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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는 평등의 기준을 어디에두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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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으로작성하다보니 횡설수설한 느낌이드네요
댓글목록

meisterK님의 댓글
meisterK 작성일ㅎㅎ 많이 횡설수설 하는군요. 논리로 따지자면 평등이라는 것은 조건이 같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법에는 형평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법율의 당위성을 세웁니다. 이 같이 따지자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공평하다고 봐도 무방하죠.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세상만이 불공평한까요? 신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 신이 생명을 창조한다면 신 또한 인간에게 공정하지 않죠. 어떤이는 멀쩡한 신체와 사고, 인지능력을 주신 반면 어떤 이는 눈이 없거나 손이 없거나 정신박약아로 태어나니까요. 마치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주제군요. 혹시 아직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추천합니다.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주제와 상당히 관련성도 있구요.

삭흔님의 댓글의 댓글
삭흔 작성일댓글감사합니다 그 책은 훑어보는식으로읽기는했지만 다시한번읽어봐야할듯싶네요

meisterK님의 댓글의 댓글
meisterK 작성일책이 쪼끔 어렵긴 하죠. 먹물 많이 드신 분이 쓴거라 ㅋㅋ

mjk님의 댓글
mjk 작성일
이런 철학적인 주제는, 가장먼저 짚어야할 부분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평등을 추구하는 동물일까요?
우리가 1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한번 다같이 잘살아보자고 했을 경우, 모두 평등하게 살려고 할까요?
주제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같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거성님의 댓글
거성 작성일평등이란 개념은 일단 형평성적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법이란 건 국민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즉 어떤 법이든 국민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악법인 셈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인 헌법 조차도 모순과 헛점이 너무도 많습니다.1980년대 중반에 개정된 이래 손을 보지 않고 흘러왔습니다. 전면적인 개정을 해서 그로인하여 손해보는 국민이 없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국민 한명 한명이 모여서 나라가 구성됩니다. 나라도 국민을 필요로 합니다. 둘은 서로 상호공존하는 관계입니다. 나라=국민이란 국가관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즉 원론 속에서 문제의 본질 속에서 실효를 논해야 합니다.

chingooda님의 댓글
chingooda 작성일
자세히는 모르갰지만.. 법이라는 것은 공동가치 정의의 실현이라고 합니다.. 제각각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의 가치를 실현 시킨다는 것 입니다.. 건전한 사고를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가다.. 불만이 생길수는 있되..
이치에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생각케하는.. 사회를 이끌어 나감에 있어 꼭 필요한 어떤 틀을 만드는 것이지요..
법에는 강제성도 있고.. 유연성 또한 충분이 있는게 아닐까요.. 법률제정이 그것이고.. 판사의 제량이 또한 그것이고..
문제가 있다면.. 법과 법이 속한 사회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에 관한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논리갑님의 댓글
논리갑 작성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완벽한 평등을 위해서는 모든면에서 완전한 공산주의가 도래하여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공산주의가 아니라면 분배과정등 여러면에서 완벽한 평등은 될 수가 없습니다..
제 말은 평등이라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등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완벽한 평등'이 될 수 있지만 각자의 능력이나 환경
에 대해서는 '정당한 불평등'을 통해 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제 생각이라 말이 약간 이상하네요)
즉 평등의 기준을 인간의 가치에 두느냐 아니면 능력에 두느냐에 따라서 평등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므로 상황에 따라서 평등의 기준은 달라진다고 봅니다

인간임돠님의 댓글
인간임돠 작성일
개인적으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진화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전 근대의 진화론보다 현대의 진화론을 중시합니다. )

사바마마님의 댓글
사바마마 작성일
평등이란 것은 기준을 어디에다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조건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농어촌 학생이 상대적으로 교육받을 기회가 적다고 판단하여, 대학입학에서 농어촌 특별전형과 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결과의 평등을 우선하여 주어진 조건의 평등이 훼손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와 농어촌에서 자라난 아이는 주어진 환경이라는 조건이 다르고, 공부를 열심히한다든지, 머리가 똑똑하다든지 개인적인 특성이 다른 상태에서 태어나지만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거나, 이러한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 농어촌에서 태어난 학생이 공부는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농어촌 학생이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 농어촌 학생에 대해서 일정한 쿼터라는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조건의 평등에 가치를 부여하는 제도는 상대적으로 결과의 평등을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집 아이나 부자집 아이 모두 대학을 갈 수 있도록 평등하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 아이는 중고등학교 방과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안 생계에 보탬이 되어야 하고, 어느날은 집에 쌀이 없어 밥을 굶는 경우가 있어, 학교에 가서도 배가 고프고 피곤하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가 없는 반면, 부자집 아이는 고 영양식의 식사를 하여 두뇌 발달이 원활하고, 방과후에는 고액 과외를 받아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쉽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공부하는데 있어서 환경적으로 극심한 차이가 있는데 이러한 차이를 무시한채, 어떤 누구도 대학을 갈 수 있으니 성적순으로 대학 입학을 허용한다면, 결과의 평등이 매우 훼손되고,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반복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조건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어느 한쪽을 취하면 다른 한쪽이 훼손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급하게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경제가 크게 성장하는 등 어느정도 결과적으로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평등에 대한 철학적 고찰 부재로 조건의 평등만을 강조하여 결과의 평등을 달성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우리가 수십년간 벤치마킹하였던 미국 사회는 소득수준 5% 미만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향후 성인이 되었을때 소득수준이 5% 미만이 될 확률이 45%로 OECD 국가(30%수준)에서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결과 최근에 월가시위와 같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지금처럼 강도높게 사회적으로 공론화 된 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not카산드라님의 댓글
not카산드라 작성일
철학적 개념이 근본이네요.
많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대적 평등과 절대적 평등에 대한 이야기로 단순화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연소 하버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의 수업을 그대로 옮겨놓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도
그러한 논란에 대한 깊이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하버드 재학생 중에는 첫쨰가 대체로 많다고 합니다. 첫 째 그리고 둘 째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부모님들의 자녀들 학업에 대한 관심도는 첫 째에게 가장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첫 째 둘 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깊은 범위라서 나라는 조그만 범위 안에서 확답을 내릴 수 는 없으나 언젠가 상대적 그리고 절대적 평등이 잘 조화된 사회가 찾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