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 | Home>커뮤니티>지식정보 |
철학심리 결혼 38 주년
페이지 정보
본문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도종환 ---
오늘은 저희들의 결혼 기념일이랍니다.
점심시간에는 출판사 하시는 교우 님의 사무실을 심방하고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덕수궁 나들이에 나서기로 했네요.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 것 같은데 그 날도 토요일,
지금 제가 일하는 사무실이 종각 YMCA 뒤편 태화빌딩인데
예식을 올렸던 종로예식장 옛 터(지금은 SK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고목나무 쉼터에서 잠시 옛날을 회상해 볼까 합니다.
제법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날씨였고, 어언 38년 전.
다이아 반지에 성장한 신부와 철없는 새 신랑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아도
크게 안도했던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아직은 가정을 꾸릴 대책이 없는 학생이었고
이렇다 할 진로며, 꿈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
다만 우리는 칠흑 같은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갈 짝을 만나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것.
신혼열차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은 깡마른 얼굴.
그 날 이후 저는 아내에게 할 말이 많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참고 견뎌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들 셋 낳아 모두 성가 시켜 착하고 어여쁘고 훌륭한 자부들과 손자들이 다섯이니
감사가 넘칩니다.
엊그제는 작심하고 윗어금니를 두 대나 뽑은 아비에게
치과치료를 서두르시라 저마다 전화를 해서 우리 내외를 감동시켰습니다.
돌아보면 잘못은 대부분 저에게 있었다 생각되고
참고 기다려 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네요.
가끔 TV에서라도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을 참지 못하는 가정 파탄 기사를 보노라면
우리의 인내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남은 날을 참으로 짧다 말하지만 아니네요.
여전히 넉넉히 남은 남아 있는 날들을 잘 압니다.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막내에게서 얻은 손자가 제일 먼저 인사를 합니다.
스스로 얼마 남지않은 금년 평점은 후하게 주기로 하였습니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입니다.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어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을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도종환 ---
오늘은 저희들의 결혼 기념일이랍니다.
점심시간에는 출판사 하시는 교우 님의 사무실을 심방하고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덕수궁 나들이에 나서기로 했네요.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 것 같은데 그 날도 토요일,
지금 제가 일하는 사무실이 종각 YMCA 뒤편 태화빌딩인데
예식을 올렸던 종로예식장 옛 터(지금은 SK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고목나무 쉼터에서 잠시 옛날을 회상해 볼까 합니다.
제법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날씨였고, 어언 38년 전.
다이아 반지에 성장한 신부와 철없는 새 신랑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아도
크게 안도했던 것으로 기억나는군요.
아직은 가정을 꾸릴 대책이 없는 학생이었고
이렇다 할 진로며, 꿈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
다만 우리는 칠흑 같은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갈 짝을 만나 힘을 합치기로 했다는 것.
신혼열차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은 깡마른 얼굴.
그 날 이후 저는 아내에게 할 말이 많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참고 견뎌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들 셋 낳아 모두 성가 시켜 착하고 어여쁘고 훌륭한 자부들과 손자들이 다섯이니
감사가 넘칩니다.
엊그제는 작심하고 윗어금니를 두 대나 뽑은 아비에게
치과치료를 서두르시라 저마다 전화를 해서 우리 내외를 감동시켰습니다.
돌아보면 잘못은 대부분 저에게 있었다 생각되고
참고 기다려 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네요.
가끔 TV에서라도 조금만 더 참으면 될 일을 참지 못하는 가정 파탄 기사를 보노라면
우리의 인내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남은 날을 참으로 짧다 말하지만 아니네요.
여전히 넉넉히 남은 남아 있는 날들을 잘 압니다.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막내에게서 얻은 손자가 제일 먼저 인사를 합니다.
스스로 얼마 남지않은 금년 평점은 후하게 주기로 하였습니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