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을 계기로 돌아본 일본경제 20년 > 지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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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 경제노트, 2007.2.22)

1990년대의 일본은 '디플레 경제'였다.
세계가 부러워했던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에 푹 빠진 기구한 스토리는 이렇다.

일본의 천문학적 무역흑자를 시샘한 미국과 유럽은 1985년 엔화환율을 절반수준으로 떨어뜨리라고 집단협박을 가했다.
일본은 굴복했다. 그 유명한 '플라자합의'에 따라 엔/달러환율은 250원에서 150엔으로 순식간에 반 토막 났다.
환율하락에 따른 무역흑자 축소로 경기가 침체될 것을 우려한 일본은 공격적인 내수 진작책을 선택했다.
돈을 마구 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돈도 과유불급인 법. 넘치는 돈은 부동산으로 몰려갔고, 일본의 부동산값은 미국 본토를 사고도 남을 만큼 폭등했다.
'거품' 그 자체였다.

일본 중앙은행은 거품을 빼기 위해 부랴부랴 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통화긴축에 부동산값은 폭락했다.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은 은행부실로 이어졌고, 금융기관의 대출기피 속에 기업들은 줄줄이 쓰러졌다.
내수 전체가 완전히 얼어붙은 것이다.

수요가 없으니 물가는 계속 하락할 수 밖에. 1995년 물가상승률이 마침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이었다. L자형 장기복합 불황이 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 끔찍했던 디플레이션의 터널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성철의 '2040 경제학 스트레칭' 중에서 (플루토북, 45p)

일본이 어제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0.25%포인트를 올려서 연 0.5%가 됐습니다.
한국(4.5%)이나 미국(5.25%)에 비하면 여전히 초저금리이지만, 금리인상 소식은 일본경제가 '금리를 올릴 정도'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잃어버린 10년'에 종지부를 찍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일본경제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 4.8%를 기록하는 등 꽤 오래전부터 호조세를 보여왔습니다. 다만 경기 호조세를 더욱 가속화시키기 위해 금리인상을 미루어온 것일 뿐입니다. 그 결과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약세가 심화됐고, 자연 일본의 수출경쟁력은 강해졌으며, 여러 나라로부터 "자국 경제만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초중반, 일본경제는 '최강'이었습니다.
일본경제가 미국을 추월한다느니, 일본의 효율성을 배우자느니 하는 일본예찬론이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하지만 1985년의 플라자합의로 상황이 변했습니다. 엔/달러환율은 250원에서 150엔으로 반 토막이 났습니다.
국제정치가 경제에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환율이 반 토막이 났다는 얘기는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날벼락'입니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에서 500원으로 갑자기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현대자동차는 미국에 소나타를 수출하면서 얼마전까지 1000원을 받다가 오늘부터 500원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비용을 절감해야 수출을 계속할 수 있고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정부는 돈을 풀며 경기부양에 나섰고, 그 유명한 일본의 '거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정부는 다시 거품제거를 위해 돈을 조였고 부동산 가격 폭락, 금융권 부실, 기업도산, 내수위축이라는 최악의 경제불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일본정부는 이 '잃어버린 10년'에서 탈출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내렸고, 드디어 90년대말에는 '제로금리' 정책까지 펼쳤습니다. 금리가 0%라는 얘기는 돈을 공짜로 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자는 받지 않을테니 돈을 가져가서 투자도 하고 소비도 하라"는 무제한적인 통화팽창 정책입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돈을 쓰기는 커녕 이자도 없는데 저축만 했습니다.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런 일본경제가 어제 금리를 올린 것입니다. 20여년 전인 1985년에는 미국과 유럽의 '압력'에 굴복해 엔/달러 환율을 절반 수준으로 내려야(엔화강세)했지만, 요즘에는 '글로벌 엔화 약세'를 '인위적'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미일 밀월'의 정치적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나오고 있습니다.

자, 일본이 금리를 소폭 인상했으니 우리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본의 금리인상이 계속된다면 엔화가 현재의 약세기조에서 탈피해 강세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자가 싼 일본돈'을 빌려 세계 주식시장에 투자(엔 캐리 트레이드)했던 돈이 빠져나갈 경우,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이 금리인상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는 우세합니다. 4월과 7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일본정부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는 추가 금리인상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이 경우에는 '엔화 약세'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별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어제의 일본의 금리인상 소식을 계기로 '일본경제의 지난 20여년'을 간단히 정리해보았습니다.
'부활'하는 일본경제, 항상 주시해야할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