위원이 행사 전날 전화를 해 신혼 부부나 예비 부부를 참석시켜 달라고 했다. 하지만 회원들을 섭외하기에 시간이 촉박해 직원 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고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도 참석자들이 우리 회사 직원이라는 것, 그리고 신혼 부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들의 인적 사항을 다 적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7월12일 나온 남경필 대변인의 브리핑과 김영선 수석 부대변인의 논평에는 이들이 버젓이 '신혼 부부'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 이들이 결혼정보회사 직원이라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행사 목적만으로 따진다면 이 사건은 크게 문제 삼을 사안이 아닐 법도 하다. 이회창 후보가 임대 아파트를 방문한 주된 이유가 임대 주택, 반 지하방, 전,월세 거주자 같은 서민들의 애로 사항을 청취하려는 것이었고, 이날 참석한 결혼정보회사 직원들은 다 주택 문제에 관심이 많은 무주택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혼 부부 섭외를 꼭 결혼정보회사에 의뢰해야만 했는가는 논란의 소지를 남긴다. 대통령 후보가 '민생 투어'(남대변인은 '정책 투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를 제대로 하려면 현장에 충실해야 하는데, 형식에 집착하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후보 진영의 지나친 '그림 만들기'가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후보 진영에는 후보가 젊은층과 함께 있는 사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의식이 은근히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굳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젊은 커플을 동원하고, 게다가 이들을 후보 양 옆에 앉히기까지 한 데는 젊은층을 의식한 '연출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이 행사에 관여했던 김남성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다른 주민들은 얼굴 나가는 게 싫다고 해서 젊은 커플을 앉힌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때 찍힌 몇 장의 사진은 최근 이후보의 '민생 투어'도 연출되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지난 대선때도 동일 인물 계속 등장해 연출설 돌아
1997년 11월16일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이후보는 대학로를 찾아 세 가지 행사를 치렀다. 가장 먼저 한 공연장에서 마당 굿을 관람했고, 다음으로 길거리 농구를 하는 학생들 틈에 끼어 중거리 슛을 쏘았으며, 마지막으로 한 노천 카페에 들러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청소년 공약을 발표했다. 11월17일자 모든 신문은 '이후보가 취약 계층으로 꼽히는 청소년층과 친해지기 위해 휴일 하루를 할애했다'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그런데 이날 실린 사진을 자세히 보면 다른 장소, 다른 행사인데도 이후보 주변에 동일 인물이 등장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길거리 농구장에서 이후보에게 슛을 권유했던 남학생은 노천 카페에서 이후보 바로 옆에 앉아 있다.
물론 그가 이후보를 좋아해 하루 종일 따라다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마니아'가 한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연출 의혹이 짙다는 것이 사진을 본 사람들의 중론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하철 출근길에 똑같은 사람을 만난 것도 그렇고,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후보의 민생투어가 모두 연출 작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보는 지난해 2월 민심 청취를 위해 지하철로 출근할 때 만난 여대생이 한 달 전 그 자리에서 만난 동일 인물이었다는 점, 또 그날 얘기를 나눈 명퇴 여교사가 이후보를 동행한 전재희 의원의 여고 동창이었다는 '우연' 때문에 한동안 '연출설'에 시달렸다.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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