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경제를 읽는다 > 지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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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 경제노트, 2006.3.14)

지금은 죽고 없는 한 친구가 암 병동에서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죽음이 가까이 오자 예전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던 풍경이 매우 의미 깊고 신선하게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어렴풋이나마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인생이 영원하고 시간은 무한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산다.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의미있게 살자고 결심도 해보지만 실제로는 막연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기 십상이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시간이 나면 편의점에 들어간다. 꼭 물건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겨우 3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편의점에는 3천 품목이나 되는 상품이 반듯하게 진열되어 있다.

니시무라 아키라의 '퇴근 후 3시간' 중에서 (해바라기, 37p)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이에게는 순간순간들이 너무도 소중할 겁니다. 푸르른 하늘도, 산들 불어오는 바람도, 화단의 작은 꽃도. 그들과 만난 순간들을 절대 무심코 지나치지 못할 겁니다.

사실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우리가 마치 시간이 무한한듯 살아갑니다. 만나는 모든 것들을 무심히 흘려보냅니다.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가서도 물건만 사는 사람이 있고, 그 짧은 시간에 경제를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철저히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상품을 진열하는 편의점. 좁은 공간이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음료수가 중앙 진열대로 '진출'했는지, 어떤 악세사리가 눈에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눈여겨 본다면 바로 지금의 경제 흐름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고민해본다면 시대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강남역 앞 약속장소로 향하는 길. 어떤 업종이 새로 생겼는지, 어느 매장에 손님이 많은지... 그곳에도 내가 읽을 수 있는 경제가 있습니다.

순간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편의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그 짧은 순간에도 경제를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