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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명언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여백을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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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하게 우리가 이름붙인 사물들,
집, 나무, 책상, 밥상, 레지가 가지고 온 컵,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연필, ....
무한하게 많은 다른 이름의 사물(萬物)들을
바로 그것이게끔 하는 기능은 제각기 다른 맥락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이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만가지의 기능에 가장 공통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만물의 만가지 기능에 공통된 기능!
바로 이 기능을 노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기능이 무엇인가? 아는가?
노자는 이것을 바로 "빔" 즉 虛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음이 차면 무엇인가 내 마음속으로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여백이 없다.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그여자 생각만으로
내 마음이 온통 꽉 차버리는 것은 이태리 오페라 가사식의 사랑이다.
사랑의 묘약중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러하고, 카르멘의 꽃노래가 그러하고,
팔리앗치의 카니오의 애통한 광대노래가 그러하고, 토스카의 저 별은 빛나건만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허가 없다. 그래서 비통과 좌절과 죽음의 종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사랑은 한 여인을 사랑하되
그 여인이 마음 놓고 들락거릴 수 있는 빔을 내 마음속에 남겨 두는 것이다.
청산리 벽계수를 읊는 황진이를 그냥 스쳐나가는 화담 서경덕의 사랑이나,
황진이 무덤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임제의 사랑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김용옥 지음 '노자와 21세기 - 1' 중에서 (통나무)
노자의 빔의 철학은 언제 들어도 공감이 갑니다.
물컵은 완전히 차 버리면 더이상 물컵이 아닙니다.
집이 사람이 들락거릴 수 없이 꽉 차있다면 더이상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비어있는것(虛),
그것을 노자는 모든 사물이 기능하는것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보면 너무나 사랑했던 커플들이 어느날 헤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닌 불타는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합니다.
서로의 만족을 위해서만 덤볐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그 불이 식고서는 남이 되어 떠나갑니다.
여유를 두지 않아서 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막 달려가야 하지만
마지막엔 서로가 채워야 할 여유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 말도 못하도록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질문으로 인해 상대를 압도했다고 속이 후련할것 같지만
오히려 답답합니다. 관계는 멀어집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상대가 말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셨고,
그 사람이 말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사랑은 상대가 더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 최대한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불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자기 만족이 아닌 상대방을 위한 배려...
상대방을 위한 여백! 그것을 남기고 두 사람이 조금씩 채워나가는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집, 나무, 책상, 밥상, 레지가 가지고 온 컵,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연필, ....
무한하게 많은 다른 이름의 사물(萬物)들을
바로 그것이게끔 하는 기능은 제각기 다른 맥락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이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만가지의 기능에 가장 공통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만물의 만가지 기능에 공통된 기능!
바로 이 기능을 노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기능이 무엇인가? 아는가?
노자는 이것을 바로 "빔" 즉 虛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음이 차면 무엇인가 내 마음속으로 들락날락 거릴 수 있는 여백이 없다.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할 때, 그여자 생각만으로
내 마음이 온통 꽉 차버리는 것은 이태리 오페라 가사식의 사랑이다.
사랑의 묘약중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 그러하고, 카르멘의 꽃노래가 그러하고,
팔리앗치의 카니오의 애통한 광대노래가 그러하고, 토스카의 저 별은 빛나건만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허가 없다. 그래서 비통과 좌절과 죽음의 종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노자가 말하는 사랑은 한 여인을 사랑하되
그 여인이 마음 놓고 들락거릴 수 있는 빔을 내 마음속에 남겨 두는 것이다.
청산리 벽계수를 읊는 황진이를 그냥 스쳐나가는 화담 서경덕의 사랑이나,
황진이 무덤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임제의 사랑이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김용옥 지음 '노자와 21세기 - 1' 중에서 (통나무)
노자의 빔의 철학은 언제 들어도 공감이 갑니다.
물컵은 완전히 차 버리면 더이상 물컵이 아닙니다.
집이 사람이 들락거릴 수 없이 꽉 차있다면 더이상 집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비어있는것(虛),
그것을 노자는 모든 사물이 기능하는것의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보면 너무나 사랑했던 커플들이 어느날 헤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사랑이 아닌 불타는 사랑을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합니다.
서로의 만족을 위해서만 덤볐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그 불이 식고서는 남이 되어 떠나갑니다.
여유를 두지 않아서 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막 달려가야 하지만
마지막엔 서로가 채워야 할 여유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 말도 못하도록 말문이 막히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질문으로 인해 상대를 압도했다고 속이 후련할것 같지만
오히려 답답합니다. 관계는 멀어집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상대가 말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셨고,
그 사람이 말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사랑은 상대가 더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 최대한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불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은 자기 만족이 아닌 상대방을 위한 배려...
상대방을 위한 여백! 그것을 남기고 두 사람이 조금씩 채워나가는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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