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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심각]죽음의 선택-안락사, 이젠 고통없는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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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계속 여론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강력하다.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 선택하게 되는 안락사. 몇달전 케보키언의사가 안락사장면을 공중파로 내보냈다. 그러자 각계층에서 입장이 격돌하고 있다. 우선은 케보키언은 구속되었다. 그러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그는 3월달에 있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많다. 결코 이 문제는 단순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것이다.
난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입장을 분명히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라.... 태어날 때 부터 인간은 그 자체로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 불편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 오늘날 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념이다. 하지만, 고통속에 있는 환자를 보는 우리는 환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 한다.
아니, 감상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불치병이라 현대의약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데, 그 환자를 그냥 살려야 하는가?
아무리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고통속에 있는 환자는 정말로 죽길 원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무조건 불치병에 걸렸다 하여,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만약 그러한 경우에 안락사가 제기 된다면, 이거야 말로 존엄성문제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부분 안락사를 하게 되면, 환자가 원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보았을 것이다. 몇달전 미국의 공중파를 탔던 안락사장면을... 그 장면에서 그 환자는 분명히 원했다. 주위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였다. 더이상 고통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우린 죽을때 고통받지 않기를 원한다. 아니, 모두의 바램일 수도 있다. 그냥 잠자면서 죽는 것을 원한다. 우리가, 어떠한 병에 걸려 고통으로 쓰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도 그냥 죽고 싶어서, 이 세상이 싫어서 원한건 아니다. 바로 육체적 고통이다. 육체적 고통을 여러번 당하는데 그걸 참고 이겨낼 수 있는가? 또한 그렇게 해서라도 생명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데도 행복이란 것을 느낄까?
우린 육체적으로 아파오면 병원에 간다. 아니 조금만 아파도 약을 바르고 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의 고통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 환자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의 수십배나 될 것이다. 약으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약에 의지해 사는 인생이 과연 행복할까? 우린 여기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존엄성을 위협하는 존재는 사람만일까? 그건 아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사람을 아프게 하고, 사람을 편치않게 하는것은 모두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어찌 사람만이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는가?
전 또한 케비키언은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죄입니다. 그는 정말로 고통속에서 해메는 환자들의 영웅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강력하다.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 선택하게 되는 안락사. 몇달전 케보키언의사가 안락사장면을 공중파로 내보냈다. 그러자 각계층에서 입장이 격돌하고 있다. 우선은 케보키언은 구속되었다. 그러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그는 3월달에 있을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많다. 결코 이 문제는 단순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것이다.
난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나마 입장을 분명히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라.... 태어날 때 부터 인간은 그 자체로 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 불편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 오늘날 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념이다. 하지만, 고통속에 있는 환자를 보는 우리는 환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 보아야 한다.
아니, 감상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불치병이라 현대의약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데, 그 환자를 그냥 살려야 하는가?
아무리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고통속에 있는 환자는 정말로 죽길 원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무조건 불치병에 걸렸다 하여,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만약 그러한 경우에 안락사가 제기 된다면, 이거야 말로 존엄성문제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부분 안락사를 하게 되면, 환자가 원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 보았을 것이다. 몇달전 미국의 공중파를 탔던 안락사장면을... 그 장면에서 그 환자는 분명히 원했다. 주위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였다. 더이상 고통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우린 죽을때 고통받지 않기를 원한다. 아니, 모두의 바램일 수도 있다. 그냥 잠자면서 죽는 것을 원한다. 우리가, 어떠한 병에 걸려 고통으로 쓰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 그럴까? 그건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도 그냥 죽고 싶어서, 이 세상이 싫어서 원한건 아니다. 바로 육체적 고통이다. 육체적 고통을 여러번 당하는데 그걸 참고 이겨낼 수 있는가? 또한 그렇게 해서라도 생명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는데도 행복이란 것을 느낄까?
우린 육체적으로 아파오면 병원에 간다. 아니 조금만 아파도 약을 바르고 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의 고통은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 환자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의 수십배나 될 것이다. 약으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약에 의지해 사는 인생이 과연 행복할까? 우린 여기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존엄성을 위협하는 존재는 사람만일까? 그건 아니다. 어떠한 것이라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사람을 아프게 하고, 사람을 편치않게 하는것은 모두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어찌 사람만이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는가?
전 또한 케비키언은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죄입니다. 그는 정말로 고통속에서 해메는 환자들의 영웅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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