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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처세 경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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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야기]
실용적인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험'의 학교를 통해서이다.
교훈과 가르침은 유익하지만 실생활을 통한 단련이 없으면 그것은 이론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힘든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
그것은 독서나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없고 보통 사람들과 폭넓은 접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인격 단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혼자 힘으로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혼자 힘으로 유혹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심신을 지치게 하는 실생활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수도원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미덕은 중요하지 않다. 고독한 생활을 즐기다 보면 이기적이 될 뿐이다.
은둔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경멸을 의미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나태함, 소심함, 방종을 의미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자신만의 책임과 고통이 있다.
그러한 책임과 고통을 피하려고 할 경우 자신이 속한 공동체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일상적인 세상살이 가운데 세상사를 경험함으로써 실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너무 똑똑하여 다른 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우리 자신보다 경험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 새무얼 스마일즈 '인격론' 중에서 ---
한 배속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도 저마다 개성이 다르군요.
용의주도한 놈이 있고, 덜렁대는 놈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낌새를 본 어미가 아이를 다루는 것과
용의주도한 놈의 어미가 아이에게 하는 양을 지켜보노라면 우리 자부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합니다.
자칫 교만으로 흐를까 염려되는 놈에게는 실력이 모자라서 낭패를 당하고 아픔을 겪도록 하려는지,
소위 선행학습을 초딩2년까지 전혀 지원하지 않더니 3학년에 오르려니까 바짝 집중해 들어가는 모양이고.
애어른처럼 빈틈없는 놈에게는 남보다 앞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데 주력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학업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고 하신 성서의 말씀이 관통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손주들이 뒤지지 않고 장차 훌륭한 재목으로 자라서 국가와 세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
할아버지의 소망인 것은 늘 말씀드리는 것.
올해는 좋은 일이 많아서 더 멋진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실용적인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험'의 학교를 통해서이다.
교훈과 가르침은 유익하지만 실생활을 통한 단련이 없으면 그것은 이론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힘든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
그것은 독서나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없고 보통 사람들과 폭넓은 접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인격 단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혼자 힘으로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혼자 힘으로 유혹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심신을 지치게 하는 실생활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수도원 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미덕은 중요하지 않다. 고독한 생활을 즐기다 보면 이기적이 될 뿐이다.
은둔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경멸을 의미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나태함, 소심함, 방종을 의미하겠지만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자신만의 책임과 고통이 있다.
그러한 책임과 고통을 피하려고 할 경우 자신이 속한 공동체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일상적인 세상살이 가운데 세상사를 경험함으로써 실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너무 똑똑하여 다른 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열어놓아야 한다.
우리 자신보다 경험 많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 새무얼 스마일즈 '인격론' 중에서 ---
한 배속에서 나온 자식들이라도 저마다 개성이 다르군요.
용의주도한 놈이 있고, 덜렁대는 놈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낌새를 본 어미가 아이를 다루는 것과
용의주도한 놈의 어미가 아이에게 하는 양을 지켜보노라면 우리 자부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합니다.
자칫 교만으로 흐를까 염려되는 놈에게는 실력이 모자라서 낭패를 당하고 아픔을 겪도록 하려는지,
소위 선행학습을 초딩2년까지 전혀 지원하지 않더니 3학년에 오르려니까 바짝 집중해 들어가는 모양이고.
애어른처럼 빈틈없는 놈에게는 남보다 앞서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데 주력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학업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고 하신 성서의 말씀이 관통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손주들이 뒤지지 않고 장차 훌륭한 재목으로 자라서 국가와 세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
할아버지의 소망인 것은 늘 말씀드리는 것.
올해는 좋은 일이 많아서 더 멋진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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