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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심리 불이야 성령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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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입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서늘한 한기(寒氣)를 느끼게 합니다. 또 다시 비가 내릴듯이 잔뜩 찌프린 날씨는 따스한 봄 햇살을 가렸고 이것은 마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형편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가상승과 임금하락, 경기침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기업체의 부도 소식, 그리고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노숙자(露宿者)]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이야기 등등은 우리들의 마음에 더욱 한기를 느끼게 합니다.
점심식사후 쉬는 시간...
별로 반가운 소식이 없는 세상이지만 애써(?) 태연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공사장의 사람들. 그래도 변하지 않은(?) 담배인심에 하나씩 피워 물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들도 커지고 덩달아 웃음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바로 누군가가 불을 피웠던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태우면서 전해주는 나무토막의 희생적인 열기가 찌프린 날씨처럼 굳었던 마음들을 조금씩 녹여 주었고,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던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으게 된 것입니다.
‘불’이 있는 곳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쪽 저쪽 그나마 있었던 온기마저 식어가는 현실에서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새힘을 얻을 곳은 바로 [불이 있는 곳]입니다.
위대하신 사랑의 목자 예수님과 떨어지고, 사방에서 다가오는 유대인들의 모략과 로마제국의 종교적인 박해를 받으면서도 연약했던 제자들이 새힘을 얻고 재도약의 새출발을 할 수 있었던 근원도 마가 다락방에서 붙여진 불때문이였습니다. “불이야 성령의 불, 주님이 주신 성령의 불”. <오직 성령의 불>만이 새출발의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새출발 교회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전홍구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서늘한 한기(寒氣)를 느끼게 합니다. 또 다시 비가 내릴듯이 잔뜩 찌프린 날씨는 따스한 봄 햇살을 가렸고 이것은 마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의 형편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가상승과 임금하락, 경기침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기업체의 부도 소식, 그리고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노숙자(露宿者)]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이야기 등등은 우리들의 마음에 더욱 한기를 느끼게 합니다.
점심식사후 쉬는 시간...
별로 반가운 소식이 없는 세상이지만 애써(?) 태연한 웃음을 지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공사장의 사람들. 그래도 변하지 않은(?) 담배인심에 하나씩 피워 물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들도 커지고 덩달아 웃음소리도 높아졌습니다. 바로 누군가가 불을 피웠던 것입니다. 자기의 몸을 태우면서 전해주는 나무토막의 희생적인 열기가 찌프린 날씨처럼 굳었던 마음들을 조금씩 녹여 주었고, 삼삼오오 흩어져 있었던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으게 된 것입니다.
‘불’이 있는 곳에서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쪽 저쪽 그나마 있었던 온기마저 식어가는 현실에서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새힘을 얻을 곳은 바로 [불이 있는 곳]입니다.
위대하신 사랑의 목자 예수님과 떨어지고, 사방에서 다가오는 유대인들의 모략과 로마제국의 종교적인 박해를 받으면서도 연약했던 제자들이 새힘을 얻고 재도약의 새출발을 할 수 있었던 근원도 마가 다락방에서 붙여진 불때문이였습니다. “불이야 성령의 불, 주님이 주신 성령의 불”. <오직 성령의 불>만이 새출발의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새출발 교회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 전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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