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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아있는 개를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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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물사랑이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개고기를 먹기 때문일까? 왜? 한국사람들은 살아있는 애완견을 쓰레기 봉투에 버리고 있을까?
이런 나라에서 일산천리 진행되고 있는 인간복제 연구와 동물장기 이식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일반 사회현상 하나로 해서 중차대한 국가의 연구과제를 비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외국의 기술로도 생명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연구역사)
그런데 연일 한국이 세계가 못하는 연구를 처음 이루어낸 것처럼 보도되고 있어서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진국은 시민단체나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복제 연구 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인권말고 동물보호 측면을 따져 보자.
개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사람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나라가 아닌가?
한국은 동물병원 옆에 개고기 식당이 들어서 있는 모순된 국가다...개도 먹는 개와 기르는 개를 구분 짓는다.
이런 사고는 먹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하는 동물의 구분을 힘들게 하고 한국의 오랜 보신문화와 접목되어 국민을 몬도가네 야만민족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애완견 면허제라도 둬서 관리해야 하지 않겠나?
"동물사랑이 인간사랑입니다"란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쓰레기 통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개의 심정을 버린 주인은 알아야 한다.
ulkni: 동물사랑이 인간사랑이라... 일단 님의 따뜻한 마음씨에 대해 참 부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님의 사상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정될 수 있을 뿐,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선 말이죠. 몇 백 년이 흐른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야만'이라는 개념이 지극히 작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자주
예를 들어서 입이 아플 정도이지만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맛있는 거위 간을 먹기
위해 거위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 놓고는 계속해서 먹이를 깔때기로 주입시켜 살을 찌우는
매우 '신사'적인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또 어떤 아프리카 부족은 '야만인'이라서 온 몸을 다 벗고
살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기독교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강제로 모두 옷을 입혔는데, 그들이 살던
터전이 너무 습한 곳이었기에 그 원주민들의 상당수가 피부병에 걸려 고생했다고 합니다.
'야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가 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 사례가 잘 보여 준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를 '야만'이라고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혹, 서구 사회에 잘 보이기 위해서 우리를 그들과 동화시키자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잘 저울질할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그 분이 있을 것이기에 저울 눈금을 다시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동물 애호가들은 참으로 '자의적인' 동물애호를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동물 애호 행위가 '자의적'이기 때문에 그 양상도 천태만상이지요. 우선 개는 보호해야 하고 다른 동물은 잔인하게 쳐 죽여서 맛있는 음식이 되어도 괜찮다고 보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개가 인간에게 매우 충직하고 가까운 동물이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근거는 '개'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성을 갖지 못합니다. 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인간은 '개'를 잘 보살핀다는 명목하에 임신도 못하게 만들고 짖지도 못하게 수술시키며 그야말로 '생명'을 '애완용'으로 전락시킵니다. 이것이 '개'의 관점에서 잘 보살펴 지는 것입니까? '충직'하다는 가치도 인간의 가치이지 개들의 가치가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건강 차원에서 채식을 하시는 분들은 제외시키구요, 예를 들어 젖소가 아파하기 때문에 우유를 짜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따위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그 주장의 허구성을 밝혀 보겠습니다. 동물이건 다른 사람이건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육체적, 심리적 아픔을 의미하지요. 여기서 아픔, 즉 통증은 생명이나 정상 생활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를 경고하기 위해 생체가 만든 경고 시스템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아프지 않아 그대로 손을 놔 둔다면 손이 타 버리겠지요. 그것을 막는 것이 통증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물에게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엄연히 가지가 부러지는 순간, 잎이 떨어지는 순간에 특정 화학물질이 합성되고 자체적으로 '경고'를 하게 되지요. 동물의 고통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젖소의 젖을 짜지 말자'는 분들께서는 아무 것도 드셔서는 안 됩니다.
뭐... 다른 이유를 더 댈 수 있습니다만 하여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동물 애호 행위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람이 행위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동물 애호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위와 같은 이유로, 그리고 고기의 맛 때문에 그럴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01/07]-
redpoint: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님이 '개고기'를 먹는지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개고기를 먹지도 않으면서 한국의 고유 전통문화란 인식 때문에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님께서 예시하신 내용이 모두 제가판단하기론 좋지 않은 사례에 해당됩니다. 즉, 중국이 원숭이 고기를 먹기 때문에 한국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생각되어 집니다. 저는 그 반대로 세계인들에게 그처럼 잔혹하게 보여지고 보편적 음식문화의 개념과 상반된 것에 반대를 나타내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프랑스인들이나 중국인들이 즐기는 음식들이 혐오식품이므로 한국도 개고기 식용을 줄이거나 폐지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 개고기 식용이 문제가 없다는 논리는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진실로 동물의 아픔과 이것을 배려하는 마음이 건전하고 올라르고 따듯한 것이란 것을 인정한다면 응당 동물보호 입장을 가져야 옳지 않겠습니까?
저는 한국의 개고기 문제가 아이들을 교육상 이중인격자로 만들고 있다는 논리를 펴 왔었습니다. 먹는 개와 먹지 않는 개를 구분하는 것과 아이들의 순수성을 배려하지 않는 음식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고 어떻게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처음 접하게 되는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었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식품과학과 공산품이 범람하는 우리 현실에서 개고기 영양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재고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자의적으로 개고기를 잘 먹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단절된 전통문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직접 주위분들에게 물어 보시면 더 잘 아실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을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개고기 보호를 위해서 동물원을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 적은 없습니다. 애완견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의 방법상의 문제는 따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토론에서 문제제기 한 부분은 왜? 살아있는 동물이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고 있는가?란 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사회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1/07]-
ulkni: 흐음... 제 글을 오해하셨군요. 제가 중점적으로 제기한 논점들을 모두 비껴 나가신 듯... 제가 사례 중심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제 표현력 부족을 탓해야겠네요. 그리고 이 논쟁이 왜 갑자기 개고기 논쟁으로 이어지는지 참 이것도 받아들이기 난감하군요. 약간 포인트가 다른 문제 같은데... 어쨌든 그것도 흥미로운 쟁점이기는 하니까 한 번 논의해 보지요.
우선, 제 주장을 잘못 이해하신 것부터 짚어봐야 하겠군요. 저는 가랑잎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 사회가 솔잎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님은 사례에 너무 집착하신 것 같군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서구인들의 의식과 서구사회의 체제에 맞게 만들어진 가치 기준 아닙니까? 즉, 그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지요. 상대적이라 함은, 상황에 따른 가변성을 의미하며 그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문제의 접근 방법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님은 처음 글에서 이것들을 마치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의문을 제기해 본 것입니다. 그 근거를 제시했구요. 그리고 두번째 글에서도 이런 님의 의식이 조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만 상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주장도 해 주시긴 했네요. 세계인(과연 일부 서구인들과 중국인들만으로 세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또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일단 넘어가지요)이 보기에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개고기 문화와는 이별해야 한다. 일단 생뚱맞은 개고기 문화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구요. 이쯤에서 님의 주장을 한 번 정리해 볼까요?(근거가 다소 부족한 부분들은 제가 주측해서 첨가했습니다. 음... 제가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주장을 하실 때에는 근거를 확실하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
1)지금 현재 서구 사회가 세계를 이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면 불이익을 본다.(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사회는 개를 포함한 동물들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며 동물 애호정신이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불이익을 보지 않고 이익을 얻기 위해 동물 애호 정신이 우리 나라에 나타나야 한다.
(특히 개에 있어서)
2)동물의 아픔을 느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건전하고 올바르고 따뜻하다
3)한국의 개고기 문제는 아이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든다.
일단 1)이 제 주장에 대해 가장 유효한 반론이구요. 2)는... 글쎄요. 제 글을 충분히 이해하셨다면 2) 자체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실 수 있을 텐데요. 제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제시된 근거들을 반박이라도 하셨다면 그 점에 대해 해명할 텐데, 그러지도 않으셨으니 참 곤란하네요. 특히, 제 글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고 또 전제하는 글도 아닙니다. 어쩌다가 인간이란 동물이 운이 좋아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거고 자기들이 좋으니깐 이런 저런 문명도 만들고 제도도 만들고 의식도 만들었다고 보는 시각 하에서 전개되는 글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지 않는 것이 바른 사회의 필요조건이 된다는데 대해 저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 '바른 사회'라는 게 서구 사회라고 하신다면 그건 1)과 연결되는 문제이겠습니다만. 다소 앞서가는 거지만 제 생각을 간단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동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님처럼 동물 애호가도 있는, 다원주의가 통용되는 사회가 저는 '바른 사회'보다 훨씬 낫다고 봅니다. 뭐, 이런 주장까지 하려면 또 장문의 글을 따로 써야 하니 그렇게는 못하겠고 기냥 앞의 문장은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 주시길. 3)에 대해서는 있다가 개고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의해 보지요.
자, 그럼 1)에 대해서 반론해 보겠습니다. 우선 실효성에 관해서 말씀드려 보지요. 서구 사회가 한국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의 가치관과 우월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에 동물애호 운동이 퍼지고 개를 사랑하게 된다고 하면 서구 사회가 우리를 '야만'으로 보지 않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니게 된다거나 스승과 똑같아 진다해도 근본적으로 '스승'과 '제자' 관계, 즉 상하 관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동물 애호 정신으로 그들에게 호감을 산다고 할 때 그 호감은 동물원에서 원숭이가 내 손짓에 반응할 때 사람이 느끼는 재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동등한 관계에 서기 위해선 아예 이런 근본부터 깨야 하는 겁니다. 두번째로, 불이익이라는 것의 존재가 불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나라가 동물 애호 정신이 없기 때문에 국제 무역에서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단순히 그럴 것이다는 추측만으로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야만'으로 규정되고 있어서 국가 이미지가 안 좋고 그렇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것은 어느정도 논리적이지만 동물 애호 같은 것으로 '야만'의 위치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으며,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처럼 강력한 경제력이 받쳐 주어야 우리 동양의 새로운 위치가 설정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에구... 이것에 대해서도 근거를 써야 하는데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군요. 이거 내일 일 있는데... 개고기에 대해선 다음에 논하기로 하지요. -[01/08]-
ulkni: 으아 이거 글을 계속 쓴다고 해 놓고선 영 시간 내기가 힘드네요. ㅠㅠ 되도록 빨리 써 보도록 하지요. 이거 왜 일케 바쁜지;;;; -[01/12]-
이런 나라에서 일산천리 진행되고 있는 인간복제 연구와 동물장기 이식 연구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일반 사회현상 하나로 해서 중차대한 국가의 연구과제를 비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외국의 기술로도 생명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연구역사)
그런데 연일 한국이 세계가 못하는 연구를 처음 이루어낸 것처럼 보도되고 있어서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진국은 시민단체나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복제 연구 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인권말고 동물보호 측면을 따져 보자.
개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사람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나라가 아닌가?
한국은 동물병원 옆에 개고기 식당이 들어서 있는 모순된 국가다...개도 먹는 개와 기르는 개를 구분 짓는다.
이런 사고는 먹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하는 동물의 구분을 힘들게 하고 한국의 오랜 보신문화와 접목되어 국민을 몬도가네 야만민족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애완견 면허제라도 둬서 관리해야 하지 않겠나?
"동물사랑이 인간사랑입니다"란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쓰레기 통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개의 심정을 버린 주인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님의 사상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정될 수 있을 뿐,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한국에선 말이죠. 몇 백 년이 흐른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야만'이라는 개념이 지극히 작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자주
예를 들어서 입이 아플 정도이지만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맛있는 거위 간을 먹기
위해 거위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 놓고는 계속해서 먹이를 깔때기로 주입시켜 살을 찌우는
매우 '신사'적인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또 어떤 아프리카 부족은 '야만인'이라서 온 몸을 다 벗고
살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기독교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강제로 모두 옷을 입혔는데, 그들이 살던
터전이 너무 습한 곳이었기에 그 원주민들의 상당수가 피부병에 걸려 고생했다고 합니다.
'야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가 될 수 있는지 이 두 가지 사례가 잘 보여 준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를 '야만'이라고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혹, 서구 사회에 잘 보이기 위해서 우리를 그들과 동화시키자는 주장을 하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는데요.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잘 저울질할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그 분이 있을 것이기에 저울 눈금을 다시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동물 애호가들은 참으로 '자의적인' 동물애호를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동물 애호 행위가 '자의적'이기 때문에 그 양상도 천태만상이지요. 우선 개는 보호해야 하고 다른 동물은 잔인하게 쳐 죽여서 맛있는 음식이 되어도 괜찮다고 보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개가 인간에게 매우 충직하고 가까운 동물이라는 점을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근거는 '개'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성을 갖지 못합니다. 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인간은 '개'를 잘 보살핀다는 명목하에 임신도 못하게 만들고 짖지도 못하게 수술시키며 그야말로 '생명'을 '애완용'으로 전락시킵니다. 이것이 '개'의 관점에서 잘 보살펴 지는 것입니까? '충직'하다는 가치도 인간의 가치이지 개들의 가치가 아닙니다. 그 다음으로, 건강 차원에서 채식을 하시는 분들은 제외시키구요, 예를 들어 젖소가 아파하기 때문에 우유를 짜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따위를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그 주장의 허구성을 밝혀 보겠습니다. 동물이건 다른 사람이건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육체적, 심리적 아픔을 의미하지요. 여기서 아픔, 즉 통증은 생명이나 정상 생활에 위협을 가하는 요소를 경고하기 위해 생체가 만든 경고 시스템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것을 만졌을 때 아프지 않아 그대로 손을 놔 둔다면 손이 타 버리겠지요. 그것을 막는 것이 통증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일종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식물에게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엄연히 가지가 부러지는 순간, 잎이 떨어지는 순간에 특정 화학물질이 합성되고 자체적으로 '경고'를 하게 되지요. 동물의 고통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젖소의 젖을 짜지 말자'는 분들께서는 아무 것도 드셔서는 안 됩니다.
뭐... 다른 이유를 더 댈 수 있습니다만 하여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동물 애호 행위는 모순 덩어리입니다.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람이 행위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동물 애호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위와 같은 이유로, 그리고 고기의 맛 때문에 그럴 일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01/07]-

저는 한국의 개고기 문제가 아이들을 교육상 이중인격자로 만들고 있다는 논리를 펴 왔었습니다. 먹는 개와 먹지 않는 개를 구분하는 것과 아이들의 순수성을 배려하지 않는 음식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문제고 어떻게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처음 접하게 되는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었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식품과학과 공산품이 범람하는 우리 현실에서 개고기 영양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재고해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자의적으로 개고기를 잘 먹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단절된 전통문화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직접 주위분들에게 물어 보시면 더 잘 아실수 있을 것입니다.
동물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을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개고기 보호를 위해서 동물원을 폐지해야 된다는 주장을 한 적은 없습니다. 애완견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의 방법상의 문제는 따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토론에서 문제제기 한 부분은 왜? 살아있는 동물이 쓰레기 통으로 버려지고 있는가?란 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사회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님께서는 이것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01/07]-

우선, 제 주장을 잘못 이해하신 것부터 짚어봐야 하겠군요. 저는 가랑잎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 사회가 솔잎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님은 사례에 너무 집착하신 것 같군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님이 말씀하시는 '보편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서구인들의 의식과 서구사회의 체제에 맞게 만들어진 가치 기준 아닙니까? 즉, 그건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지요. 상대적이라 함은, 상황에 따른 가변성을 의미하며 그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 문제의 접근 방법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님은 처음 글에서 이것들을 마치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의문을 제기해 본 것입니다. 그 근거를 제시했구요. 그리고 두번째 글에서도 이런 님의 의식이 조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만 상대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주장도 해 주시긴 했네요. 세계인(과연 일부 서구인들과 중국인들만으로 세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또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일단 넘어가지요)이 보기에 좋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개고기 문화와는 이별해야 한다. 일단 생뚱맞은 개고기 문화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구요. 이쯤에서 님의 주장을 한 번 정리해 볼까요?(근거가 다소 부족한 부분들은 제가 주측해서 첨가했습니다. 음... 제가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주장을 하실 때에는 근거를 확실하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
1)지금 현재 서구 사회가 세계를 이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 사회와 대립각을 세우면 불이익을 본다.(정신적, 물질적으로)
서구사회는 개를 포함한 동물들을 매우 소중하게 다루며 동물 애호정신이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불이익을 보지 않고 이익을 얻기 위해 동물 애호 정신이 우리 나라에 나타나야 한다.
(특히 개에 있어서)
2)동물의 아픔을 느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건전하고 올바르고 따뜻하다
3)한국의 개고기 문제는 아이들을 이중인격자로 만든다.
일단 1)이 제 주장에 대해 가장 유효한 반론이구요. 2)는... 글쎄요. 제 글을 충분히 이해하셨다면 2) 자체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실 수 있을 텐데요. 제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제시된 근거들을 반박이라도 하셨다면 그 점에 대해 해명할 텐데, 그러지도 않으셨으니 참 곤란하네요. 특히, 제 글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고 또 전제하는 글도 아닙니다. 어쩌다가 인간이란 동물이 운이 좋아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거고 자기들이 좋으니깐 이런 저런 문명도 만들고 제도도 만들고 의식도 만들었다고 보는 시각 하에서 전개되는 글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지 않는 것이 바른 사회의 필요조건이 된다는데 대해 저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 '바른 사회'라는 게 서구 사회라고 하신다면 그건 1)과 연결되는 문제이겠습니다만. 다소 앞서가는 거지만 제 생각을 간단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동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님처럼 동물 애호가도 있는, 다원주의가 통용되는 사회가 저는 '바른 사회'보다 훨씬 낫다고 봅니다. 뭐, 이런 주장까지 하려면 또 장문의 글을 따로 써야 하니 그렇게는 못하겠고 기냥 앞의 문장은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 주시길. 3)에 대해서는 있다가 개고기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논의해 보지요.
자, 그럼 1)에 대해서 반론해 보겠습니다. 우선 실효성에 관해서 말씀드려 보지요. 서구 사회가 한국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서는 그들의 가치관과 우월의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에 동물애호 운동이 퍼지고 개를 사랑하게 된다고 하면 서구 사회가 우리를 '야만'으로 보지 않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니게 된다거나 스승과 똑같아 진다해도 근본적으로 '스승'과 '제자' 관계, 즉 상하 관계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동물 애호 정신으로 그들에게 호감을 산다고 할 때 그 호감은 동물원에서 원숭이가 내 손짓에 반응할 때 사람이 느끼는 재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동등한 관계에 서기 위해선 아예 이런 근본부터 깨야 하는 겁니다. 두번째로, 불이익이라는 것의 존재가 불명확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나라가 동물 애호 정신이 없기 때문에 국제 무역에서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단순히 그럴 것이다는 추측만으로는 주장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야만'으로 규정되고 있어서 국가 이미지가 안 좋고 그렇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것은 어느정도 논리적이지만 동물 애호 같은 것으로 '야만'의 위치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으며, 오히려 일본이나 중국처럼 강력한 경제력이 받쳐 주어야 우리 동양의 새로운 위치가 설정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에구... 이것에 대해서도 근거를 써야 하는데 쓰다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고 있군요. 이거 내일 일 있는데... 개고기에 대해선 다음에 논하기로 하지요.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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