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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심리 헤겔의 정반합(正反合)과 디지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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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 경제노트, 2007.5.3)
중요한 것은 디지털을 알고서 아날로그를 아느냐, 아날로그밖에 모르느냐입니다.
첨단이 없는 아날로그는 구식이 될 수 있지만 첨단 기술과 지식 위에 아날로그를 덧대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이 생겨요.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엔 너무 초상집에만 드나들더니 요즘은 또 너무 컴퓨터만 들여다봐요.
두 가지를 함께 이용해야지요.
이어령의 '“무균질 기업은 생존 못한다”' 중에서 (이코노미스트, 2007.4.30)
'논리학', '정신현상학' 등을 쓴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변증법을 체계화했습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정반합(正反合)이라는 변증법 논리의 삼단계 개념이 나옵니다.
역사나 정신 같은 모든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변증법적 전개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다른 주장인 반(反)이 나오고,
여기에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이 나와 통합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 개념을 보면서 예전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헤겔과 관계된 책들을 꺼내보았습니다.
이참에 헤겔의 '교수취임 연설문'이라는 문고판 책도 주문해 받아보았습니다.
헤겔,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근현대 철학사상과 씨름했던 때가 생각나 잠시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정반합과 비슷한 논리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야기합니다.
디지털이 없는, 첨단이 없는 아날로그는 '구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만 아는 것, 디지털에만 빠지는 것 또한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디지털이라는 첨단 지식 위에 아날로그를 덧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시계의 예도 들었습니다. 태엽을 감는 아날로그 시계를 쓰다가,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등장했다가,
요즘에는 다시 시침, 분침이 돌아가는 속은 디지털이지만 겉은 아날로그인 시계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로그 시계는 과거의 아날로그 시계와는 차원이 다르고, 또한
단순한 디지털 시계보다는 우리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전자시계는 12시5분이라는 단편적 시간만 알려주지만, 디지로그 시계는 침이 연속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까지 알려준다는 얘깁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태엽시계와 전자시계...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런 정반합이라는 세단계를 거쳐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통합'이 될 때 진정한 의미와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을 알고서 아날로그를 아느냐, 아날로그밖에 모르느냐입니다.
첨단이 없는 아날로그는 구식이 될 수 있지만 첨단 기술과 지식 위에 아날로그를 덧대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쟁력이 생겨요.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엔 너무 초상집에만 드나들더니 요즘은 또 너무 컴퓨터만 들여다봐요.
두 가지를 함께 이용해야지요.
이어령의 '“무균질 기업은 생존 못한다”' 중에서 (이코노미스트, 2007.4.30)
'논리학', '정신현상학' 등을 쓴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변증법을 체계화했습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정반합(正反合)이라는 변증법 논리의 삼단계 개념이 나옵니다.
역사나 정신 같은 모든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변증법적 전개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하나의 주장인 정(正)에 다른 주장인 반(反)이 나오고,
여기에 더 높은 종합적인 주장인 합(合)이 나와 통합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 개념을 보면서 예전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헤겔과 관계된 책들을 꺼내보았습니다.
이참에 헤겔의 '교수취임 연설문'이라는 문고판 책도 주문해 받아보았습니다.
헤겔,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학파 등 근현대 철학사상과 씨름했던 때가 생각나 잠시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정반합과 비슷한 논리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야기합니다.
디지털이 없는, 첨단이 없는 아날로그는 '구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만 아는 것, 디지털에만 빠지는 것 또한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디지털이라는 첨단 지식 위에 아날로그를 덧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시계의 예도 들었습니다. 태엽을 감는 아날로그 시계를 쓰다가, 숫자로 표시되는 전자시계가 등장했다가,
요즘에는 다시 시침, 분침이 돌아가는 속은 디지털이지만 겉은 아날로그인 시계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런 디지로그 시계는 과거의 아날로그 시계와는 차원이 다르고, 또한
단순한 디지털 시계보다는 우리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전자시계는 12시5분이라는 단편적 시간만 알려주지만, 디지로그 시계는 침이 연속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까지 알려준다는 얘깁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태엽시계와 전자시계...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런 정반합이라는 세단계를 거쳐 한차원 높은 수준에서
'통합'이 될 때 진정한 의미와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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