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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특공대, 농촌을 지켜라’


－컴퓨터 교육 ‘특명’7인의 전사들…오지로 벽지로－

# ‘인터넷 버스’ 안의 풍경

지난 12일 오전 10시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농협 앞. 외진 섬마을에 위성안
테나가 장착된 낯선 버스 한대가 서 있었다. 버스 주변에는 미리 ‘소집통보’를
받은 듯 마을 주민들이 나와 대기하고 있었고, 다들 잔뜩 긴장한 가운데서도 뭔
가 호기심이 묻어나오는 표정들이었다. 농사일로 검게 탄 주름진 얼굴의 할아버
지와 오랜만에 마을을 나온 듯한 할머니, 꼬마를 데리고 나온 영농후계자 등 주
민들은 문이 열리자 차례로 버스에 올랐다. 차량은 다름아닌 벽지 농어민을 대상
으로 인터넷 교육을 하는 이동교육용 버스.

강사 2명의 안내를 받으며 모두 자리에 앉자 갑자기 소란해진다. 성급한 할아
버지는 “뭘 누르면 컴퓨터가 켜지는가?” “인터넷을 볼 수 있나?”라며 자꾸
보챈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컴퓨터를 처음 접한 때문인지 노트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모른다. 강사가 전원 스위치를 가리키며 “그곳을 눌러주세
요”라고 말해도 혹시 잘못 만져 고장이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는 달리 아빠와 함께 따라온 네살배기 꼬마는 오
히려 능숙하게 부팅을 하고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그러자 옆에서는 “
그놈 참 천재여, 천재!”라는 탄성이 이어지며 버스 안에 한바탕 웃음이 넘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강의. 오후가 되자 수강생들은 어느 정도 컴퓨터에 ‘
정’을 붙였는지 노트북 전원을 켜라는 강사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부팅을 하
기도 했다. 오지 섬마을 버스 안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해서인
지 수강생들의 눈빛은 너무나 진지하다. 반면 강의가 진전될수록 젊은 강사들은
연신 진땀을 흘렸다. ‘주소’ ‘웹사이트’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 등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이어 벌어지는 해프닝. “검색어에 ‘나훈아’를 입력하세요. 그러면 뭐가 뜨
지요?”라고 묻자 한 수강생은 다짜고짜 “아무것도 검색된 게 없는데”라며 버
럭 소리를 지른다. 강사가 달려가고 이어 터지는 폭소. “검색어를 ‘나후나’로
입력하면 어떡해요. ‘나후나’가 아니라 ‘나훈아’라니까요!”. 그 와중에 한
아저씨는 재빨리 한곡을 다운로드해 듣고 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강사
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연신 노래를 흥얼거렸다. 강사가 “이러면 오늘
배울 것 다 못배운다”고 ‘위협’하자 그제서야 노래를 멈춘다.

이날 수강생 중 차남준(36)·한영걸(38)씨가 30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40~70대
.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농민은 3명에 불과했다. 박종채 할아버지(62)는 광주
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의 권유로 컴퓨터를 구입했지만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있다 했고 몇달 전 2백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 산 이기영 할아버지(64)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농사정보를 얻고 자식에게 편지도 받을 수 있다고 해 샀
는데 언제나 이용할 수 있을지 몰라”라며 걱정을 했다. 그러나 수강생들은 오후
5시 강의가 끝날 즈음에는 “이제 우리도 ‘문맹’(컴맹) 신세를 벗었다”며 들
뜬 표정들이었다.

# 정보소외 해결의 전령사들

정보화에 소외된 ‘인터넷 오지’를 찾아 전국의 농어촌을 누비는 이들은 한
국농림수산정보센터(www.affis.net)의 정보교육팀. ‘인터넷 게릴라’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남해의 외딴 섬에서부터 강원도 첩첩산골까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최신 노트북 14대에 위성수신장치가 달려 있는 이동교육
버스는 언제 어디서든지 무선인터넷 접속이 가능해 벽지 농어촌을 순회하며 정보
화 바람을 일으키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동교육 버스의 인터넷 전령사들은 7명으로 강사 2명과 기사가 한 조다. 매
주 2개조가 전국을 돌며 방문지마다 이틀씩 교육을 한다. 때문에 이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월요일에 출장을 나서 토요일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
이 지속되다보니 개인생활은 완전히 포기한 상태라는 것.

‘고행’의 인터넷 전령사지만 이들이 매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출장길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농촌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강사 대부분은 농촌 사
정을 잘 아는 농촌 출신이고 또 농촌을 돌며 컴퓨터 교육을 하는 ‘대학생 농업
정보 119’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최익제씨(28)는 경북대 3학년때 처음 119 요원으로 2년간 활동하기도 한 이동
교육 베테랑급 강사다. 그는 “이동 시간이 길고 버스에서 하루 8시간 이상 강의
를 하는 게 무척 힘들지만 농촌 출신으로 어려운 농촌을 돕는 일에 보람을 느낀
다”면서 강의가 끝나도 농민들이 손을 붙잡아 끌면 밤늦도록 강의를 하는 등 열
성을 다한다.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숙식은 자체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만 변변한 숙소와 식당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도 이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다.
김동환씨(27)는 “여관이 없는 민통선 마을을 찾아갔다가 추운 겨울날 창고에서
새우잠을 잤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강사 김철안씨(28)는 “수강생들이 마치 고향의 부모님이
나 어른들과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촉박한 일정으로 농민들의 요구를 다 들
어주지 못하고 강의를 끝마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어려운 근무 여건 속에서도 자신보다 농촌을 더 생각하는 이동교육 버스의 인
터넷 전령사들. 외진 농촌에 희망을 접속하는 그들이 있기에 정보화 시대에 소외
돼온 농어민들의 설레고 즐거운 ‘인터넷 나들이’는 계속될 것이다.

－［취재수첩］지역특성 맞춘 정보제공 심혈－

‘21세기 첨단 농기계는 바로 인터넷’. 벽지 농어민에게 인터넷 전령사들이
내건 슬로건이다. 인터넷 이동교육버스의 목표는 이를 위해 우선 도시지역에 비
해 상대적으로 컴퓨터 보급이 낙후된 농촌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컴퓨터와 인터
넷에 대한 두려움 및 거부감을 줄여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컴퓨터를 농기계처럼 활용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

강의 내용은 농어촌마다 컴퓨터 보급과 인터넷 이용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왕
초보에서 중급, 맞춤형 강의 등 방문지마다 달리한다. 특히 수강생 대부분이 50~
60대여서 ‘눈높이’를 맞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지역마다 재배하는 농작물
과 농민들의 정보에 대한 관심분야도 달라 지역 특성에 맞춘 정보 제공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다. 정보교육과 정재훈 팀장은 “농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들
려줄 때는 강의 분위기가 진지하다 못해 엄숙할 정도”라면서 “농어민들이 얼마
나 정보에 소외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4월 처음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210여개 마을을 방문했고 수강한 농어
민들이 3,000여명에 이른다. 내년에는 180여개 마을에 2,500여명이 목표. 하지만
강의 요청이 쇄도해 내년의 경우 이미 6개월치 강의가 예약돼 있다고 한다. 수
강생이 14명이 되면 신청 가능하며, 강의료는 전액 무료다. 신청은 edu.affis.ne
t로, 문의는 (031) 299-8911.

/진도/최효찬기자 romacho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