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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단군신화의 종합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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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실
댓글 0건 조회 583회 작성일 02-01-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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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원사화에 대하여
이 상시

단군신화의 종합적 이해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서 감개가 무량합니다. 제가 약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TV나 사법연수원이나 변호사연수회에 가서 강연을 했습니다만, 그 이후 강연을 중단했습니다. 왜냐 하면 작년부터 시작해서 식민사학자들의 일부교수들이 전부 똘똘 뭉쳐서 저의 논문을 신문에 게재해 주지않고, 또 한국일보 고문으로 있는 천 모씨가 MBC, KBS 등 여러 방송사에 연락해서 될 수 있으면 못나가게 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작년 개천절부터는 제가 TV에 못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강단에 올라서는 것이 상당히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오늘 감개가 무량합니다.

국내적으로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민주화의 회오리 속에서 매일 데모와 여러 아우성들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건데 일본의 소화(昭和)시대는 우리 민족을 침략하던 때였고, 또 일본이 마지막 발악을 하던 때였습니다. 63년이라는 지루한 소화시대가 끝나고 일본은 가장 아름다운 용어를 써서, 다시 말하자면 천지와 내외가 모두 평화를 이룩한다는 뜻으로 평성(平成)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이처럼 그 본성은 교활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지금 새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들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광복했지만, 유독히 44년이라는 반세기가 지나도록 역사의 광복은 이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조계에 있었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아는 힘을 다해서 역사광복에 이바지하려고 1984년부터 이 방면에 투신했지만, 아직 한없이 외롭고 험난한 길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규원사화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제가 강의를 하고자 합니다만, 이 규원사회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실로 규원사화에 대해 그것을 해석하고 거기에 대한 논평을 하자면 100시간을 가져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막연하게 규원사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이고 강연을 하려고 하니까,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할지 분간이 안섭니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동안만이라도 대충 규원사화가 차지하는 역사상 위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삼국유사와 관련해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해방 후에 삼국유사만 가지고 자꾸 들고 나섰습니다. 일제는 1916년 대정(大定) 14년부터 1938년 소화(昭和) 13년 3월15일까지 22년동안이라는 긴 세월을 통해서, 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하든지 일본역사보다도 낮게 깎을 목적으로 대대적 역사왜곡 작업을 합니다. 왜냐 하면 일본의 역사는 서기전 660년에 시작해서 금년까지 2649년이 되는데, 우리 역사 4322년과 비교하자니 1673년이나 뒤지기 때문이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이 되자마자 일본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다사끼 육군원수는 긴 칼을 차고 와서 조선총독부 내에 취조국이라는 부서를 설치합니다. 그리하여 한국을 영구히 통치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가 자기들의 역사보다도 2000년이나 더 오래 되었기에, '이대로는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자기네의 역사보다 더 오래되면, 식민지가 오히려 거꾸로 되기 쉽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어떤 한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무력으로는 잘 되질 않습니다. 마음 속으로 순종하게 만들어야 통치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렇게 하자면 일본민족의 조상은 한국민족의 조상이었고, 일본과 조선은 동조동근(同祖同根)으로서 조상도 같고 뿌리도 같다는 것을 부각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과 조선은 옛부터 '둘은 한 몸이다'라는 내선일체의 역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를 저희들보다 짧게 깎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 역사가 2649년이고 우리 역사는 4300년이니까, 사실 큰일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삼국시대 때부터 깎아내리면 자기네 역사보다 짧게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 중 가장 먼저 일어난 나라는 신라인데, 서기전 57년, 단기 2277년 갑자년이 신라의 시작입니다. 일본의 건국이 660년이니까 신라건국과는 713년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당시 일제는 이 차이를 없애기 위해, 옛부터 내려오던 조선 역사서는 전부 불태워 버리거나 일본으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가져간 역사서는 지금 일본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말도 있으나, 그 근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조선역사를 깎기 위해 단군의 역사를 신화로 돌려 버렸습니다. 또 분명히 중국사적에 기록되어있는 기자조선도, 중국기본사적에 실체가 기록되어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중국사람이 썼으니까 우리의 역사일 수는 없다는 이론을 폈습니다. 즉 단군은 신화요, 기자는 전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혹 전설이 아니라 하더라도 중국역사이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위만도 연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위만조선 87년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국은 예로부터 세나라가 분립해서 죽자 사자 싸움만 해 왔다고 하면서, 그 전에 한수이북은 위만조선 이후 중국 한나라 무제가 4군을 설치했고, 이남은 일본의 신공황후가 정복해서 임나일본부라는 것을 설치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필연적으로 옛부터 외국의 식민지였고, 분열된 나라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우리의 조상이 하나라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했습니다.

단군조선을 보통 고조선이라 하는데, 이 단군조선이 신화라는 것을 문헌상 가장 적절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유사는 불가사서입니다. 스님이 쓴 것입니다. 내용을 살펴 보면, '암곰이 화해서 여자가 되었는데 교미해서 낳은 것이 우리 조상이고, 그 조상이 1500년간 조선을 통치하다 죽었는데 그 나이가 1908세였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내용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서적이 동국사략(東國史略),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사찬요(東史纂要) 등으로 전부 단군이 혼자 1048년동안 재위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일제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서적들만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가사서 내지 민족고유계통의 사서, 다시 말하면 단군을 47대로 서술한 우리 민족고유계통의 사서들은 전부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에 저는 단군실사에 관한 문헌고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8년동안 돌아다니면서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고, 단군이 47대라는 것을 기초로 하여 책을 펴냈습니다. 그것이 {단군실사에 관한 문헌고증}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앞서 설명한 규원사화입니다. 이 규원사화는 여러가지로 면밀히 검토해 볼 때,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타당성이 있는 사서라고 생각합니다.



단군의 기원과 실존
그러면 이 규원사화가 왜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타당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개천절만 되면 단군 단군 하는 소릴 자꾸 하는데, 4300년 전에는 한문이 없었습니다. 단군이란 말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삼국시대 이전에는 어떻게 불렀겠습니까? 이것은 규원사화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박달임검지역야(朴達壬儉之譯也)'라 해서, '단군이란 박달나라 임금을 번역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박달이라는 말은 옛부터 백달이나 배달로도 불렀습니다. 또 나라의 우두머리는 임검이라 했습니다.

또 규원사화 단군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신씨이강어단목지하 이환검신인(神氏已降於檀木之下 而桓儉神人 )'이라 해서 그 뜻을 살펴보면, '신씨천황께서 이미 박달나무 밑에 하강했고, 환검신인이 다시 단목 아래에서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단(檀)으로써 나라이름을 삼은 것이며, 단군이란 단국의 임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단군을 환검이라고 했는데, 이 환검이 왕검이나 임검으로 변한 것입니다. 내용 중에 환검신인, 즉 단군이 박달나무 밑에서 인민들로부터 추대되어 임검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연히 박달이라는 것이 나라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것은 박달나라의 임검이 라는 의미가 됩니다.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인 이 박달임검은 계속 불려져내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약 2천년 후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에 불교가 들어올 때를 전후해서 한문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사가들이 역사를 한문으로 서술하다 보니까, 박달임검을 박달단(檀)자 임금군(君)자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단군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한문이 들어오기 전에는 단군이라는 용어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병도씨의 '단군이란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떤 이는 단군을 탱구리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로 박달나라의 임검이란 뜻을 번역하다 보니까 단군으로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문헌이 있습니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보면, 세칭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낙랑단궁이라고 한 것은 활이 생산되는 지명이 박달이기 때문에 단궁(檀弓)으로 불렀고, 또 나라이름이 박달나무와 같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유전되어 왔던 것입니다.

단군, 단군임검 또는 단군왕검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박달나라의 임검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명사입니다. 시조단군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일 수 없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후손들도 모두 '박달나라 임검'이라는 뜻으로 계속 단군이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제왕연대력이나 조선사례기 혹은 해동춘추 같은 책을 보면, 처음 국호가 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전에 규원사화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청중석에 농림부 장관 지냈던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연을 하다가 도중에 중단하고, 갑자기 그 장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농림부 장관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강생들이 모두 깜짝 놀래서 농림부 장관을 쳐다 보았습니다. "농림부 장관께서는 우리나라 농사를 주무하던 장관을 지내셨는데, 우리나라 농사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하니까, "그야 뭐 신농씨죠" 그럽니다. "아니 신농씨는 중국농사의 조상이지 우리나라 농사의 조상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농사의 조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장관님의 고향은 어디입니까?"하고 물으니, 경상도 어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또 질문했습니다. "시골에서 밭을 맨다거나 김을 맬 때 또는 모심기를 할 때 점심밥을 가져오면, 점심먹기 전에 뭐라고 합니까?"하니 "그야 고시례라 그러죠."

규원사화에 고시례(高矢禮)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단군시대에 고시(高矢)씨가 백성들에게 씨를 뿌려서 거두는 법(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도다. 고로 농부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점심밥(들밥)을 대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한 숟가락을 떠서 "고시례(高矢禮)"하고 외치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고시께서 우리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신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한 뜻이다.' '농부(農夫)나 초부(樵夫)가 밥을 먹을 때에 고시례라고 축언하는 것은 고시씨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1세 단군 때 8대 대신(大臣)이 있었는데, 이 중 농사를 관장한 사람이 고시씨입니다. 그 당시에는 물론 높을 고(高)자, 살시(矢)자로 쓰지는 않았겠죠. 국문으로는 어떻게 불렀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 음이 한문으로 음역되어 고시(高矢)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고시어른께 예를 올리기 위해서 밥을 먹기 전에 고시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1세단군에게는 네명의 아들 부루, 부우, 부소, 부여가 있었는데, 맞아들인 부루는 2세단군이 되었고, 제일 끝의 부여는 부여나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규원사화에 보면 '부시(부소가 부시로 와전되었음)가 마른 쑥을 재료로 하여 쇠와 돌을 서로 맞부딪쳐서 불을 만들고, 그 불로 산과 늪을 태우니, 이에 짐승과 벌레가 멀리 도망하여 그 해가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부싯돌, 부시철, 부싯깃 하는 것은 모두 3세 왕자인 부시의 공을 기리고자 하는 데 그 연원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민속에 관계된 여러 풍습들이 규원사화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이런 걸 본다면 단군에 관한 기록으로는 규원사화가 아주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군이라는 용어는 한문이 생기고 나서 생겼다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용어는 위서(魏書)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는데, 일연이 그것을 삼국유사에 다시 인용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 단군을 부인하는 근거는 '중국고대사적에 단군이라는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실제 삼국시대 때 한문이 들어와서 비로소 박달단(檀)자 임금군(君)로 번역되어 그것이 위서에 인용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여러 위서(魏收의 魏書, 三國志 魏書, 魏略 등)에는 단군이라는 말이 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나 단군이라는 기사나 기록이 중국측 고대사적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단군이 역사상의 실존인물이 아니고 허구의 날조된 인물이라고 단정하는 일제사학자들이 내세우는 그 같은 논리는, 우리 상고사를 올바르게 깊이 연구하여 보지도 않고 오로지 단군사를 말살하는 데만 그 촛점을 맞추어 꾸며낸 얄팍한 이론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약 앞서 말한 것처럼 일제사학자들의 논법대로 한다면, 중국의 고대기본사적에 기록되지 않은 일본의 고대사도 모조리 삭제하여 버려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위서에 처음으로 단군이라는 말이 등재된 것은, 한자로 이역되어 박달단(檀)자와 임금군(君)자를 합쳐서 단군이란 용어가 만들어진 이후입니다. 그리고 이건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입니다. 그래서 1세단군 이후의 통치자들도 모두 단군이라고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단군이 혼자서 1000년간 통치했다고 와전된 것입니다. 또 그 명칭에 있어서 신단실기(神檀實記)를 보면,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왕검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임검(壬儉)이 옳습니다. 이 왕(王)자와 임(壬)자가 글씨모양이 비슷해서 임자가 왕자로 와전된 것입니다.



광복을 기다리는 우리 역사
그럼 {단군실사에 관한 문헌고증}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28년동안 규원사화를 가지고 연구해본 결과, 중국고대기본사적과 합치되는 부분 열군데를 발견했습니다. 좀 딱딱한 얘기지만 규원사화에 보면, 제3세 임검 가륵임검 때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때마침 하왕이 덕을 잃어 신하들 중에서 몇몇이 배반하여 군사를 일으키고, 임금의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식달에게 남국과 진번의 백성을 이끌고 이들을 치게 하니, 나라의 위엄은 크게 빛나게 되었다(時夏王失德 其臣有謀逆者 乃使息達 率藍眞蕃之民 以征之於是國威益彰).' 여기서 식달은 사람으로 요즘 말하면 국무총리 벼슬에 있던 사람입니다. 또 단군조선은 나라를 아홉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진번과 남국은 그 아홉나라 중 두 나라에 해당되는 나라입니다. 위 대목에 보면 그 당시 중국임금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위 내용과 부합되는 중국측 사서가 있습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보면, '하나라 임검 태강이 덕을 잃어 이인(夷人:동이인, 즉 조선사람)이 비로소 배반하기 시작했다(夏后氏 太康失德 夷人始畔)'라는 내용이 있고, 그 주(註)에 '태강 예에게 쫓겨 났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왕 태강이 그 신하 예에게 추방당한 연대가 표준세계년표에 의하면 '태강 19년 신해(辛亥,서기전 2170년)'이므로, 이 연대를 우리 가륵(嘉勒)임검의 즉위년대수를 기준으로 하여 우리측 기년(紀年)으로 환산하여 보면 가륵임검 37년 신해(단기 164년)에 해당하므로 위 사실은 대략 이 무렵에 일어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내용이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군데 다 얘기하자면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하나만 더 들겠습니다. 이 내용은 환단고기에도 약간 나오는 내용입니다. 15세 벌음(伐音)단군 때의 기사를 보면, '때마침 하왕이 사신을 보내와 도와줄 것을 요청하여 말량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게 하여 구해 주었다. 그 후 또다시 하왕이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임금이 그 무도함을 물리치고 허락하지 않았다(時夏王遣使請援 乃末良 興兵進救 後夏王復請兵 儉以其無道却而不許)'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중국측 사서 여러 군데를 찾아본 즉, 서기전 77년에서 서기전 6년에 살았던 유향(劉向)이라는 분이 쓴 설원(說苑) 제13권 권모편(權謀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위 벌음(伐音)과 같은 시기에 재위하였던 하왕 계(癸) 52년 갑오(甲午,서기전 1767년)에 '탕이 하왕 걸을 토벌하려고 하므로, 걸왕이 노하여 조선의 군사[九夷之師]를 일으켜서(조선 군사의 힘을 빌어서) 탕을 토벌하니, 탕이 이에 걸왕에게 사죄하였다(湯慾伐桀 桀怒起九夷之師 以伐之 湯乃謝罪)'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해인 53년 을미(乙未,서기전 1766년)에는 '탕이 걸왕에게 조공을 하지 아니하므로 걸이 다시 조선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구이가 군사를 일으켜 주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탕이 군사를 일으켜서 걸왕을 토벌하여 남소(南巢)로 추방하였다(湯不貢 桀起九夷之師 九夷不起 湯乃興師伐之 遷桀南巢)'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바로 앞서 말한 규원사화의 벌음임검의 기사내용을 뒷바침해주는 것입니다. 위 사실을 우리측 기년(紀年)으로 환산하여 보면, 벌음임검 5년 갑오(甲午,단기 567년)와 6년 을미(乙未,단기 568년)의 2년에 걸쳐서 일어난 사실임이 뚜렷하다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예를 들겠습니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동이가 '드디어 옥문에 찾아와서 음악과 춤을 바쳤다(遂賓於王門 獻其樂舞)'라고 되어있고, 죽서기년(竹書紀年)에서는 하나라 16세임검 발(發)의 기사 가운데 '원년(서기전 1837년)에 제이(諸夷:단군의 여러 제후들)가 하왕문에 와서 춤을 추고 들어왔다(帝發元年 諸夷 賓于王門 諸夷入舞)'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규원사화의 단군기의 13세 흘달(屹達)단군 때(단기 491-534년, 서기전 1843-1800년)의 기록을 보면 ' ,이 때에 하나라가 이미 그 덕이 쇠약해지므로, 임검께서 사람을 보내어 그 정치하는 것을 보게 하고, 또 무악을 보내서 시험하게 하였다( ,時夏德旣衰 使人往觀其政 又送舞樂而 試之)'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위의 중국측 사서와 내용이 맞아 떨어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외 일곱군데가 더 있지만, 오늘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제 책 [檀君實史에 관한 文獻考證]이라는 책에 위 내용들이 다 나옵니다. 이 책이 나온 다음에 이병도씨를 위시하여 이기백, 천관우, 이기동씨 등은 이상시 변호사가 사학자도 아니면서 이런 내용의 책을 낸 데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책 내용을 반박할 사람이 없느냐 하고 상의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규원사화는 근세에 조작된 위서라는 데 초점을 맞춰서 논문을 쓰기로 결론내렸습니다. 그런데 대표격으로 쓰려는 사람이 없다가, 경남대학교 조인성이라는 교수가 2월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논문은 규원사화를 지지하는 학자들을 통해서,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김모, 신모, 박모, 정신문화연구원 정모, 경북대학교 강모 등의 사람들이 저에게 보내 왔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고, 즉시 반대의 글을 실었습니다. 변호사 회지에서 시작해서 국회동우회지, 한배달 등 여섯군데에 반박글을 썼습니다. 또 모 교수가 그 반박글을 자기 학보에 싣겠다고 가지고 갔고, 모 강사는 '국학'이라는 잡지에 싣겠다고 가지고 가서 총 여덟군데에 이 글이 났습니다.

그 후 저는 규원사화가 위서라는 글을 게재한 한국일보에 위서가 아니라는 저의 글을 게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글은 절대로 게재해주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얼마뒤 주간조선에서 조인성 교수와 이상시 변호사가 규원사화를 가지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광복을 위해 감정적으로만 소리높여 외쳐 부르는 우를 재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역사광복이라 할 때, 우리의 고대사가 가장 왜곡이 심하고 또 연구와 정리가 잘 안되어있는 까닭에, 오늘 단군과 관련된 문제를 가지고 같이 살펴본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무엇보다도 먼저 정리했을 때, 우리는 변화하고있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에 능동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통일을 비롯한 민족 내부의 여러가지 문제들도 해결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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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력
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법무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현 변호사

저 서
표준동양삼국 역사도표, 단군실사에 대한 문헌고증

논 문
국사교과서 개편시안에 대한 관견, 규원사화 위서론에 대한 종합적 논평, 개정국사교과서 논평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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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원 주요 판결 2024년 6월 6일 정리 결…
2024년 6월 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주요 결정 정…
2024년 5월 30일 대한민국 법원 주요 판결 정리 …
2024년 5월 27일 대한민국 법원 주요 판결 정리 …
2024년 5월 26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주요 결정 …
2024년 5월 23일 대한민국 법원 주요 판결 정리 …
(펌글)법무부, ′24년 1차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
(펌글)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 89.2%로 ‘18년보다…
조규홍 본부장 주재 중앙사고수습본부 제31차 회의 개최…
(펌글)장애인고용공단-아이티센그룹 ‘자회사형 장애인표준…
(펌글)신직업 및 유망산업 분야 현직자의 생생한 취업 …
(펌글)인공지능(AI) 시대의 청년취업, 「고용24」와…
(펌글)(참고) 고용률ㆍ경제활동참가율 3월 기준 역대 …
(펌글)(설명) 환경부는 기후적응법 제정을 추진한 바 …
(펌글)국립공원 암벽장 55곳 합동 안전점검
(펌글)(동정) 제2의 볼티모어 교량 충돌사고 대비한다
(펌글)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대문 화면
(펌글)2024.4.12. 대한민국 법원 대국민서비스 …
(펌글)발코니 벽 해체에 아랫집 소송···대법원 "위험…
(펌글)전세금 돌려준다 속이고 점유권 이전한 집주인, …
[펌글]국적 잃을뻔한 다문화 남매...대법 "주민등록증…
[펌글]2024. 4. 10. 각급법원(제1,2심) 판…
2022년 12월 9일(금)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2022년 12월 2일(금)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2022년 11월 28일(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2022년 11월 22일(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2022년 11월 17일(목)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2022년 11월 12일(토)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2022년 11월 7일(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2022년 11월 4일(금)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2022년 10월 17일(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2022년 10월 10일(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
(토론실 사이트 펌글)IDS X KIDA Korea 2…
2022년 9월 24일(토), 25일(일) 일기(다이어…
(토론실 사이트 펌글)IDS X KIDA Korea 2…
2022년 9월 21일(수), 22일(목), 23일(금…
2022년 9월 20일(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2022년 9월 19일(월) 일기(다이어트, 청취력 회…
(토론실 사이트 펌글)IDS X KIDA Korea 2…
2022년 9월 17일(토), 18일(일) 일기
2022년 9월 18일(일) 일기(체중변화 기록, 20…
(토론실 사이트 펌글)IDS X KIDA Korea 2…
2022년 9월 15일(목), 16일(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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