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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히틀러, 언제까지 철저한 악마로 불리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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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고의 지도자'인가? 아니면 '최악의 독재자'인가?
지금까지의 견해로 본다면 그는 '최악의 독재자'로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2004년 쯤에 '몰락'이라는 히틀러와 추축군,
즉 독일의 입장에서 다룬 히틀러를 인간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히틀러의 개인비서인 '트라우들 융에'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전세계적으로 상영되었고, 서로의 의견들이 엇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되지 않았지요.)
물론 필자도 이 영화와 트라우들 융에가 쓴
'히틀러 여비서와 함께한 마지막 3년'이라는 책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와 그 나라를 그 시대 어느 지도자,
어느 나라와도 별반 다르지 않는 인물과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지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이렇게 지금까지 취급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로마의 속담처럼 역사는 승자가 쓰고 창조하는 법이지요.
아직 제가 어린나이이지만 이 분야에 대해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고 지식도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족한면도 많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는 절대 나쁘고 악마같은 인물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2 때 배운 역사 교과서를 내가 보았을 때, 나치독일과 히틀러는 완전히 부정적인 면들만이 서술되어 있었고,
연합국은 마치 정의로운 집단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얼굴을 찌푸리며 보았습니다.
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조차도 절대로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는 흑백논리이자 편파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본 히틀러와 나치독일은 그 당시 시대에서 아주 지극히 일반적인 인물이자 국가였으며,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일본이 나치독일과 히틀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히틀러가 나쁘다고? 처칠이나 루스벨트도 마찬가지">
2차대전 비판적 성찰 美 저술, 논란 일으켜
(사우스버윅<미 메인주> AP=연합뉴스) "히틀러 만큼이나 처칠, 루스벨트도 비난받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려는 `전체주의'에 대항해
인류가 일궈낸 위대한 승리라는 평가는 수정돼야 한다는 내용의 책이 최근 미국에서 출간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소설가이며 뉴요커의 기고가인 니콜슨 베이커(51)가 최근 내놓은 논픽션 `인간연기(Human Smoke)'가 바로 그 책.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을 지칭하는 제목을 달은 이 책은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뒤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이 독일을 봉쇄하기 위해
주도한 무차별 공습작전이 갖는 비인간적 면모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뉴햄프셔주(州) 시골마을의 18세기풍 자택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베이커는
"당시 처칠 수상은 피에 굶주린 정신병자와도 같았다"며
"히틀러가 비난받아야 한다면 처칠 역시 비난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차대전이 본질적으로 지리한 폭격과 봉쇄로 점철된 전쟁이었으며
처칠과 당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전쟁의 방식이 영국에 대한 독일인들의 반감을 높여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장기집권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도의 비폭력저항을 주도한 마하트마 간디와 처칠의 봉쇄정책에 반대한
허버트 후버 전 미 대통령 등 평화주의자들의 노력을 치켜세웠다.
베이커의 이 같은 논쟁적 저술은 엇갈린 반응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의 서평가 윌리엄 그림은 그의 책이 독선적이며 도덕적 혼란을 일으키는 책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선데이북 리뷰의 콤 토이빈은 "평화주의를 숙고하기 위한 진지하고 양심적인 기여"라고 평했다.
베이커 자신은 "이는 독자들이 역사의 여행을 떠나는데 하나의 길잡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베이커는 마이크로필름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도서관의 신문 서고를 아쉬워하는
논픽션 '더블폴드(Double Fold.2001)'의 저자다.
또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염문을 일으킨 주인공인 백악관 전 인턴비서 모니카 르윈스키가
클린턴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던 폰섹스 대화를 묘사한 소설 `복스(Vox.1992)'를 쓰기도 했다.
jbkim@yna.co.kr

댓글목록

alfo1511님의 댓글
alfo1511 작성일
흐음,, 저는 박정희와 비슷한 경우로, 히틀러는 그 당시 영웅(이랄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박정희를 봐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취급받았죠. 제 생각에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보지만, 좀 지나고 나서 체제가 바뀌면서 암흑의 군주로 자리잡았지만. .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이겠지요. 그 다음 세대에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하하면서 발생한거죠, 히틀러는 몰락했기 때문에 악마가 된 것이지, 승리했다면 위대한 영웅이 되었겠죠.
위에서 보면 루즈벨트나 처칠처럼 승리한 자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면을 감추기 위해 패한 쪽을 몰아붙인 결과가 이런 아이러니의 발생입니다. 히틀러를 찬양하는 부류와 그러면서도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며 히틀러를 비난하는 부류의 충돌. 뭐랄까... 좀 안타깝죠. 히틀러와 나치독일은 무조건적으로 악마라고 가르치고, 처칠이나 루즈벨트의 경우는 위대한 영웅이라고 가르치는 교육 자체가 그런 것을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원,,

Joker님의 댓글의 댓글
Joker 작성일
거창하게 몰락한 자들에 대한 동경이자 싸구려 동정이군요. 우리가 과거 명성황후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것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이죠.
게다가 처칠이 잘했다고 보진않지만 작정하고 전문적인 살인수용소를 건설한것과 전쟁과정에서 벌어진일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물론 역사는 승자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객관적인 사실로 판단하라는 것이지, 패자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가져도 좋다는 건아닙니다. 물론 히틀러가 인간인 이상 인간적인 면이 있는건 당연하지만 그게 그에대한 면죄부를 준다고 착각하시면 곤란합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율에 거품무시는 분들이 그를 옹호하곤 하시는데 그의 무작위적인 화폐발행은 후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주장은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요.

엄마안녕님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히틀러가 독보적인 정치감각과 지도력을 가졌다는데는 동의 합니다.
히틀러는 2차대전 전까지 모든 국가의 위협적인 판단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치욕을 받고도 물러설 줄을 알며 나아갈 때에는 전차와 같이 밀고 나아가는 당시 유럽의 판도를 정확히 읽은 그의 지도력은 독일을 다시 유럽최고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대공황에서 유일하게 독일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세계의 대공황에서 벗어났으니 그의 지도력과 판단에 대해서 두 말할 필요가없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는 그 과정못지않게 결과도 중요합니다.
과정을 괄시해서도 안되겠지만 과정이 결과를 뒤엎을 정도의 효과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또 그렇게 되서도 안되구요.
그렇다고 과정이 좋지도 않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세계어떤나라의 희생도 정당화되어질 수 있다는 정도의 애국심과 애족심을 가졌다는 면에
서 히틀러는 독일국가와 게르만민족의 영웅으로 불릴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에 희생되는 나라의 국민들은 어떻습니까?
깡패가 저희 살겠다고 일반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자신의 배를 두드리는 짓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정치적 감각이 좋다는 것은 희생양을 잘 설정하고 그 희생을 기회로 바꾸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해서 비난받으면 저사람도 이래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라는 것은 좀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국가마다 그 기준이 다른데 어떻게 한 가지 기준을 가진 근거로 그 모든 혐의를 벗어내려 하시는지요.
인터뷰 내용과 그 상황적 근거와 맞는 실례와 그에대한 논거를 함께 올려주시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히틀러는 서방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나치당의 첫 정의인 '공산주의를 타도하자'는 목표로 소련을 뿌리뽑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지요. 실제로 히틀러는 영-프-미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의 '친공산주의' 정책과는 반대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반공산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리하여 '반코민테른'까지 조직하여 그 조직에 독일, 일본,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만주국, 중국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등 동유럽의 여러나라가 참가했지요. 실제로 나치당은 중국의 국민당과 교류를 해왔고, 국민당 군대에게 많은 군수물자를 조달해주어서 중국 공산당에게 대항하게 한 바 있습니다. 영-프가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평화협상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며, 덩케르크 때 영국군 30~40만이 고립되어 있을 때 영국 본국으로 퇴각시킬 수 있도록 공격을 정지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숫자에서 절반 이상이 아마 질병이나 기아, 아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체계적으로 죽기는 힘들다고 보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제 생각에는 히틀러는 그 당시 어느 지도자들 못지 않은 자신의 국익과 좀더 앞을 내다보고 공산주의를 뿌리뽑으려는 의도였다고 봅니다.

코코넛님의 댓글의 댓글
코코넛 작성일아사자 질병 등으로 죽는것은 강제 노동 수용소의 좋지 못한 환경 등으로 발생하는 부가적인 문제니까 결국에는 매한가지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히틀러가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히틀러는 언제나 세계를 독일민족의 발아래 두고 싶어했고 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베르사유조약을 언제나 파기하려 했고 물론 베르사유조약이 독일에게 카르타고식 평화를 요구하긴 했지만 이는 전범국으로써 당시의 피해국가의 요구였습니다.
반공이라 하셨는데 네 반공은 맞습니다만, 반공산주의는 세계정복의 일환으로 자신의 범슬라부주의를 굳건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공산주의는 민족이란 어정쩡한 개념보다는 계급이라는 보다 확실한 개념이 있었고 또 계급에 대한 해방이라는 구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더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죠.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결론적으로 반공이란 것은 단순히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이죠.
그 근거로 러시아와 독일의 밀약과 그 밀월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자 흔쾌히 승낙한 것입니다. 영-프의 계획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리해지는 사태를 초래하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영국도 베르사유 조약이 가혹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코코넛// 그리고 1943년까지는 '게토'라는 곳에 격리수용을 했었습니다. 초반에는 해외 이주 계획을 세워서 마다가스카르에 유대국을 세우려고 시도도 했었지요. 그렇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해상봉쇄로 더 이상의 이주는 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초반에는 질병, 아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전쟁 후반에 치닫자 연합군의 식량보급로 폭격으로 인해 수송로가 차단되자, 그 때부터 아사하는 숫자가 증가한 것입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개구쟁이님은 히틀러정권 초기의 일을 히틀러의 일관된 생각으로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히틀러 정권 초기에는 전범국이란 꼬리표 때문에 프랑스군과의 전쟁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침공당시 "만약 프랑스군이 개입했다면 난 후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뜻 밖이 아닙니다.
독소 불가침조약은 독일이 러시아에게 진격하기위한 동유럽의 길을 트기위하여 였고 러시아는 그에 맞추어 핀란드에의 진격과 당시 독일이 중동까지 진출하여 중동의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독일에게 요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 스탈린이 독일의 히틀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근거로 그는 참모진의 독일의 침공위협에 대한 충고를 무시하고 독소 불가침 조약을 믿으며 독이에게 석유를 제공했습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스탈린의 성격상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모든것을 제거하는 편인데 유독 독일에게는 강경한 정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내에서도 베르사유를 가혹하다고 생각한 집단이 있었지만 소수였습니다.
영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서 가혹하다고 생각한게 아니라요. 그 대표적인물이 케인즈입니다. 그것도 독일의 경제가 무너지면 유럽경제의 불균형이 발생하여 경제적인 면으로서 였죠 하지만 피해국은 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강대국이면서 자국의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에 더욱 독일에게 전쟁의 피해를 모두 전가시키려했고 그 결과가 베르사유조약이죠.
그리고 히틀러에 대한 책을 하나 읽으신것 같은데 그게 히틀러에 대한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히틀러의 연설등을 보시면 그의 세계에 대한 야욕을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이 분은 독일군에게 폴란드인과 유태인이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전혀 모르시는군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제일 유명한 사례이니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개구쟁이님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우리나라를 장악했어도 히틀러는 지극히 국익을 위한
일을 한거라고 지지하실 건가요??? 전쟁은 그 어떤 것으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
히틀러가 왜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까?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가 독일의 수령이되어서 오스트리아까지 흡수통일해버렸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자국민의 등골을 빼먹는 사채집단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지요.유대인학살과 독일의 경제기틀마련은 항상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폴란드는 독일군이 진출하기 위해서 행한 무력에 가장 어이없이 당한 피해자입니다.전 히틀러는 전쟁으로써 그동안 독일이 당했던 설움을 표출하고자 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처칠이 2차세계대전의 영웅이라면 그에 해당하는 악당이 히틀러지요.개개인을 비교하면 처칠이 히틀러보다 나은점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지만 히틀러는 패전국의 수장으로써 그에 합당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위에 본문에 쓰여있는 처칠이나 루즈벨트도 똑같다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만,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의 시선을 바뀔수가 없습니다.적어도 유럽에서는 히틀러를 좋게 볼 수는 없지요.우리나라에서 도요토미히데요시를 위대한 수장이라고 할 수 없는것과 같은 맥락입니다.히데요시 개인의 인품은 크게 평가하지만 국가간의 이해관계에서는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지요.우리야 히틀러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난 국가였지만 바로 옆 일본에 의해서 지배를 당했습니다.일본이 동아시아를 비롯한 몇몇 아시아국가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렇다고 일본이 이걸 자랑스러워 한다고 해서 저는 크게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힘의 논리를 거부하는것은 생명체의 기본시스템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이 시스템을 거부하면서 국가의 틀을 유지할 수가 있을까요? 히틀러는 독일을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시키고자 한 인물입니다.적어도 독일에서는 그의 업적을 추앙해야지요.우리는 히틀러의 학살에 치를 떨 필요가 없습니다.반대로 영국 프랑스군에 의해서도 무참히 죽은 독일인들도 수십만명이기 때문입니다.히틀러 개인의 평이라면 저도 그의 리더쉽과 전쟁에 효율적으로 과학을 동원했다는 점을 높이 삽니다.그렇지만 그는 패자지요.루즈벨트나 처칠이 덜떨어진 인물들이라고 해도 승자가 평화를 위해 싸웠다라고 하면 그에 토를 달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히틀러 개인의 평은 상당히 좋습니다.처칠은 저질이구요.패전국의 수장까지 위대한 인물로 추앙시켜주고 자신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영국과 미국이 아니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엄마안녕, 난까만눈동자// 오스트리아 합병은 '강제 합병'이 아니었습니다. 무력을 쓴 합병이 아니었지요. 이미 이 합병은 합법적이고도 정당한 합병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분도 없었던 영-프는 이를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미 1918년, 윌슨의 14개조 평화원칙을 선언한 이후에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곳곳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원칙에 의하면, 그 지역이나 그 나라가 어느 나라에게 속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합병은 합병 관련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시면 아실테지만, 99%의 오스트리아인들이 지지한 합병이었습니다. 이미 오스트리아에는 나치당이 존재했고, 당수인 자이스 잉크바르트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 합병은 총 한방 쏘지 않은 채 거행되었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오스트리아 합병 관련 사진 중에 오스트리아 시민, 군인과 독일 시민, 군인이 서로의 국경선을 웃으면서, 그리고 주변에서는 환호하면서 뜯어내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이 사진들이 위 주장들을 뒷받침하고 있지요. 그리고 히틀러와 나치 간부 대다수가 오스트리아인인만큼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 인에게는 같은 민족으로 구성된 나치 독일의 일부가 되는 편이 과거 대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는 최선책으로 여겼던 것이지요. 따라서 오스트리아 합병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정당한 행위였다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히틀러는 과대포장해서 연설을 했습니다. 독일의 군사력을 언급하는 자체부터 말이지요. 그래서 전후까지 독일의 군사력이 영화처럼 기계화되고, 실제로 강했다고 취급받아온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리고 아우슈비츠는 말그대로 '강제 노동 수용소'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하는 곳이 아니었지요. 그리고 최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추모 비석을 보면 '600만'에서 '150만'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이 150만 중에서 공산주의자, 변태 성욕자, 강간범, 살인자 등을 뺀다면 유대인의 숫자는 극히 줄어드는 것이지요. 또한 전쟁 후반에 질병, 아사 숫자를 뺀다면 나치독일이 의도적으로 학살한 숫자는 극히 줄어들게 됩니다. 이미 유대인의 머리카락을 카펫으로 만들고, 살을 비누로 만들고, 머리를 장식품으로 만든다는 터무니 없는 헛소리들은 루머로 판명되었지요. 아우슈비츠 이야기는 과장될만큼 과장되었습니다. 안네 프랑크와 그의 누나조차도 전쟁 후반에 전염병으로 사망하였지요. 그리고 아우슈비츠에는 병원과 풀 수영장, 영화관, 연극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등이 존재합니다. 국제 적십자 협회 보고서와 그 증인들의 말에 의해서도 이는 증명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나치독일이 유대인 문제를 최종계획으로 간주하고 이를 실시한 년도가 1943년일 때, 2년동안 수 백만이라는 숫자를 학살할 수 있는 확률은 미지수입니다. 정확히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인 무려 8년동안, 난징 대학살, 등 수 많은 학살과 중국에서 중-일 전쟁을 통해 희생된 중국인들의 숫자가 200만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2년동안 그만한 숫자가 희생되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또 예를 들자면 6.25 한국 전쟁, 3차대전이라고 불릴만큼의 규모를 쏟아부었던 그 참혹한 전쟁에서 양측 모두의 희생자 부상, 전사, 실종 모두를 포함한 숫자가 약 200만 명, 즉 300만 명을 넘지 못한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다는 통계를 본다면 더욱더 이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근대화된 전쟁에서의 총 사상자 통계 수치조차 나치가 저지른 만행의 숫자를 뛰어넘지 못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10년이나 걸쳐서 전쟁을 치루고 소이탄을 막 퍼부은 베트남 전쟁조차도 총 민간인 사상자가 200만을 넘지 못합니다. 이는 나치의 만행이 얼마나 과장되었는지 보여주는 일입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저도 오스트리아국민들이 히틀러를 반기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할 당시에 오스트리아만 꼭 빼놓고 통일하였습니다.오스트리아가 그때 당시 막강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기본 맥락은 같은 게르만민족이니 거부감이 없는것이 당연합니다.그리고 오스트리아도 헝가리제국과의 분리로 인해서 옛영광을 찾기 위해서 독일에 편입된 것입니다.꼭 평화적인 합병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그들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징요.그리고 나치의 만행은 과장된것이 사실이고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는 학살당한수만큼의 유대인을 수용할 능력이 되지 못했습니다.승자들이 패자를 더욱 잔인하게 깎아내린것이지요.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히틀러는 전쟁때 과학을 동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생화학테러도 2차대전에 있었던거 아시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자폭견도 독일군이 시작한걸로 알고 있습니다.물론 둘다 예상만큼의 성과가 없었지만 말입니다.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것은 독일군의 전쟁에서만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나치군의 만행은 숫자가 과장되었고 그 숫자가 또다른 소문을 낳게 된것입니다.설령 이것이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히틀러의 인간미를 일으켜세우는데는 많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전쟁과 평화는 종이한장 차이지만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죠.전쟁의 주범을 누가 옹호하려고 하겠습니까.인물평이라면 히틀러는 상당한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입니다.그러나 거기까지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아닙니다. 나치독일은 거의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정도였습니다. 견포탄은 소련에서 먼저 시작하였구요. 그리고 히틀러가 전쟁 주범이라는 것에 대해 저는 다른 입장입니다. 그는 서방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았으며, 서방이 그들과의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발한 것입니다. 히틀러의 목표는 오직 공산주의의 뿌리인 소련이었지요. 반코민테른 협정까지 주도하여 이탈리아, 헝가리, 중국의 국민당을 이끄는 장제스에게도 군수물자를 지원해주었으며 참여하였고, 일본도 참여하였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아닙니다. 나치독일은 거의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만들정도였습니다. 견포탄은 소련에서 먼저 시작하였구요. 그리고 히틀러가 전쟁 주범이라는 것에 대해 저는 다른 입장입니다. 그는 서방과의 전쟁은 원하지 않았으며, 서방이 그들과의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발한 것입니다. 히틀러의 목표는 오직 공산주의의 뿌리인 소련이었지요. 반코민테른 협정까지 주도하여 이탈리아, 헝가리, 중국의 국민당을 이끄는 장제스에게도 군수물자를 지원해주었으며 참여하였고, 일본도 참여하였지요. 그리고 오스트리아 합병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해서 합법적입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서방이 왜 그들과의 전쟁을 원했다고 보십니까. 좀 안타깝네요.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서 이미 독일을 항복시키고 패권을 장악했으며 막대한 양의 배상금과 점령된 영토를 초기화시켰습니다. 모든 해외의 식민지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이며 무역에서의 상대적 우위 또한 그 조약으로 인해 독일을 구속할 수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으로 인한 피해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기에 유럽의 그 어떤 나라도 또 다른 세계대전의 발발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시네요. 유럽의 젊은이 10명중 3명이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 수백만명의 군인들이 죽어나갔구요. 전쟁을 원하겠습니까?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1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난 줄 아십니까? 단순히 국가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독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과의 싸움 때문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내려온 식민지 쟁탈과 무역경쟁으로 인한 갈등이 국가가 소화할 수 있는 갈등해결의 최대치에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제국주의부터 시작된 국가간 중상주의와 부의 축적을 위한 식민지 전쟁이 그 이유입니다. 독일은 패배로 완전히 그 경쟁에서 밀린 것이고 해외의 식민지는 물론이며 유럽내부에서의 자국의 영토 일부도 잃었습니다. 좀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 동물보호법이 도대체 무슨상관입니까;; 그리고 공산주의를 비롯한 좌측의 성향과 극도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바탕으로하는 나치즘의 정치적 거리의 관계는 극과 극입니다.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정치 그래프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가장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 나치즘을 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좌익 공산주의에 대한 비협조로 인해 고마워하고 알아줘야 하는 일입니까?ㅋ 좌우익의 개념이 조금 부족하신 듯 하구요. 어찌되었건 그러한 독일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었습니다. 히틀러의 책을 제발 좀 보시길 바랍니다.
설마 "나의 투쟁"조차 읽지 않고 이런 논란의 글을 쓰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 글을 읽으셨다면 히틀러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이 될 수 있을까요... 히틀러 본인이 새로운 정신무장과 내부를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대유럽을 향한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논리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는 "자서전"입니다만? 좀 많이 안타깝습니다.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히틀러의 목표가 소련이었다구요? 놀라운 사실이네요. 그럼 왜 처음부터 소련에 진군하지 않았을까요? 유럽의 입장에서 소련은 유럽의 내부이기도 하지만 외부적인 국가였습니다. 정치적 아웃사이더라고 해야 할까요. 정치적 사상이나 지리적 환경의 영향 때문에 소련과의 협력이나 동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한다면 님의 논리대로 독일이 소련을 공격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이 유럽 국가들의 생각일텐데요. 소련은 쉽게 무너질 국가도 아니며 독일이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도 아니며 두 강대국의 국력 소모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에 만약 소련을 먼저 치더라도 독일의 배후는 보장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왜 서부에서 안되니까 동부인 소련을 쳤을까요? 이미 독일의 전력을 서부에서 소모해놓고?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나치즘에게는 공산주의이건 민주주의이건 다 적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국수주의라는 것은 두 정치체제의 어느 요소에도 속할 수 없는 변종적인 정치형태입니다. 법적 제도적 보장과 실행이 아닌 일반적인 국민 개개인의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기초한 가장 원시적인 정치 형태로의 회귀죠. 애초에 히틀러에게 소련이든 서방이든 구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치즘 이외의 다른 모든 정치형태는 다 허위이자 가식이라는 것을 그의 책에서 그의 입으로 말하고 있죠. 제발 책 좀 보세요..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히틀러를 말할 때에는 정치적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그저 보이는 것, 나치의 놀라운 기술력과 전쟁수행능력을 보고 정말 대단한 국가였다! 라는 우물안 개구리같은 생각밖에 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한 정치사상을 가졌단 한 정치적 인물에게 전쟁사적으로, 그저 사실관계의 나열의 기초적인 역사적 방법론으로 접근한다면 처음부터 그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만을 보고 모든 것이 정당하다라는 논리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판단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원인을 알며 행태의 배경이 된 정치적 사고를 알 수 있다면 그 인물의 행태가 정당했는지의 여부는 자연스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루비콘강님 먼저 '나의 투쟁'을 누가 써냈는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십시오. '나의 투쟁'이라는 책은 그 중간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군 장교, 고위급 인사들에 의해서 수 없이 많이 변조되었습니다. 순수 100% 히틀러가 쓴 책이 아니지요. 말 그대로 단지 '선전용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투쟁에는 히틀러의 성격이나 그런 취미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나의 투쟁' 책을 보시면 전문가들이 밑에 틀린 내용을 지적하곤 합니다. 그것만 봐도 히틀러가 전부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의 목표는 소련이었습니다. 이는 최근 독일 연구결과입니다. 제가 왜 독일이 소련부터 진군하지 않았는지 상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먼저 히틀러는 1차대전 후의 원래 영토들을 차례차례 무혈입성, 즉 총한방 쏘지 않고 얻기 시작합니다. 오스트리아 합병부터 체코, 등을 말이지요. 그런데 히틀러는 프랑스로부터 알자스 로렌지방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히틀러는 소련과 국경을 맞닿기 위해서 동쪽으로 팽창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옛 영토를 북, 서, 남쪽으로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동쪽으로의 영토를 넓혀갔지요. 히틀러가 처음부터 소련에 진군하지 않았던 까닭은 폴란드 문제였습니다. 폴란드는 동, 서 독일을 분할시킨 단치히 자유도시, 즉 항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만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폴란드에게 반코민테른 협정에 참여할 것과 동맹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단치히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지를 못한 것이죠.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히틀러는 서부에서 안되니까 동부를 친 것이 아닙니다. 폴란드가 단치히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독일측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150만을 징집하여 도발행위를 서슴치 않자,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소련과의 국경을 닿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한 것입니다.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소련과의 국경이 맞닿게 되고, 그렇게 되면 히틀러가 원하는 소련과의 전쟁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님께서 나의 투쟁을 언급하셨는데, 읽어보셨다면 영국과 프랑스에게는 좋은 평가를 내리고, 소련에게는 파멸시키고 그 지역을 독일인들이 사용해야 한다고 나와있을텐데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프가 선전포고를 합니다. 제가 처칠이 한 발언을 말씀드릴까요? 1936년 처칠이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독일은 너무 강합니다. 우린 독일을 꺾고야 말겠어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칠의 전쟁 의도가 드러나는 셈이지요. 그리고 독일을 먼저 건드린건 영국쪽입니다. 노르웨이에게 영국이 나치독일로부터 보호해줄테니 군사들의 진군을 허락하라고 요구합니다. 마치 일본이 중국으로 갈 길을 우리에게 빌린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이에 노르웨이가 거부하자 나미비크 항구를 무력으로 점령합니다. 나치독일은 스웨덴으로부터 대량의 철광석을 들여왔습니다. 영국의 이 행동은 경제적 압력을 가하겠다는 뜻이었지요. 또한 노르웨이에 대해서 영국은 독일보다 한발 앞서서 침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미루어 져서 뒤에 침공하자 독일도 맞대응한 것이지요, 그리고 도시에 대한 폭격도 영국이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세계대전이라고 해도 대부분이 유럽국가 혹은 미국의 참전이었습니다.프랑스 영국 독일은 미묘한 관계가 얽혀있는 관계입니다만,당시 독일은 유럽에서도 후진국가로 취급받았습니다.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에 버금가는 강대국도 아니었으며 후의 베르사이유조약으로 독일은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히틀러의 학살에 대해서 논하려면 우선 그 전에 영국과의 관계를 보셔야합니다.영국의 처칠도 히틀러못지않은 인물일텐데요? 그리고 루비콘강님 독일군의 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그걸 미국이 고대로 흡수하였습니다.독일군의 과학이 꼭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면에서도 쓰일 수 있는 굉장히 획기적인 것이었을텐데요? 이것은 전쟁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이 결과를 인정하는것은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를 옹호하는것이 아니라 과학적역사에 기록되있는것입니다.그걸 전쟁에 악용한것이 독일군이지 이것으로 히틀러를 옹호하는것이 아닙니다.독일과 유대인의 입장만 본다면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지는 뚜렷하지요.그러나 전유럽의 입장으로 본다면 단순한 승자와 패자의 관계입니다.선과악은 존재하지도 않지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개구쟁이님은 히틀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시는 것 같습니다만 다른 여타의 국가에 대해서는 조금 부족하신듯 합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대외정책의 기준을 지극히 현실주의 적인 방식 즉 "영국에 의한 balance of power" 로 합니다.
즉 프랑스와 독일의 힘의균형을 영국이 조정한다는 것이죠.
독일이 커지면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되어지고 그 후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독일이 동부다음은 서부로 향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히틀러는 서부에서 안되니 동부를 친게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한 동부를 먼저 점령한 것이지요.
히틀러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4주안에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판이었고 패배했죠.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히틀러가 전부 쓴 책이 아니었다고 해도 히틀러를 우상시하고 경외했던 추종자들이 새롭게 주를 달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 틀은 히틀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건 당연한 사실아닌가요? 제가 히틀러가 썼다고 말하는 건 결국 그 책이 반증하는 내용이 히틀러가 가진 생각 및 사고와 거의 모든 부분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게 작가가 히틀러니 아니니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책 속의 내용이 바로 히틀러 그 자신의 사고가 들어가있는 히틀러의 논리가 들어있는 히틀러의 유산이라는거죠. 틀린 부분에 비해 진실된 부분의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아신다면 님께서 그 책이 정확한 히틀러를 담지 못한다고 정의내리실 수준은 아닌데요.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정치적인 인간을 분석하지 않고 전쟁사적으로 히틀러의 상황을 대변하려 하니 조금 답답하네요. 정치학적인 접근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쟁사에 집중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답하네요. 뭐 저는 이만하죠. 답글다실 수고 하실 필요없습니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결론은 히틀러,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모두 쓰레기들이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명분있는 전쟁이라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들이 전쟁으로 희생될 수 많은 사람들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1, 2차대전이라는 끔직한 재앙과도 같은 역사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위에 언급한 인물들 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서 전 세계가 황폐화되어도 결국 그 전쟁의 승자를 지지하게 될
사람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물론, 승자가 있을리도 없겠지만...)

이립님의 댓글
이립 작성일
개구장이님이 하신 말씀 중에 잘못된 점만 몇가지 바로 잡겠습니다.
히틀러가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 것 같군요.
독일은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1919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군을 10만이하로 유지하고 탱크와 비행기같은
장비는 가질 수 없다는 군비제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한스 폰 젝트라는 참모총장에 의해 소련에서 탱크를 개발하고 소련에 기술적인 지원을 해 주지요.
이 탱크로 처음 침공한 것이 폴란드.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 모두 침묵해 주었습니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유럽들이 모두 세계대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르사이유 조약이전에 독일이 차지했던 영토이외의 지역을 침공할 경우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했는데도
독일은 침공합니다.
그런데도 히틀러가 진정 전쟁을 원치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덩케르트 철수에 관하여 연합군이 퇴각할 때까지 왜 공격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몇가지 의견이 있는데
대부분의 의견이 덩케르트 지역은 습지지역이고 당시에 강수가 많아 독일군이 가지고 있는 탱크가 통과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포위당할 위험이 있어서 공격을 정지했다는 설 입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만가지를 잘했더라도 50,048,383명이라는 2차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생각해 보면
결코 좋은 지도자라는 표현이 바른 표현 같지는 않군요.
그리고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바로 genoside.......
3백만명의 유태인을 죽였습니다. 유태인들은 어린아이와 여자까지도 아무이유없이 죽어야 했는데
이를 보고도 히틀러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수님의 댓글
이수 작성일
히틀러가 어떤정치적 목적으로 유대인을 이용하였나요???
고수님들 여러의견 부탁드립니다 ^^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Re》이립 님 ,
분명히 히틀러는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잘못 말씀하신 점을 고쳐드리자면, 폴란드를 침공하므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침묵을 지킨 것은 체코슬로바키아일듯 하내요. 그리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한 이유는 단치히 항구 때문이었습니다. 일찍이 독일은 동, 서 독일로 나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두 독일을 연결하려면 단치히 통로를 얻어야 하는데, 단치히는 일찍이 96%가 독일인이었고, 전쟁 후 투표에서 독일에게 속하길 원했습니다. 이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그 지역 투표로 인해 합법적으로 독일에게 영토가 귀속되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히틀러는 폴란드에게 끝까지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폴란드의 베크가 150만의 군대를 소집하여 국경에 배치하여 독일도 맞대응으로 국경에 군사를 배치합니다. 히틀러의 반코민테른 협정에 참여하여 소련을 견제하자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련, 독일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지요. 결국, 그 두 나라가 영토를 나눠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덩케르크 문제는 한 독일 장군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Guenther von Blumentritt 독일 육군소장
영국군과 프랑스 잔여 병력을 생포할 수 있었으나 이들 병력의 영국 탈출을 허락했던 히틀러의 덩케르크 정지명령에 대해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Liddell Hart는 독일군 장성 블루멘트리트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인용했다: “영국군의 궤멸이 눈앞에 있는 시점에서 총통은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말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대영제국의 존재는 세계질서를 위해 필수적이며 영국이 이 세계에 가져온 문명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대영제국은 대게 잔혹한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영제국을 카톨릭 교회와 비교하며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양자의 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가 영국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영국이 대륙에서의 독일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독일의 舊식민지들을 반환해주면 좋은 일이나 그렇지 않다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며, 만약 영국이 지구 어디서 곤경에 처해있다면 독일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도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Basil Liddell Hart, The Other Side of the Hill, 1948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히틀러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면 자국의 국경선에서의 방어만 했으면 됐을 것을 왜 프랑스 북부의 덩케르트까지 진격했을까요?
히틀러가 영국에게 우호적이 었던 것은 프랑스에게는 재기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안겨주고 영국에게는 절망적인 패배감만을 안겨주면 된다는 히틀러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개인적으로 히틀러가 영국을 좋아했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말입니다."나는 영국과 세계를 반분할 의사도 가지고 있다"라고 히틀러가 말한 것에서 영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프랑스는 대륙에 있기 때문에 확실한 제거를 필요로 했지만 영국은 대륙과 떨어져 고립된 섬나라였기 때문에 한번의 절망적인 패배를 맛보게 된다면 국력이 확실하게 증가 되지 않는한 대륙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히틀러의 계산이었던 거죠.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그리고 정지한 것만으로는 평화를 원했다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2차대전 최대의 미스테리로 불리는 덩케르트 정지명령에는 많은 설이 있지만 지금 학계에서 가장 유력한 설로 꼽히는 것이 히틀러 그릇의 크기 입니다.
히틀러는 계속된 승전보 그것도 너무 빠른속도의 승전보를요 그리고 그에 숨겨진 덩케르크의 함정을 두려워했습니다.
덩케르크는 항구로 육지 끝자락 따라서 영국의 해군의 간접사격과 배후의 프랑스군이 숨어있었다라고 하면 영-프군의 빠른 퇴각이 이해가 되었던 것이죠.결국은 괜한 걱정이 었습니다만 말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 때의 상황은 이미 영-프가 9월 3일에 선전포고를 한 후였습니다. 그 뒤 10월 쯤에 히틀러가 평화협상을 제안했는데, 이를 거절당하자 전쟁을 시작한 것이지요. 실제로 독일의 군사력은 전차, 비행기, 보병, 모든 면에서 군사적으로 불리했습니다. 프랑스와의 휴전에서 휴전에 내건 제안들을 본다면, 이는 결코 가혹한 조약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를 점령한 후에 덩케르크 때 철수까지 시켜주고, 자신의 심복인 루돌프 헤쓰를 영국에 보냄으로 평화협상을 또 제안했지만 결국에는 거절당합니다. 이에 영국에 대한 전쟁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히틀러가 영국을 치다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는 애초부터 소련에 대한 전쟁을 준비해왔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히틀러가 영국에 전력을 쏟아부었다면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나의 투쟁 읽어보셨나요?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굴욕과 수치에 치를 떨고 강하고 새로운 독일로 국가전체를 정신적으로 개조해서 응징하겠다는 히틀러 본인의 생각이 가장 잘 나타난 저서인데 굳이 왈가왈부 변호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애초에 서방을 침략할 마음이 없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건지요. 히틀러의 책을 읽어보시긴 한겁니까? 아니면 단순히 전쟁사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히틀러를 얘기할 때 전쟁사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태로 얘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죠.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개구쟁이님 병력의 크기는 승리하기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당시 영국에 비해 우수한 신종 비행기와 전차는 영-프 연합군에 비해 열세인 군력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습니다.
동부전선의 유명한 일화 하나 알려드리지요 .
러시아군의 탱크와 무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거의 모든 자원을 군수품과 2차산업에 투자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당시 유럽의 러시아군에 대한 평가는 강하지 않다. 하지만 약하지도 않다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스탈린이 유능한 부하를 많이 죽였지만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러시아를 우습게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탱크 50여대가 독일군의 타이거탱크 1대에 전멸했습니다. 탱크를 지휘한 장군은 기사십자훈장을 받구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그리고 히틀러가 연합군과의 종전협정을 하려고 했다는 것을 단순히 히틀러가 연합군과 싸우고 싶지 않다락 해석 할 수는 없습니다.
독일의 퇴각이 최대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기에 확실한 단언은 누구도 할 수없습니다만 그의 행적을 보아 왔을데 히틀러 그릇의 크기란 설이 가장유력하다는 것이죠.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의 독일은 두파가 있었습니다. 문명의 동방파와 문화의 서방파로 말이죠 문명이란 독일이 유럽의 시초라는 독일인의 우수함을 상징하고요 문화는 서유럽과 북유럽의 문화를 독일이 흡수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고로 동방파는 비독일계에 대하여 적대적이었고 서방파는 우호적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동방파 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동방파였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비독일계에 비우호적이었고 이런 히틀러의 이상주의적 성격(단적인 예로 세계는 독일인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한 그의 생각들)으로 당시 유럽은 물론 독일내에서조차 그는 소수파였고 영향력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건 물론 단지 몽상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히틀러가 애초부터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근거가 부족한것 같군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당연히 읽어봤습니다. 그렇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히틀러가 순수 100% 쓴 책이 아니지요. 중간에 전문가들에 의해서 많이 선전용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변질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투쟁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소련에 대한 감정은 나쁘게 나타나있지요. 전 히틀러에 대한 서적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히틀러와 역사에 대해 연구하는 카페를 운영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이야기는 초반입니다. 독일도 역시 초반에 별 쓸모없는 성능을 보유한 탱크였습니다. 후반에 나온 것이지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동부전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동부는 소련도 포합하죠. 서부전선이 동부전선보다 후의 일이고 동부전선즉 소련과의 전쟁에서 타이거탱크가 개발되었다는 것은 덩케르트 지역에서 타이거 탱크가 쓰였다는 사실을 유추해 보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개구쟁이님은 독일군에게 폴란드인과 유태인이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전혀 모르시는군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제일 유명한 사례이니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피아니스트>를 보셔도 됩니다.
만약에 개구쟁이님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우리나라를 장악했어도
히틀러는 지극히 국익을 위한 일을 한거라고 지지하실 건가요???
전쟁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도 없고, 정당화되서도 안됩니다.
인간이 자처한 가장 크고 빠른 인류파멸의 지름길이 다름아닌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구쟁이님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어떤 전쟁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국민)이 있고나서 국가가 있는 것이지 국가가 있고나서 사람(국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구쟁이님의 발언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발상인지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
왜 전쟁이 정당화가 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쉰들러리스트나 피아니스트는 지극히 유대인의 입장에 선 좋지 않은 영화입니다.유대인들 학살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당시 독일의 상황을 아신다면 유대인학살에 치를 떠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독일자국민이 굶어죽은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유대인들의 고리대금업이었습니다.경제기반을 잡기 위해서 유대인학살을 해야했고 그에 맞는 정책이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이었습니다.여기서 제가 질문한가지를 하겠습니다.행복나눔이님이 독일의 수장이라면 자국민과 유대인중 누구를 지지하시겠습니까? 인류의 파멸의 지름길이 전쟁이라고 하셨는데 전쟁 덕분에 엄청난 과학발전을 이룩한것도 사실입니다.그 여파로 이만큼 편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무력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개구장이님의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자료도 방대하지만 오히려 행복나눔이님이 색안경을 끼신 것 같아서 한말씀 드리는겁니다.전쟁이 정당화 될 수 없다라...그렇다면 행복나눔이님의 눈에는 광개토대왕도 전쟁광인지요? 전쟁이란 자국민을 위해서 행해지는 암묵적인 동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전쟁의 정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동의에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평화구요.전쟁과 평과는 정말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전쟁이 평화를 낳고 평화가 전쟁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굳이 왜 우리나라국민이 독일군에게 죽임을 당한걸 비유로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바로 옆에 일본도 있는데 말입니다.각국마다 입장의 차이는 전혀 다른겁니다.굳이 우린 시선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구요.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독일군이 학살한 것에 치를 떠실것면 반대로 영국공군이 독일을 초토화시킨 것에도 그리 하셔야합니다.설마 독일국민 대다수가 전쟁에 찬성했으니 죽어도 마땅하다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무엇보다 전쟁으로 인해서 초토화된 것은 독일이었습니다.언제부터 쉰드러리스트가 독일의 잔학성을 대변하는 것이 되버렸지요? 유대인들은 독일못지않게 전세계적으로 잔학성을 대변할텐데요? 인류파멸의 지름길이 전쟁이라는 말을 보고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인류의 기록이전부터 전쟁은 항상 있어왔습니다.그것은 동물이자 생물체의 본능이구요.그렇다면 행복나눔이님은 항상 베트남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가지십니까? 우리군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는 아실텐데요?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면 우리는 일본에게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요?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잘못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경제기반을 잡기 위해서 유태인을 학살한 건 아닙니다.;; 유태인 학살은 히틀러 개인의 유태인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과 그들의 재산권을 몰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입니다. 오히려 히틀러는 전쟁자금을 댈 수 있는 대단히 부유한 유태인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 권리를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중산층 유태인에 대해서는 봐주지 않았죠. 얼핏 보기에는 유태인 탄압이지만 사실은 전쟁비용충당과 현실적 관계로 인해 특권적인 유태인층은 또 다른 유태인들을 죽이기 위한 전쟁비용을 댐으로써 살아남았습니다.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결국 표면적인 유태인 정리의 문제가 그들의 재산에 있다기 보다는 독일이 처해있는 현 상황을 내부적 요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내부적 통합과 공감을 달성할 수 있게 했던 정치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또한 그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표면적인 명분이 될 수도 있었죠.

행복나눔이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네요.
전쟁이라는 건 일으키는 주체가 있기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건
바로 그 주체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 주체를 반대한다는 것이고,
그 주체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유대인 학살이 개인적인 분노라구요? 절대 아닙니다. 유대인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 시오니즘과 국제 유대인들에 대해서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루비콘강,어째서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 개인의 감정에 의한 것이었습니까? 당시 독일내의 상황을 본다면 반드시 제거대상중에 하나였는데 말입니다.오히려 프랑스와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심했지요.쉰드러리스트보시고 이러시는거 같은데 아우슈비츠가 수용가능한 인원을 초과한 사상자가 나왔습니다.이런 결과를 보고 바로 날조라고 그러지요.

난까만눈동자님의 댓글의 댓글
난까만눈동자 작성일행복나눔이,전쟁은 경쟁에 기반을 두고 생겨나는 겁니다.개인과 개인의 경쟁 사회와의 경쟁 국가간의 경쟁 이것이 무력과 침공으로 이뤄질때에 비로소 전쟁이라고 하는것입니다.생명체는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자국민의 보호를 위한 전쟁과 침략전쟁은 따로 보시는겁니까? 전쟁에서는 정당화가 필요없지요.그것은 DNA에 각인되어 있는 시스템의 일부입니다.민주주의와 자유이념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사항입니다.전쟁이 없다면 통일개념도 사라지고 경쟁체제를 뒤흔들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눈동자님의 생각과 말씀에 100%동의 합니다 . 제 생각과 거의 같으신 것 같군요.
그런데 한가지 독일 국민이 전쟁에 찬성했다는 것은 제가 아는 것과 다르군요.
독일 국민은 전쟁에 반대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쟁전 히틀러의 군비확충도 단지 외교적 수단으로 강한 외교를 위한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하고 불만은 있지만 묵인하고 지지하였고 전쟁도 그에 대해 못마땅했지만 자국의 안녕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히틀러의 선전과 여론의 조작 때문이죠. 즉 독일 국민이 히틀러의 사회공학의 희생물이 되었기 때문에 자발적 지지가 아닌 타의에 의하여 조작된 지지란 것이죠.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히틀러와 나치당 간부들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 국민들도 마찬가지였구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히틀러도 궁극적으로 전쟁을 원하진 않았죠 그의 궁극적 목표는 자신의 사회공학의 완성이었고 그 과정으로 유태인 학살과 테러에 의한 자신의 궁극적 목표를 위한 실험이 계속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죠 궁극적으로 전쟁을 원하지 않고 자신의 사회공학의 완성을 원했지만 자신의 목표 독일인이 세계의 정상에 있고 그 독일인 정권의 정점에 자신이 군림하는 것을 실현 시키려면 전쟁은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불필요한 것들이었죠.
히틀러의 입장에서 보시는 만큼 여타국가의 입장도 같이 고려해보십시요,
정치란 모순그 자체입니다.
목표했던 바가 목표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고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목표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하지만 지도자는 그 결과가 어떻든 그 결과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히틀러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비극으로 그 결과가 나타났고 히틀러는 독일의 지도자로써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 또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는 것 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히틀러가 100%어떻다고 하기보다 이런면에서 이러했다라고 인지하시고 그 평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얀색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
DNA에 각인된 시스템이라...그것대로 살지 말자고 배우고 자제하고 발전하려 한다고 생각되네요..
그리고..유태인 제거가 선행되어야 하는지 유태인의 재산이나 경제력 제거인지...제가 보기에는 유태인 제거라는 말 자체가 이상한데요...

하얀색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
크게 보면...전쟁의 정당성이지만...
축소해보면 살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듯...
뭐가 틀린지...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문제를 단순화 시켜 봅시다.
만약 한국이 독일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
전쟁에 패망하여 천문학적인 금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훨씬 뛰어난 물건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팔 식민지는 선발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들이 점령하고 있다면
그리고 상황에서는 도저히 살아나갈 방법이 없다면 어떤 지도자가 나와야 할까요.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는 한 민족을 말살시키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 났던 일입니다.
그나마 그러한 전통은 이슬람에서 유래되었지요. 아랍인들은 종교, 민족이 다르더라도
세금나 좀 더 내면 동등하게 대우하려고 했었지요.
한민족이 1000회 정도 외침을 받았다고 하지만 멸종을 시도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웃긴 이야기입니다. 나치즘이 주는 신비주의와 비이상적인 애국주의가 마치 그럴 수도 있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뛰어난 지도자였다는 겁니까? 당시 독일인들의 기준으로?
아니라면 독일인을 제외한 수많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혹시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란 책을 읽어 보시긴 했나요?
그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히틀러란 인물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 인물인지 알 수 있을 텐데요.
안 읽어보신 것 같습니다.
개구쟁이님 옛글을 보니 나치의 기술과 전쟁수행능력 등등 나치의 장점을 대단히 좋아하시는 분 같은데
히틀러 개인의 인생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표면적인 나치와 히틀러와 놓고만 본다면 그건 히틀러를 제대로 이해하는게 아니겠죠. 그리고 좋았다라는 비교를 할 떄에는 그 비교 대상과 비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이유들을 나열하는 것이 논리제기의 기초입니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미림님은 참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 같습니다.
한 민족을 말살시키는 일은 다반사...
이게 그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 말인가요?
그 시대에는 그랬으니까 히틀러도 그 중에 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넘어가자? 그래서 그의 행동은 정당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고 한 가족과 국가를 없애는 일 입니다.
그 시대에 태어난 유태인중의 한 사람이 미림님이라면
미림님의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고 이웃이 죽고 나라를 잃고
자신도 죽을 위기에 놓여 있다면 그때도 정녕!!!
"한 민족을 말살시키는 일은 다반사..."라는 말을 하면서
히틀러의 행동을 지지하실 건가요???
전쟁은 살인 행위입니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지지하고 옹호하고
두둔하든 결국 모순에 빠지게 되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행복나눔이님이 미림님의 말씀을 곡해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멸족 즉 뒤의 화근을 아예 없애자는 것은 유럽인들의 문화이자 그들의 생각양식입니다.
그를 나눔이님의 잣대로 판단하시려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미림님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쓰신 것이지 인종말살을 정당화 시키기위하여 쓰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으로 사실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어느 한쪽에 감정을 싣고 보게 되면 당연히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제 3자라는 인식에서 보게 됨으로 더 객관적으로 사실을 판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림님의 댓글의 댓글
미림 작성일
독일과 대립각을 이루던 나라들이 선이고 히틀러는 악이라는 이분적인 사고는 유럽사회의 관점이지 한국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닙니다. 그러한 사고자체가 강대국의 논리에 세뇌되고 마치 자기가 그들의 일원인양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 당시 미국은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학살하는 인종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고 영국이나 프랑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기독교를 강요하고 살인적인 경제적인 수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의 인종들이 멸종하지 않은 것은 수탈의 대상으로써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지 존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슬람권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유럽의 genocide 관습은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동양은 아예 genocide란 단어 조차도 없지요

미림님의 댓글의 댓글
미림 작성일
역사적인 사실은 히틀러가 한국의 독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히틀러가 원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2차대전이 끝나면서 식민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한국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어떤건가요? 독일패망으로 우리가 독립하게 되었으니 뭐 괜찬다 이 수준은 아닐텐데요. 전쟁의 전범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일본의 그것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역시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전쟁을 겪었고 그것이 미쳐버린 한 국가 또는 전쟁광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이 지구의 어디이건간에 충분히 비판할 수 있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역사적 결과가 있지 않나요? 독일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독립하지 못했다? 따라서 히틀러에 대해서 재구성해봐야한다? 히틀러에 대해서 재구성하는 건 상관없지만 히틀러의 전쟁으로 우리가 독립을 이루었기에 우리가 히틀러를 굳이 비판할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라는 말씀은 큰 어폐가 있네요.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그건 님의 태도이지 한국의 태도는 아니겠죠. 히틀러에 대해 찬양을 하건 말건 그건 개개인의 자유지만 한국이 독일의 전쟁으로 인해 독립을 했고 그 중심에 히틀러가 있었기에 우리 한국은 이분법적 사고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얘기는 수많은 침략을 당했던 한국의 역사 따위는 독립하게 해준 고마움이란 이름앞에 무릎꿇어야 된다는 얘기입니까?
님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맞지만 사실은 조금 무서운 의미도 담겨있습니다. 오해하기 쉬운 글이기에 굳이 이렇게 답변드립니다. 답글 다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재한님의 댓글
이재한 작성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쟁 그자체론 어떠한것도 평가할수있는 잣대가 되지못한다고.
인간도 동물이기에 이기성이 비굴성 나약성이 반드시 존재 합니다.
전쟁을 함에 있어서 자잘못은 승전국이건 패전국이건 똑같다고 봅니다. 어차피 비인간적인 전쟁이란 틀속에서 나뉘는 그룹이니까요. 만약 독일이 이겼다면 히틀러는 영웅입니다. 마치 한국의 안중근 의사를 보는 입장이 한,일 양국간의 차이와 같다고 볼수있겠죠.
그리고 1차 세계대전후 독일을 압박하여 전쟁을 할수밖에없는 상황으로 만든것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 연합국들의 집단 이지메라고 볼수있습니다. 고로 연합국이건 독일이건 잘한것 못한것 따질수 없습니다.

토돌이님의 댓글
토돌이 작성일
진정한 지도자(指導者)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검색해서 82가지 지도자론을 찾았습니다.
1. 지도자는 복귀(復歸)의 목적을 이룩하는 기간을 단축시켜 인도하는 자다.
큰 일을 하려 면 크게 믿을 줄 알고, 크게 양보할 줄 알고, 크게 뛰어넘을 줄 알아야 한다.
2. 위대한 지도자는 빈 손으로도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는 배짱과 천하를 품을 수 있는
무 한대(無限大)의 마음을 소유한 자이다.
3. 지도자는 누구보다도 수고하겠다. 제물(祭物)되겠다.
애달픈 사정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앞서야 된다.
4. 불변의 스승의 자리, 불변의 부모의 자리, 그리고 하늘 앞에 불변의 충심이 되어야 지 도자가 될 수 있다.
5. 지도자는 눈물없이 지도할 수 없다.
6. 닥쳐올 민족의 고난과 시련을 알고 여기에 대비할 수 있는 고통을 주며
시련을 주어서 연단을 시키는 자가 참된 지도자다.
7. 지도자의 부족을 보강(補强)해 주고 키워 주어라. 지도자를 평(評)하는 자는 가인이다.
지도자의 흠, 결점을 품고 책임지려고 하는 자는 어느 한 날에는 아벨의 자리에 서게 된다.
8.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원치 않는 곳에서 명령하는 지도자는 망한다.
9. 지도자는 이용물(利用物)이다. 하나님을 위해 삼천만의 이용물이 되어 보라.
그러면 삼 천만은 그의 장중(掌中)에 있을 것이다.
10. 역사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와 시대의 어려움에 부닥쳐 밀어낼 수 있는 자 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불리한 사건이라도 잘 이용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영웅이란 자기 원수를 친구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11. 많이 울어야 많이 울릴 수 있다.
12. 남을 지배하고 싶은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이 지배당해 보아야 한다.
13. 광야시대(曠野時代)를 두려워하는 자는 이스라엘이 아니요, 망하고 쓰러져서 독수리의 밥이 될 자이다.
14. 지금까지 소모전(消耗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체 내에 있어서 힘이 빠진 것이 사 실이다.
그러나 하늘을 기준삼고 3년간 참고 나가보라. 천적인 기반이 닦아지게 되어 있 다.
15.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급(出埃及)에서부터 전 노정이 오늘 세계적으로 넘어가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인 광야가 민주세계요, 가나안 땅은 한국이 될 것이다.
16. 한국은 세계주의(世界主義)를 세우기 위한 훈련장이다.
17. 수난으로 짓밟혀도 여기에 불변의 민족성을 가지고 천적 주도권의 한날을 그려야 한다.
한국은 두들겨 맞아도 맞는 데는 하늘을 붙들고 맞아야 한다.
18.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들 앞에는 복귀에 관한 원 리 말씀은 해줄 수 없었다. 중심(中心)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방성(四方性)이 갖 추어져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복귀섭리의 원칙을 보면 외부에서부터 내부로 찾아오 지 않았는가?
먼저 남들과 세계를 내 가족처럼 느끼고 진실을 통하게 할 수 있어야 한 다.
19. 여러분이 염려하기 전에 중심이 더 염려했으므로 중심 앞에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명문제에 대해서도 중심만큼 생각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20. 제일 믿기 어려운 층(層)의 사람(20-30대)을 제일 믿고 섭리하셔야 하는 하늘 심정을 위로할 줄 알아야 된다.
21. 창조는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흩어진 세계의 재편성(再編成)도 하나의 동기 밑에 다시 모여짐으로써 시작된다.
22. 하늘은 천주적인 큰 행복을 주시려고 하는데,
인간은 당장 눈에 보이는 미미한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에 주고자 하는 큰 복이 화가 되어 우리에게 내려온다.
23.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이 시간도 자기도 모르게 더 좋은 것을 찾아 헤 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이 그러하듯이 땅을 대하고 있는 하 늘도 마찬가지다.
24. 선생님은 오늘까지 식구들에 대하여 악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
쓰러지면 거두어서 장 사지내 주고 싶은 심정이다.
타인을 위해 주고 사랑해 주는 입장에서 정성들여 주면 악 한 사람의 마음도 돌아온다.
25. 선생님은 내적인 기준에서 외적인 기분으로 나가는 것이요,
여러분은 외적인 기분엣어 내적인 기준으로 찾아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생님과 여러분이 복귀의 한 점에서 만나 밤새도록 사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정성을 들여야 한다.
26. 선생님은 역사적인 서러움을 헤쳐 왔기에 파고들면 하나님의 서러움까지 연결되어서 회오리치고 있다.
이것을 들고나올 때 이 민족과 세계 인류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7. 신학(神學), 철학(哲學)을 연구하는 전문가보다 하나님의 심정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역사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4천 년만에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준 자가 예수님이고,
하나님이 아담을 버린 후 4천 년만에 찾고자 한 실체(實體)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드린 만큼 예수의 심정을 알아주는 성도 가 없으니
탄식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듣고 본 일도 행하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무언의 수고를 6천 년간 해 나왔으니 그 심정이 어떠하랴.
28. 통일교회는 자유천지(自由天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최하의 자리,
감옥에서부 터 출발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9. 나라가 없어 가지고는 입적(入籍)할 수 없다.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는 자리다.
30. 하나님이 마지막 이 땅에서 이루셔야 할 뜻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망할 자리에 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져 온 것이다.
31. 요셉이 애급(埃及)에 찾아온 열 한 형제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없을 때
그 래도 부모를 공양한 것이 형제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반대하여 온 기성교단(旣成校壇)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래도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 하 나님을 받들어 모셔 온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32. 몸의 눈, 귀, 코, 입 등은 모두 태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을 알고 나왔다.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것을 안 존재(存在)는 인간 이상의 전지(全知)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존재가 하나님이시다.
33. 나무가 커지면 커질수록 뿌리는 땅 속으로 깊이 박혀 들어간다.
뿌리가 나타나는 나무 는 마르든지 바람이 불 때 뽑히어질 것이다. 지도자는 뿌리와 같은 것이다.
34. 승리적 주관자(主管者)가 되라.
승리적 주관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분야에서, 사랑 의 분야에서 승리자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35. 지도자는 천운(天運)을 맞추어 나가야 한다. 천운을 좌우하시는 주인공이 하나님이시 다.
36. 책임자(責任者)가 되려면
① 설 자리를 닦아야 되고 환경을 주관(主管=)하여야 한다.
② 뜻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선두에 서야 된다.
③ 수(數)에서는 져도 전체를 생각하는 데는 이겨야 한다.
④ 먹기 전에도, 자기 전에도 그들을 생각해 주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⑤ 그들이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⑥ 하늘이 주신 것 위에 내가 플러스시켜 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37.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은 그들과 세운 맹세를 그들은 배반하였어도
하늘은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맹세가 이루어질 때까지 지도자는 책임을 놓지 못한다.
38. 광야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비판하고, 족장(族長)을 비판하고, 책임진 자를 비 판하다가 멸망했다.
이런 무리들을 모세가 재차 밀어내고 쳤어야 되었다.
가만히 놓아두 면 죽으니 칼을 들어서라도 내몰아야 할 것이었다.
39. 말씀만 가지고는 안 된다. 땀 흘리는 사람이 사람을 움직인다.
40. 성인(聖人)은 하늘을 소개하고 천도(天道)를 심기 위하여 수고하는 사람이다.
41. 사람을 싫어하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42. 환경에 끌려가지 말고, 내가 환경을 끌고 가야 한다.
43.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나는 후퇴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진하고 있는가!
44. 선생님은 영원한 현역(現役)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팔십노객(八十老客)이 되었다고 끌 려갈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당당히 뜻의 기수(旗手)가 되어 앞장설 것을 하 늘 앞에 맹세하는 선생님이다.
45. 지도자란 일도 양단(一刀兩斷)하는 용단의 성격이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클 때 는 태산(泰山)도 눈 넘겨 보아야 하고, 또 작을 때는 터럭도 불어가면서 찾지 않으면 안 되고,
또 엄(嚴)할 때는 자기 골육(骨肉)도 돌아보지 않고,
그러면서도 인자할 때는 버러 지도 밟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46. 큰 은혜를 잡아먹지 말고, 작은 은혜를 키울 줄 알아라.
47. 하늘과 땅 앞에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는 면목을 갖추었는가?
48. 천만 사람이 좋게 이용할 수 있는 재료가 되라.
49. 오지 않으면 오게 만들어야 한다.
50. 작은 지역 하나 책임 못 지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땅을 책임지겠느냐?
51. 패잔병은 다시 정예부대에는 내세우지 못한다.
52. 지도자는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된다.
53. 바늘이 못 되면 실이라도 되자!
54. 참주인이 되려면
첫째, 소유관념이 확립되어야 된다.
둘째, 책임관념이 강해야 한다.
셋째, 내 갓으로 하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한다.
55. 살 바에는 멋지게 살고, 멋지게 싸우고, 멋지게 죽자.
56. 하늘은 두 가지 중의 한 인물이 필요하다.
첫째는 지도자가 불러 의논할 수 있는 자 요. 둘째는 지도자가 어떠한 명령이라도 할 수 있는 자다.
57. 끌려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역사적으로 공적 책임을 졌던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일 으키는 동인(動因)이 되고 끄는 자가 되라!
58. 탕감수에 걸려 나가는 배설물이 되지 말고, 알곡으로 남아지는 실체가 되라!
59. 대접을 받되 상습화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 후에는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60. 우리 지도자는 하늘을 위해서 미쳤다고 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61. 지도자는 해가 져서 밤이 돌아오는 것이 원수라고 느낄 만큼 밤낮 뛰어야 한다.
62. 아무리 어려워도 식구들에게 신세지지 말라. 주지 못해 한이라는 입장을 취하라.
63. 원수는 치기 전에 먼저 사랑하라.
64. 뿌리는 말없이 땅속으로 뻗어 들어가듯이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65. 높고 귀한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을 느끼며 미래적인 소망을 연결하라.
66. 선구자가 성공하면 따르는 자도 승리하는 것이다.
67. 선생님의 청춘시절을 생각해 보라.
죽음을 밟고 서야만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68. 제사장은 제물 대신이기 때문에 소유관념이 있어서는 안 된다.
69. 알고 보니, 무수한 면에서 '아이구, 부족하구나!' 하는 이것이 좋은 선물이다.
70. 지도자란 인생이 가야 할 정도(正道)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6천 년의 고생 보 따리를 지워 주어도 '하루 동안에 하고도 남겠습니다!' 해서,
'명령할 수 있겠다.' 하는 사람이다.
71. 모세는 호화로운 바로 궁중에서 생활했지만 '이놈들…' 하고
민족을 더 생각할 수 있 었기에 민족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72. 백 사람이 하는 일을 해야 하고 백 사람의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73. 나라의 주권자는 마음과 같고 백성은 몸과 같이 돼야 한다.
나라는 전체를 치리하는 주체성이 있고 개인은 개체를 치리하는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74.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현실의 책임자가 될 수 없다.
현실의 책임자가 되고 싶은 사 람은 역사의 상속자가 되라.
예수는 죽음으로써 과거를 상속받고, 부활로써 미래를 수습 했다.
75. 주일 예배 3일 전부터 준비하면서
그날 만민을 위해 복을 빌어 주어야 하겠다고 결의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
76. 책임자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비참한 것이다.
세상에 부딪치고 밀고 나가서 새 로운 역사와 전통을 세워야 한다.
77.개척 언제나 선두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둘이 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료를 수습해서 그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역사가 없고 인연이 없 다.
78. 책임자로서 알아야 할 것은 어린이의 마음이다.
79. 어머니가 병이 들었어도 어린이에게 젖을 주어야 하는 것과 같이 지도자는 피곤이나
자기의 사정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80. 사람을을 대할 때 웃는 얼굴로 대하라. 그것은 자연적인 방어가 되는 것이다.
81. 지도자에 걸려 오래된 식구가 나오지 않으면 전도길은 완전히 막힌다.
82. 소망적인 사람은 언제나 건설적이다.

토돌이님의 댓글
토돌이 작성일
보스와 지도자의 차이
보스는 사람들을 몰고 간다. 그러나 지도자는 그들을 이끌고 간다.
보스는 권위에 의존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선의에 의존한다.
보스는 '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우리'라고 말한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가자'고 권고한다.
보스는 모든 것을 숨기려 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일한다.
보스는 남의 공을 가로챈다. 그러나 지도자는 남의 잘못을 도맡는다.
보스는 남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지도자는 남을 믿는다.
보스는 겁을 준다. 그러나 지도자는 희망을 준다.
보스는 복종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존경을 모은다.
보스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지도자는 대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보스는 약점을 숨긴다. 그러나 지도자는 약점을 숨기지 않는다.
보스는 귀가 없다. 그러나 지도자는 귀가 여러 개 있다.

토돌이님의 댓글
토돌이 작성일
비전을 가진 지도자
비전은 낙관과 희망을 포함한다.
비관주의자가 위대한 지도자가 된 적은 없었다.
비관주의자는 주어진 모든 기회를 어렵게만 바라본다.
그러나 낙관주의자는 모든 어려움들을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관주의자들은 항상 가능성에 앞서 어려움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전진하기를 열망하는 비전을 가진 사람을 만류하는 경향이 있다. 주의깊은 사람은 낙관적인 지도자를 도와 그가 실제적으로 일을 처리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선천적이고 뿌리깊은 신중함이 하나님께서 높이 날도록 의도하신 사람의 날개들을 자르지 않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어려움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너무 분명하게 자기 가능성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감화를 줄 수가 없다. 비전은 위험을 무릅쓸 수 있게 해주며, 역사는 위험을 무릅쓰는 믿음의 편에 선다. 비전을 소유한 자는 외관상으로 공허한 느낌이 들 때에도 기꺼이 믿음의 신선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나간 과거가 가치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유익을 얻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과거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과거를 위해서 미래를 희생해서는 안된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급변하는 정책에 대한 그의 확신 안에서 미래를 바라본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토돌이님께서 참 좋은 글을 남겨주셨네요.
히틀러는 사람들을 계속 몰고 갔고
언제나 '나'라고 말하면서 '가라'고 명령했고
그가 저지른 일은 매번 숨기려 했고 부하들의 공을 가로챘고
남을 믿지 않았으며 자신의 부하들은 물론, 유태인들까지
겁을 줬고, 복종을 요구했고, 철저하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봤으며 자신의 약점은 한없이 숨기려 했습니다.
물론, 귀가 없는 건 두말 할 나위가 없겠죠.
토돌이님께서 남기신 글을 토대로 그의 자취를 맞춰보니
보스라는 결론이 나오는 군요. 그것도 사악한 보스!!!
지도자의 덕목이라곤 뭐 하나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아... 유일하게 갖춘게 하나 있다면 전쟁을 이끈 리더쉽정도?
하지만 단지 그 한가지만으로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을 수는 없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아닙니다. 그는 "국가와 국민들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면서 에바 브라운의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또한 "국가의 재산을 내가 함부로 쓸 수는 없다."라고도 했지요. 이미 전체주의에서는 '나'라는 사상은 존재조차 없습니다. 오직 '전체'라는 사상만 존재할 뿐이지요. 님께서 말씀하시는 '나'는 민주주의에서나 흔히 존재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히틀러의 전략 전술이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부관들은 모두 그가 말했듯이 '겁쟁이'였습니다. 히틀러가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를 겪자 이렇게 말했지요. "그들은 모두 겁쟁이야. 그들이 진정 용기라도 있었다면 그들이 내 앞으로 와서 총을 겨누었을텐데 말이야. 그렇게 했다면 어느정도 내가 그들의 용기를 인정을 해주고 경의를 표현 했을텐데 말이야."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리고 Boss란 뜻은 지도자란 뜻입니다. 단지 영어와 한글인 언어 차이일 뿐이지요.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말입니다. 위에서 토톨이님께서 언급하신 'Boss'는 갱에서의 대장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판단을 해야겠지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boss와 leaader라는 분명한 어감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말과 같이 단순한 결정자인지 아니면 지도자인지요.
그리고 히틀러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정도의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용기에 경의를 표할 겁니다.
단지 히틀러가 경의를 표한다음 어떨지는 생각해보셨는지.
그리고 히틀러정도의 상황판단능력과 시대를 읽은 눈 그리고 그의 구연능력을 생각하고 그의 행적을 살펴본다면 그 정도의 립서비스와 연기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건 추측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지요. 히틀러는 어렸을 때부터 평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연기를 해도 거짓은 티가 나는 법이지요. 그렇지만 그는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채식주의자, 금주자, 여자를 멀리하는 등 흔히 볼 수 없는 지도자입니다.

하얀색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
전체라...그럼 히틀러는 사병들과 똑같은 음식에...똑같은 옷감의 옷에...
그가 이야기한 전체는 그가 필요할때였을뿐인듯...하네요

도톰이님의 댓글
도톰이 작성일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난 독재 정치하는 사람과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잘못됬다고 생각하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독재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독재,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비밀리로 움직이는 독재, 그리고 대중 독재가 있지요. 히틀러는 대중 독재에 해당됩니다. 대중들이 독재를 지지한 대중 독재지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얀색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
독재에도 종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재란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압니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개구쟁이님! 말이라고 다 갖다 붙이면 되는 게 아닙니다.
독재를 지지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세상의 어느 누가 비극이 눈에 훤히 보이는 복종을 원하면서 산단 말입니까?
개구쟁이님은 그렇게도 복종이 좋으십니까?
히틀러를 지지하는 정당한 명분으로 내세울 만큼???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키고 싶다고 해도 상식을 벗어나는 논리는 논점만 흐릴뿐
토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되도록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독재 :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세계적으로 가장 민주적이었다는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왜 인플레이션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바이마르 시절의 일 추진을 방해하는 민주 절차, 결정을 꺼리는 태도 혹은 체념들이 그 실행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정권의 인기와 결합되어 있던 아우토반 고속도로 건설 계획은 오래 전부터 말이 있어왔지만 의회들의 반발로 시작도 되지 못했습니다. 나치당이 독일의 경제를 부흥시킨 이유는 히틀러를 믿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어 히틀러가 그들의 믿음대로 실현시켰기 때문입니다. 신도시 건설계획과 도로건설 같은 국가 발주 사업, 공공투자와 민간투자의 유인, 대출, 세금 감면, 보조금 지급 등 히틀러와 국가가 주도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경기 활성화를 촉진시켰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또한 1935년 이후로 의무화된 조직은 계급 한계의 극복과 입대 전 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지요. 또한 노동쪽에는 파업금지령을 내리고 통합 노동조합인 '도이치 노동전선'의 설립 같은 엄격한 질서의지를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친절한 화해적 태도를 히틀러가 주도하여 공장에 노동자들에 대한 휴가 여행, 스포츠 축제, 미술전시회, 포크 댄스, 교육과정 등을 통해서 '즐거움을 통한 힘'이나 '노동의 아름다움'같은 표어들 못지않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진정시키는 정책을 써서 성공하였습니다. 독재란게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세종대왕이 어떻게 한글을 만들었으며,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이 노비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러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왕이라는 절대권력이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들의 역사를 알아보십시오. 죄다 절대권력을 지닌 왕들에 의해 이루어졌지, 절대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통령들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한미 FTA만 봐도 그렇습니다. FTA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반발하며 그 진로를 가로막고 있지 않습니까? 아르투어 로젠베르크같은 공산주의 역사가도 "국가사회주의는 민주주의 혁명이 성취하지 못한 요구들을 실현시켰다."고 고백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추진 계획 추진과 스탈린의 경제개발 5개년 추진 계획도 독재자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공업이 성장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쪽이 더 옳고 어느 쪽이 더 옳지 않은건 없습니다. 단지 표면적이냐 표면적이지 않으냐의 차이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뿐이지요. 독재 국가는 직접 사람들을 죽입니다. 그렇지만 민주 국가는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죽음에 기여합니다. 독재 국가들은 모두 치안 질서가 확실하여 범죄가 잘 일어나지 않는대신에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그들을 탄압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만듭니다. 그러지만 민주 국가들은 치안 질서가 부실하여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강간, 절도, 방화, 등의 범죄가 일년에 수 천, 수 만건이 일어나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며, 교육 때문에 수 많은 학생들이 자살하고, 학교 폭력도 제대로 통제를 못해서 왕따가 생기면서 왕따 학생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충격을 주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독재 국가의 이론이나 민주 국가의 이론이나 모두 다 백번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론과 현실이 틀리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과 한계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민주주의의 한계점 몇가지를 예를 들어 말씀드리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① 대통령 직선제 + 임기 4년 의회 재임가능.
→ 현재의 의회제도는 다수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다수결의 제도이기 때문에 각각의 개인, 즉 국회의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에 따라서 국회의원들이 제대로된 정치를 못한다.
(소크라테스도 이를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비난했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② 국민이라면 어떠한 사람도 정치가 가능하다. <국민주권>
→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개나 소나 국민이라면 전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치판이 개판이 될 것이고, 정치판이 개판이 되면 사회도 개판이 된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③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체제이다.
→ 실질적으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는 절대 불가능하다. 가능할지라도 전체주의처럼 단합심이 강하거나 전체가 하나라고 불릴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민주정치는 말로만 '소수'가 지배한다. 실질적으로는 '다수'가 지배한다. 그 '다수'는 바로 의회이다. 의회는 정해진 기간동안 국민들에게서 전반적인 결정권을 넘겨 받게 된다. 이 경우 주권자는 민중이 아니라 의회다. 즉 현대 민주주의는 소수 지배라는 면에서 고대와는 전혀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 조차 모든 국민이 나라를 지배한 적은 없었다. 아테네에서는 단지 자유 시민들만 참정권을 행사했을 뿐 여자와 노예, 그리고 이방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국민의 6분의 5가 행정과 공개 의결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참여한 정치라기보다는 소수만이 참여한 정치였던 셈이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는 현재 전 세계 중 단 한 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스위스 아펜첼 인너호덴 주의 시민들은 아직도 법률과 세부 조항을 결정할 때 (아펜첼에 있는 지방 자치 광장에서) 집회를 가진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처럼 수천만 명이나 되는 국가에서는 실현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아펜첼 인너호덴 주는 주민 수가 그리스 도시 국가인 폴리스와 비슷하게 2만 1000명이므로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이다. 히틀러, 즉 나치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한계점을 없애기 위해서 각자의 역할, 권력을 나눠 가졌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즉 권력, 역할에 따라 책임도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 책임이 따르므로 더 열심히 할 것이다.
④ 국민을 위해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
→ 법률을 자신의 규칙으로 삼고 있는 정부는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다. 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제한의 필요성을 인정하나, 가능한 한 그 규칙들이 자진해서 부여된 것이거나 또는 적어도 국민의 의자나 동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자신에게 스스로 규칙을 부여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규칙이 부여될지라도 우리가 그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너 스스로 그것을 행하라"는 이론이며, 이는 다시 말해 "너 스스로 그것을 후회하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민주주의도 어차피 '형식적'인 민주주의일 뿐입니다. 독재와 다를바 없다는 것이지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개구쟁이님. 지금의 보편화된 민주주의를 가지고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치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제3세계나 개도국에서나 발생했던 독재군부 형태의 선거체제를 두고 주로 일컫는 말입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이다라는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죠. 아예 국회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시지 그러십니까.ㅋ 조금 웃기네요. 시대가 진화하고 민주주의 가치가 보편화될수록 형식적에서 실질적 민주주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서 민주주의가 형식적이라니요.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고서야 그러한 판단이 나올 수가 없겠죠. 그래서 히틀러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 아닌지 궁금하네요.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독재나 다를바가 없다라...하하..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국제 유대인들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 같군요.

행복나눔이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
개구쟁이님은 분명히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하셨습니다.
.
""히틀러와 나치당 간부들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 국민들도 마찬가지였구요.""
.
이건 독일 국민들이 독재를 지지했다는 말과 분명히 모순됩니다.
물론 독재를 지지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독재를 지지하는 것과 전쟁을 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한 미국 언론인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Lothrop Stoddard 미국 언론인
“독일인들은 이 전쟁을 혐오한다. 이런 인상은 제 3제국에 머무는 동안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얘기는 한결 같았다. 전쟁에 대하여 내가 접한 베를린 시민들의 생각은 라인란트에 이르는 중서부 독일과 북해연안의 도시들, 그리고 남쪽으로는 비엔나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나치당원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이 전쟁을 혐오하는 감정은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그들 자신이 서방국가들과의,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싸움에 휘말려 있음을 발견한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독일인들이 느낀 감정은 대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 전쟁에 대한 철저한 혐오감과 이 전쟁이 전혀 필요가 없는, 매우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이 전쟁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만났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전쟁을 비극적인 실책으로 낙인을 찍었고 일부는 그들 정부의 섣부른 대응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좀더 능숙한 외교로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독일이 성취하려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비록 그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히틀러도 그에게 열려 있었던 유일한 길을 선택한 것이며, 결국에는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했던 열렬한 나치당원들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이 전쟁에 대한 침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한창 새 나라를 만드는 일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 때문에 우리가 구상했던 계획들을 모두 옆으로 밀쳐두고 저 빌어먹을 영국놈들과 싸우러 가게 되었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독일인들의 지금 심정은 이제 막 포커게임에서 큰 돈을 따기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들어와 테이블을 겆어차버리는 일을 당한 사람의 그것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Lothrop Stoddard, Into the Darkness, 1939)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리고 대중독재라는 단어와 개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존재했었기에 생겨난 것이지요. 1차대전까지만해도 독일은 '제국', 즉 독재였습니다. 그렇기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국가가 별로 와 닿지 않았지요. 투표 총선에서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개구쟁이님의 사실에 대한 말이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계신것 같습니다.
" 정부의 섣부른 대응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것은 곧 영국과 프랑스의 독일의 팽창정책에 대한 견제에 대응하였다는 것입니다.
히틀러 정부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이 글에서 정부의 섣부른 대응은 전쟁을 먼저 시작했다는 것 아닙니까?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실수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전범임을 자인하는 것 아님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결과가 어떻게 될 수 있는 거지요?
독일은 전쟁초기부터 미국과 연합국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을을 자인했는데도 전쟁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행동 아님니까?
자국의 인원까지 희생시켜가며 뻔히 결과가 보이는 전쟁을 하는 국가의 원수가 위대한 지도자로 불릴 수 있는지 의문이 가는군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히틀러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히틀러는 일찍이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 대한 친선정책을 펼쳤습니다. 방공협정은 괜히 한줄 아십니까? 영국과 서부 유럽으로부터 소련에 대한 공격을 했을 때, 배우를 안전하게 해놓고 일본과 동유럽국가들과 서로 소련을 공격하는 것이 히틀러의 목표였습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는 우리만이 제거할 수 있다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강력하게 정책을 폈습니다. 그에 비해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은 소련을 도와주었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히틀러가 평화협정은 괜히 제안한지 아시는군요. 처칠은 그 때마다 거절했으며, 민간인에 대한 폭격도 중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처칠이 거절했습니다. 처칠은 영국에서도 유명한 전쟁광입니다. 그래서 선거에서 떨어진 것이지요. 또한 지금의 독일인들의 제일 싫어하는 인물 투표에서 1위가 처칠이 나올정도로 처칠에 대한 반감이 심합니다. 히틀러는 서방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님께서는 전혀 그런 근거들을 무시하시면서 '히틀러는 전쟁을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를 전쟁을 원해서 몰아갔다.'라고 단정 지으시는 군요. 그런 증거도 없이 말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하.. 정말 어이가 없군요. 제가 여태까지 히틀러에 대한 책을 10권도 넘게 읽어보았지만 히틀러가 서방과의 전쟁을 원했다는 말이 나오는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님과 토론해봤자 결론이 나지를 않겠군요. 그냥 http://cafe.naver.com/nazzis - 이곳에서 히틀러에 대한 글들이나 읽어보십시오. 참고로 제가 운영하는 카페입니다. 한 번 글들을 쭉 읽어보시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는지 한 번 봅시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개구쟁이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그런데 그 읽는 책에 대한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어느쪽으로든 기울어 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중립을 지키려해도 중립을 지킬 수 없는게 인간이죠.
하물며 개구쟁이님이 읽으신 자서전 같은 경우는 중립은 커녕 단지 자신의 생각만 늘어놓은 것입니다.
개구쟁이님이야말로 자신의 생각대로 히틀러를 맞추려하지 마십시요,개구쟁이님께서 처음부터 독일은 연합군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이다고 말씀하셨지요?
생각해보십시요.
히틀러는 세계정복의 야욕을 숨기지 않고 연설에서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강한 독일 ,세계는 위대한 독일인에게 우리에 가두어두었다고 하며 우리에서 나와 독일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실현할 힘이 아직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를 지배한다면 그들의 광대한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치려면 영국군을 함께 상대하고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일 염려가 있으니 독일은 고립된 소련을 공격하는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한번에 두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인정하시죠?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요.
아무리 독일이 영국을 치지 않을것이라고 가정해도 연설에서 그렇게 강한 독일을 연설하는데 주위국가들이 경계하지 않겠습니까?
소련이 붕괴되면 그다음은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 안하겠습니까?
당연히 그 협정 거부할 수 밖에 없죠. 아무리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자신보다 강한 힘을 가진 나라는 잠재적인 위협요소입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그 평화협정이 정말 영속적인 평화협정이라는 것을 어느것이 보장해줄 수 있죠?
히틀러가 보장해줄까요? 히틀러가 보장해준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의 독일이 보장해 줄까요?
영국의 행동은 당연합니다.
독일의 입장에서 생각하신다면 그만큼 타국의 입장도 생각해야죠 그리고 발상자체부터 독일의 자유주의 시각으로만 보십니다.
현실주의 자유주의 의 거대한 두 시각조차 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알수없는 위협은 있다고 가정하는 국제관게에서는 현실주의 관점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아무리 과정이 좋았다고 해도 정치란 것은 결과의 비중이 더 중요합니다.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과란 것에 책임을 져야한다 이 말이죠 히틀러가 아무리 좋은 의도와 과정을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독일 국민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습니까?
그 예로 지금까지도 독일은 유럽사회의 뜨거운 감자이며 아직도 유럽사회전체에서 운영기금을 가장 많이 내고 있고 독일의 국력이 세계에 가지는 힘에 비해 그 만큼의 주장을 스스로 자제합니다.
UN이사국으로 선출되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예입니다.
히틀러가 좋다 훌륭하다라는 것은 단지 님의 기준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이고 정치적으로 봤을 때 그는 최악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렇다고 히틀러의 모든것이 최악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시각에 맡겨두죠 처음부터 히틀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개구쟁이님의 히틀러예찬적인 것에 이의를 달았던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해두죠 한가지 시각으로는 절대 진실의 근처에도 가실 수 없을 겁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제가 히틀러에 대해서 모르니까 지식이 개구쟁이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해 답답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솔직히 제가 개구쟁이님보다 히틀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만으로는 그 당시의 국제흐름을 읽으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자서전식의 책이 진실만을 말한다고도 말 할 수 없구요.
개구쟁이님이 말하신 승자의 역사처럼요
패자도 자신의 패배를 여러가지 시각으로 방어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학이 병자호란의 패배를 승리로 많이 바꾸어 썼던 것 처럼요.
책을 읽으신 만큼 많은걸 종합해 보시기 바랍니다.
머 결국 100%는 알수 없고 확신할 만한 진실도 잘 나오지 않을 겁니다.
우리에게 정보는 한정적이고 지금은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까요.
하지만 진실에 근접할 순 있을겁니다.수고하십시요

휘파람님의 댓글
휘파람 작성일
히틀러가 비난받는 이유를 알수 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칭찬받는 이유도 그렇구요
한 시대를 풍미한 훌륭한 리더였던것은 사실입니다.
전쟁하는 군인은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전쟁통에 군인이 성인군자노릇을 한다면 고문관(?)이겠지요
히틀러가 그의 행적에 비해 비난을 받는 것은
첫째로 독일이 결국은 패배를 했고
둘째로 한국인은 미국인의 시각으로 세계문제를 바라보도록 길들여 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회적으로 한 인간이 가장 불행한 단계가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을 망각하고 힘을 가진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개구장이님은 아마 이런 부분이 안타까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위해
히틀러에 대한 글을 올리 신 것 같습니다.
개구장이님이 히틀러 찬양자 같진 않네요^^

행복나눔이님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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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님은 논점을 잘 못 이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성인군자가 될 수 없는 건 당연하죠.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제가 얘기 하는 건 전쟁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고,
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말하는 것 입니다.
성인군자가 전쟁일으키는 거 본적 있나요?
지금 휘파람님의 발상대로라면 한 국가가 세계 3차대전을 일으키고 나서
다른 나라들을 다 멸망시키고 다른 나라의 국토까지 정복해도,
그렇게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공산국가로 전 세계를 지배해도
"위대한 지도자다, 훌룡한 리더다 " 라고 칭해야 한다는 건데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요? " 전 세계의 공산화"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치가 떨리는데...
독재는 공산국가의 상징이죠.
근데 공산국가의 말로가 어떤 건지 아십니까??
북한처럼 경제적으로 고립되서 가난에 찌들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북한은 같은 동족이라고 남한이 도와줘서 잘 버티고 있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은 고립된 상태로 경제성장이 거의 정지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국가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지금은 테러집단들이 모여사는 아지트같은 곳이 되었죠.
과거 전쟁과 테러를 주도했던 공산국가들이 걸어가고 있는 지금 현실의 모습입니다.
공산국가와 민주국가 중에 어느 국가가 우리에 더 이로운지 지금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엄마안녕님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Re》행복나눔이 님
행복나눔이님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등의 정체에 대한 개념에 약간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란 것을 아셔야 하는데 민주주의론 강의 듣는 것도 아니고 하니 민주주의의 핵심만 말하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잣대일 뿐입니다. 얼마나 민중들의 의견이 평등하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즉 평등을 전제로 하고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정체입니다.
그럼 목적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설명하자면,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현하는 정체이자 민주주의의 종착점이고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란 종착점에 가기위해서 거쳐가는 곳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공산주의는 인간이 전쟁을 일으킬만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모든게 평등하고 모두가 무소유이자 공유인데 전쟁의 요소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지요.
"공산국가와 민주국가 중에 어느 국가가 우리에 더 이로운지 지금 현실을제대로 바라보고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 이 말씀을 하신것 보니 민주주의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러니 말씀드립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지금의 정체는 만능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 인간에게 한정적으로 가장 나은 그나마 가장 완만하고 원만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체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쩌다 자유라는 시장경제와 궁합이 잘 맞아 발전했습니다만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 위기를 넘긴 것이 공산주의 요소를 받아들인 수정자본주의고 지금 이 3가지 요소가 조합되어 그나마 지금의 원만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란 한가지 요소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나눔이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엄마안녕님은 '공산국가 = 독재국가' 라는 논리를 부정하시는 건가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그런 논리도 있있나요?
새롭군요. 전 지금 정치외교전공이지만 공산국가=독재국가라는 논리는 물론 그 비슷한 어떠한 것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 독재라는 논리를 깨주는 실례의 에도 하나 드리자면 고등학교 윤리책인가 중학교 윤리책이었던가 이스라엘의 카부츠와 모사브를 예로 들 수 있지요.

행복나눔이님의 댓글의 댓글
행복나눔이 작성일그 예를 좀더 자세히 들어주실 수 있나요?

엄마안녕님의 댓글의 댓글
엄마안녕 작성일
이스라엘의 카부츠나 모사브에 대하여 자세하게 공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윤리책에서 본 것이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 둘의 핵심 단어는 공유라는 것입니다.
니것 내것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것이죠.
개인의 소유가 없이 의식주를 해마다 돌아가며 바꾸고 교육도 여타의 추가적인 교육없이 교육하나로 통일하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예를 들 것도 없이 사회주의혁명을 이끈 칼 마르크스의 저서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읽어 보시면 사회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실겁니다.
나눔이님이 예로 드신 과거 전쟁과 테러를 주도했던 공산국가들은 모두가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이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