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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실
댓글 0건 조회 1,062회 작성일 02-01-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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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조상숭배와 문화권 선교

 

* 이 자료는 <교회와 신앙> 95년 3월호에 실린 글이다

글) 이동주 교수 <협성신학대학 선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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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유교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보통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인륜과 정치윤리론에 가깝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윤리적 중심이 되는 충효 사상은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서 대변하게 하는 조상숭배라는 뚜렷한 종교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유교권 선교는 오랜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부진하였고 또 유교권 선교를 위한 전략도 변변히 못한 실정이다.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도 끊임없이 시행해 오던 조상 제사는 유교의 종교적인 행사이고 그뿐 아니라 무속 문화권에 토착화된 고등종교들과 사이비 이단 종파들까지도 거의 예외 없이 시행해 온 공통적인 의례이며 심지어는 카톨릭 신자들과 일부 개신교들까지도 이를 허용하는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처럼 무교적인 영성과 고등종교들의 범신론으로 가득했던 아시아에서는 영들의 충돌이나 영분별이 요청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 불. 선교 및 힌두교와 그 이단들은 무교적인 다신론과 함께 병행주의 또는 포괄중의적인 형태로서 공존해 왔던 것이다. 기독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다원주의와 혼합주의 문화권에서 만나는 조상숭배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조상숭배 문화권에서 선교사가 배척을 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중국의 예수회 선교의 경우처럼 제사를 용납하면서 관용주위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루스드라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처럼 강력하게 우상숭배를 저지하고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주께 돌아오라는 (행14:14-18) 충돌을 겪을 것인가?

갈라디아서 1장 6절부터 9절과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서 23절의 바울 서신 내용이 나타내는 복음과 문화의 긴장 관계는 오늘날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복음의 유일성과 문화의 다양성 사이의 갈등 관계와 대조된다.

조상숭배 문화권에서 제시된 토착화 신학은 지금까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조상숭배를 단순한 윤리적인 의례로 보아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조상숭배와의 타협과 충돌을 번복해 왔던 천주교회의 선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 두 입장이 서로 다른 한쪽 성격을 무시함으로써 현지 선교의 심각한 문제를 기피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

 

유교의 귀신 숭배


고대의 의례에 관한 공자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고전 <예기>는 백신을 대상으로 붉은 송아지를 잡아서 희생제를 드리는 제의를 기록하고 있다.

백신중에는 일월성신, 사방신, 천지산천, 죽은 사람들의 혼들을 다 포괄하고 있다.

그들은 또 괴상한 일을 하는 모든 것을 신이라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들은 상제를 최고 신으로 숭배했으며 모든 자연신들은 상제의 군신 내지는 하늘의 현현으로서 숭배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연 숭배나 상제숭배 및 조상숭배 신앙은 은나라(B.C 1766-1123)시대의 제사와 정복에 관한 갑골문 16만편을 발견함에 따라 확실해진 것이며 그들의 삶은 제의 중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교문화 속에서 중국과 한국 초기의 카톨릭 선교를 통하여 크게 문제시된 조상숭배에 대해서 유교와 천주교의 신앙과 교리를 대조 연구함으로써 선교연구에 공을 세운 성균관 대학교 동양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수원의 카톨릭 신학대학 교수 최기복 신부는 고대 조상들이 사후에도 하늘에서 상제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그들은 후손들이 복과 화를 내린다고 믿었다고 하며 주대 (B.C 1222-247)에 이르러서는 신 중심적 관심으로로부터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인격적이고 최고신으로 숭배했던 `상제'와 같은 뜻으로 `天'을 사용하고 점점 군왕의 통치와 덕복을 중심으로 내면화하게 되었다. 이 때에 `인간은 신의 주재자'이며 `백성은 신의 주인'이라는 사상까지 나타난다.

 

공자의 신앙


이러한 인본주의적 동향 속에 당시 타락한 지도자들 밑에서 기근과 홍수와 질병까지 돌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지도해야 하는 하나의 법무장관으로서 공자의 본래적인 관심은 인륜과 정치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재래 종교들에 대해 비판하거나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수용하는 입장에 서 있는 윤리철학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의 효도윤리는 무속신앙과 자연 신앙이 혼합되어 있었다. 공자는 그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이며 능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기겠는가? 생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라는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한 듯하지만 그가 귀신 숭배를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제사할 귀신(대상)을 바로 알고 제사할 것과 제사할 때는 반드시 자신이 참여할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인 조상 내지 귀신이 살아 있는 듯이 대할 것을 가르쳤다

공자 자신도 귀신에게 제사할 때는 반드시 재계(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하고 의복과 음식, 거처지까지도 구별하였다. 논어에는 공자가 식사 전에 반드시 고수레(음식을 조금 떼어 바침)를 하였다는 것과 마을 사람들이 푸닥거리를 할 때는 조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있었다는 것과 붉고 뿔이 반듯한 송아지를 산천의 신이 받지 않겠느냐는 희생제에 대한 관심과 그의 자연신앙도 진술되어 있다.

 

귀신의 개념

 

공자의 개념 속에서는 신과 귀신의 개념이 구별되지 않는다. 또 번역가들도 그의 `神' 개념을 귀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통유교에서 `귀신' 또는 `귀'와 `신'은 인간론과 우주론을 구성하고 있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귀신이란 첫째로 신적 근원지를 일컬어 天, 신, 상제, 氣등과 동일시되고 둘째로 만물의 생성 (신)과 사멸(귀), 양의 신령(신)과 음의 신령(귀), 펴는 것(신)과 돌아가는 것 (귀), 산사람(신)과 죽은 사람(귀)을 일컫는다.

성리학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반은 신이며 반은 귀라고 하는데 살았을 때는 神이 주가 되고 죽은 후에는 鬼가 주가 된다고 한다. <예기>에는 사람의 몸이 기와 백이 있어 전자를 신의 신기한 작용으로 후자들과 혼의 신기한 작용으로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떠올라서 영원한 신령의 무리 속에 들어간다고 한다. 후대에 성리학자들은 <예기>의 기와 백 대신에 魂과 魄의 개념을 사용하며 혼을 신이고 백은 사람이 죽음으로써 갈라진다고 본다.

혼은 천으로 돌아가고 백은 지로 돌아가 혼백은 산화되어 일원기로 돌아감으로써 고유성이나 개체성은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유교의 사상이다.

그러나 이 신화론은 무속신앙과 결합되어 완전소멸이 아니라 제사를 통한 감홍으로 죽은 자의 현재를 경험하는 강신술(spiritism)과 혼합되었다. 유자들은 원한에 맺혀 죽거나 흉사의 경우엔 혼이 산화되지 않고 한동안 요괴가 되어 `신적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위와 같이 성리학은 사령이 근원자로 돌아가 元氣가 되고 기가 산화될지라도 오히려 그 이(理:태극과 동일시 됨)는 없어지지 않음으로 지성으로 제사를 지내면 그 제물을 흠양할 수 있다. 는 범신론적 신인동격 사상과 무속적 강신신앙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되는 곳이 바로 조상 숭배 제의이다. 유교의 범신론적 사상체계 속에서 조상신은 천신과 본질적으로 동일시되고 조상숭배가 바로 천숭배와 마찬가지로 간주되어 조상은 유교에서 유일한 숭배대상이 되고 있다.

 

誠, 효와 귀신 숭배의 동일

 

유교의 상제례에서 절대적인 요소는 성이다. 보통 지성 또는 정성으로 이해되는 성자는 중용에서 만물의 마침이며 시작이라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성실은 스스로 자기를 이루고 만물을 이룬다고도 하고 지극한 정성은 신과 같은 것 내지 귀신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神, * ,鬼神)

誠이란 위와 같이 만물실존의 근거일뿐 아니라 도덕 실천의 근거로써 중용 20장에서는 도를 아는 지식(도란 여기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5륜을 말함), 도를 체득하는 仁,도를 실천하는 용기 즉 지, 인, 용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유교의 개념 중의 하나이다.

또 18세기 한국 천주교도 이벽(1754-1786)에 의하여 설명된 유교의 정성이란 제사 지낼 때 귀신을 파악할 수 있고 귀신을 전할 수도 있게 되는 개념으로서 `음 양'귀신은 본래 초감각적이지만 그것이 가감각적이 되는 것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상을 제사지낼 때 발현하고 가장 보편적으로는 음, 양, 기가 여러 가지로 결합함으로써 가감적인 형태를 지닌 물체가 형성될 때 발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제사 드릴 때 성에 의하여 귀신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고 제물의 음향여부가 결정된다. 율곡도 산 사람이 성경하면 귀신도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조상이 거처하신 곳을 생각하고 웃고 말하던 것, 즐거워하던 것,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여 사고가 완연히 목전에 계심을 보게 될 때 `산화된 기'가 이에 격감한다는 것이고 기가 소멸되었더라도 이가 역시 격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와 성은 부모 사별을 막는 효행으로 절대시되고 효도의 실행 원리가 된다. 유교에서 제사를 지내니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악덕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성은 제사를 준비하는 재계의 과정에서 실현된다. 10일간 욕망을 끊고 마음을 가다듬고 심신을 깨끗이 하며 음식과 행동을 삼가며 음악을 듣지 않고 부정을 피하며 재계함으로써 신령을 맞을 준비를 하면 고인의 모습이 끊임없이 눈앞에 떠오르고 제삿날엔 고인의 영혼이 그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고인의 음성을 듣는 느낌이 든다.

효애의 마음이 골몰하면 부모의 영혼이 눈앞에 떠오르고 효경의 정성을 다하면 영혼이 그에 감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향을 피워 혼기를 모시고 술을 부어 백기를 모셔서 합일시키고 신령을 감흥케 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감흥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자 속에 내재화하는 것으로 상제례는 완성이 된다.

신령이 내 안에 있다는 느낌은 슬픔과 공허감을 안정시켜 주고 사자와 일체감과 통교를 느끼는 것이다. <예기>는 귀신의 실재에 대하여 사람이 죽으면 그 정기가 뭉쳐서 강한 향기를 뿜어 느끼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고 신령이 강림하면 곧 사라져 버릴 때가 가까워지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유교는 전통적인 무속신앙을 그대로 수용하여 귀신을 섬기고 이를 효로서 못박아 절대시하였다. 예기는 예의 가장 중요한 것을 제사라하고 제사의 10가지 윤리 중에 그 첫 번 것을 `귀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

제의의 목적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귀신과 동하게 하는 것과 도의를 흥하게 하는 것으로써 제사를 통해서 효가 시행되고 효자가 아니면 부모를 제사할 수 없다고 한다.

효성을 측정할 때는 첫째 생시에 부모를 봉양하며 그 효순으로서 효를 측정하며, 둘째 부모가 죽으면 상례를 시행하되 그 비애의 강도로서 효를 축정하고 셋째 상례 후에는 제사를 지내며 그 경애함과 정기적인 제사로서 효를 측정한다.

유교 제의의 이러한 양면적(효와 우상숭배)인 의미는 기독교 선교에 엇갈린 견해를 낳았고 그 대표적인 본보기를 중국 카톨릭 선교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상숭배 문화권 선교 전략

 

예수회의 선교 전략에 대한 평가

 

예수회는 유자들의 거부감과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때 승복을 벗고 유복을 입어 한문을 연구하고 스스로를 서유라고 칭하고 서양인의 발달된 과학지식과과 기술을 소개하면서 중국인의 호의를 얻어 점진적으로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러한 선교 전략은 보통 문화순응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회보다 약 반세기 후에 중국에 입국한 도미니크호(Domi-nikaner 1631)와 프란체스코회(Franziskaner 1633) 는 예수회의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을 혼합주의라고 비난하고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과 통일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조상숭배와 공자 공경 의례를 미신과 우상숭배라고 비판하고 상제라는 개념도 태극보다 하위개념임으로 오직 천주만을 신개념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인노센스(Innocenz) 10세는 1648년 조상숭배와 공자공경 의례를 금하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회는 이들의 17개 항질의서가 시골 무식층과 접촉한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반박함으로써(1651), 알렉산더7세는 1656년에 다시 미신적인 것이 제거된다면 사자에 대한 공경의식을 허락한다는 훈령을 내렸다. 이에 또 다시 도미니크회는 이의를 제기하였고 교황청은 마침내 1669년 위의 두 훈령을 종합하고 말았다. 즉 1656년에 내린 관용 결정이 1648년의 금지결정을 무효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훈령에 언급한 모든 것을 다 지켜야 하며 제기된 문제점과 환경에 따라 지킬 것을 선언하였다.

이와 같이 제의 논쟁은 유교권에서 오늘까지 계속되면서 효성이나 우상숭배의 그 한쪽만을 지지하면서 다른 한쪽을 무시하려는 경향이었다. 1664년에 일어난 박해후에 1668년 중국 선교사들은 42개의 조항을 발표하였다. 제 41항은 그들이 왜 적응주의적 선교 방책을 택하였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조상제사 문제로 말미암아 수많은 중국인에게 구원의 문을 닫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사실상 1692년부터는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의 관용령으로 예수회는 법적으로 포교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트(Cle-ment) 11세가 중국의 제사를 우상숭배로 정함에 따라 예수회는 강희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강희제의 후계자 세종(1721년 즉위)과 고종 황제(1736년 즉위)의 광폭한 핍박과 순교의 역사 속에서도 예수회는 북경에 머물 수 있었으나 교인수는 줄어들고 교회는 황폐하게 되었다.

19세기에는 모든 일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러면 예수회가 취한 적응주의적 선교방법은 전략적으로 합당한가? 물론 악습은 변경하는 일에는 진리를 받아들일 자세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659년의 훈령과 같이 악한 습관을 변경시킬 때에 자제와 침묵으로 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에 하라는 지시는 옳다. 문제는 적대감은 피하기 위해 미시적인 의례에 참여해야 하는 순응주의적 선교 전략이 복음의 순수성을 보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선교는 충돌과 배척으로 인하여 차단되어도 안될 것이고 관용과 타협으로 진리의 절대성이 파괴되어도 안될 것이다. 하르텐스타인(K.Har- tenstein)이 1933년에 혼합주의는 성경적 증거가 파괴된 아주 위험한 하나의 `새로운 종교'라고 하는 경고를 기억해야 된다.

한신대 박근원 박사는 유교의 제례에 관하여 진술하며 현대는 제사를 지내며 절할 때 자기 조상을 우상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해 버린다. 왜정시대 신사참배시에도 역시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고 다만 황실이 선조와 그 덕을 찬양할 뿐이라고하여 기독교인을 참여시켰고 예수회도 조상제사를 숭배가 아니라 추모와 효성이라하여 허용하고 신주를 귀신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자손의 사모지심의 의지처라고하여 허용했던 것과도 일맥 통한다. 현대 천주교와 일부 개신교 역시 같은 입장에서 이를 허용하고 조상제사도 지내고 주일예배도 드리는 방법을 택하는 교인들이 현재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제사 대상 없이 제사를 지낸단 말인가? 무속시대로부터 유자들을 통해 지금까지 숭배해 왔던 불멸의 영혼(또는 氣 내지 理)에 대한 신앙이 현대에 와서 잊혀졌거나 파괴되었다는 말인가? 사실 제사행위와 숭배행위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제물을 바치는 것이 혹 숭배행위가 아니라고 고집할지라도 귀신(죽은 조상)과의 친교 행위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죽은 자에게 기도는 하지 아니할지라도 死者와 분리되는 것은 거부하고 있다. 현대의 유자들도 세속시대에 살면서 불가지론적이거나 불성실해질 수는 있으나 영혼불변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고연령층이 될 수록 조상숭배는 더욱 실제적이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천주교회와 기독교가 다 우상숭배를 옳다고 동의한 일은 없다. 동의하는 사람들은 조상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 윤리적 행위라고 전제해 놓고 찬성하는 것이다. 조상숭배에 개방적인 입장인 박근원박사도 "제사가 조상을 우상으로 섬기는 예식이라면....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에 위배되는 행위이다."라고 못박고 있다.

비록 천주교가 마리아 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며 성도들의 통공의 신앙을 가졌을지라도 조상숭배의 맥락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에 제사하고 기도하는 일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유교의 제의가 효와 조상숭배가 뗄수 없이 연합되어 있어서 둘 중에 하나만을 기호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위에서 고찰한 것과 같이 유교제례의 숭배 대상은 사령임을 논란할 필요도 없다. 현재도 우리 나라의 유교식 상례는 불명의 영혼을 위해 초헌(혼의 방황을 염려하여 드리는 제사)와 위령제(시체 매장 후 무덤 앞에서 드림) 등을 드리며 상제례를 거행하고 사당에 죽은 조상의 이름을 새긴 신주를 모시고 제물을 드리며 사건을 고하면서 죽은 자와의 교통을 꾀하고 있다.

예수회나 천주교의 교황청이 중국의 조상숭배를 효성으로 해석한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었다. 카톨릭 선교사들은 우상숭배를 제거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조상 숭배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근거 있는 진술도 하지 못했다.

 

조상숭배 문화권에 대한 선교 전략적 제언

 

조상숭배 문화권 선교 전략이라면 지금 선교적 불모지가 되었던 중국보다는 한국의 문제를 다루는 것도 무방하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유교와 한국의 33대 祭日인 忌日과 추석과 정월 초하루의 절기를 접촉점으로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첫째로는 기일에 귀신에게 지내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변조한 측면에서 비기독교인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교회 담을 넘어서 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추도회는 복음의 수용도가 비교적 높은 감정 상태와 접하게 되고 인간의 한계성, 죽음, 사후 세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진지하게 전달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죄의식이 살아 있는 상례의 경우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더욱 긴박하게 요청된다.

그러나 추도회에는 종래의 제례와 잘 분별되지도 않은 채 어떤 변이된 형태의 조상숭배로 알고 참여하는 불신자들이 끼어든다. 이 때 집례자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하고 메시지를 통해서 계몽한다. 일부 신자 중에서도 이런 혼돈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추도회에 관한 철저한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

추도회 진행 중에 재래 우상숭배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실은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추도식 거행자와 그렇지 못하고 귀신과 연합하고자 하는 추도식 동참자들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젯상을 차려놓고 예배를 드리려는 고집과 그것을 거절당했을 때의 섭섭함을 숨기지 못하는 신자들의 갈등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무엇을 전했는가보다 그들이 무엇을 받아들였는가이다. 전한 메시지와 전달된 메시지는 같은 것이어야 한다. 추도회는 귀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며 그 공경과 추모의 대상이 귀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점이다. 효도의 대상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라는 점이다. 고 윤성빈 박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을 효의 표본이며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게 하는 토착화론을 제시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으나 효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독교인들이어야 한다. 기독교가 전통문화의 아름다운 유산인 효행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조상숭배와 효행을 다 거부하는 문화 파괴론자로 나타날 것이다. 기독교가 도덕의 근본을 허물어 버린다는 유자들의 비난에 대답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길은 효행, 바로 이것뿐이다.

죽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산 사람에게의 효행이다. 효행을 통해 전통적인 고부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가정은 화목하게 될 것이며 유자들은 예수 믿는 며느리를 구할 것이 아니겠는가? 효를 이어나가는 것이 제사의 중요한 목적이 되기에 추도회를 통해서 역시 가족 공동체의 화목을 꾀하며 전통적인 대가족 문화 유산에 충돌을 빚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는 추수 감사를 가장 큰 명절인 추적에 지내는 것이다. 이날을 총동원 주일로 지켜 온 가족이 전통적으로 지키던 중추절 감사제를 교회로 나와 지키는 것이다. 또 둘째 날은 무덤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더라도 성묘를 하여 조상의 덕은 기리고 가족이 화목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한다. 전통 성묘와 달라진 것은 예배 대상과 형식일 것이다. 추수한 예물은 젯상에 놓은 것이 아니라 교회 강단 앞에 놓고 젯상 앞에 구부려 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고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귀신이 내려 준 음식을 음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애찬을 나누고 친교하는 것이다.

셋째는 정월 초하루 명절 행사를 부흥사경회로 모이는 것이다. 무속문화에서 익숙해진 한국인의 기복 신앙은 범신론자들과의 반대로 타력구원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적 장점이 있다. 신자들의 다수는 기복 신앙적인 이기적이고 유치한 단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유행이 되고 있는 `신년 축복 성회'의 일반적 동기가 그렇다. 그러나 기복 신앙은 예수께 나아 왔던 열문둥이 중에서도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보통 인간의 욕구이다. 신년 축복 성회를 개최하는 것이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되어 버릴 위험도 있으나 새해 첫날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복을 구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은가?

교회는 평소에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기복 신앙에 머물지 않도록 잘 양육을 해야 할 것이다. 태양신을 섬기던 크리스마스를 기독교적으로 경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고 우상숭배를 완전히 제하고 기독교적 신앙으로 대치해 버렸다. 조상숭배를 중심으로 모였던 과거 유교적인 명절이 변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명절이 되며 아름다운 문화적 덕목인 효행을 기독교에서 실행함으로써 기독교 복음은 종교성이 약하고 형식화한 유교윤리에 접목되어 그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유교권 선교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효행이다. 안일하고 세속적이며 이기주의적인 현대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참으로 실행할 수 있을까? 효행없는 유교권 선교는 생각하기 어렵다. 효행없는 복음전도 선행 없는 기도생활....이것은 오히려 유교권 선교를 가로막는 역할이 될 것이다.

문제는 조상제사를 포기함으로써 효성을 실행하는 일이 좌절될 때 선교사들이 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천주교는 오히려 더 우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한다는 비난까지 받았던 것이다. 기독교가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뿐만이 아니라 제사 때에 우러나오는 지성과 효를 능가할 만한 실제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면 유교권 선교에서 우상숭배를 제거하기에 큰 어려움이 될 것이다.

세속화 시대의 개인적 사회윤리적인 부패와 타협 이것이 교회 안에 있을 때 어떻게 교회가 효를 실행하겠는가? 우리는 우상숭배와 타협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십계명대로 살아 있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 이것이 조상숭배 문화권에서의 선교의 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업에 앞서 교회의 복음화운동과 회개운동이 더 불가피하게 여겨진다.

넷째는 신학의 `토착화'이다. 이미 이조시대에 천주교 학자 이벽(1754-1786)은 유교의 중심 교리 중에 하나인 誠이라는 개념을 기독론에 연결함으로써 토착화를 시도했다. 그는 성(誠:일반적으로 지성 또는 정성으로 앎)을 글자 풀이하여 말씀(言)이 이루어짐(成). 즉 성육신으로 설명했다. 이벽은 바로 기독론을 성에 접목시킨 첫 번째 토착화 신학자이다.

그는 성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관계에서도 설명한다. "誠을 지니고 있는 자는 그의 인간적인 약함에도 불구하고 강하니 이것은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에 내재하는 성령의 작용과도 같은것"이라고 한다.

이벽이 성령을 인간 속에 내재하는 작용이라고 설명한 것은 성령이 인간 사역의 주체가 됨을 말하나 성령을 인격이라고 보기보다는 비인격적인 힘과 적용으로 읽혀짐에 따라 오히려 유교 범신론적인 기와 혼돈될 수 있는 개념이다.. 현대에 와서 고 윤성범 박사는 성의 신학을 저술하고 이벽과 마찬가지고 성을 풀이하며 `말씀이 이루짐' 내지 `참말'(Tat- Wort, Wort Tat)이라 하고 동양에서 낯선 `계시'라는 개념 대신에 사용할 것을 제시했다. 성의 임재는 말씀의 임재요 성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참 말씀이며 말씀의 성육신이고 도이며 로고스라고 한다. 또 `하나님과 인간과의 중간' `사람과 사람과의 중간'일 바로 성리고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의 완성이라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모습을 완전히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윤성범 박사도 이벽과 마찬가지로 성을 성령으로 보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 생명을 통해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하는 능력이고 하였다. 윤 박사의 성개념은 오늘날과 같이 인간의 영, 사령, 귀신과도 혼돈하는 `영'의 개념이 아니라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며 신적 본질로 묘사하고 있다.

윤박사가 신학적으로 위에 진술한 것처럼 정성의 효력을 통하여 흩어진 기가 모아지기도 하고 산화되었던 귀신이 다시 형체가 되기도하고 만물이 존재하게도 되는 범신론적인 유교적 개념을 통하여 화육하신 하나님과 계시와 성령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개념은 인간을 신적 위치에 두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하려는 인간 신격화의 환산에 빠질 위험이 있는 개념이며 또 인간의 정성을 통한 성취 노력에 의한 구원관 등으로도 발전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이나 또는 다른 범신론적 개념에 의하여 신학을 토착화하려면 먼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피조물 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명시하고 신인동격 사상의 위험을 방지하여 인간 기질의 무능과 타락, 죄악으로 인한 파멸을 알게하며 또 구원받은 사람조차 철저한 신의존에 의한 구원 내지 사역이 있을 뿐 결코 하나님의 위치에 서거나 대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결 어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은 보렌(R. Bohren)이 지적한 바와 같이 관혼상제 의식 집행은 복음선포(kerygma)의 교제(K0inonia)와 봉사(Diakonia)와 선교적 기회이며 교회와 세상의 동반자적 기회로서 좋은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교의 제례가 기독교의 접촉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효성과 우상숭배의 혼합문화권에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선교학적 문제는 이것이다.

*기독교가 유교의 효행을 능가하는 행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종교적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바른 신앙 대상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사랑의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혈연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제자 양육을 통한 교회의 자립과 자력전파의 토착화의 실현이다.

크래머(H.Kraemer)가 지적한 대로 유교와 다른 고등종교들은 보통 교리적 차이나 대립은 별의미가 없다고 여긴가. 이들은 관용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적인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절대적이어서 그들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죄악으로 여긴다. 이들은 진리 문제가 타오르면 곧 바로 투쟁적이 되고 핍박한다. 그것은 진리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사회적 동기로 일어난다. 크래머는 이러한 비관용성(Unduldsamkeit)을 `가상적 관용' 또는 `표면적 관용'(Schein Duldsamkeit)이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현지인 신자들은 핍박을 받을지라도 그 공동체 속에 머물러서 더욱 사랑을 실천하고 효행으로 본이 됨으로써 기독교인들이 착한 사람이고 전통문화의 파괴자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져야 한다.

유교 문화권 선교사들은 사랑의 실천으로 현지인들의 오해와 불신앙을 극복해 나가고 사역할 때마다 부딪치고 복음과 함께 배척을 당할 것이 아니라 속히 충실한 현지인 제자들을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함으로써 전달자와의 이질감을 축소시켜야 할 것이다. 선교사는 배척을 받을지라도 복음은 살아남아야 한다. 주의 말씀이 흥황하던 두란노서원에서는 현지인들이 와서 자복하고 마술사들이 스스로 그 책을 불사르니 은 오만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행19:18이하). 먼저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들 스스로가 악습을 폐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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