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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명성황후를 언제까지 미화만 하고 놔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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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가 미화된 것은 오로지 일본인들에게서 죽임을 당했다 하나인데
과연 명성황후가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성황후가 전혀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래에 남기겠습니다.
1.스스로가 스스로의 정치색을 찾지 못했다.
대원군 실각시킬 때는 흥선대원군의 지나친 개혁으로 인해 무시받은 유생들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개화를 위해 개화파와 손을 잡고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킨 유생들은 깡그리 내쳤죠.
그리고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의 손을 빌어서 개화정책을 사실상 중단시켰으며
갑신정변이 일어날 때는 급진개화파의 의견에 귀를 귀울여주는 듯 하다가 왕권제약이라는 것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청나라의 힘을 빌어 급진개화파를 몰아냈습니다.
이후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이 정권을 잡자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그로 인해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게 되죠.
이처럼 명성황후는 스스로가 중심을 못 잡고 행동했습니다.
2.지나친 왕권의 제약
명성황후가 지나치게 왕권을 제약했습니다.
이건 왕권강화를 위해 나타난 흥선대원군과 마찬가지의 실수를 범하는데요.
그런데 같이 왕권제약을 했음에도 흥선대원군만 욕을 먹고 명성황후만 미화되는 현실이 우습기만 하더군요.
명성황후도 솔직히 말하자면 조언자 역할을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음에도 정치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로 인해 조선은 명성황후 vs 흥선대원군의 대결양상으로 계속 갈 수 밖에 없었죠.
3.자신의 친척들에 대한 지나친 등용
흥선대원군이 한 개혁정책은 그동안 세도정치를 일삼던 세력의 말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성황후는 자신의 친척들을 등용해서 외척전횡을 방조했습니다.
구한말 인사들을 보면 민씨일파가 너무나 많으며 그들 중 친일로 돌아선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즉 애국심 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원한 민씨일파가 더 많았단ㄴ 사실이죠.
이런 점에서 명성황후를 무슨 구국의 영웅 급으로 취급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그녀가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은 억울한 일이나, 그렇다고 영웅화가 되어서는 안되죠.
댓글목록

메칸더님의 댓글
메칸더 작성일
옳은 말씀입니다. 정치적 업적과 역사적 상징성은 다른 것이죠.
하지만 명성황후가 뛰어나다는 것 보다는 극적인 죽음 자체가 부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죠.
굳이 나쁘다고 없어져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그것이 미화인지, 아니면 이글이 폄하인지......저로서는 판단하기 어렵군요.

파랑새님의 댓글
파랑새 작성일
저도 판단하기가 좀 힘드네요.. 죽기전에 한말은 멋있었는데....
그냥 님의 의견을 바탕으로 궁금한 것만 물어보겠습니다.
1. 개화정책에 변화가 있었다고 스스로의 정치색을 찾지 못했다고 무조건 비판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로서 그 당시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를 했다면 하나의 정치색을 갖지 못했더라도 현명한 선택은 할 수 있으니까요. 청나라와 일본에 의한 사회의 정황상으로 여러 색과의 타섭을 도모했다면 그것을 현대 기준의 잣대로 뭐라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로 청나라의 힘을 빌어 개화정책을 중단시켰다면 그것에 대한 정황과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책의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고 어떤 정황속에서 그런 정책이 실행되었습니까?
2. 왕권의 제약에 대해서는 질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둘이 대결양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은 쓸데없는 경쟁을 불러왔다는 말입니까? 흥선군의 정책이 옳지 않았고 그에 맞서 싸웠다면 그 행동이 오히려 정당화 될 수도 있습니다. 흥선군의 정책에는 잘못이 없었습니까?
3. 친일의 결과로 정부안의 사람을 믿기 힘들어서 신용이가는 친척을 등용해 효율성을 높였을 수도 있습니다. 친척등용의 정황은 어떠했습니까?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했던 것 뿐만 아니라 현명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인 관여간 불합리적이였다면 정황에 맞게 비판을 해야한다고 생각해 질문해 봅니다.

한말씀님의 댓글
한말씀 작성일
역사적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가치관으로 그 시대의 가치관은 논하려 들기 때문이지요.
당시에 직접 살아보며 실제로 목격하지 않은 이상, 또 실제로 살고 목격을 했다 하더라도, 상황의 전후를 정확히 통찰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 당시 누군가의 판단이 틀렸다, 옳았다..라는 것을 평가하는 것은 문제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항상 선택의 기로에 들어서면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지요.

역사애호가님의 댓글
역사애호가 작성일전 명성황후에게 두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신님의 지적도 맞지만 명성황후의 실리외교로 인하여 조선이 살았고 그 대가로 청과 일본이 조선땅에 왔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정책이 꼭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나이스가이님의 댓글
나이스가이 작성일
명성황후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나요?? ㅎㅎ 저는 여기들어와서 첨 들었습니다. ㅎㅎ
명성황후가 영웅으로서의 미화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모로서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를 당한것에 대한
우리나라사람 들의 애국심의 제고가 만든 히로인적인 색깔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슈퍼강국이였던 당나라에서도 측천이라는 여제의 위정이 있었고
19세기 말에 가면은 청나라에서는 보수파의 중심으로서 서태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에서도 나이가 어린 임금을 대신 왕실의 어른인 대비가 대신 정치를 하는 수렴청정이라는
제도 또한 있었습니다.
제가 위 예를 드는 것은 단지, 여성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님의 선입견이 있으 신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일 명성황후가 여자가 아닌 남자로써 흥선군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님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실지 의문이 들고요.
제 입장의 결과는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명성황후가 영웅으로서 미화 된것이 아닌. 조선의 마지막 국모로서
의 민중들의 애국심의 반영된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타고난센스님의 댓글
타고난센스 작성일저 사진.. 명성황후 라고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것으로 아는데..

대화의필요성님의 댓글
대화의필요성 작성일
저사진은 명성황후가 아니다.
가장 최근에 프랑스선교사가 명성황후 사진을 제시했지만 명성황후가 아님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민비를 정치적으로 좋은인물로 평가하는 이들은 거의 없지않은가??
민비는 정치적으로 비판받는 인물이라고 알고있다.

해골님의 댓글
해골 작성일역사는 보통 역사가가 쓴 역사와 사실 그대로의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로써는 그 당시의 역사는 알 길이 없으므로 역사가가 쓴 역사를 받아들이겠죠...... 명성황후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조선이 일본에게 합병된 결과만 보인다고 명성황후를 비하하면 안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