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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수필 아름다운 노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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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야기]
지난 설날 꾸러기들이 몰려와 득세를 부렸던 집안은 온통 요절이 났다.
요모조모 신기해하며 닥치는 대로 만져보고 굴려보고 하던 어린 조카들이 새벽이면 나를 깨워주던 자명종 시계마저 돌려놓고 갔을 줄이야. 평소 4시25분에 맞춰져 있던 자명종 시계가 7시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연휴가 끝난 첫 월요일, 새벽 출근을 서둘러야 했던 나는 잠에서 깨어나 헐레벌떡 혼이 나가고 말았다.
추운데 장갑도 끼고 마스크도 단단히 하라며 배웅하는 아내의 인사도 건성인 채 현관문을 나섰다. 골목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나와 보니 아직도 긴 설 연휴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텅 빈 모습이 쓸쓸하기만 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반, 다행히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 속에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버스 안에는 손님이라고 단 한 사람뿐, 평소 출근 때면 유심히 지켜보던 한 노인이셨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보이며 모자 밑으로는 흰머리가 짧게 드러난 노인께서는 끈이 긴 가방을 어깨에 메고 계셨다. 그렇게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나는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 반가워하며 어디까지 가느냐? 혹은 어디에 사느냐 묻고는 곧 길동무가 되어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가던 옛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꼭 말을 걸어봐야지.’ 버스에서 내린 나는 노인과 함께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 계단을 내려오다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어르신네께서는 매일 새벽 이렇게 출근을 하시냐며 말을 건네자 그는 그렇다며 미소로 답해 주셨다. 사는 곳 또한 우리 아랫마을인 오목동인데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서울 둔촌동까지 두 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출퇴근한다고 했다. 올해 연세 여든하나. 이제는 나이가 많다고 월급을 50만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놀고 있으면 뭐하겠냐며 노인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고, 어린 손자들이나 며느리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라고 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인파 속 출퇴근 행렬에 낄 때면 그곳에서 젊어지는 기분과 함께 산행이나 운동하는 즐거움을 갖는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노인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고, 미래의 내 모습도 그렇게 건강한 노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열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노인은 노익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한 발 앞서 달려 나갔고, 나도 그를 따라 힘껏 뛰었다. 우리는 우리를 태우고 갈 열차와 경주를 벌이는 기분으로 갑신년의 첫날 일터를 향해 그렇게 뛰었다.
그것은 나의 미래를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노익장이 아닐 수 없었다.
--- [한겨레](한휴식/경기 수원시) ---
오래 전에 모아두었던 글을 읽자니 절 로 웃음이 나옵니다.
초등학교가 방학을 해서 손자손녀 놈들이 모여들어 법석을 피우는 중인데,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해서 서둘러 저녁을 먹은 다음 손녀를 앞세워 산책에 나섰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주신다는 기분에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것 까지는 좋았습니다.
내리막길에서 그만 한 바퀴 굴러서 그 예쁜 얼굴에 상처를 입었군요.
약간 벗겨진 데 불과한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어디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지요.
어미에게 전화도 못하고 걱정스레 잠을 청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것이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군요.
맞고말고요. 그렇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잘 씻고 후시딘을 발라 우선 차료를 했으니 흉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고라 믿고 위로 삼았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였으니 오늘은 크게 은혜를 입은 날이었습니다.
휴가의 계절,
오며가며 이동이 많은 절기에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지난 설날 꾸러기들이 몰려와 득세를 부렸던 집안은 온통 요절이 났다.
요모조모 신기해하며 닥치는 대로 만져보고 굴려보고 하던 어린 조카들이 새벽이면 나를 깨워주던 자명종 시계마저 돌려놓고 갔을 줄이야. 평소 4시25분에 맞춰져 있던 자명종 시계가 7시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연휴가 끝난 첫 월요일, 새벽 출근을 서둘러야 했던 나는 잠에서 깨어나 헐레벌떡 혼이 나가고 말았다.
추운데 장갑도 끼고 마스크도 단단히 하라며 배웅하는 아내의 인사도 건성인 채 현관문을 나섰다. 골목길을 지나 버스 정류장에 나와 보니 아직도 긴 설 연휴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텅 빈 모습이 쓸쓸하기만 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반, 다행히 늦지 않았다는 안도감 속에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버스 안에는 손님이라고 단 한 사람뿐, 평소 출근 때면 유심히 지켜보던 한 노인이셨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보이며 모자 밑으로는 흰머리가 짧게 드러난 노인께서는 끈이 긴 가방을 어깨에 메고 계셨다. 그렇게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문득 나는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면 서로 반가워하며 어디까지 가느냐? 혹은 어디에 사느냐 묻고는 곧 길동무가 되어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가던 옛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오늘은 꼭 말을 걸어봐야지.’ 버스에서 내린 나는 노인과 함께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도 계단을 내려오다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어르신네께서는 매일 새벽 이렇게 출근을 하시냐며 말을 건네자 그는 그렇다며 미소로 답해 주셨다. 사는 곳 또한 우리 아랫마을인 오목동인데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서울 둔촌동까지 두 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출퇴근한다고 했다. 올해 연세 여든하나. 이제는 나이가 많다고 월급을 50만원밖에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놀고 있으면 뭐하겠냐며 노인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고, 어린 손자들이나 며느리에게 용돈을 쥐어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라고 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인파 속 출퇴근 행렬에 낄 때면 그곳에서 젊어지는 기분과 함께 산행이나 운동하는 즐거움을 갖는다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노인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고, 미래의 내 모습도 그렇게 건강한 노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열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노인은 노익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한 발 앞서 달려 나갔고, 나도 그를 따라 힘껏 뛰었다. 우리는 우리를 태우고 갈 열차와 경주를 벌이는 기분으로 갑신년의 첫날 일터를 향해 그렇게 뛰었다.
그것은 나의 미래를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노익장이 아닐 수 없었다.
--- [한겨레](한휴식/경기 수원시) ---
오래 전에 모아두었던 글을 읽자니 절 로 웃음이 나옵니다.
초등학교가 방학을 해서 손자손녀 놈들이 모여들어 법석을 피우는 중인데,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해서 서둘러 저녁을 먹은 다음 손녀를 앞세워 산책에 나섰지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주신다는 기분에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려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것 까지는 좋았습니다.
내리막길에서 그만 한 바퀴 굴러서 그 예쁜 얼굴에 상처를 입었군요.
약간 벗겨진 데 불과한 것이 어찌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어디 부러지기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지요.
어미에게 전화도 못하고 걱정스레 잠을 청했습니다.
그래도 어린 것이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이라는 해석을 하는 군요.
맞고말고요. 그렇습니다.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잘 씻고 후시딘을 발라 우선 차료를 했으니 흉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고라 믿고 위로 삼았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였으니 오늘은 크게 은혜를 입은 날이었습니다.
휴가의 계절,
오며가며 이동이 많은 절기에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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