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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리학 논쟁: 조선이 패망한 두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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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패망한 이유는 두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상권의 약화
둘째는 도학유교(道學儒敎) 즉 성리학의 경직성 때문이었습니다.
조선 초의 유교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학문과 사상이 꽃피고 그 당시엔 최첨단이었던 여러 문물들이 나왔습니다.
유학자들 중에는 기술학에 능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점차 조선의 유교는 경직되어 갔습니다.
점점 비생산적이고 패쇄적으로 변해간 유교는 기술학은 경시되고 예학과 보학이 발전되었으며, 현실적인 사상과 문물은 정체 되었습니다. 성리학은 도교의 신선사상과 불교의 참선사상에 영향을 받고 태어난 사상으로 점차
마음의 수양을 쌓아가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유교였습니다. 기존의 유학이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간의 이치를 규명하는 학문이라면 성리학은 하늘의 이치를 동경하고 이를 인간속에 구현시키려 하는 신비스런 학문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성리학이 더 아름다운 듯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리학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학문으로 자신의 스승이 벌을 받는다면 무조건 자신도 벌을 받겠다하며 관직도 포기하며, 반대파가 벌을 받고 자기파가 옳다고 할 때까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시비를 가려야 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스승이 잘못했어도 말입니다. 그리고 도학자들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실무보다는 인물평가를 더 중요시했고 사물의 시비보다 개인의 심성이나 태도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제까지 잘 지내던 친구가 오늘 자신의 뜻과 합하지 않는다고 금방 눈밖에 나고, 정치실무와 관계없는 일에도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인물을 탄핵하는 상황이 벌어져 싸움이 터지고 그 일이 번져 탄핵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붙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니 당쟁이 일어날 터전은 이미 마련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잘난체하며 탁상공론(卓上空論)과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늘어놓고 사소한 예법에도 문제를 들고 다투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법과 제사를 필요이상으로 집착하고 자기의 마음을 현실 이상으로 억제해야 하므로 정직하지 못하고 명운과 체면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는 원래 선현을 추모하는 것인데, 점점 조상의 숭배인 음사로 변질되었고, 게다가 도학은 가문의 이름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겨 철저히 가문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종교로 변질되었으며, 도학은 가문의 힘을 빌어 자기 자손들이 양반행세를 하는데 일조하는 학문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희생아래 자신의 가문 부귀영화를 빛내는데 힘쓰게 되었습니다.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은 이같은 도학자들을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소수였고, 결국 도학자들에 의해 뜻을 제대로 피지도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국인들이 이기적이고 서로 잘 갈라지며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고집만 피우고 정치적으로는 서로 잘 융합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의 도학유교가 이처럼 우리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생활과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것이 놀라운 한편 분하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3대위인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정약용선생께서는 도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뿌리깊은 잘못된 풍습을 단번에 뽑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이 잘못된 풍습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선이 패망한 원인이 성리학 때문이란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도학유교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임일균:
현대에도 '문학' 또는 '시학'이라고 하지 '문과학' 또는 '시과학'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에서 난것으로 사람이 애 쓴다고 바꿀 수 없고 둘 다 괴로울 뿐입니다.
공맹의 유학은 사회과학이었습니다만 성리학에 와서는
문과학이 되어버린 데서 유교를 계승,발전하는데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인간의 자유를 위한 인문학이 인간을 도구로 삼아서는 실패할 뿐입니다. -[08/19]-
첫째는 재상권의 약화
둘째는 도학유교(道學儒敎) 즉 성리학의 경직성 때문이었습니다.
조선 초의 유교는 창의적이고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가지 학문과 사상이 꽃피고 그 당시엔 최첨단이었던 여러 문물들이 나왔습니다.
유학자들 중에는 기술학에 능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점차 조선의 유교는 경직되어 갔습니다.
점점 비생산적이고 패쇄적으로 변해간 유교는 기술학은 경시되고 예학과 보학이 발전되었으며, 현실적인 사상과 문물은 정체 되었습니다. 성리학은 도교의 신선사상과 불교의 참선사상에 영향을 받고 태어난 사상으로 점차
마음의 수양을 쌓아가서 성인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유교였습니다. 기존의 유학이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간의 이치를 규명하는 학문이라면 성리학은 하늘의 이치를 동경하고 이를 인간속에 구현시키려 하는 신비스런 학문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성리학이 더 아름다운 듯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리학은 엘리트 의식이 강한 학문으로 자신의 스승이 벌을 받는다면 무조건 자신도 벌을 받겠다하며 관직도 포기하며, 반대파가 벌을 받고 자기파가 옳다고 할 때까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시비를 가려야 했습니다. 비록 자신의 스승이 잘못했어도 말입니다. 그리고 도학자들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실무보다는 인물평가를 더 중요시했고 사물의 시비보다 개인의 심성이나 태도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제까지 잘 지내던 친구가 오늘 자신의 뜻과 합하지 않는다고 금방 눈밖에 나고, 정치실무와 관계없는 일에도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인물을 탄핵하는 상황이 벌어져 싸움이 터지고 그 일이 번져 탄핵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붙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니 당쟁이 일어날 터전은 이미 마련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잘난체하며 탁상공론(卓上空論)과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늘어놓고 사소한 예법에도 문제를 들고 다투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법과 제사를 필요이상으로 집착하고 자기의 마음을 현실 이상으로 억제해야 하므로 정직하지 못하고 명운과 체면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제사는 원래 선현을 추모하는 것인데, 점점 조상의 숭배인 음사로 변질되었고, 게다가 도학은 가문의 이름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겨 철저히 가문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종교로 변질되었으며, 도학은 가문의 힘을 빌어 자기 자손들이 양반행세를 하는데 일조하는 학문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희생아래 자신의 가문 부귀영화를 빛내는데 힘쓰게 되었습니다.
정약용 같은 실학자들은 이같은 도학자들을 맹렬히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실학자들은 소수였고, 결국 도학자들에 의해 뜻을 제대로 피지도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국인들이 이기적이고 서로 잘 갈라지며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고집만 피우고 정치적으로는 서로 잘 융합하지 못하고 분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의 도학유교가 이처럼 우리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생활과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것이 놀라운 한편 분하고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3대위인인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정약용선생께서는 도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 뿌리깊은 잘못된 풍습을 단번에 뽑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이 잘못된 풍습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조선이 패망한 원인이 성리학 때문이란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도학유교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십시오.

현대에도 '문학' 또는 '시학'이라고 하지 '문과학' 또는 '시과학'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늘에서 난것으로 사람이 애 쓴다고 바꿀 수 없고 둘 다 괴로울 뿐입니다.
공맹의 유학은 사회과학이었습니다만 성리학에 와서는
문과학이 되어버린 데서 유교를 계승,발전하는데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인간의 자유를 위한 인문학이 인간을 도구로 삼아서는 실패할 뿐입니다. -[08/19]-
댓글목록

박동진님의 댓글
박동진 작성일조선이 세계 어떤 나라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하나의 왕조로 500년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성리학입니다. 더우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쟁후 정권이 완전히 붕괴될수도 있는 전쟁을 겪고고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성리학 덕분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쟁이 났다면 전쟁에서 졌거나 전쟁을 견뎌냈더라고 몇십년 이내에 바로 망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성리학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조선은 성리학적 이념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조선 중기에 성리학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