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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물 존엄 - 빅터 프랭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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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이야기]
프로이트는 정신병이 사람의 무의식적 충동과 본능, 사회의 관습과 가치가 충돌하여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프랭클은 인간의 정서적인 건강은 본능의 만족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은 이기적인 욕망을 초월하며,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하는 잔인함이나 불행도 초월한다고 보았다.
그는 유대인, 엄격하고 자수성가 타입의 아버지와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동, 4살 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30년 비엔나 대학을 의학박사로 졸업하고 정신과 실무를 시작한다. 독일이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 후 탄압은 시작, 아름다운 간호사 마틸드 틸리를 깊이 사랑, 두 사람은 1941년 결혼했다. 아우스비츠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생과 사가 갈렸다. 독일 병정들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원고를 빼앗아 짓밟았으나 순순히 포기. 밤마다 작은 종잇조각에 원고를 보기 하는 데 매달렸다. 그는 아내를 생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상상하며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아낼 수 있다" 는 니체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내와 가족의 생사를 알길 없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다른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년 동안 상상초차 할 수 없는 온갖 잔인함과 모욕, 비안간적인 대우를 겪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진티부스에 걸렸지만 살아남았다. 매를 맞고 위협당하기는 다반사이고,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빵 껍질과 멀건 죽 한 사발로 연명하면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지만 최악의 인간 조건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삶의 의미를 결코 놓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사소한 기쁨을 위안으로 삼았다. 뜻하지 않은 친절, 해돋이의 아름다움, 봄이면 만발하는 나무의 화려함 등이 아직까지 그에게 허락된 기쁨이었다.
종전 후 그는 다시 그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기 전보다 훨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정신과 의사로사 환자를 정성껏 치료하였으며 "행복은 추구할 수 있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 도덕적인 옳은 결정,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으며 그렇게 살아가던 중 엘리라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 딸 하나를 낳고 50년 동안 헌신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22권의 책을 출판했다. 수용소에서 쓰던 원고를 '삶의 의미를 찾아서' 로 출판, 1,000만부가 팔렸다. 등산을 즐기며 9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한 번도 뒷걸음치지 않았다.
--- 존 매키인 . 마크 솔티의 '인격이 운명이다' 중에서 ---
'인격으로 운명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옮긴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존엄성에 깃들어 있다.'
그는 온갖 고통을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구원받고 사랑 속에 구원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극도의 위협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낸 위인을 기리고 깊이 존경하며.
'인격이 곧 운명이다' 에 동의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병이 사람의 무의식적 충동과 본능, 사회의 관습과 가치가 충돌하여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프랭클은 인간의 정서적인 건강은 본능의 만족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은 이기적인 욕망을 초월하며,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하는 잔인함이나 불행도 초월한다고 보았다.
그는 유대인, 엄격하고 자수성가 타입의 아버지와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신동, 4살 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30년 비엔나 대학을 의학박사로 졸업하고 정신과 실무를 시작한다. 독일이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 후 탄압은 시작, 아름다운 간호사 마틸드 틸리를 깊이 사랑, 두 사람은 1941년 결혼했다. 아우스비츠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생과 사가 갈렸다. 독일 병정들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원고를 빼앗아 짓밟았으나 순순히 포기. 밤마다 작은 종잇조각에 원고를 보기 하는 데 매달렸다. 그는 아내를 생각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상상하며 "살 이유가 있는 사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아낼 수 있다" 는 니체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내와 가족의 생사를 알길 없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다른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년 동안 상상초차 할 수 없는 온갖 잔인함과 모욕, 비안간적인 대우를 겪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발진티부스에 걸렸지만 살아남았다. 매를 맞고 위협당하기는 다반사이고,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빵 껍질과 멀건 죽 한 사발로 연명하면서 고된 노동을 해야 했지만 최악의 인간 조건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삶의 의미를 결코 놓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사소한 기쁨을 위안으로 삼았다. 뜻하지 않은 친절, 해돋이의 아름다움, 봄이면 만발하는 나무의 화려함 등이 아직까지 그에게 허락된 기쁨이었다.
종전 후 그는 다시 그 끔찍한 지옥을 경험하기 전보다 훨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정신과 의사로사 환자를 정성껏 치료하였으며 "행복은 추구할 수 있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 도덕적인 옳은 결정,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으며 그렇게 살아가던 중 엘리라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나 딸 하나를 낳고 50년 동안 헌신적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22권의 책을 출판했다. 수용소에서 쓰던 원고를 '삶의 의미를 찾아서' 로 출판, 1,000만부가 팔렸다. 등산을 즐기며 9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한 번도 뒷걸음치지 않았다.
--- 존 매키인 . 마크 솔티의 '인격이 운명이다' 중에서 ---
'인격으로 운명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옮긴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존엄성에 깃들어 있다.'
그는 온갖 고통을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참아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구원받고 사랑 속에 구원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극도의 위협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낸 위인을 기리고 깊이 존경하며.
'인격이 곧 운명이다' 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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