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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심리 그녀는 나를 시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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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야기]
1970년 2월 20일
나는 그 아가씨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신체 간장하고, 균형이 잘 잡히고,
점박이 옷에 구운 빵 같은 갈색피부,
큰 눈을 지닌 긴 머리 아가씨였다.
그녀의 미소에는 어딘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슬픔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꿈꾸어 왔던 이상적인 사랑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부터일까?
그 슬픈 미소 때문에 사람이 깨진 것일까?
나는 따뜻한 방안에 있는 사람이 찬바람 속을 헤치며
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안타까움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가야한다. 그녀는 나를 시기하는 것 같다.
그녀의 질투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을 때 생기는 질투가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데서 오는 부러움이다. 비록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무거움을 갖고 있다.
삶은 그처럼 복잡한 것이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1970년 2월 21일
한 번 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여러 대의 무장 헬리콥터와 HU-1A 헬기가 한 시간 이상 폭탄을 투하했다.
폭발지점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로 고막이 터질 것 같다.
나와 함께 지하 참호에 앉아 있는 동지들은 총알이 언제 몸을 뚫고 지나갈지 몰라 사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지나갔다. 적이 우리를 정확히 발견하지 못하자, 한참 동안 기총소사를 퍼붓고 가 버렸다.
우리는 서둘러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떠나면서 아름다운 나무들과 우리가 지은 건물을 되돌아보니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지난 두 달 가까이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이곳에 기지를 건설했다. 찬비가 내리는 날에도 윤활유에 미끄러지듯 산비탈을 타고 다니느라 옷이 다 젖었지만 미소와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집을 짓기 위한 큰 나무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누구 하나 쉬지 않았다. 밥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낫을 들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지금은 동해 바닷가의 모래성이 무너져버린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언제나 부상병들이 누울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까? 우리의 생활이 언제나 예전처럼 틀이 잡힐 수 있을까? 지난 날 어려움 속에서 함께 뒹굴었던 동지들이 한없이 보고 싶다.
--- 당 투이 쩜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중에서 ---
어느 곳을 읽어도 금세 사랑의 소리가 들리는 듯.
정글 속을 고난 중에 살아내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한 글입니다.
지금은 프랑스/미국과 베트남,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옛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 때.
1970년 당시 저는 육군 중앙경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직 철없던 때라 그 전쟁이 무얼 말하는지 알지 못하였고...
다만 아이를 둘씩이나 딸린 아내가 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냉전 시대도 지나고,
적과 동침이 자연스런 시대.
아무려나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시대.
국가 간의 신뢰는 이해의 기준 저 뒤에 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리는 정의이고 사랑이 맞습니다.
금세 주말이군요.
날씨도 조금은 풀린다니,
여러분 두루 평안 하시기를 빕니다.
1970년 2월 20일
나는 그 아가씨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신체 간장하고, 균형이 잘 잡히고,
점박이 옷에 구운 빵 같은 갈색피부,
큰 눈을 지닌 긴 머리 아가씨였다.
그녀의 미소에는 어딘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슬픔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꿈꾸어 왔던 이상적인 사랑이 산산조각이 났을 때부터일까?
그 슬픈 미소 때문에 사람이 깨진 것일까?
나는 따뜻한 방안에 있는 사람이 찬바람 속을 헤치며
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의 안타까움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가야한다. 그녀는 나를 시기하는 것 같다.
그녀의 질투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렸을 때 생기는 질투가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데서 오는 부러움이다. 비록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무거움을 갖고 있다.
삶은 그처럼 복잡한 것이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1970년 2월 21일
한 번 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여러 대의 무장 헬리콥터와 HU-1A 헬기가 한 시간 이상 폭탄을 투하했다.
폭발지점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불과 십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로 고막이 터질 것 같다.
나와 함께 지하 참호에 앉아 있는 동지들은 총알이 언제 몸을 뚫고 지나갈지 몰라 사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지나갔다. 적이 우리를 정확히 발견하지 못하자, 한참 동안 기총소사를 퍼붓고 가 버렸다.
우리는 서둘러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떠나면서 아름다운 나무들과 우리가 지은 건물을 되돌아보니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지난 두 달 가까이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이곳에 기지를 건설했다. 찬비가 내리는 날에도 윤활유에 미끄러지듯 산비탈을 타고 다니느라 옷이 다 젖었지만 미소와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집을 짓기 위한 큰 나무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누구 하나 쉬지 않았다. 밥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낫을 들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지금은 동해 바닷가의 모래성이 무너져버린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언제나 부상병들이 누울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까? 우리의 생활이 언제나 예전처럼 틀이 잡힐 수 있을까? 지난 날 어려움 속에서 함께 뒹굴었던 동지들이 한없이 보고 싶다.
--- 당 투이 쩜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중에서 ---
어느 곳을 읽어도 금세 사랑의 소리가 들리는 듯.
정글 속을 고난 중에 살아내며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한 글입니다.
지금은 프랑스/미국과 베트남,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옛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 때.
1970년 당시 저는 육군 중앙경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아직 철없던 때라 그 전쟁이 무얼 말하는지 알지 못하였고...
다만 아이를 둘씩이나 딸린 아내가 보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냉전 시대도 지나고,
적과 동침이 자연스런 시대.
아무려나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시대.
국가 간의 신뢰는 이해의 기준 저 뒤에 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도리는 정의이고 사랑이 맞습니다.
금세 주말이군요.
날씨도 조금은 풀린다니,
여러분 두루 평안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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