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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심리 사평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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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전남 광주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5월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한국의 연인들』『서울 세노야』『참 맑은 물살』, 장편동화 『아기 참새 찌꾸』, 동화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 기행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등 간행.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음.
시 제목: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툇마루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바짝 마른 감나무 가지마다 홍시가 주렁주렁 눈부셨다. 가지 너머로 갈라져 보이는 하늘도 시리도록 눈부셨다. 저만큼 아래 추수를 끝낸 다랑논도 아직 치우지 않은 허수아비와 더불어 눈부셨다. 꼬불꼬불 뱀처럼 기어가는 논길 따라 오토바이 한 대가 아슬아슬 내려가고 있었다. 딸래미를 보러 대처로 나가는 스님이었다. 돌아올 땐 오토바이 뒷시렁에 『선데이서울』을 꽂고 오리라. 그런 풍경마저 눈물 짠하도록 눈부셨다. 갓 스무살에 무엇을 알랴만, 모두가 나 때문이었다. 그 '나'는 뭐지? 그 '나'는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사랑 같은 거, 알기는 알았을까? 조국 같은 거, 알기나 알았을까?
그러다가 깜빡 졸았는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일어 손바닥만한 마당의 낙엽을 죄 훑어갔다. 그때, 문득 낡은 신문지가 솟아났다. 그때, 문득 지난해 신춘문예 시가 칠팔월 벼포기처럼 눈을 찔렀다. 「사평역에서」였다.
그 즉시 절방에 들어가 넘어가는 숨 참으며 시 한 편 후딱 썼다.
제목이 「유학사에서」였던가? 첫 줄이 “여자는 오지 않았다”라는 것만 정확히 기억한다. 참 오래된 시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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