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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100년사] 2002년 6월 4일 월드컵 첫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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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축구의 전래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현 인천)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최초의 축구경기는 1906년 3월에 서울 삼선평(오늘의 삼선교 부근)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일전이다.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됐고, 이어 1928년 국내 최초의 축구인 조직인 '조선심판협회'가 창립됐다.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됨으로써 한국에 정식으로 축구가 조직화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서울과 평양 축구팀간의 대결인 경-평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국민이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조선축구협회는 1948년 해방과 함께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한국은 그해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했고, 1954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해외무대 데뷔
한국은 48년 런던올림픽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멕시코를 5대3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2회전에서 스웨덴에 0대12로 패해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64년 도쿄올림픽에 다시 진출하면서 올림픽에는 단골로 진출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가나를 1대0으로 꺾고 48년만에 본선 첫 승을 거두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2승1패를 거뒀지만 골득실차로 탈락, 한 번도 8강(16개팀 출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한국은 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무대를 밟으며 한국 축구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한국은 지역 예선에서 일본을 1승1무로 제치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에야 스위스에 가까스로 도착한 대표팀은 헝가리전에서 0대9로 대패했다. 그러나 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무대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83년에는 제2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멕시코)에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19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세계 대회 4강에 드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프로리그 출범과 해외진출
1983년 할렐루야, 유공, 대우, 포철, 국민은행 등으로 구성된 '수퍼리그' 출범으로 한국에 프로축구가 자리잡게 됐다.
2002년 현재 K리그라는 이름으로 10개팀으로 운영되는 프로리그는 한국 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또 79년 차범근의 독일 분데스리가, 80년 허정무의 네덜란드리그 진출 이후 한국 선수들도 국제 무대에 활발히 뛰어들기 시작했다. 차범근은 독일에서 차붐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월드컵 16강 진출
뒤늦게 뛰어든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공동개최라는 성과를 거둔 한국은 히딩크 감독을 영입, 17개월간 대표팀의 전력향상을 위해 공을 들인 끝에 마침내 폴란드를 잡고 첫승을 장식했다. 100여년의 한국축구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가 장식되는 순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16강 돌파다.
< 스포츠조선 정혜정 기자 base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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