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뉴스] 한국 휴대폰 세계최고로 이끈 디자이너들 > 자유게시판

• 수정
• 삭제

• 목록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구글+ 공유
• 

5일마다 새 디자인… 노키아도 ‘항복’
삼성전자 휴대전화기 디자인팀 황창환 수석디자이너는 삼성그룹 전체에서 ‘수염 1호’다. 본사 직원들의 정장 근무가 원칙인 삼성에서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여간 튀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염소수염을 7년째 고집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외모부터 개성과 신비감을 주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영업이나 개발부서와 협의할 일이 많은데, 수염을 기르고 얘기를 나누니
까 말이 잘 먹히더라고요.” 황 부장이 수염을 기르는 이유는 단순한 멋보다는 ‘전략’적인 요소가 강한 셈이다.

삼성전자 휴대전화기 디자인팀. 매년 60~70개의 휴대전화기 디자인을 창조하는 이곳은 ‘삼성’의 전통과 이질적인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
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사무실 풍경부터가 그렇다. 전등 갓을 붙잡고 있는 개구리 인형에서 1m가 넘는 모형 구축함, 로봇 인형, 괴기스러운
해골 인형까지….

디자인실은 또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팀원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야근을 한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재작년 여성전용 휴대전화기(드라
마폰)을 개발할 때에는 제품 컨셉트를 잡지 못해 5~6회씩 새로 작업을 했다”면서 “제품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팀원들 모두가 서울 시내 백
화점과 화장품 가게를 샅샅이 뒤진 적도 수없이 많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기는 한국 최고의 수출상품으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39억달러를 수출해 조만간 반도체와 자동차를 따라잡을 태세다. 한국산
휴대전화기가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톡톡 튀는 디자인 덕분이다. 디지털캠코더나 노트북PC 등 다른 디지털 기기
와 달리, 휴대전화기는 한국의 디자인이 세계 유행을 주도하고 있다.

2년 전 삼성전자가 내놓은 ‘듀얼 폴더’(휴대전화기 외부에도 표시장치가 달려 있는 접이형 제품)는 중국 젊은이들의 ‘재산목록 1호’가 됐고, 화
장품 케이스를 연상시키는 드라마폰은 프랑스 여성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또 LG전자의 폴더 ‘아이북 시리즈’는 지난 99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400만대 이상 팔렸고, 휴대전화기 LCD(액정화면)가 270도 회
전하는 ‘LG싸이언 KH5000’ 모델은 최근 산업자원부의 우수산업디자인(GD)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산자부는 이 제품을 “폴더 제품을 잇는 혁
신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과 LG 외에 탄탄한 중견업체들도 디자인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세원텔레콤의 유럽식(GSM) 휴대전화기(모델명SG-1000)는 작년 상반
기 중국에서 모델별 판매순위 3위에 올랐다. 이 제품은 폴더형 휴대전화기의 뚜껑을 투명하게 처리해 휴대전화기를 접은 상태에서도 안쪽의
LCD화면을 볼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세원은 이 아이디어로 ‘막대형’ 유럽 제품에 젖어 있던 중국인의 눈길을 당기는 데 성공했
다.

이처럼 한국의 디자인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비결은, 순발력 있는 제품 출시 능력이다. 노키아·모토로라 등 해외 메이저 업체들이 1년에 20
개 안팎의 모델을 내놓는 반면, 국내 업체들은 매달 5~6개 모델을 쏟아낼 정도로 기민하다. 그래서 휴대전화기 디자인이 한국인의 ‘빨리빨리’
감성에 가장 잘 맞는다는 평가도 있다. 270도 회전 모델을 개발해 대통령상을 받은 LG전자 김영호 책임연구원은 “한국 디자이너는 45일 만에
한 개 모델을 만들어낼 정도로 순발력이 뛰어나다”고 말했고, 같은 팀의 이정규 선임연구원은 “휴대전화기는 7개월이면 승부가 나기 때문에
늘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변화무쌍한 디자인에는 젊은 구성원들의 튀는 캐릭터도 한몫 단단히 한다. 우선 휴대전화기 디자이너들의 평균연령이 30세 안팎으로 개성이
강한 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금발, 겨울에는 회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삼성전자 김태중씨는 “나의 외모나 제품 디자인이나 모
두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폰을 디자인했던 삼성전자 김남미씨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보면 자식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면서 “우리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 조형래기자 hrch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