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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물 아름다운 청년 비...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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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 경제노트, 2007.5.2)
― 박진영씨는 왜 당신을 뽑았다고 했습니까?
“내 눈에서 배고팠던 게 많이 보였다고, 실력보다 열정이 보였다고, 이 아이가 이거 아니면 죽을 것처럼 보였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마음가짐으로 아직도 쭉 활동하고 있어요.”
'최보식기자 직격인터뷰… ‘월드 스타’ 비' 중에서 (조선일보, 2007.4.28)
세번째인 듯합니다. 경제노트를 써온 지난 3년 반 동안 비(정지훈)이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이건희 삼성 회장도 아니고, 빌 게이츠도 아닌 그의 이야기는, 하지만 접할 때마다 번번히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젊은이. 항상 경제노트 가족들과 공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군요.
1982년생. 글을 쓰기 위해 인물정보를 검색해보니 그는 25세였습니다.
20대 중반의 이 청년은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열정으로, 오디션을 보았던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지금도 쭉
활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옮기고 싶군요. 박진영씨가 왜 당신을 뽑았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눈에서 배고팠던 게 많이 보였다고, 실력보다 열정이 보였다고, 이 아이가 이거 아니면 죽을 것처럼 보였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마음가짐으로 아직도 쭉 활동하고 있어요.”
당시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고, 더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님의 병원비는 밀렸고, 돈은 없고, 차비도 없고, 여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자신이 쥐였다면 내 앞을 막아선 고양이를 물고서라도 뛰어 나가야 되는,
도대체 숨을 데도 피할 데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감에, 오디션을 보는데 한번을 쉬지 않고 총 5시간 춤을 췄어요.
그렇게 해서 오디션에 붙었어요.”
그는 18번이나 오디션에 떨어지다가, 그렇게 박진영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하나만 더 기록하려 합니다. 그는 노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노래가 삶의 일부분이 됐다고 했습니다.
"삶의 일부분이 됐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하지만 그 다음말을 듣고 나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모든 사물을 보면 저것을 춤으로 출 수 없을까 생각해요.
할아버님이 지팡이 들고 가시면, 지팡이로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차를 탈 때도,
차 타는 방법으로 무언가 춤을 만들 수 없을까? 계속 그렇게 무언가를 생각하거든요.”
지팡이 들고 가는 노인을 보면, 지팡이로 춤을 만들 수 없을까를 생각하는 청년.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열정으로, 오디션을 보았던 초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청년.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한 프로페셔널의 마인드였습니다.
― 박진영씨는 왜 당신을 뽑았다고 했습니까?
“내 눈에서 배고팠던 게 많이 보였다고, 실력보다 열정이 보였다고, 이 아이가 이거 아니면 죽을 것처럼 보였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마음가짐으로 아직도 쭉 활동하고 있어요.”
'최보식기자 직격인터뷰… ‘월드 스타’ 비' 중에서 (조선일보, 2007.4.28)
세번째인 듯합니다. 경제노트를 써온 지난 3년 반 동안 비(정지훈)이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이건희 삼성 회장도 아니고, 빌 게이츠도 아닌 그의 이야기는, 하지만 접할 때마다 번번히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젊은이. 항상 경제노트 가족들과 공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군요.
1982년생. 글을 쓰기 위해 인물정보를 검색해보니 그는 25세였습니다.
20대 중반의 이 청년은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열정으로, 오디션을 보았던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지금도 쭉
활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옮기고 싶군요. 박진영씨가 왜 당신을 뽑았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눈에서 배고팠던 게 많이 보였다고, 실력보다 열정이 보였다고, 이 아이가 이거 아니면 죽을 것처럼 보였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때 마음가짐으로 아직도 쭉 활동하고 있어요.”
당시 그는 벼랑 끝에 서 있었고, 더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님의 병원비는 밀렸고, 돈은 없고, 차비도 없고, 여동생도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자신이 쥐였다면 내 앞을 막아선 고양이를 물고서라도 뛰어 나가야 되는,
도대체 숨을 데도 피할 데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감에, 오디션을 보는데 한번을 쉬지 않고 총 5시간 춤을 췄어요.
그렇게 해서 오디션에 붙었어요.”
그는 18번이나 오디션에 떨어지다가, 그렇게 박진영 프로듀서를 만났습니다.
하나만 더 기록하려 합니다. 그는 노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노래가 삶의 일부분이 됐다고 했습니다.
"삶의 일부분이 됐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하지만 그 다음말을 듣고 나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모든 사물을 보면 저것을 춤으로 출 수 없을까 생각해요.
할아버님이 지팡이 들고 가시면, 지팡이로 춤을 만들 수 없을까? 차를 탈 때도,
차 타는 방법으로 무언가 춤을 만들 수 없을까? 계속 그렇게 무언가를 생각하거든요.”
지팡이 들고 가는 노인을 보면, 지팡이로 춤을 만들 수 없을까를 생각하는 청년.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열정으로, 오디션을 보았던 초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청년.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한 프로페셔널의 마인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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