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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실
댓글 0건 조회 1,051회 작성일 02-07-1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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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문화를 일궈 나가는 것을 보면 여러가지 느낌이 교차한다.
지나친 자유로움이 무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밝고 적극적이고 화려하기까지 한 그 모습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건 젊음은 늘 뜨겁고 자극적이었다.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던 시절, 그 혼돈과 척박함 속에서도 젊음은 나름의 향기들을 피워올렸다. 어쩌면 그 무렵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젊은이들보다 더 간절하게 무엇인가에 목말라 하고 매달리지 않았나 싶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삶을 메마르지 않게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였기 때문이다.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온 학교들에서는 연극이나 예술제 같은 행사들이 자주 열렸다.천막으로 된 막사가 당시 학교들의 교사 였기 때문에 천막집들을 예쁘게 꾸며서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고, 더러는 극장들을 빌려서 제법 그럴듯한 예술제를 열기도 했다. 부산극장이나 동아극장처럼 커닿란 극장들이 자주 대관되었다.
경기고등학교에서도 부산극장을 빌려서 예술제를 열었다.음악,연극,시낭송의 밤 등등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가야금의 유래'라는 연극이었다.
음악과 연극이 함께 어울어진 극이었는데,적어도 연극을 보는 동안은 전쟁이나 피난지의 설움 따위를 말끔히 잊게 해주었다.당시 연극반에는 이낙훈 씨를 비롯하여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음악제 행사에는 그 무렵 제법 이름을 날렸떤 경기 고등학교의 밴드부 연주가 한몫을 단단히 하였다.
예술제는 학교의 행사였지만 학생들만의 행사로 국한되지는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하여 부산시 전체의 행사로 변신하곤 했다.
피난도시 부산은 그래도 그 무렵 오히려 가장 활발하게 살아 있는 문화도시가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변론반이라는 모임에 속해 있었다. 요즘의 웅변서클 정도가 될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경기고등학교 변론반의 반원이었다. 전쟁이 터지고 피난지 부산에서 경기고등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변론반은 흔적이 없었다.
물론 다른 모임들도 마찬가지 였다.나는 옛 변론반의 친구들을 모아서 새로운 변론반을 구성하였다.
새모임은 예전처럼 변론공부도 하였지만 여러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공부하였다.
전쟁의 혼란이 거듭되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던 까닭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는 해마다 웅변대회를 개최하였는데, 피난지 부산에서도 그 행사는 이어졌다. 경기고등학교의 우리 변론반에서도 대표를 선발하여 파견하기로 했다. 그때 대표로는 후에 장관을 지낸 정근모가 선발되었다.
그는 나의 3년 후배였다. 그의 웅변은 선배들이 모두 경탄할 정도로 뛰어났다.
본대회는 부산 광복동의 동아극장에서 열렸다.심사위원들은 시인 모윤숙씨와 당시 국방부정훈국장 이선근 씨 등이었다.
그 대회에서 정근모는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일등상을 맡아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등수에도 들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들 모두는 뜻밖의 결과에 화가 나있었다. 1년 위인 대대장 선배가 참지 못하고 일어나 가서 따져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대 뒤의 대기실 앞으로 가서 심사위원들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모윤숙 씨가 문 앞으로 나왔다. 대대장은 다짜고짜 따졌다.
"경기고등학교 대표가 뭘 잘못해서 등수에 못 든 겁니까?" 그러나 모윤숙 씨의 대꾸는 단 한마디였다. "뭐예요?" 그리고는 그냥 사라져 버렸다.
참 멋쩍고 머쓱한 장면이었다. 화가 잔뜩 난 우리는 그 날 저녁 송도 앞바다로
몰려가 마산 드라이진을 돌렸다.
당시에는 마산 드라이진이라는 국산술이 요즘의 소주처럼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물론 품질은 엉망이었고, 그걸 마시고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떠돌 만큼 불안한
술이었지만, 그래도 그게 있었기에 넘쳐나는 젊음을, 한을 조금씩은 추스릴 수
있었다.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따금 친구들과
어울려 송도 바닷가를 찾아 그곳에서 마산 드라이진을 맣시며 울분을 토하고 장래의 꿈을 떠들어 대곤 했다.
영화감상은 그 즈음에도 젊은이들의 중요한 관심거리였다. 부산의 극장가에는
명배우들이 출연한 좋은 영화들이 꽤 많이 들어왔다. '마농레스코', '애수'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내 주변의 친구들은 멋진 남자배우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로버트 테일러, 클라크 케이블, 몽고메리 크리프트 등이 특히 인기가 좋았다. 모두들 미남배우였지만 내게는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인상 깊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열연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딘지 모르게 얼뜨기 같은 정감이 묻어 있었다.
그 무렵 내가 감동적으로 본 영화는 '스카라무슈'라는 미국영화였다. 역시 그
시절 젊은이들의 우상 중 한 명이었던 스튜어드 그랜저가 주연한 검술영화였다
그 영화의 구성은 아주 단순했다. 스튜어드 그랜저는 칼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검술의 문외한이었다. 그에게는 검술의 고수인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더 뛰어난 검객에게 당해서 죽는다. 그 장면을 목격한 스튜어드 그랜저는 온 몸을 바쳐 검술을 연마한다. 그리고 마침내 친구의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다. 그 영화를 보고서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내 또래의 많은 젊은이들 역시 그랬다. 남자들의 우정이라는 주제가 그처럼 강한 인사을 남겼던 것은 아마 그 시절의 어수선함 덕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서울로 돌아온 후로도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그 무렵 서울에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극장들이 몇 개 있었다. 문화적인 메카라고까지 할 만했다. 시설이 뛰어나거나 새 영화를 빨리빨리 개봉해서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는 좋은 영화만을 골라서 상영하기 때문이었다. 돈암동의 돈암교 근처에 있었던 동도극장, 서대문의 지금 문화일보사 자리에 있었던 동양극장, 을지로의 계림극장 등이었다. 그 극장들의 영화 스크린에서는 필름이 낡아 언제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시설이나 여건으로 따지자면 영락없는 삼류극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건, 화면 위로 아무리 비가 내려도, 좌석이 아무리 비좁고 불편해도, 그 영화관들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마음은 한없이 부유해지곤 했다.
서울에 와서 본 것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영화는 동도극장에서 상영된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스파르타쿠스'였다.
스파르타쿠스는 약 천오백 년 전에 살았던 실제 인물이다.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부패한 귀족들의 눈요기감이 되기 위하여 동료들과 결투하고 그들을 죽여야 했던 노예 검투사였다. 그는 동료들을 규합하여 그 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난'
을 일으킨다. 시절이 바뀌었으니 이제 '난'이라는 표현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의거라든지 봉기라든가 하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념은 존중받을 만한 것이었으니까.
영화는 그의 의로운 삶과 투쟁과 죽음을 그리고 있었다.
일차 봉기가 성공하여 로마의 귀족들을 철창 속으로 집어넣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나타난다. 스파르타쿠스의 부하들은 살찐 귀족들에게 칼과 창을 들려 결투장으로 내몬다. 자신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식으로 결투와 죽음을 강요하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스파르타쿠스가 그들을 만류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저들에게 이런 짓을 강요한다면 저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말이었다.
그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또 여럿 있었다. 철망으로 된 지붕 위에서 노예들에게 음식을 던져 주는 장면, 노예들에 대한 학대를 처절하게 묘사한 눈물겨운 장면. 그런 영화를 진지한 마음으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진리를 적어도 한 번쯤은
가슴속에 새겨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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