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ome>토론게시판>핫이슈토론 |
교육 일제청산 처음 할 일로써 교육 철학과 역사관
페이지 정보

본문
제국주의가 일으킨 세계 대전의 청산으로 처음 할 일은 우리가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일입니다.
얻어맞아서 상처가 생기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입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 데도
우리는 거룩한 민족이라는 과장된 자의식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려고도
또 치료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첫 번 째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우리나라 인재들의 수난입니다.
적국의 인재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빛을 내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또한 적국으로 팔려 단지 그들의 일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의 적으로 취급되는 것 또한 부당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인재들이 세계사에 빛나는 주역으로 다시 서는 데는
우리 사회의 인재에 대해서 막연한 피해감을 안겨주는 일은 끝나야 합니다.
또한 인재는 지식을 양성하는 자일 뿐 아니라
철학과 야망을 가지고 실재로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여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성공한 교육이라는 것은
그 학생이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역사를 통해 내려온 시간이 더 늘어난 것에 비례해서
더 성장한 인재가 탄생하는 것이 지체나 후퇴가 아니라
비로소 '역사'로 불리울 만한 일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후손에게 역사의 진전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관이 당사자로부터 빠져 있는 것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왕은 자신의 역사를 볼 수도 의견을 내거나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범죄인도 자기 진술을 해서 공정한 사실을 밝히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도
적어도 실재 권력을 넘겨준 뒤에는 역사에 의견을 덫붙이거나 소감을 적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하듯이 결국 역사는 후대에 의해서 판단될 뿐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그것이 사실로서 현재 역사를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이정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박종우(redpoint): 안녕하세요? 임일균님! 어떤 사회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주류문화와 반대되는 입장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 그 문화를 통털어 '카운트컬처'라고 합니다. 이 '카운트컬처'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어, 인간성 회복, 환경파괴 감시, 부정부패 척결과 반 부패운동, 기성문화에 도전, 교육개혁, 역사청산, 민주화 운동과 인권보호 운동 등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카운터컬처'란 개념을 가지기 위해서는 냉철한 비판이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류와 다른 독자성을 '비판정신'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해 만족하면 '카운터컬처'가 아니겠죠! 그렇기 때문에 제 논조가 가끔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무슨 사회에 앙심을 품고 있고, 뭣 하나 제대로 긍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는 평을 받기 십상이죠!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표현으로 비판하는 것이야 말로 '카운터컬처'의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14]-
얻어맞아서 상처가 생기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입니다.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닌 데도
우리는 거룩한 민족이라는 과장된 자의식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려고도
또 치료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첫 번 째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우리나라 인재들의 수난입니다.
적국의 인재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빛을 내지 못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또한 적국으로 팔려 단지 그들의 일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들의 적으로 취급되는 것 또한 부당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인재들이 세계사에 빛나는 주역으로 다시 서는 데는
우리 사회의 인재에 대해서 막연한 피해감을 안겨주는 일은 끝나야 합니다.
또한 인재는 지식을 양성하는 자일 뿐 아니라
철학과 야망을 가지고 실재로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여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성공한 교육이라는 것은
그 학생이 선생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역사를 통해 내려온 시간이 더 늘어난 것에 비례해서
더 성장한 인재가 탄생하는 것이 지체나 후퇴가 아니라
비로소 '역사'로 불리울 만한 일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후손에게 역사의 진전을 지켜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빼앗긴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관이 당사자로부터 빠져 있는 것입니다.
조선 역사에서 왕은 자신의 역사를 볼 수도 의견을 내거나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범죄인도 자기 진술을 해서 공정한 사실을 밝히도록 되어 있는 것인데도
적어도 실재 권력을 넘겨준 뒤에는 역사에 의견을 덫붙이거나 소감을 적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재판관이 재판하듯이 결국 역사는 후대에 의해서 판단될 뿐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그것이 사실로서 현재 역사를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이정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