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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강화도 고려궁지에 있는 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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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가면 고려궁지가 있습니다.
고려궁지 안내서에 따르면.
고려궁지는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처하시던 궁궐로 이곳에서 약 39년간 (1232~1270) 몽고에 항쟁하였습니다. 강화로 천도해온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뒷산도 송악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궁궐은 몽고와의 화친에 따라 허물었으며 현재 궁지 내에는 강화 지역을 다스렸던 유수부가 있다. 또한 고려궁지 내에는 외규장각이 있었으며 병인양요때 프랑스군들이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은궤, 지도 등을 약탈해 갔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고서들도 이곳에서 약탈해간 것이다. 이 궁궐은 건립한지 400년만에 조선조 행궁 유수부를 세웠으며 그동안은 1245년 견자산 북편 민가에서 실화로 인하여 연경궁 기타 법왕사 어고 태상부등 건물과 민가 800여호를 소실하였으며 1270년 (원종11년) 개성 환도 직추에는 몽고군이 저항군 삼별초 잔당을 소탕한다고 도성에 불질러 많은 건물을 태웠고 또 1637년(인조15년) 병자호란에 대부분 소실되었다. 다음에 또 조선조의 궁전을 세웠으나 병인양요로 인하여 조선조때 건물 행궁 및 장령전등을 소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세월따라 세우며 태우고 무너지는 사건이 반복되어 왔다.
이렇게 적어 놓았읍니다.
고려궁지 외규장각에 대한 안내서에 따르면.
1781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설치 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고종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일부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프랑스군이 이때 약탈해 간 도서 가운데 2001년 현재까지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잇는 도서는 191종 279권에 달하며, 이 중에는 한국에 필사본이 없는 63권의 유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약탈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측이 도서를 한국에 돌려주지 않아 지금까지도 양국 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이렇게 적어 놓았읍니다.
외규장각 용마루를 보면,
닭대가리가 용마루를 띁고 있읍니다.
왜 닭대가리가 용마루를 띁고 있는지,
가장 최근에 용마루를 만든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만을었을까요!
이 부분은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고,
올바르지 못한 뜻으로 만든 것이면, 새로 용마루를 설치해야 합니다.

고려궁지 안내서에 따르면.
고려궁지는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처하시던 궁궐로 이곳에서 약 39년간 (1232~1270) 몽고에 항쟁하였습니다. 강화로 천도해온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뒷산도 송악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궁궐은 몽고와의 화친에 따라 허물었으며 현재 궁지 내에는 강화 지역을 다스렸던 유수부가 있다. 또한 고려궁지 내에는 외규장각이 있었으며 병인양요때 프랑스군들이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은궤, 지도 등을 약탈해 갔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고서들도 이곳에서 약탈해간 것이다. 이 궁궐은 건립한지 400년만에 조선조 행궁 유수부를 세웠으며 그동안은 1245년 견자산 북편 민가에서 실화로 인하여 연경궁 기타 법왕사 어고 태상부등 건물과 민가 800여호를 소실하였으며 1270년 (원종11년) 개성 환도 직추에는 몽고군이 저항군 삼별초 잔당을 소탕한다고 도성에 불질러 많은 건물을 태웠고 또 1637년(인조15년) 병자호란에 대부분 소실되었다. 다음에 또 조선조의 궁전을 세웠으나 병인양요로 인하여 조선조때 건물 행궁 및 장령전등을 소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세월따라 세우며 태우고 무너지는 사건이 반복되어 왔다.
이렇게 적어 놓았읍니다.
고려궁지 외규장각에 대한 안내서에 따르면.
1781년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하였다. 설치 이후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를 비롯해 총 1,000여 권의 서적을 보관하였으나, 1866년(고종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일부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에 타 없어졌다. 프랑스군이 이때 약탈해 간 도서 가운데 2001년 현재까지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잇는 도서는 191종 279권에 달하며, 이 중에는 한국에 필사본이 없는 63권의 유일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약탈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측이 도서를 한국에 돌려주지 않아 지금까지도 양국 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이렇게 적어 놓았읍니다.
외규장각 용마루를 보면,
닭대가리가 용마루를 띁고 있읍니다.
왜 닭대가리가 용마루를 띁고 있는지,
가장 최근에 용마루를 만든 사람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만을었을까요!
이 부분은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고,
올바르지 못한 뜻으로 만든 것이면, 새로 용마루를 설치해야 합니다.
댓글목록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 작성일
음.......첫번째랑....3번째 랑 다른게 뭐죠??
첫번짼 용을 그냥 헤치고 도서도 훔쳐가는 건가...?

삼무님의 댓글
삼무 작성일
1. 용이 한민족의 보배인 규장각을 보호하려 하나,
닭대가리들이 용을 해치고 규장각 도서를 훔치려 한다.
3. 용은 도서를 지키려고 하나,
닭대가리들은 용을 압박하려고 하며,
규장각의 책을 훔치려고 하는 것 같다.
결국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김윤식 작성일
닭...계
용...룡
제가 사는 계룡시에 도서가 뭍여 있다는....아..죄송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