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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거품시대] 회계사 합격보다 취업이 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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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말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한 김미희(29·가명)씨는 7개월째 일자리를 못 구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3년 이상 피말리게 공부한 끝에 염원의 회계사 자격증을 따냈으나,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 셈이다. 김씨는 “회계법인과 상장기업에 얼마나 많은 원서를 냈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고 씁쓰레했다.
자격증의 수난(受難)을 나타내는 사례는 또 있다. 올 연초 조흥은행의 신입사원 공모에는 2명의 국내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미국재무분석사(CFA)·미국 회계사(AICPA) 등 60명의 전문 자격증 소지자들이 대거 응시했다. 그러나 세무사 5명 중 4명이 떨어졌고, 국내 공인회계사·미국 재무사도 몇 명이 탈락해 충격을 주었다.
자격증이 취업의 보증수표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 물론 공인회계사·변리사(辨理士)·세무사 등의 전문 자격증 소지자는 아직 상대적으로 높은 혜택을 누리고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작년부터 자격증 합격자 수를 대폭 늘리면서 ‘프리미엄’은 줄어들고 있으며, 자격증 시장의 ‘거품’도 급속히 빠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 파장동에 자리 잡은 ‘국세(國稅)공무원 교육원’에는 요즘 20여명의 공인회계사가 국세 관련 연수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작년 9월 12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그 어렵다는 회계사 자격증을 따낸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정의 연수(硏修)를 마치고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자 금융감독원이 예산을 지원해가며 직무 연수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김용하 차장은 “지난해 합격자 중 해외 어학 연수자를 제외하고도 30여명이 아직 일자리를 잡지 못했다”며 “공인회계사 시험이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자격증 시장이 공급초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는 예년의 두 배인 1014명의 공인회계사를 선발해 시장에 배출시킨 반면, 이미 일감이 포화상태에 이른 35계 회계법인들은 올해 신규 채용하는 회계사 수를 대폭 줄였다.
금감원 유태식 팀장은 “회계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회계사 수를 계속 늘리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1000여명의 공인회계사를 선발할 계획이다. 회계사 과잉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얘기다.
특허·실용신안 등의 출원을 대리하는 변리사(辨理士)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작년 120명이던 선발인원이 지난해 200명으로 늘어났고, 변호사들까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변리사 영역으로 속속 진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변리사 업무를 하겠다며 특허청에 등록한 1961명(5월 15일 현재) 중 절반이 넘는 1007명이 변호사다.
작년 12월의 변리사 시험 합격자 200명은 가혹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변리사 영업을 하려면 시험 합격 후 특허사무소에서 1년 동안의 실무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50명이 3월 말까지 교육받을 특허사무소를 잡지 못했다. 보수를 줘가며 교육을 시켜야 하는 특허사무소측에서 채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변리사 시험 합격생들이 자리를 못 구해 비대위까지 만든 것은 처음이었다. 그 후 연봉을 대폭 낮춰 대부분 특허사무소에 들어가긴 했지만, 6명은 아직까지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 6명 중 한 사람인 K(37)씨는 “직장까지 접고 변리사 시험을 봤지만 왜 변리사가 될 생각을 했는지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상위권 그룹을 제외하면, 자격증 소유자라고 해서 반드시 고소득이 보장되진 않는 ‘자격증 과잉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 黃順賢기자 icarus@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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