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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수필 나는 졸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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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기박에 소질이 없는 사람도 썩 드믈 것이다.
바둑 장기 화투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학교다닐 적에 유행병처럼 번졌던 당구도 기껏해야 기본점수에 머물고 말았으니 천재적으로 소질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바둑은 말할 것도 없고 장기의 경우에는 그저 행마나 알 정도요, 그것도「馬」와「象」을 구분하게 된지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어깨 너머로 굽어보며 들은 이야기인즉 바둑이 천하를 한 반면(盤面)에 줄여 놓은 것이라면 장기 또한 초(楚) 한(漢)의 전장을 한 마당에 재현하는 것이라 한다.
포는 다리가 없으면 건너지 못하고 궁은 궁안을 벗어나지 못하며 차는 종횡무진이나 샛길로는 가지 못하는 등 모두가 제각기 행로가 정해져 있는 가운데 생긴 것부터가 왜소하고 가장 전방에 배열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졸이다. 궁을 지키는 친위대인 사나 말, 코끼리 전차 대포 등을 배면에 둘러두고 졸은 최전선에 나와 적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졸은 뛰어 넘지 못하고 샛길로도 가지 못하며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앞으로나 옆으로나 한 칸씩 밖에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쉽게 적의 밥이되며 그래서 차로 졸치기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졸을 좋아한다.
졸은 비록 그 모습이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앞으로 나가는 용기와 옆으로 비끼는 지혜는 있어도 뒤로 물러서는 비겁은 없다.
어느 때는 말과 상의 길을 막고 차 앞에 알 모습을 드러내 희생양이 되기도 하며 포가 넘어갈 징검다리 역할도 해낸다. 서둘러가는 법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졸. 때문에 졸에 밀리면 궁도 피할 길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졸인지도 모른다. 우선 작고 초라한 내 모습이 그러하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그러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그런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생활이란 적 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져서 용기와 지혜는 졸보다 적었을 망정 뒤로 물러서는 비겁만은 없이 살아왔다. 글을 쓴다고 문학의 대가가 된 것도 아니요 무엇을 합네하고 불혹의 후반까지 떠들고 다녔어도 무엇하나 볼만한 실적이 없다. 항상 남 앞에 노출되어서 풍우와 시석을 먼저 맞고 시달려온 경력만이 찢어진 이력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중학교 일학년 다니는 둘째 놈이 어렸을 적에 제법 걱정스럽게 이런 질문을 해온 적이 있다.
"아빠, 사람들이 아빠를 유명하다고 그러는데 어찌 자가용은 안타고 늘 버스만 타고 다니는가. 할아버지, 고모부, 외숙, 이모부 다 차가 있지 않은 게비"
물론 내가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졸인 나에게 차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판의 졸이 졸대로의 행로가 있듯이 나도 인생의 졸로서 내 사상과 내 진로가 있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대학생쯤 되고 세상을 좀 아는 나이가 되면 이렇게 말해 줄 생각이다.
"애비는 비록 자가용은 없이 살았다마는 교활하게 샛길로 가거나 비겁하게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바둑 장기 화투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학교다닐 적에 유행병처럼 번졌던 당구도 기껏해야 기본점수에 머물고 말았으니 천재적으로 소질이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바둑은 말할 것도 없고 장기의 경우에는 그저 행마나 알 정도요, 그것도「馬」와「象」을 구분하게 된지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어깨 너머로 굽어보며 들은 이야기인즉 바둑이 천하를 한 반면(盤面)에 줄여 놓은 것이라면 장기 또한 초(楚) 한(漢)의 전장을 한 마당에 재현하는 것이라 한다.
포는 다리가 없으면 건너지 못하고 궁은 궁안을 벗어나지 못하며 차는 종횡무진이나 샛길로는 가지 못하는 등 모두가 제각기 행로가 정해져 있는 가운데 생긴 것부터가 왜소하고 가장 전방에 배열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졸이다. 궁을 지키는 친위대인 사나 말, 코끼리 전차 대포 등을 배면에 둘러두고 졸은 최전선에 나와 적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졸은 뛰어 넘지 못하고 샛길로도 가지 못하며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앞으로나 옆으로나 한 칸씩 밖에 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쉽게 적의 밥이되며 그래서 차로 졸치기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졸을 좋아한다.
졸은 비록 그 모습이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앞으로 나가는 용기와 옆으로 비끼는 지혜는 있어도 뒤로 물러서는 비겁은 없다.
어느 때는 말과 상의 길을 막고 차 앞에 알 모습을 드러내 희생양이 되기도 하며 포가 넘어갈 징검다리 역할도 해낸다. 서둘러가는 법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도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졸. 때문에 졸에 밀리면 궁도 피할 길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졸인지도 모른다. 우선 작고 초라한 내 모습이 그러하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그러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그런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생활이란 적 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져서 용기와 지혜는 졸보다 적었을 망정 뒤로 물러서는 비겁만은 없이 살아왔다. 글을 쓴다고 문학의 대가가 된 것도 아니요 무엇을 합네하고 불혹의 후반까지 떠들고 다녔어도 무엇하나 볼만한 실적이 없다. 항상 남 앞에 노출되어서 풍우와 시석을 먼저 맞고 시달려온 경력만이 찢어진 이력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 중학교 일학년 다니는 둘째 놈이 어렸을 적에 제법 걱정스럽게 이런 질문을 해온 적이 있다.
"아빠, 사람들이 아빠를 유명하다고 그러는데 어찌 자가용은 안타고 늘 버스만 타고 다니는가. 할아버지, 고모부, 외숙, 이모부 다 차가 있지 않은 게비"
물론 내가 대답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졸인 나에게 차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기판의 졸이 졸대로의 행로가 있듯이 나도 인생의 졸로서 내 사상과 내 진로가 있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대학생쯤 되고 세상을 좀 아는 나이가 되면 이렇게 말해 줄 생각이다.
"애비는 비록 자가용은 없이 살았다마는 교활하게 샛길로 가거나 비겁하게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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