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새로운 인생] 회춘강좌/ 집안 궂은일 도맡아라
페이지 정보
본문
평균 수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남녀 간의 평균수명 차이는 7년 정도로 비슷하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남녀 간의 평균수명 차이는 있지만, 그 폭이 예외적으로 작은 나라도 여럿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가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남녀 간의 평균수명 차이가 반드시 필연적이거나, 또는 유전적 소인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한국 남녀 간의 평균 수명 차이는 중년 이후 한국 남성과 여성의 생활 패턴과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대학 동창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대화를 통해 한국 남성의 문제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타국에 살고 있는 교포에게도 똑같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핵심은 중년 이상의 한국 남성들은 집 안에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장 과정에서 이미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을 하고, 이에 따라 바깥 일은 하되 안의 일은 안한다는 장벽을 스스로 심신에 못박아온 한국 남성들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내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의 열성적인 생활 덕분으로 남편은 집안에서 아이들 뒷바라지는커녕 이러저러한 가정 일에조차 참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부인이 외출 중에 다섯살배기 막내딸이 들어와 두리번거리다가는 “Nobody here!(아무도 없네!)” 하고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소파에 버젓이 앉아 있는데도 말이다. 딸 아이는 아버지가 도무지 도움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간 것이다. 이 모습을 본 친구는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자식에게 소외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월드컵 응원만 해도 그렇다. 거리에 쏟아져 나와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군중 가운데 상당수는 젊은 여성과 아줌마 부대였다. 반면 중년 이후 남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점잖은 체면에 어디 그런 데를 나설까?’하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외활동이 위축되고 축소될 수밖에 없는 중년 이후 남성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가장 가까운 일부터 스스로 시작하는 용기를 가져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더불어 어울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옭아맨 일상생활의 굴레는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겠는가? 이를테면 전 국민이 요동했던 월드컵 소용돌이 같은 경우도, 외면하지 말고 같이 젖어봤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백세인 조사과정에서 만나 보았던 남성 백세인들은 모두 여든이 되도록 농사일을 직접 했고, 백살이 되도록 동네와 집안의 모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분들이었다.
(박상철/서울대 의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