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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 우리 밀 어린 싹
만일 지금 예수가 오신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똥짐을 지실 것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농업박물관
앞뜰에는 원두막에 물레방아까지 돌아간다
원두막 아래 채 다섯 평도 안 되는 밭에
무언가 심어져 있어서 파랬다
우리 밀, 원산지 : 소아시아 이란 파키스탄이라고 쓴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농업박물관 앞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우리 밀 어린싹을
하염없이 바라다보았다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밀
우리 밀, 내가 지나온 시절
똥짐 지던 그 시절이
미래가 되고 말았다
우리 밀, 아 오래 된 미래
나는 울었다
이문재 (1959~ )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제국호텔』, 산문집 『내가 만난 시와 시인』등 간행
농업박물관이라니. 이 시를 읽고 나는 무슨 서글픔으로 대평리 너른 들판에서 허수아비보다 더 느린 동작으로 벼를 베던 할아버지의 등을 본다. 그리고 스스로 벼를 태우는 이 시대 농민들의 울분을 본다. 현실의 논리가 ‘농업’을 배제하면, 그저, 배제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제 스스로 광합성을 못하고 제 스스로 빛깔을 내지 못하고, 박물관 진열등 아래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박물관에 갇혀 과거의 노동을 껴안은 채로 ‘우리 밀’의 오래 된 미래 속에서 오래도록 갇혀있어야 하는 건가.
흙을 밟은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나도 그 '배제'의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죄 짓지 않아도 죄스러운 일이 너무 많다. 문제의 시작은, '환기' 아니겠는가. 시는 정답을 제시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문제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존재해 오지 않았는가. 아, 시 속을 우려내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우리 밀 어린 싹'의 발그레한 눈동자, 어디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걸 눈물, 이라고 적는 대신에 씨알, 이라고 꾹꾹 눌러써본다.
- 우리 밀 어린 싹
만일 지금 예수가 오신다면
십자가가 아니라 똥짐을 지실 것이라는
권정생 선생의 글을 읽었다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지나다니는 농업박물관
앞뜰에는 원두막에 물레방아까지 돌아간다
원두막 아래 채 다섯 평도 안 되는 밭에
무언가 심어져 있어서 파랬다
우리 밀, 원산지 : 소아시아 이란 파키스탄이라고 쓴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농업박물관 앞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우리 밀 어린싹을
하염없이 바라다보았다
농업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밀
우리 밀, 내가 지나온 시절
똥짐 지던 그 시절이
미래가 되고 말았다
우리 밀, 아 오래 된 미래
나는 울었다
이문재 (1959~ )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제국호텔』, 산문집 『내가 만난 시와 시인』등 간행
농업박물관이라니. 이 시를 읽고 나는 무슨 서글픔으로 대평리 너른 들판에서 허수아비보다 더 느린 동작으로 벼를 베던 할아버지의 등을 본다. 그리고 스스로 벼를 태우는 이 시대 농민들의 울분을 본다. 현실의 논리가 ‘농업’을 배제하면, 그저, 배제당해야만 하는 것인가. 제 스스로 광합성을 못하고 제 스스로 빛깔을 내지 못하고, 박물관 진열등 아래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박물관에 갇혀 과거의 노동을 껴안은 채로 ‘우리 밀’의 오래 된 미래 속에서 오래도록 갇혀있어야 하는 건가.
흙을 밟은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나도 그 '배제'의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 죄 짓지 않아도 죄스러운 일이 너무 많다. 문제의 시작은, '환기' 아니겠는가. 시는 정답을 제시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문제를 던져주는 방식으로 존재해 오지 않았는가. 아, 시 속을 우려내고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우리 밀 어린 싹'의 발그레한 눈동자, 어디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걸 눈물, 이라고 적는 대신에 씨알, 이라고 꾹꾹 눌러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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