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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수필 사람들은 이야기에 굶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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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야기]
일본 삿포로에서는 섣달 그믐날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르 들으며 첫 참배를 가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 우동집 '북해정' 이 영업을 끝내고 막 문을 닫을 때쯤 허름한 옷차림의 한 여인과 두 남자아이가 들어와 머뭇거리며 우동 한그릇을 주문한다. 짜증을 낼 만도 한데도 주인 부부는 밝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고 몰래 면도 더 얹어주었다. 다음해 섣달 그믐날도 이 세모자는 밤 10시쯤 방문해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역시 우동집 주인 부부는 밝게 응대한다.
3년째 되던 해 우동집 부부는 메뉴판 가격도 일부러 낮춰좋고 예약석을 마련해놓은 후 세 모자를 기다린다. 예상대로 방문한 세 모자는 우동을 시키고 그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 그 빚을 다 깊게 되었습니다.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너무 맛있었어요.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저씨,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것. 그 소리는 마치 '지지마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예요."
아이의 말에 주인 부부는 카운터 뒤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그 다음해 우동집 부부는 역시 세 모자를 가디렸지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앉았던 2번 테이블은 예약석으로 마련해 놓았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손님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여느 해처럼 시끌벅적한 가운데 10시 반이 지날 때 즈음,
북해정 문이 열리고 부인 한 사람과 청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십 몇 년 전의 그 젊은 엄마의 어린 두 아들이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지금 의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읺았습니다만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와 셋이서 북해정에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 이라고 쓰인 옥호만이 정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 송길원의 '말, 3분이면 세상을 바꾼다' 중에서 ---
요즈음의 심사 때문인지,
카운터 뒤의 주인이 된 듯 울었습니다.
토요일 아내와 북한산에 갔었지만 내내 말수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는 데다 비가내려서 약간 추웠고 좀 더 두툼하게 준비하지 못한 아내가 더 추위를 탔습니다.
긴긴 겨울 지났고,
寅卯辰 따뜻해오는 절기.
아름다운 이야기 만들어야지....!
늦은 시간까지 성가연습,
평안한 밤 쉬고나면 새힘을 얻을 겁니다.
일본 삿포로에서는 섣달 그믐날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르 들으며 첫 참배를 가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 우동집 '북해정' 이 영업을 끝내고 막 문을 닫을 때쯤 허름한 옷차림의 한 여인과 두 남자아이가 들어와 머뭇거리며 우동 한그릇을 주문한다. 짜증을 낼 만도 한데도 주인 부부는 밝은 목소리로 주문을 받고 몰래 면도 더 얹어주었다. 다음해 섣달 그믐날도 이 세모자는 밤 10시쯤 방문해 우동 한 그릇을 시켜 먹고, 역시 우동집 주인 부부는 밝게 응대한다.
3년째 되던 해 우동집 부부는 메뉴판 가격도 일부러 낮춰좋고 예약석을 마련해놓은 후 세 모자를 기다린다. 예상대로 방문한 세 모자는 우동을 시키고 그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하여 이제 그 빚을 다 깊게 되었습니다.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너무 맛있었어요.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저씨,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큰 소리로 말해 주신 것. 그 소리는 마치 '지지마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손님에게 '힘내라! 행복해라!' 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제일의 우동집 주인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예요."
아이의 말에 주인 부부는 카운터 뒤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그 다음해 우동집 부부는 역시 세 모자를 가디렸지만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앉았던 2번 테이블은 예약석으로 마련해 놓았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손님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여느 해처럼 시끌벅적한 가운데 10시 반이 지날 때 즈음,
북해정 문이 열리고 부인 한 사람과 청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십 몇 년 전의 그 젊은 엄마의 어린 두 아들이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의 한 그릇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지금 의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읺았습니다만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와 셋이서 북해정에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 이라고 쓰인 옥호만이 정월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 송길원의 '말, 3분이면 세상을 바꾼다' 중에서 ---
요즈음의 심사 때문인지,
카운터 뒤의 주인이 된 듯 울었습니다.
토요일 아내와 북한산에 갔었지만 내내 말수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는 데다 비가내려서 약간 추웠고 좀 더 두툼하게 준비하지 못한 아내가 더 추위를 탔습니다.
긴긴 겨울 지났고,
寅卯辰 따뜻해오는 절기.
아름다운 이야기 만들어야지....!
늦은 시간까지 성가연습,
평안한 밤 쉬고나면 새힘을 얻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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