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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나치가 유대인을 600만명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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셤기간도 끝났으니 활동 재개 합니다 ^^
우리는 여태까지 나치에 의해 600만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고 알고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들이 진실일까??
나는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600만명이 학살당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 근거와 증거들을 제시하겠다.
2차대전 당시 유대인 박해및 학살의 진상
첫째 - 1차대전직후까지 독일은 유대인에 대해 관대했다
유태인 박해는 다른 유럽국가들이 심했으며 독일은 오히려 관대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태인들이 2차대전 전에는 독일에 가장 많이 거주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계 유태인 금융제벌인 막스바르부르크는 히틀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걸로 유명합니다
둘째 - 독일은 유태인들에 대해 차별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독일 유태인들은 다른 유럽국에 비해 출세나 사업을 하기 쉬웠고 이들은 학계, 법조계, 의학계, 금융계, 언론계등 독일사회 전분야를 장악할수 있었지만 유태인들은 독일사회와 화합하려 하지 않았고 나중에 독일 국민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원인이된다(1992년 LA폭동때 빈민폭도들이 자수성가한 한인교포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약탈한것과, 인도네시아 폭동때 짱골라교포들이 원주민들에게 당한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 - 독일은 유태인의 독립국가 형성에 신경을 썼다
1933~1941년 까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독일의 밀텐슈타인이 유대인이주를 하인리히 히믈러 SS사령관은 시온주의자의 대아랍 지하군사 조직인 '하가나'의 활동을 도왔다), 1942년 요제프 괴밸스의 본격적인 유태인박해 주장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유태인 학살 보다는 그들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으로 보내 그들만의 국가를 형성시키고 나중에 독일의 우방으로 삶으려 했다. 그리고 미국에 제안가지 했다.
(그러나 국제 유대인 협회의 강력한 압력으로 미국의 루즈벨트는 거부하게 된다..)
넷째 - 독일의 등뒤에 칼을 꽃은 유태인
독일이 친영국 성향의 유태인들을 국외로 추방하려하자 당시 독일의 경제를 잡고 있던 유태인들은 독일을 굴복시키기위해 독일의 수출을 분쇄시키고 전세계적인 독일상품 불매운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활동을 신성한 전쟁이라고 하면서 세계 유태인경제 연합회 회장인 운터마이어가 앞장을 선다 뿐만아니라 전쟁중에 일부 유태인이 연합군과 결탁하여 연합군의 폭격을 유도하는 신호등을 장착하는 등의 밀정행위를 하자 히틀러는 모든 유태인을 소용소에 강금 시킨다
이쯤되면 유대인의 행위는 국가 반역죄에 해당되며 국가반역죄는 어느나라에서나 사형에 해당 됩니다
다섯째 - 그러나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만다.
시온의 칙훈서(유태인의 세계경영지침서)가 발견되어 알려지고, 공산당활동에 유태인들의 간접협조한 혐의와, 1936년 프랑스주체 독일 외교관을 암살하자 반유대감정으로 독일이 들끓기 시작했고 크리스탈학살 사건으로 유태인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더이상의 피해를 막기위해 유태인이 학살당하지 않도록 2만명의 유태인을 강제로 수용소에서 수용하게 된다
좀더 덧붙여서 말하자면 독일을 패하게 만든 세계 1차대전의 배후에는 바질 자하로프라는 유대인 전쟁무기상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영국의 군수제벌인 빅커스사의 영업이사로써 친독적인 그리스 국왕을 추방하여 세계대전의 장기화를 획책했다고 합니다
특히 독일의 군사기밀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으로 빼돌린 사실 하나 만으로도 독일이 유대인을 증오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군이 사용한 수류탄은 독일의 기술로 만들어진 수류탄으로써 이 성능좋은 독일제 수류탄이 독일군을 죽이는 촌극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여섯째 - 유태인 600만 학살은 조작 확대된 것이다.
실제로는 60만정도이며 그것도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과 전염병(더이상의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시체들을 소각하게 된다)으로 사망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25(7.6평)평방미터 되는 곳에 7~800명을 집어넣고 독가스로 죽였다는데, 실제론 그런 계산이 안나옴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전시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소각로는 1946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탈린의 소련군 또한 폴란드 유태인을 많이 죽였으며 나중에 이것마저 독일의 만행으로 뒤집어 쓰게 된다
일곱째 - 나치 독일에는 과연 살인공장이 활성화 되있었을까??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간수들의 증언은 대부분 살인공장이 그정도로 활성화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덟째 - 과연 나치의 독가스실은 사용이 되었을까??
독가스로 사용된 체클론 B는 실제로 투여 이후 독이 빠지고 중화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가스실은 1946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아홉째 - 식량도 주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식량보다 비싼 연료를 공급해 화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이 발지 전투나 부다베스트 포위전 같은 막판 뒤집기 작전에서 연료 부족으로 작전이 실패하였다..
나치가 식량을 유대인에게 안줬다면, 왜 식량보다 비싸고 그 당시 전쟁에 쓰기도 부족한 연료를 왜 유대인의
시체를 태우는데 사용했을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600만이라고 과장된걸 그대로 밀여붙이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겠지요.
실제로 유대인 대학살이 과장되었다는 건 독일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서 쏟아지는 말이니까.. 희생자 수
기존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사람은 약 400만명이며 이 중에서 약 250만명이 유대인이라고 알려져왔다. 처음에 이 수용소를 해방한 옛 소련군의 발표였다. 그러나 이 숫자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과장되고 꾸며낸 얘기가 많다"는 제목으로 씌여진 뉴스위크지 1995년 1월 18일 자의 기사[1] 에 의하면,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110만 ~ 150만명으로 추산했으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유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몇 명이나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유태인 외에 나머지 희생자들은 폴란드 정치범, 옛 소련군 포로(주로 정치장교), 집시 등이었다. 이어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는 유태인 희생자 수를 100만명으로 쓰고 있다.
195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1000만명
196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800만명
197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700만명
196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600만명
197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500만명
198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450만명
199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400만명
2000년 대 유대인의 주장과 증언 - 100만명
이걸 봅시다.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던 숫자가
400만에서 110-150만으로 고쳐졌습니다.
그뿐만 아니죠. 그중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정확히 알수가 없지요.
기존에서는 유대인들이 250만이 죽었는데 100만명으로 고쳐졌지요.
결국 600만에서 150만을 뺍시다. 그러면 450만명으로 줄어들겠지요?
그리고 아우슈비츠 외 다른 유대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과장된것은 100%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전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희생자를 800만으로 주장했다가 800만은 무리이다 싶어서 600만으로 수정했지요.
이제는 600만명에서 450만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결정적 증거..
다음 소개할 글은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이라는 사람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공개편지이다.
Name 레옹 디그렐
Subject 교황 성하께 삼가 드리는 편지
교황 성하께 삼가 드리는 편지
[이리유카바 최의 레옹 디그렐 소개]
다음 소개할 글은 레옹 디그렐(Leon Degrelle)이라는 사람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공개편지이다.
1906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으며, 철학자, 작가, 기자, 정치인, 군인이었다. 디그렐은 조국 벨기에와 유럽 기독교의 악마화를 막기 위하여 싸웠으며, 알려지지 않은 20세기의 비사를 많이 쓴 사람이다.
레옹 디그렐은 1944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93년 87세로 눈을 감았다. 많은 책을 쓰기도 했지만 청중을 도취하게 만드는 명연설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조국의 현실(Le Pays reel)>이란 자신의 신문을 가지고 있었다.
29살의 젊은 나이로 카톨릭교 렉스운동(카톨릭 사상을 기본으로 한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사상. 국민이 단결하고 정부가 사회정의 편에 서서 산업제도와 정치를 개혁하자고 주창하는 사상으로서, 디그렐은 이 사상을 창시하고 카톨릭교 렉스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을 일으켜 친파시즘의 노선을 밟았다)에 가담하여, 국가는 단합되고 사리에 맞는 사회주의 정책을 펴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극단적인 정견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36년 처음으로 제도 정치에 참여한 선거에서 디그렐은 29살의 젊은 나이에 벨기에 사상 최고의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의 당은 21개의 의석을 차지하여 11.5퍼센트의 국회의석을 차지하였다.
그는 유럽이 공동으로 단합하여 공산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히틀러의 공감을 얻었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발룬(Walloons)이라는 의용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후에 발로니아 SS 28사단(28th SS Division Wallonia)이라는 독일 정예사단으로 바뀌었으며, 디그렐은 그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나중에 철십자 기사훈장을 받은 유일한 비독일계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 능력도 뛰어나 미 육군의 존 빈슨 준장은 미 육군성의 잡지에 쓴 글에서 디그렐의 <전술학>을 “전쟁의 예술로서, 군인은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노르웨이 근처에서 벌어진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단 병력 2,500명을 모두 잃고, 그를 비롯하여 3명만 살아남았다.
그는 경비행기로 가까스로 탈출하여 스페인으로 넘어가 정치 망명허가를 받은 뒤에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고국 벨기에에서 이미 1944년에 ‘부재자 사형 선고’를 언도받았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1979년 5월 교황 바오로 2세에게 보낸 공개편지인데, 바티칸의 교황이 이 편지를 받았다는 수락 번호는 ‘951’이며, 교황의 서명 위에는 ‘CITTA DEL VATICANO P II 26.5.79'라고 씌어 있다.
이 편지는 1979년 6월 나치 독일이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대량 학살했다고 알려진 아우슈비츠(폴란드의 남부에 있는 오슈비엥침이라는 도시를 독일말로 아우슈비츠(Auschwitz)라고 부르며, 2차 세계대전중 유대인들을 감금하고 독가스로 대량 학살했다는 수용소가 이곳에 있어 보통 ‘아우슈비츠’라고 하면 그 수용소를 생각하게 된다.) 수용소에 교황이 찾아가, 폴란드의 전체 주교들과 함께 직접 미사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나치의 6백만 유대인 학살설’이 조작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야합하고 동조하는 교황의 처사를 탄원하는 글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편지는 벨기에 당국이 형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내용의 공개가 금지되어 있다.
[레옹 디그렐씨의 요한바오로 2세에게 보내는 편지]
제목 : 교황 성하, 아우슈비츠에 가신다고요?
1979년 5월 20일 망명지에서
바티칸 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
성하(聖下)께 삼가 드립니다.
저는 레옹 디그렐이라고 하는 사람이여,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벨기에에서 렉스운동의 지도자였습니다. 세계대전 중에는 의용군 사령관으로서 독일의 28사단과 함께 동부전선에서 싸운 사람입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누가 종용해서가 아니라는 지난 사실을 밝히며, 저는 성하와 마찬가지로 카톨릭 신자이고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형제로서 이러한 글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저는 성하께서 1979년 6월 2일부터 12일까지 폴란드를 방문하셔서 강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성찬 미사를 드리신다 하기에 염려되는 점이 있어 이 글을 드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은 이가 누구였든 또는 어디서 죽었든 간에, 불에 그을린 자국도 아직 없는 새 화장로 앞에서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당신도 인간이기에 교황으로서의 일거수일동작에서 폴란드인이라는 사실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당신은 젊은 시절에 젊은 혈기로 운동에 참여한 애국자입니다.
당신에게 그때의 혈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은 교황이 되었으니 역사 속에서 아직도 분명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보기를 들어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 악행에 대하여 누가, 어떠한 책임이 있으며, 그 주모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 당시 누구라도 당신네 폴란드 총리였던 베크(Beck) 대령이 사리에 어긋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1939년에 그는 맡은 바 일을 과연 양식 있고 성실하게 처리했습니까? 그는 그때 독일 정부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분명한 기회를 거만한 태도로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후에는 또 어떻게 했습니까?
전쟁의 내용이 정말 보도된 그대로였습니까? 실제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양쪽 다 범죄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들이 언제나 객관적으로 반영되었습니까? 혹시 적국의 문서를 거짓꾸미어 발표하고, 선전 목적 때문에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일부러 나쁘게 발표하지는 않았습니까? 상대가 적이라고 해서, 없는 사실을 뒤집어씌운 허튼소리를 확인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인 양 행동한 일은 없습니까?
교회는 항상 누구보다도 사실을 잘 알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지난 2천 년동안 다칠까 봐 늘 조심하고 과감한 일을 피하는 안일주의로 일관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풍파가 지나고 파도가 가라앉고 찢어질 것은 다 찢어진 다음에, 그리고 모든 것이 알려진 다음에야 증거를 수집하여 판단을 내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교회가 2차 세계대전 도중에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는 혐의를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치광이 놀음에 끼지 않으려고, 거슬러 올라가는 쪽으로 노를 잡았던 것 아닙니까?
성하께서 당신의 고향에, 특히 아우슈비츠에 가시면 아마도 과거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성하께서는 정말 기도만 하러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성하가 그곳에 가셨다는 사실, 그리고 거시서 성하가 기도를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가 부여될 것이며, 사악한 선전광들의 연막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성하의 등뒤에서 미움에 가득찬 악선전을 더욱 열나게 해댈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과거 25년간 아우슈비츠 문제에 대해 악독한 마음으로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예! ‘거짓말’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갇힌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슈비츠에서 무더기로 학살했다는 전설적인 그 이야기, 헛소리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1945년부터 이 전설은 수천 가지의 책에 씌였고, 온 세계가 이것을 믿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은 말세를 연상시키는 총천연색 영화를 만들어 사실을 조작할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산술이나 상식에 맞지도 않는 말을 믿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성하
저는 성하께서 2차 세계대전 중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운동에 참여하여 전투도 하셨고, 심지어는 잠시 아우슈비츠에 잡혀가 계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하께서도 그 독가스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이 되지 않았습니까?
성하께서는 바로 그 안에 갇혀 있었던 증인으로서, 그들이 독가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성하께서는 속세의 선전광들이 이 엄청난 학살사건을 조작해 냈다는 것을 알면서도 쳐다만 보고 계시는 가장 중요한 증인이 아닙니까?
- 계속 -
댓글목록

현자가되고싶은소년님의 댓글
현자가되고싶은소년 작성일
.... 혹시 쥐라는 책을 보셧는지요? 그곳에는 주인공의 아버지 경험담을 통해서 사실을 드러내고있습니다.
물론 저도 600만명이라는 과장된 숫자는 믿지는 않지만 중요한것은 분명 독일이 유대인을 살해했다는 점이고
과장이 되든 안되는 쟁점을 놓치시고 있는건 아닌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제가 알리고 싶은 것은.. 나치만 유대인 학살했다고 무조건 나치만 몰아 넣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연합국 모든 국가들도 유대인들을, 아니 그 외의 죄없는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했다는 것 입니다.
그 것을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들이 승전국이라고.. 그들의 죄는 지평선 저너머로 사라지고..
나치의 죄들은 한곳에 머물어 계속 후대에 전해져 한나라만 욕먹는 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시간에도 중동에서는 죄 없는 팔레스타인 무고한 시민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굶어 죽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제가 중간고사 끝난 뒤.. 2번째 사회시간이 됬습니다.
그 날 선생님께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아우슈비츠를 보여주시더군요.
인터넷으로 카페를 뒤지시면서 나치의 만행을 말씀하시더군요..
나치가 죄없는 유대인들을 학살했다고..
사회시간 배울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정말 진실을 말하고 싶어서
답답하고 울분이 터져 눈물까지 나려고 했습니다.
그러한 일로 하여금 나치가 우리들 또래에게 악영향을 준 이미지로 각인 되어 평생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면서 거짓된 내용들을 머리 속에 담고 살아간다는게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현자가되고싶은소년님의 댓글의 댓글
현자가되고싶은소년 작성일
개구쟁이소년님 어이가 없네요. 전쟁이 터지면 서로 죽이고 죽이는건 당연한건데 어찌 그러십니까? 물론 연합국도 유대인을 죽이긴 했지만
중요한건 나치가 더 많은 수의 유대인을 죽였다... 그뿐입니다.
그리고 주장을 펼치시려면 책을 한번더 펼치시는게 어떠한지요?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개구장이님...
여기서,
인터넷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나이를 따져서도, 학벌을 따져서도, 성별을 따져서도....
그런 것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짓밟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고
아니, 제가 주장했던 이야기입니다만....
제발, 이곳에는 학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님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보다도 더 많은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조금 알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세상의 진리인양 말씀을 하시면 곤란합니다.
주장을 하기 전에, 먼저 공부를 더 하고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나이나 학력에 관계없이, 얼마든지 전개할 자격이 있지만
특정 사실이나, 지식에 대해 늘어놓는 것은
아직 중학생 수준으로서는 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각계 전문가도 계십니다.
일반적인 역사의 사실을 뒤집어 엎고 싶다면
지금까지 알려져있는 사실의 증거를 뒤집어 엎을 만한 증거를 내세우시구요,
그런 증거가 있다면, 여기에 제시하지 마시고
학계에 제시하셔서 그 증거가 사실임을 먼저 인정받고 오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음모설에 불과합니다.
제발 일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 와서,
마치 그것만이 진리인양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온 증거와 증인들은 다 거짓말이라는 얘깁니까?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그렇다면 윗분들께 한말씀만 드리겠습니다..
학계가 꼭 인정해야만.. 진정한 역사라는 말인가요??
만약.. 우리의 고조선, 고구려, 고구려사, 독도가.. 세계 법정에 심판으로 서게 되서
만약 우리가 증거 부족과 이론성이 덜 떨어져서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타국에게 심판 받게 하여
우리가 역사를 잃는 다면.. 인정 해야 겠습니까??
우리가 베트남전에 가서 몇십만명을 학살하고 강간한 사실도..
일반적으로 증명도 안되고, 사람들이 모른다고 과연 그 사실들이 미래까지 계속 비밀로 유지 될까요?
세상에는 자꾸자꾸 숨기려해도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게 되있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전 외계인이나 나치에 대해서 토론을 주제로 하여 쓴 글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죠.
이 토론실 어떤 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세상에는 믿을 만한게 별로 없습니다.. 아직 학생이라서 세상을 잘 모르시는 군요..' 라구요.
과연 지금 우주 천체 과학에 대한 자료들을 NASA에게, 2차세계대전 학살을 유대인의 증언과 그 당시 연합군의 증언만으로 우리가 그 순간의 기록들을 그들에게 의존하며 떠맡겨야할까요??
진정한 역사는 인류 전체가 공동체가 되어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존중하며 이해하고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여야만 역사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도 지금 거의 아무도 모르고 있죠..
미국이란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와 희생이 있었는지를..
백인들 때문에 인디언들이 1000만명 가량 학살되었는데도 세계사에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은 것을 말입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네. 개구쟁이님...
흠.....이렇게 말씀을 드리지요.
예를 들어, 외계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않은 내용일지라 하더라도,
뭐 재미삼아, 나는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다, 어떻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치나 우리나라 역사와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그것이 그것을 겪은 민족이나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님의 물었지요?
학계가 꼭 인정해야만..진정한 역사라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학계가 인정한 역사가, 일단 정설로 인정하고 나서 토론에 임해야 합니다.
그것을 뒤집어 엎고 싶다면, 그에 대한 자료와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 자료와 증거는, 검증받는 자료 및 증거야 됩니다.
한두사람의 증언만 갖고는 그것을 검증받은 자료나 증거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님이 제시한 증인은 한두사람이지만,
이쪽이 제시하는 증인은 수백명 수천명입니다.
이렇다면 누구의 말이 옳다고 판단해야 겠습니까?
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실도 지금 거의 아무도 모르고 있죠..."라고.
그런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님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님이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은 모르는 세상의 숨겨진 진실이라 생각하십니까?
세상사람들은 님보다 못해서, 모두 속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믿을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구장이님...
님이 많이 아는 것 같이 느껴질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님이 공부한 기간이 단지 몇년에 불과하다면
다른 사람은 몇십년을 그것만 공부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님보다 모를 것이라는 생각은 일단 접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유대인이 600만 이상이 살해되었다는 것은 세계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유대인의 과장이란것이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도 유대인들이 600만이 살해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카톨릭이 나찌에 협력했고 그 증거자료를 말살하려다 망신당한 게 신문에도 나오더군요.
각기 다른 신문을 10부 정도 구입해서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한 글을 비교를 해보면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하는 기사도 엉망입니다. 심지어는 년도가 틀리게 나오기도 하고
기자가 소설을 써서 올린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그리고 그 기사로 인해 손해와 이익이 교차하는 세력이 있다면
진실의 왜곡은 더욱 심합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테레사 수녀의 진실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서양기자(아직 그분분은 번역중입니다)가 테레사에 대한 극찬을 한것이 발단되어
힌두교를 믿는 미개한 이교도땅에서 기사에 캐톨릭교와 개신교도인들을 흐믓하게 했고
신문들이나 언론들은 독자에게 호감을 주는 기사를 재생산해 내고....
그러나 의사들이 바라본 실상은 끔찍했지요.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유태인 학살인원수에 관련된 자료들에 대한 출처가 어딘가요?
테레사에 대해 극찬한 하나의 기사때문에, 결국 노벨상까지 받았다는 얘기인가요?
의사들이 바라본 실상이 어떻게 끔찍했다는 것인가요?
그 끔찍한 실상을 테레사수녀님이 만들었다는 얘기인가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약간 무모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독일에 문의해 보는 방법은 어떨까요?
한국에는 대사관과 문화원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어느정도 공식적이고 정확한
자료를 찾는 방법을 알 수 있을 지 모릅니다.
독일 문화원
http://www.goethe.de/ins/kr/seo/koindex.htm
독일 대사관
http://www.seoul.diplo.de/Vertretung/seoul/ko/Startseite.html
이스라엘 대사관
http://seoul.mfa.gov.il/mfm/web/main/missionhome.asp?MissionID=89&
이스라엘 문화원
http://www.iscc.co.kr/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전 개구쟁이님이 이 일을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수용소별로
아우슈비츠 - 약 1,100,000
트레블린카 - 약 700,000
베우제츠 - 약 434,500
소비부르 - 약 167,000
헤움노 - 약 152,000
마이타네크 - 약 78,000
마리 트로스테넷(..) - 78,000 이상
끔찍하군요
총계로 250만명 이상 정도 예상된다 합니다.
600만명은 과장인것 같습니다. 대사관의 대답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없었다고?
법정에 선 홀로코스트(원제 The Holocaust on Trial)
D.D. 거튼플랜 지음|그랜타북스|352쪽|9.99파운드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입력 : 2007.09.21 22:50
2007년 4월 19일 유럽 의회는 ‘제노사이드(genocide·인종학살), 반인륜적 범죄, 전쟁범죄를 공공연하게 용서 또는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결의(Framework Decision on Racism and Xenophobia)를 채택했다. 포괄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 결의안이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영국의 재야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이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된 사건이 이 결의안 채택의 배경이었다. 어빙은 롬멜과 괴벨스 등의 전기를 쓴 전기 작가이자 2차대전에 대한 대중적인 저작으로 유명한 역사가였다. 1970년대까지의 어빙은 비교적 괜찮은 역사가였다는 것이 독일사 전공자들의 중평이다.
1977년 출간된 ‘히틀러의 전쟁’이라는 저서에서 어빙은 한 사람의 미치광이가 아닌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골드하겐의 논조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어빙의 주장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캐나다에서 열린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에른스트 쥔델(Ernst Zuendel)의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면서부터였다.
▲ 2005년 5월, 나치에 희생된 유태인 600만 명을 기리는‘유럽 유태인 피살자 추모공원’이 독일 베를린에 문을 열었다. /AP
이 재판을 통해 어빙은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없었다는 쥔델의 주장에 설복되었다. 어빙의 새로운 주장의 핵심은 히틀러가 최종해결책을 알지 못했으며 아우슈비츠에는 가스실이 없었고 4년 동안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 전체보다 하룻밤 새 드레스덴에서 공습으로 죽은 자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홀로코스트 연구자 데보라 립슈타트가 1995년 영국에서 출간된 책에서 어빙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라고 규정하자, 어빙은 립슈타트와 펭귄 출판사를 명예훼손죄로 영국 법정에 고소했다. 아이히만 재판 이래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끈 이 재판에서 홀로코스트는 다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었다. 거튼플랜(Guttenplan) 이 쓴 이 책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어빙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어빙의 논지는 간단했다. 가스실 , 즉 홀로코스트 자체가 날조이기 때문에 자신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 해석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이 이상한 재판의 판사 찰스 그레이(Charles Gray)는 “판사가 역사가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법정에서 역사 이야기가 빠진 날은 하루도 없었다. 출간 첫 해 불과 2000여 권이 팔린 이 책이 불러일으킨 재판은 하루 소송비용만 1만 파운드에 달하는 비싼 재판이었다. 겨우 수천 권 팔린 책에 200만 파운드가 넘는 소송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펭귄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재판은 이겼지만 진 재판이었다.
다시 재판정으로 돌아가자. 영국의 명예훼손죄에 관한 법은 조금 이상하다.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임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원고가 아닌 피고에게 있는 것이다. 노회한 역사가인 어빙에 비해 데보라 립슈타트의 논변은 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변호인단은 나치즘에 대한 일급 역사가인 캠브리지 대학의 독일사 교수 리처드 에반즈(Richard Evans)에게 도움을 청했다.
에반즈는 두 명의 박사 과정 학생들을 고용해 어빙의 책을 샅샅이 읽고 자료를 검토하여, 어빙의 자료 왜곡과 해석의 오류를 남김없이 들추어낸다. 7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에서 에반즈는 어빙의 오류가 단순한 실수나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잘 계산된 의도적 실수이자 오류임을 명쾌하게 들추어냈다. 보고서는 어빙이 자신의 의도와 일치할 때는 히틀러 측근들의 증언이나 기록들을 보기 좋게 인용하다가도, 그렇지 않을 때는 아예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도에 맞게 자료를 왜곡했다는 점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에반즈는 검사보다 더 날카롭게 어빙을 추궁했다. 괴링이 1923년의 한 집회에서 눈을 부릅떴다는 어빙의 서술에 대해, 그것이 작가의 창작이라는 어빙의 대답을 받아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을 비롯한 거물 역사가들이 증인으로 동원된 너무도 역사적인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판사는 9명의 증인이 남긴 150만 단어의 증언들, 수천 페이지의 리포트와 수만 페이지의 도큐멘트를 읽어야만 했다.
팔자에도 없는 역사 공부를 호되게 해야만 했던 판사는 333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어빙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의도에 따라 역사적 증거들을 왜곡하고 조작했다고 지적하고 어빙에게 150만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불하라는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06년 오스트리아 당국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어빙을 체포하자, 데보라 립슈타트를 위시한 영미의 역사가들은 체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사적 진실은 법정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논쟁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 주말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역사가 대회’의 총회에서 유럽의회의 결의안에 대해 대회의 입장을 밝히자는 제안이 있었다. 미국 역사학회는 이에 대해 역사논쟁을 법리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 초안을 준비해서 발표했고, 영국의 입장도 이와 유사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역사학계의 공식 입장은 결의안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역사가 사법적 판결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나는 역사적 진실과 사법적 정의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탁월한 리포트인 이 책을 문득 다시 생각했다.
안그래도 이분들이 힘써 주시고 계시내요 -ㅅ-;;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홀로코스트 부인한 英 학자, 자국으로 추방
뉴시스 | 기사입력 2006-12-22 05:54
【빈=로이터/뉴시스】
오스트리아 법원으로부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이 집행유예로 석방 된 지 하루 만인 21일(현지시간) 자국으로 추방됐다.
경찰은 어빙이 이날 오후 4시15분(한국시간 22일 오전 1시15분) 오스트리아항공을 이용, 영국 런던의 히스로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런던에 안개가 짙게 깔린 관계로 예정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허버트 후터 빈 경찰 대변인은 어빙을 태운 비행기가 이날 오후 6시45분에 "무사히" 이륙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입국 경찰은 영국으로 추방된 어빙의 오스트리아 입국이 무기한 금지됐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지난 2월20일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다는 혐의로 어빙을 기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그는 지난 1989년 오스트리아의 한 강연에서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 이후 재판에 회부됐다.
송주영기자 songjy@newsis.com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완전 억지잖습니까..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홀로코스트의 많은 부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님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에 널려 있죠. 님은 그들이 모아놓은 자료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인 번역된 자료를 보고 계십니다. 정말 역사학자들의 공식홈페이지를 보면 놀라실 것입니다.
특히 아랍가면 님의 '동지'들을 많이 만나보실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보면 유대인에게 원수진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종교적인 면을 이용해 홀로코스트를 유대인들의 사기극이였다고 광고하고 있습니다.
뭐 홀로코스트 부정하는사람치고 다를바가 하나도 없죠.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한 징역은 유럽 웬만한 나라에서는 다 행해집니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저질럿다는 독일에서 가장 심하게 행해집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만큼 예민한 역사도 없으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조직적으로 일제시절의 친일파를 추모하는 단체가 생긴다면 정부에서 당연히 제재가 들어갑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볼때 친일파에 대한 제재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홀로코스트 부정에 대한 제재도 우리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고려한다면 투감이나 추방당하는 일은 이상할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역사책이 다시 써져야 할 판이구만요.....헐....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세상에 법원이 몇개인데 괴상한 케이스가 없겠습니까..
2천년의 족보가 있다는둥 예수의 후손들이라 주장하는 케이스도 있고, 심지어는 UFO에 대한 케이스 도 많이 있습니다.
개구장이님께서 말하시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600만이 아니라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부정은 여태까지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전쟁에는 항상 학살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 정당성이 있던 없던 그것은 전쟁의 모습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개구장이님의 글에서도 언급이 되었듯이 종교적인 책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반역자는 구족을 멸한 이유는 그 당시 사회가 혈족 사회이였기 때문입니다.
소수 유대인의 반독일운동이 전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학살로 이어지기 까지는
뿌리깊은 종교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미림님께선 아직도 종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시는군요.ㅎ.. 홀로코스트의 유대교의 책임은 부정할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유대교의 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어떻하다는 말을 할 처지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림님께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결론을 속단하시는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몇가지만 묻겠습니다.
유대인들은 누구에게나 타겟이였습니다. 뿌리깊은 종교간의 갈등이라 하셨는데요. 독일의 카톨릭과 유대교와의 종교가 뿌리깊었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때생긴 나치즘과 유대교와 갈등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히틀러에게는 군사 정부와 전쟁이 필요했고, 독일 국민들을 세뇌시킬 정도로 결합시켜야 했었죠.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방법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중 하나가 공동의 적입니다. 나쁘던 말건 한 종족을 악으로 지명한다면 그 악을 대항해 싸우려고 결합하는 국민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상황속에 돈많고 민족성과 종교성이 강한 유대인은 가장 센스있는 타겟이였습니다.
히틀러에게는 어차피 공동의 적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이 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과 나치인들과의 종교적인 갈등이 있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깊은 종교간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느 종교사이에 어떠한 갈등이 어떻게 발전되었다는 말입니까?
또 제가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어떤 종교인의 종교의 교리와 어긋나는 행동까지 종교의 책임은 아닙니다. 종교의 갈등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유대인들의 어떤 교리가 갈등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입니까?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반론하죠. '히틀러에게는 군사 정부와 전쟁이 필요했고' 그건 어느나라나 다 원했습니다. 프랑스도, 영국도 심지어 러시아도.. 국제전이 아니어서 우리가 관심이 없는 것 뿐이지 식민지나 자국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독일 국민들을 세뇌시킬 정도로' 지금의 미국은 옳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2차대전 직후 미국과 러시아들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영토를 점령하여 다시는 일으키지 못하게 나치에 대한 과장한 말까지 서슴치 않게 말했습니다. 그건 세뇌가 아니면 뭡니까? 정당한 겁니까? 그리고 유대인들의 자금은 베르사유 조약과 대공황에서 독일 국민들에게서 돈을 빌려주며 사치 생활을 했습니다. 독일인만 몇십만명 유대인들이 부려먹어서 죽었습니다. 독일만이 아니죠. 온 유럽 전체가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그리고 종교간의 갈등, 그럼 십자군 전쟁 원정군은 왜 욕하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성스러운 전쟁인가요? 성지를 탈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슬람인들을 공격하여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유대인들의 교리 - 오직 하나님만 믿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민족이고, 우리 민족만이 우수하고 지금까지 고통을 이겨 왔다..
이 자체가 민족 우월주의 아닌가요? 독일만 들먹거리고 유대인들은 돈많다고 들먹거리지 않는 건가요? 종교라서 성립이 안되나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3차세계대전의 국가로 참전하여 일본과 적이 된다면 아마 우리나라는 일본인을 수없이 죽이겠죠. 유럽 전체가 유대인들을 싫어한건 사실이었고, 학살한 건 독일 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같은 것은 우연히 독일인 것 뿐이죠.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반론이라니요... 위에있는 제글은 주장이 아니라 질문이니 대답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님이 ‘반론’ 이라 하신것은 제 질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간의 갈등, 그럼 십자군 전쟁 원정군은 왜 욕하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성스러운 전쟁인가요?‘
식의 질문은 제글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홀로코스트를 욕한적이 없고요 미국의 주장이 옳다고 쓴적도 없습니다. 세뇌가 좋다 나쁘다 한적도 없고요, 민족우월주위가 어쨋다 한적도 없습니다. 제글은 ‘질문’입니다. 질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라는 식의 말이 아니라면 반론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읽고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제 첫째 질문은 홀로코스트에 종교간의 갈등이 있었다면 어떤 종교간에 어떠한 갈등이 어떠한 식으로 발전되었냐는 것입니다.
둘째 질문은 유대인의 교리에 대한 것입니다. 원래 미림님께 물은 질문인데..
어쩃든. 오직 자기만이 신에게 선택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죽을만한 이유도 독일의 침략을 받을만한 이유도 되지 않습니다.
어떤 하나의 특정적인 교리가 유대인에게 우월성으로 남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을 허용해야만 전쟁에 교리의 책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로 타종교의 우상을 불태워라라는 교리가 있다면 책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어본 것이였습니다. 어떤 특정한 유대교의 교리가 독일인과의 갈등에 영향을 끼쳤냐고요.

개구쟁이님의 댓글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아.. 그렇군요 -ㅅ-;;; 죄송합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중국에도 유대인이 있었지만 기독교국가처럼 참혹하게 박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국인일 뿐이었지요.
학살은 유럽과 독일이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유대교를 비롯한 이교도에 대한 증오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래로 악령처럼 존재했었습니다.
유대인 학살에 종교적인 적개심이 존재했다는 것은 언급하기 꺼려하는 진실입니다.
그렇다고 언급해서 안되는 진실은 아닙니다.
1차 대전 패전 후의 독일인에게 미워 할 적이 없어 공공의 적으로 유대인을 지목했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
다. 독일인들을 패배의 굴욕을 안겨준 연합군에 대한 증오보다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에 우선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좋습니다. 그럼 공공의 적에대한 말은 님의 의견이 맞다고 일단 가정하고 묻겠습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을 기독교와 유대교와의 갈등이라고 하셨는데요,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시는 것입니까?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은 기독교의 탄생 이후로부터 2천년간 존재해왔습니다. 그 가운데서 특히 근대에 들어서는 두 종교의 전쟁이나 학살과 같은 폭력적인 갈등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님이 주장하시는 홀로코스트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님의 주장대로 종교의 갈등이 주된 원인이었다면, 전쟁의 발단과 두 종교(나치가 아닌,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과의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질문으로 그 상관관계에대해 묻고 있습니다. 그저 적개심이 있었으니까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적개심은 2천년동안 계속되어왔습니다.
둘째로 기독교의 어떤 교리가 그 상관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냐하는 것입니다. 저번에 말한대로 종교의 갈등이 사건이 전쟁의 발단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종교의 교리와는 다르게 종교'인'들의 잘못이었다면, 종교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파랑새님//
전쟁은 두 세력이 비슷하거나 약간 균형이 기울어졌을때 가능합니다. 일방이 우세를 점하고 다른쪽이 승복을 하면 대부분 주종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제거할 수 있는 상대로 번거러운 전쟁을 하지 는 않지요.
원하는 정확한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이야기하는 것보단 다른 시각에서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참고하시는 게 더 도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13000/0000012210.jsp
필요하시다면 다른 싸이트의 글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http://www.voanews.com/korean/2007-09-16-voa9.cfm
ghetto는 시내 빈민가, slum을 말하는데요. 원래는 인종적, 종교적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말하지만, 요즘은 그냥 도시의 가난한 동네를 의미하는 말로 쓰입니다. 이 말은 중세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게토’에서 나왔는데요. 베네치아의 ‘게토’는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각 지역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도와 교류를 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유대인 거주지역을 따로 설정해 뒀었는데요. 이 곳을 게토라고 불렀습니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재미있는 역사군요. 유대인과 기독교인과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과의 갈등이 있었다고 그 갈등이 홀로코스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갈등이 있었으니 갈등이 홀로코스트의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갈등이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면 그 사건과 계기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일수 있는 단서가 필요합니다.
단지 어떤 두 사람과의 사이에 임의의 갈등이 있었다고 그 임의의 갈등이 두사람의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되지 않는것처럼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이 있었다고 그것이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과의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되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이 많다는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를 단정해서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종교간의 갈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극히 일부의 자료입니다.
일부 발췌
유고연방 해체과정에서 보스니아 지역에 살던 세르비아계-크로아티아계-보스니악(무슬림)이 4년 가까이 서로 뒤엉켜 피를 흘렸던 보스니아 내전(1992-95년)은 인류 전쟁사에서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그 까닭은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라 일컬어지는 전쟁범죄 탓이다. 남한땅의 절반 크기로 인구는 400만명 남짓인 이곳 보스니아의 내전은 20세기 인류사의 잔인하고 수치스런 전쟁으로 기록된다. 인구의 40%가 피난을 떠나야 했고, 또한 40%의 집들이 불타거나 파괴됐다. 25만~30만명쯤의 시민들이 내전으로 죽었다지만 정확한 통계는 아무도 모른다.
http://blog.aladdin.co.kr/ttalgi21/1615488
http://www.gunis.co.kr/kguyk/post_277.html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물론 100% 종교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아닙니다. 하지만 종교가 들어가면 어떤 갈등도 치유할 수 없고
폭력은 극에 달해 버립니다. 종교의 속성입니다.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제가 질문한 홀로코스트와 종교갈등과의 상관관계는 말하시지 못하십니다. 교리와 그 상관관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가지가 명시되지 않는 이상 '홀로코스트와 종교간의 뿌리깊은 관계가 있었다' 라는 말은 단언에 불과합니다. 종교가 어떤 다른 전쟁을 벌였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사회현상은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종교갈등 = 홀로코스트가 아니란 말씀이지요?
당연히 아닙니다. 종교갈등은 항상 홀로코스트를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럼 근대사에서 역으로 홀로코스트에 종교갈등이 없는 경우를 찾아보면 결과는 어떨까요...
보스니아내전에도 유대인의 학살에도 종교갈등이 내재되어 있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그러한 논법은 도킨스가 말한 과학으로 지구를 돌고 있는 찻주전자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으니 지구주위에
찻주전자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네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종교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국가의 인구가 3/4가 전쟁으로 죽어야 했다면 충분히 홀로코스트라 부를 만 합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30년 전쟁(1618-1648)은 특히 무시무시하였다.
그 동안 독일의 인구는 약 4분의 3이 줄었다. ‘아우그스부르크’ 주민들은 80,000명에서 18,0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리고 ‘보헤미아’ 사람들은 4분의 1만이 생존하였다. ‘마그데부르크’라는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의 멸망에 대한 기
록은 그 전쟁의 잔인성을 잘 설명해준다. 독일 역사가 ‘프레데릭 쉴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렇게 하여 가공할 만한 장면이 시작되었으니 그 역사를 묘사할 언어가 없고, 그 사건을 기술할 필묵이 없다. 천
진한 유아도, 무력한 노인도, 젊음도, 성별도, 계급도, 아름다움도 정복자들의 분노를 진정시키지 못하였다. 남편들
의 품안에서 아내들이 능욕을 당하였고, 딸들은 부모들의 발 앞에서 능욕을 당하였다. 무방비한 여성들은 덕성과
생명이라는 이중의 희생을 당하였다.”
이러한 일은 종교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지금, 논쟁의 주제가 유태인 학살의 원인이 종교문제이냐, 아니냐...에 대한 것인가요?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종교문제보다는, 경제적인 문제가 일반적인 논리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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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저는 잘 모르겠으니, 제가 언급할 내용은 아닙니다만,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하군요.
다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레옹 디그렐의 편지 중에서
그렇기 때문에, 양측 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라는 문구가 상당히 거슬리네요.
그러면, 자신의 잘못이 정당화 되나요?
몇백만을 학살한 죄하고, 그 숫자를 부풀린 죄하고 같단 말인가요?
과거 나치간부였던 단 한사람의 편지가 "결정적 증거"라니요....?
과거 숫자가 부풀려졌을 것이라는 것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네요.
그러나 그것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는 증거는 아니지요.
지금의 100만이라는 숫자는 신빙성이 있나요?
유태인들이 주장하는 숫자이니 신뢰할 만한 숫자인가요?
밝혀진 것만 100만, 안밝혀진 것이 500만일 가능성은 없나요?
100만이든, 600만이든,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음모설이든,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레옹의 주장대로라면, 100만의 학살조차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잖습니까?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미림님 세상의 모든일은 얽혀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비판을 할 때에는 그 상관관계에 알맞는 비판을 해야 논리적인 비판입니다.
홀로코스트라는 큰 범죄에 대해서 아무런 관계성의 언급없이 한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논리적인 비판이 아닙니다.
종교에 대한 반감으로, 종교가 여태까지 전쟁을 벌여왔다고 모든 전쟁이 종교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책임이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관계성에 대한 언급이 없는 비판은 논리적이지가 않습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파랑새님
크게 잘못생각하신 겁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홀로토스트=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개입되지 않은 홀로코스트는
동양을 제외한 다른 문명권에서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류문명에서 발생한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말씀해 오세요.
저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보스니아 내전에서의 기독교인들의 이슬람교도의 학살은 예로 들었습니다.
그 외에 일어난 종교가 괸여하지 않은 홀로코스트의 사례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인류가 가진 잔인성에 의해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는지 아니면 인류의 잔인성과 종교가 유기적인 결합을 하여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는지 역사를 토해서 한 번 검증을 해보기로 하지요 ^^

각시탈님의 댓글
각시탈 작성일
내용이야 어떻든 망국의 한은 끝이 없습니다...강한자에게 짓밟힌 나약한 자들은 힘없이 당하더라도 할말은 못하죠...
이것이 망국의 서러움 아닐까요..태초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도 무수한 외침이 많았죠...비록 선조들의 한마음으로 뭉쳐서 외세를 몰아내긴 하엿지만 역사속에 사라져간 잊혀져간 내용이 많앗다고 봅니다.
삼국시대엔 당나라의 간섭, 고려시대엔 몽고의 침략및 약탈, 조선시대엔 왜란, 호란, 대한제국 시대엔 일제 강점기, 근세엔 6.25등등.. 무수히 많은 국민들이 고생을 하고 희생을 하였다고 봅니다....
망국의 한은 영혼도 편히 쉬지 못합니다....힘세고 강한 국방력과 한마음으로 뭉친 국민성을 주변국이 인지해야 함부로 넘보지 못합니다. 아마 2차 대전이후 망국의한으로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유대인들이 지금은 가장 강한 국가가 되어 잇지요....
아무도 그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않는게 현실입니다...유사시 모든 국민이 동원되는 강한 나라이지요...
우리가 배워야 할 점입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요.
가능성의 논의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하지만, 논리적이냐 아니냐를 자신의 사고방식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회학의 접근방식은, 매우 복합적이며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미림님 다른것들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둘 종교가 어떤 일을 해왔건간에 홀로코스트에대한 상관관계의 명시 없이는 논리적인 비판을 하지 못합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비교할것도 없습니다.
벌써 말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사람이 불량배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아무 증거도 없이 그사람에게 비난할수 없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관관계가 없으면 논리적인 비판도 없습니다.
이제야 홀로코스트를 대량학살의 의미와 맞추시려 하시는데요..
현재 홀로코스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의미합니다. 역사에 한사건밖에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역사상의 (더) 홀로코스트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
그리고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대량학살을 말한다 하더라도 상관관계의 언급이 있어야 합니다.
대량학살이 있을때마다 사람들은 숨을 쉬었습니다. 숨쉬는것이 대량학살과 관련이 있습니까?
대량학살이 있을때마다 남녀간의 차별이 있었습니다. 남녀간의 차별이 대량학살과 관련이 있습니까?
대량학살이 있을때마다 국적간의 차이와 인종간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대량학살과 관련이 있습니까?
종교가 관여되어있던것처럼, 숨쉬는것도 남녀간의 차별도 국적간의 차이도 대량학살에 개입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요?
개입이 된건만으로 비판할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논리적인 비판을 하시려면 그 상관관계를 명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불량배가 있고 그리고 그 손에는 피가 뚝뚝흐르는 칼이 쥐어져 있고 옆에는 칼에 찔린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상관관계가 있나요? 없나요?
파랑새님의 논리를 적용하면 전혀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토론이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 토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누가 더 억지를 잘 부리는지 누가 더 뻔뻔할 수 있고 무식할 수있는지 내기 하는 것 이외에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이건은 홀로코스트에 끼지 못하는 사소한 겁니다 파랑새님이 종교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까 하여 올립니다. kkk단의 활약상은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 1865년 창단된 KKK(Ku Klux Klan).
엉터리 그리스 문자(Ku Klux Klan)을 조합한 KKK. 백인 우월주의, 반카톨릭(이들은 독실한 개신교 집단이었음),
반유대교를 표방하는 테러집단이었다. "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불량배가 있고 그리고 그 손에는 피가 뚝뚝흐르는 칼이 쥐어져 있고 옆에는 칼에 찔린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상관관계가 있나요? 없나요?
---------------------------------------------
물론 상관관계는 찾아보기전까지는 없습니다.
제가 언제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습니까?
비판을 하기전에 그 상관관계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님에게 그 상관관계를 대보라는 것이였습니다.
중요한것은 그 상관관계를 찾는 것입니다.
불량배가 칼을 들고 있고 칼에 찔린사람이 누워있다고 해서 불량배가 그 사람을 찔렀다는 (칼과 칼자국의 모양의 일치라던가, 찌르는 모습을 레코딩한 비디오등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찾기 전까지는 비판을 할 수 없습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근데요... 자꾸 심통이 나려 합니다.
파랑새님은 홀로토스트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고 이글을 주장하나요. 아니면 이 홀로 생각하고 정의한
홀로코스트인가요?
글구요....
상관관계를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시는데 상관관계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사용을 하시나요?
아니면 혼자 생각하기에 "상관관계는 이럴때 사용하는 거야" 하고 정의하여 사용을 하시나요?
자꾸 이렇게 주장하시면 저를 고문하시는 겁니다.
토론에서 이견이 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실 수 도 있을 텐데 굳이 이렇게 고문을 하십니까?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홀로코스트의 원래 사전적인 정의는 대학살이였습니다.(거의 없어져 가긴 하지만 말이죠.. 요즘에는 holocaust 라고 말해도 다 유대인학살이라는 것으로 알아듣고 대부분의 사전에서 첫째 가장 중요한 뜻으로 유대인 학살이라고 나옵니다.)
(더 홀로코스트) 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홀로코스트도 유대인 학살입니다.
많은 한국사전도 홀로코스트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정의합니다.
그냥 평범한 대량학살은 한국이름도 있기에 구지 일반 대량학살을 혼동의 여지를 남겨가며 홀로코스트라 부르는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상관관계는요 correlation(두 방향 모두로 연관이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다시한번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칼에 찔려 죽어있다고 합시다. 그옆에 불량배가 칼을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불량배를 구속하거나 비난할수 없습니다. 비난을 하기전에, 그 불량배의 칼이 죽은 사람을 찔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종교와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관관계를 명시하지 않는다면 증거가 없이 '여태까지 나빴으니까' 라는 이유만으로 비논리적인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고문이라니요. 논리적인 관계가 모르신다면 모르신다고 말하시고 님의 주장은 님의 사견이라는것이라 말하시면 끝나는것 아닙니까? 홀로코스트와 종교와의 관계를 종교의 좋지않은 역사들로 메꾸려하시니 글이 길어지게 된 것입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그런 사전은 보지 마세요.
식품도 불량식품이란게 있습니다.
상관관계의 뇌이버 백과사전정의는
두 변량 사이에 한쪽이 증가하면 다른 쪽도 증가(또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을 때, 이 두 변량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키가 큰 사람은 작은 사람에 비하여 일반적으로 몸무게가 많다. 이와 같이 한쪽이 증가하면, 다른 쪽도 증가하는 관계를 양의 상관관계라고 한다. 또, 어떤 제품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그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듯이, 한쪽이 증가하면 다른 쪽은 감소하는 관계를 음의 상관관계라고 한다.
두 변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표로 나타낸 것을 상관표라 하며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상관도라고 한다. 상관도에서는 한쪽의 수값(키)을 가로축 위에, 다른 쪽의 수값(몸무게)을 세로축 위에 나타내고, 그 사람수에 해당하는 수만큼 점을 그려 넣는다. 점이 완전히 직선 주위에 몰리면, 거의 일차함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특히, 이와 같이 점들이 직선에 가깝게 분포되어 있을 때에는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또 두 변량 x, y 사이의 상관관계의 정도를 나타내는 수값을 상관계수라 한다.
그리고 사전에 뭐라 나와 있던
직접 상관관계 그래프를 한 번 사용해 보십시요.
인도네시아 이슬람과 가톨릭 간의 종교 분쟁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던 가톨릭 신도 3명이 총살형에 처해져습니다.
가톨릭 신도들이 항의에 나서 폭동이 벌어졌습니다.
이재홍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사형이 집행된 3명의 가톨릭 신도들에 대한 추도 미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00년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시 포소지방에서 70명이 숨진 이슬람 학교 습격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인도네시아는 98년부터 2002년까지 이슬람과 가톨릭간의 유혈 충돌로 2천 명이 숨졌습니다.
지난달 이들에 대한 사형 집행을 제고해 달라는 교황의 탄원도 총살형을 막지 못했습니다.
사형 집행 소식이 전해지자, 수 천명의 가톨릭 신도들이 거리로 나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슬람인의 상가를 습격하고 담당 검사를 공격했습니다.
감옥에 난입해 죄수 2백 명을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검사와 경찰 등 5명이 다쳤습니다.
유숩 칼라 부통령은 '사형 집행'은 법적인 문제라며 가톨릭 신도들의 자제를 호소했습니다.
[인터뷰:유숩 칼라, 인도네시아 부통령] "법적인 문제입니다. 종교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인권 운동가들은 이들이 주동자가 아니었으며 재판도 엉터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중형에 처한 이슬람 교도는 한 사람도 없다며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습니다.
인구 2억2천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85%가 이슬람 교도지만 종교 분쟁이 일어난 이 지역은 절반이 가톨릭 신도입니다.
YTN 이재홍입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상관관계는 중학교 3학년 과정에 나옵니다.
참고하세요.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중3때 놀아서...ㅋ장난이고, 내키지 않으시다면 '증거'로 대입하셔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네요.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상관관계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습니다.
사전도 여러가지 사전이 있고요.
제가말한 상관관계는 두방향(iff)으로 모두통하는 관계성을 말한 것입니다.
어떤 일을 논리적으로 비난하는데는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홀로코스트와 종교에 그러한 관계성이 있습니까?
수치적인 상관관계는 어떤 새로운 일에 대해 비난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10번 도둑질을 했다고 후에 그사람 곁에서 생기는 모든 도둑질을 아무근거없이 그사람탓이라 비난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파랑새님의 입장에서는 6000명이 학살 된 정도는 홀로코스트에 속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티클모아 태산이니 자료수집 겸해서 올립니다.
한겨레신문 출처이구요
나이지리아 종족.종교분쟁 사망자 6천명 넘어
나이지리아에서 국민투표에 의한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난 1999년 5월 이후 종족.종교 분쟁 과정에서 숨진 희생자
수가 6천명을 넘어섰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1억2천180만명)는 종족수가 250개에 달하는데다 종교도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나누어져 있어 크고 작은 종족간.종교간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집념이 강하신건지 종교에대한 반감이 강하신건지..
뭐 어쨋든 인정할것은 인정하고 끝낼것은 끝내죠.
제가 종교가 학살을 해왔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게 많은 종교의 이름으로 시작된 전쟁과 배타적인 교리에 의해 생겨진 전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뻔뻔스러우니까 말이죠.
하지만 님도 원제인 더 홀로코스트(나치인의 유태인 학살)과 종교와의 '(상관)관계'를 모르신다고 인정하시죠.
여태까지 더 홀로코스트와 종교와의 '(상관)관계'는 대지 못했으니, 종교와 더 홀로코스트와의 관련성에 대한 주장은 님의 사견이라는 것을 인정하시라는 말입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수치적인 상관관계는 어떤 새로운 일에 대해 비난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중학교 수학교육에서 상관관계 교육과정을 빼자는 말씀이군요.
통계를 배우는 목적은 대학가기 위해서가 아니고
미래예측을 하는 강력한 수단을 습득하기 위해서 입니다.
미래예측을 하는 방법은
점장이를 찾아가 점을 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
대선이 끝난 후 교육부 정책을 발표할 때 수학에서 통계대신
점치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요구해야 겠군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님과의 토론을 정리해 봅니다.
AD325년 로마황제 콘스탄티황제가 주재한 니케아종교회의에서 현재의 성경66권이 채택되었고,
예수을 인간으로 주장했던 아리우스학파가 추방되고 예수의 신격화을 주장한 아타나시우스학파을
인정하게되어 소위, 기독교정통주의(친로마 기독교주의=기독교와 로마권력의 타협=기독교의 로마이데올로기화)
의 3위일체교리가 공인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탈무드를 통해서 예수를 알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렇게 투표로 만들어진 신과 종교를 인정할 수 없었고....
중세시대의 유럽은 십자군전쟁과 마녀사냥의 광란속에서
이교도가 같은 하늘아래 존재한다는 자체는 신성모독이 되어 버립니다.
2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반유태주의가 유럽의 일반 정서가 되어 버립니다.
반유태주의는 나치에 의해 1차 세계대전이후 경제 혹은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닙니다.
파랑새님은 여기까진 인정하시나요?
그리고 종교에 내재되어 있는 극단적인 폭력지향성도 인정하십니까?
상관관계 문제는 교인인적자원부 장관도 못했고 수학선생님도 못했고 담임선생님도
못한일을 제가 하려니 너무 벅찹니다. 이건 패스하도록 하지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인정하셨으면 됬네요.
종교와 더 홀로코스트와의 상관관계를 모르신다면 종교와 더 홀로코스트와의 관계성은 님의 '사견'입니다.
종교가 어떤일을 해왔으니까 홀로코스트에서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논리적인 추측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성을 말하기 전까지는 추측에 불과합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
재미있으신 분이군요
반유태주의의 발생에 대해 인정하시냐고 여쭤 본것 같은데...
부정이 없었으니 긍정으로 알고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유태인학살을 더 홀로코스트라고 표현하시는 분은 처음 만났습니다.
히틀러의 자료부터 올려 드려야 겠네요......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무슨말을 하고싶은 것입니까?
종교와 더 홀로코스트와의 관계성은 말하지 못하셨고 따라서 둘이 관계되어있다는 것은 님의 사견이라는 말입니다.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더 홀로코스트라고 하는 것은 님이 유대인학살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대량학살이라고 하기에 혼동하지 마시라고 더 홀로코스트라고 말한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시죠.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통계적으로는 확률이고 경향을 이야기 합니다.
종교와 홀로코스트의 관계성을 입증하라면 이미 논의가 된 것이 아닌가요.
종교의 폭력성, 그러고 역사상 발생한 많은 홀로코스트에 종교가 개입되어 있던 사례를 힘들여 찾아
올려 드렸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종교적인 차이에서 발생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자료도 올려 드렸고
독일이란 나라가 종교 때문에 국민의 3/4이 학살된 문화적인 배경이 있는 나라라는 자료도 올려 드렸구요.
히틀러 녹취록이라든지 몰래카메라 같은 걸 원하시나요.
파랑새님이 원하는 자료와 형태를 말씀해 보세요.
어떤식으로 자료를 올려 드리면 이해가 될 수 있는지... .
반유태주의 역사적인 배경은 충분히 이해하신거죠~~~~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독일 유대인학살 문서 일반에 공개된다
문서 디지털화 이미 시작…일반 공개 가능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245942.html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실상을 담고 있는 방대한 양의 문서 자료가 일반에 공개될 수 있게 됐다.
독일 바트 아롤젠 소재 국제기록보관소(ITS)에 보관돼 있는 홀로코스트 문서의 공개를 위한 협정에 참여한 11개국이 비준 절차를 완료함에 따라 협정이 발효됐다.
프랑스가 지난 주 홀로코스트 문서 공개협정을 비준한 데 이어 25일 그리스 의회가 만장일치로 비준에 동의했다. 미국, 이스라엘,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는 앞서 비준 절차를 밟았다.
ITS에는 1천750만명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및 강제노역자 등에 대한 4천700만장의 타이핑 또는 필사문서가 보관돼 있다.
이 문서는 나치 독일이 첫 강제수용소를 설치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체포, 감금, 강제노동, 처형 조치 및 이동 정보와 함께 전후의 난민 수용소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1955년 본 협정에 따라 ITS 설립에 참여한 11개국 대표는 지난해 4월 홀로코스트 문서의 제한적인 공개를 결정하고 이어 7월 베를린에서 11개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문서공개 협정 서명식을 거행했다.
지금까지 이들 문서는 피해 당사자와 희생자 유족 등에게만 열람이 허용됐으나 이 협정으로 이제 연구자들에 대한 공개가 이뤄지게 됐다.
ITS는 일반 공개에 대비해 문서의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 자료를 미국 및 이스라엘의 관련 기관에 디지털 정보로 제공했다.
ITS는 디지털화 작업이 완료되면 홀로코스트 문서에 대한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은 그동안 2차대전 종료 60여년이 지난 만큼 희생자 확인 등의 작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면서 기록을 공개, 각국의 역사학자 등이 홀로코스트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독일은 ITS 설립근거가 된 본 협정이 희생자 개인정보 공개를 금지한 점 등을 공개 불가의 이유로 내세워왔다. ITS는 본 협정에 따라 유족이 요청할 경우 홀로코스트 희생자 확인작업 등을 위해 극히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기록을 공개했을 뿐 보존자료의 일반 공개는 허용하지 않았다.
(베를린=연합뉴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2차 세계대전 주축국 독일과 이탈리아는 발칸 지역을 점령한 뒤 바냐루카를 가톨릭계의 크로아티아에 귀속시켰다. 당시 그곳 주민은 세르비아계 정교도가 과반을 차지하고 가톨릭계는 20~30%였다. 정교도는 저항했다. 1942년 2월7일, 가톨릭 신도들로 구성된 민병대 우스타샤는 한 가톨릭 사제의 지휘 아래 어린이 500여명이 포함된 2500여 세르비아계 정교도를 살해했다. 이후 다른 종교인들은 죽음의 수용소(야세노바츠, 스타라 그라디슈카)로 보내졌다. 이 사건은 파시스트에 의한 인종청소와 학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50년 뒤 보스니아 내전이 터졌다. 정교도의 보복이 시작됐다. 얼마나 극심했던지 바냐루카의 9만여 비정교도들은 내전 중 1000여명으로 줄었다. 고풍스런 이슬람 사원과 고딕 양식의 가톨릭 성당은 파괴됐다. 종전 후 10여년이 흘러 인구도 30여만명으로 늘었지만, 비정교도는 5% 미만이다. 바냐루카는 지금도 학살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
대체로 기독교의 만행은, 다른 종교나 다른 교파의 신앙과 교리를 부정하고 배척하는 ‘획일적 신학’에서 비롯됐다. 이는 정치적 극단주의와 결탁해 전쟁을 도발하고, 학살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파시즘과 함께 저지른 유대인 학살이나, 세르비아 민족주의와 결합해 저지른 보스니아 학살과 인종청소는 일부 사례일 뿐이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 유명한 홀로코스트 역사가 제랄드 라이트링어(Gerald Reitlinger)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유태인의 숫자를 약 70만으로 추정했다. 좀더 근래에 들어서, 프랑스 홀로코스트 역사가 장-끌로드 프레삭(Jean-Claude Pressac)은 아우슈비츠의 총사망자 80만 가운데 63만 명을 유태계로 추정했다. (G. Reitlinger, The Final Solution, 1971; J. C. Pressac, Le Crematoires d'Auschwitz: La Machinerie du meurtre de mass, 1993)
- 1990년 5월 31일 프랑스의 보수성향 시사지 National Hebdo 는 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비유태인 포함)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떻게 수정되어 왔는가를 보도했다:
“8백만(프랑스 전범조사국) - 5백만(르몽드, 1978년 4월20일자) - 4백만(1990년까지의 아우슈비츠 기념관 추모비) - 3백만(아우슈비츠 소장 Rudolf Hoess의 자백) - 160만 (예후다 바우어 교수) - 125만(Raul Hilberg 교수) - 85만(제럴드 라이트링어, The Final Solution) - 7만5천(소련 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하고 있는 아우슈비츠 관련문서들
1984년 소련이 최초로 공개한 아우슈비츠 관련 문서들을 토대로 작성된 국제적십자협회의 해당년도 12월 31일자 감사보고서에는 독일이 전쟁기간(1939-1945) 동안 운영했던 모든 강제수용소들에서 발생한 총 사망자수(모든 국적과 사망원인 포함)가 282,077명으로 나타나 있다. 아우슈비츠 사망자 수는 53,633 명이다.
2차대전 前後 세계 유태인 인구
World Almanac, 1929 - 15,630,000 (p.727)
World Almanac, 1933 - 15,316,359 (p.419)
World Almanac, 1936 - 15,753,633 (p.748)
미국유태인위원회(AJC, Bureau of the Synagogue Council), 1939 - 15,600,000
World Almanac, 1940 - 15,319,359 (p.129)
World Almanac, 1941 - 15,748,091 (p.510)
World Almanac, 1947 - 15,690,000 (p.748)
미국 이민귀화국 (INS), 1950 - 15,713,638 (Appendix VII, 'Statistics on Religious Affiliation'; Report to U.S. Senate Judiciary Committee, 1950)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유태인 희생자 600만 명 (아우슈비츠 사망자 400만 명에 근거)
- 1990년까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기념관에 있었던 추모석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40년에서 1945년까지 이곳에서 수감자 400만 명이 나치 살인마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舊추모석판
그러나 교체된 새 추모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곳이 영원히 인류에 대한 절망의 울부짖음과 경종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이 곳에서 나치스는 150만 명의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이를 살해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이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1940-1945.”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유태인은 2,000년 이상 나라 잃은 민족으로서 전세계에 흩어져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것이다. 유태인의 대표적인 수난 장면을 중세와 현대에서 각각 한 가지씩 꼽을 수 있는데, 중세 때의 악역은 유럽의 국가들이며 현대의 악한은 당연히 독일 나치이다. 중세 교회 세력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악행에 가담한 집단이라는 명분으로 유태인을 탄압했다. 20세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아파르트헤이트의 원형을 중세 교회의 유태인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1215년 카톨릭 공의회는 반유태주의를 천명하는데, 이 결정은 유태인 차별에 머물지 않고 유태인의 격리와 고립을 제도화한 것이다. 앞서 이슬람 세력이 유태인에게 노란 표식을 옷깃에 달도록 의무화했던 것처럼, 카톨릭 교회가 지배하던 유럽에서도 유태인은 각 국가가 지정하는 표식을 달아야 했다. 그리고 많은 유럽 국가들은 게토라는 구역에 유태인의 거주를 제한하였고, 유태인의 경제 활동도 기독교적 윤리에 위배되는 직종, 예를 들어 고리 대금업 등에 한정되었다.
유태인에 대한 서유럽의 적개심은 14세기에 더욱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그시기에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흑사병으로 숨지는 끔찍한 상황이 닥쳤는데, 유럽 국가들은 이 재난을 유태인의 음모 탓으로 돌린다. 즉 유태인들이 기독교도들의 우물에 독극물을 타서 일어난 재앙이라고 믿고 집단적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유럽 시민들은 가족이 흑사병으로 숨질 때마다 유태인에 대한 분노를 키웠고, 그런 분노는 유태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학살을 불러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개인들만을 결박한 것은 아니다. 유태인에 대한 악감정은 법제화되어 14세기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유태인의 강제 추방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독일,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서유럽에서 추방된 유태인들이 정착한 곳은 폴란드와 러시아 등지였다. 17세기 중반 폴란드에는 약 50만 명의 유태인이 살았다. 그런데 18세기 말엽에 들어서면 사정이 역전된다. 이번엔 동유럽 국가들이 유태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이 시기 서유럽에서는 유태인에 대한 관용의 분위기가 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유와 인권과 평등 같은 민주주의적 개념을 시민의 무력으로 표현하고 현실화한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부근 유럽 국가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유태인에 대한 관용적 태도를 낳은 주요한 정치적 원인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유태인들은 이제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의 이주를 허락받을 수 있었고, 또한 유태인이 좀더 자유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아메리카 대륙 등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로 진출한 것도 이 시기이다. 유태인이 제도적 박해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증오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 악감정들은 은밀히 잠재되어 있다가 20세기 초반 한 정치 집단의 만행을 통해 가장 잔혹한 형태로 표면화된다.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나치의 대학살의 칼날은 집시, 동성애자, 사회주의자, 슬라브 민족 등 여러 집단을 향했지만 유태인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다.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어원상 `완전히 불태우다`라는 의미로, 본래는 제물을 불태우는 종교적 의식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집단 살상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는 나치에 의한 조직적인 살상 행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하..하.. 할말이 없군요.
좋습니다. 제가 원하는 자료는 증거입니다. 종교와 홀로코스트의 관련성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확률만 가지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에서 확률가지고 재판합니까?
그럼 죄를 지었을 확률이 많은 불량배는 맨날 감옥가겠네요?
명심하세요. 증거를 기다리고 있는것입니다. 확률이 아닙니다.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확률로 사람을 감옥에 넣진 않는다구요 ^^.
교통법규 위반도 사고의 위험때문에 단속을 하는데 .......
특정한 음주운전자가 술에 만취했을 때 사고를 항상 내지는 않지만 사고를 낼 확률이 많지요.
경찰차가 따라 다니며 사고 낼때 까지 기다렸다가 체포하지 않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식칼을 양손에 치켜들고 명동거리를 다녀 보세요.
확률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는 법원에서 뭐라 하는지 직접 체헙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증거를 내놓으라니 여기가 법정으로 바뀐것 같군요.
먼저 님이 생각하시는 연역법과 귀납법에 대해서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형태의 증거인지도 예시를 들어 알려 주십시요.
그러면 종교와 유태인학살이 무관하다는 님의 논지와 의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하지만 제가 말하는 확률과 님이 말하시는 확률은 다른 것입니다.
님이 말하시는 확률은 어떤 일을 방지하기 위해 쓰이는 확률입니다.
제가 말하는 확률은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구요.
예를들어
식칼들고 거리를 다니는ㅋ 것은요 사람을 다치게 할 확률이 있으니까 단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 칼을 가지고 있었다고 옆에 다친 사람을 죽였을 확률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불량배 예가 간단하고 좋은데 왜 구지 다른 예를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불량배가 있고 그 옆에 죽은사람이 있습니다. 불량배가 그사람에게 불량한 짓을 했을 확률이 높다고 증거없이 비난할수 있습니까?
불량배를 없애려고 단속을 할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불량배라는 이유만으로 관계없는(근거없이) 살인을 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불량한 짓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단지 불량한 짓을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근거없이 홀로코스트를 저지렀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우섬님의 댓글
정우섬 작성일
거참 다들 똑똑하신 분들이군요!
저는 간단히 몇자만 적겠습니다.
600만명은 많이 죽은것이고 60만명은 적게 죽은 것입니까?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독일은 민족말살주의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했고
이는 대대손손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일본 씨벌눔들과 같이 죄받아야 합니닷!!!!!!!!!!!!!!!!!!!!!!!!!

정우섬님의 댓글
정우섬 작성일근데 제가 여기저기 토론방에 들어가보니 여기저기 종교적인 내용이 빠지질 않는군요!ㅋㅋ

블라디미르일리치님의 댓글
블라디미르일리치 작성일
글쓴분께는 죄송한 말일지 모르겟씁니다 600만이나 60만이나 숫자가 중요하기보단 600백만을 죽였든 60만을
죽였든 어쨌든간에 비전투인 즉 일반 시민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수감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였으며
나중에 가서는 이들 모두를 죽인것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인권을 무참히 짓밝은 것이니 독일 나치스는
비판 받을만하다라고 생각됍니다 즉 제 말은 숫자가 어찌됐든 비윤리적 비 상식적 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인행위 바로 이것이 비판 받아야 됀다라는것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제 의도는 이겁니다. 왜 나치만 전쟁의 학살범이고 연합군들은 왜 정의인가?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을 한 미국처럼 과연 정의가 승리할까? - 이기는 자가 정의다. - 가 맞다고 봅니다.
아더 T 해리스는 2차세계대전 공군 총사령관이었습니다. 그가 한 말이 있죠.
"적국의 민간인도 적은 적이다.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그런 적을 위해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다."
이 때문에 퀼른 대공습에서 폭격기 1080대를 동원하여 민간인 6만 이상이 사망했으며,
함부르크 대공습 때도 1000대를 보내 4만에 달하는 민간인을 희생시켰고,
그것도 모자라서 드레스덴 대공습 때는 군수공장이나 나치군도 없는 도시에 3000대의 폭격기를 보내서 10만명이나 되는 민간인들을 학살시켰습니다. 그것도 소각되어 행방불면된 숫자만 말이죠.
드레스덴은 엄청난 피란민들이 민간인들만 있기 때문에 이곳은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모여드는 중심지였습니다.영국의 폭격기 파일럿들은 폭격을 한 후 "불쌍한 개자식들.. 잘가라"라고 했고,
아더 해리스에 의해서만 50만명 그것도 민간인만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1953년 세계대전 후 그는 연합군 군사재판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죠.
그가 말한 명언이 있죠. "나는 사람을 죽이라고 이자리에 얹혀졌다."
과연 연합군의 죄목들은 어느 누가 알고 있을까요? 국민의 100분의1? 1000분의 1? 십만분의 1도 못미칩니다.
그만큼 세계사는 과장되어있고, 승전국의 입장에서 역사가 기록되었다는 것이죠.
저는 나치의 죄를 덜어주기 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주관적으로만 보고 욕만하고 뭔 일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없애기 위함입니다. 연합군들은 잘한 것이 없습니다. 나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이란 그 자체가 그런 것이지 나치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한마디로 왜 나치만 비판하고 아일랜드에 있는 민간인들만 있는 경기장에 탱크를 보내 다 학살한 처칠과 진주만을 왜곡시킨 루즈벨트와 유태인 1천만명을 학살한 소련의 스탈린은 왜 욕을 안하냐는 것입니다.
나치만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도 연합군들의 죄들까지 같이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독일의 생체실험 부대와 일본의 마루타 생체실험 부대들은 2차세계대전 직후 미국으로 빼돌려져 실험을 계속하였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의학이 발달한 것입니다. 그들은 무죄 선고를 받고 훈장까지 받았죠. 미국민에게서 말입니다.
자금도 2차대전 초기에 미국에게서 받았고 말입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그리고 어느 누가 독일의 SS친위대들이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군인들이라고 말했습니까? 바로 연합군들입니다. 실제로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못지 않게 순수했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에게 잡혀가면 목이 잘리고 강간을 당하고 학살을 당한다고 말하고 포스터를 그려 알린 것도 연합군들이었습니다.

개구쟁이님의 댓글
개구쟁이 작성일
그리고 유대인 학살은 실제로 1943년부터 괴링의 주장으로 시작되어 1945년에 끝이 났습니다. 불과 2년만에 유대인들을 학살할 여유와 돈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일제 시대를 35년을 겪었지만 일제시대 때 35년 동안 죽은 한국사람 수만 500~ 700만명입니다. 무려 35년 동안 말입니다. 35년을 조선인들을 핍박하며 학살했지만 2년만에 600만명을 죽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만에 600만명을 학살? 그 당시 나치 독일이 그 어마어마한 유대인을 학살할 만큼 인구가 많았다고 봅니까?
전쟁에 투입하기도 모자란 판에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그렇게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죽은 것을 왜 화장 시켰을까.. 기름이 없어서 나치 독일이 진 전투가 수두룩합니다.
밥은 안주면서 화장은 시켜줬다? 식량보다 석유가 더 비싸다는 생각 안드십니까?

미림님의 댓글
미림 작성일
아이슈비츠 기념관에서도 1990년도에 희생자의 수를 4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깍아 주었다고 하는군요.
앞으로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 더 깍아 줄지 모릅니다.
전쟁에는 살육만이 있을 뿐 인권이나 인간존중은 찾기 힘듭니다.
살육에 대한 책임을 패전국에 책임 지우려면 패전국의 반인륜적인 행동들을 증폭시키고 과장해서
선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승전국이 비인륜적인 비난에서 벗어나고 도덕적 우위에 서려면
필요한 절차의 하나가 될겁니다.
아래 킬링필드의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크메르루즈로 죽은 이들이 기사에 따르면 60만명, 또는 40만-8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흔히 캄보디아 킬링필드에서 사망한 희생자의 수는 150만-200만으로 추산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미국 공습의 희생자가 메우고 있단다.
미국 공습에 의한 한 차례의 대량살상 이후 폴포트 정권이 일으킨 또 한번의 대량살상을 한참 후에야 뒤늦게 개입한 국제사회와 이를 조종하는 미국은 이번엔 킬링필드의 죄를 온전히 크메르루즈에게만 덧씌우고 있다.

중학교1학년님의 댓글
중학교1학년 작성일시끄릅다 안크나

LOVEdus님의 댓글의 댓글
LOVEdus 작성일
토론실에 꼭 있어서는 안될 분 같기도 하네요...
예의 좀 지켜 주시면 감사 하겟..

이봐미친..님의 댓글
이봐미친.. 작성일넌 뭔데 나치를 옹호하냐? X만한 것이 얼마나 안다고..

열혈곰님의 댓글
열혈곰 작성일
보니까 개구장이 님께서 아주 질리게 만드시네요.
덧붙일 말도 없습니다.

늑대님의 댓글
늑대 작성일
개구장이님께서 NAZI를 옹호하는게아니라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묻혀진 사안들을 알려주는거같은데요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