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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수필 고향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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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지금 42세.
고향은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 337번지이다.
시목리 라는 명칭은 원래 속칭 갬밭이라는 동네 이름을 시대적 변천에 맞게
고치다보니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갬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중에는 더 많다. 갬밭이라는 이름도 본래는 "감밭"이다. 원래 그 곳이 옜날에는 감나무가 많고 거의가 밭이라 동네 명칭이 윗동네 이름은 윗갬밭이되고
아랫동네 이름은 아래갬밭의 명칭이 붙게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래갬밭 이라는 동네인데 내가 어렸을때의 기억으로는 감밭은 그리 많지 않았고 집집마다 몇구루씩 아름드리 정도 대는 크고 굵직한
감나무들이 곳곳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그곳에 많은 원두막이 세워지고 원두막을 내집처럼 살던 기억이 많이난다.
그 곳에는 의외로 참외 농사가 잘되어 참외를 많이 심고 농사를 보리와 참외,수박 정도로 했던것으로 기억이난다.참외 농사가 잘 되다보니 동네 누구집이라도 가면 참외 정도는 실컷 배가터지도록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창 어린 나이에는 재미삼아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집 참외서리, 누구네집 수박서리 등등 지금 시대에는 꿈도 꿀수없는 그런 재미도 있었다.
지금 시대에 그런 서리를 했다간 아마도 구치소에서 꽤나 오래살고 참외 하나 서리하고 밭떼기로 물어줄 것이다. 지금 같은 세상에 상상도 하지 못할 일 이었지만 그 때는 누구집 이라도 그런것을 다 이해했고 재미있는것은 자기집에서 짓는 농사거리도 서리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 그게 놀이 이기도하고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누구라도 그런 놀이를 하면 큰 일 나니 하지 말아야 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고향이 여름만 대면 더욱 가보고 싶고 더욱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동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금강은 어릴적 물놀이의 장소였고 금강을 가로 질러 수영하면서 조개와 다슬기를 잡던 기억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이 시려 오도록 미어지게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에 재학 중일때 처음으로 고향땅을 지나는 우리나라 역사상 경인고속도로 다음의 고속도로가 생겼는데
그 고속도로가 서울 부산을 오고가는 경부고속도로이다.국민학교 1학년때 처음 공사가 시작되어 3학년 끝날 무렵쯤 공사가 완공되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첫 개통식 행사를 하는 관계로 그 곳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우리는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쁨의 환영대회를 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대청댐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고, 청주 대전간 국도 확장과 포장으로 많은 변화를 거듭 했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푸근함과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내마음의 어머니이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고향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아직도 고향이 이 내마음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어릴적 빡빡머리 꼬마 친구들의 병정놀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속도로로 2시간 정도면 달려 가는 고향이, 더운 여름 참외와 수박으로 씻지않은 과일을 바지 엉덩이쪽에 쓱쓱 문질러 먹었던 그 곳으로 몸 보다 마음이 먼져 달려가게 한다.
고향은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시목리 337번지이다.
시목리 라는 명칭은 원래 속칭 갬밭이라는 동네 이름을 시대적 변천에 맞게
고치다보니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갬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고향 사람들중에는 더 많다. 갬밭이라는 이름도 본래는 "감밭"이다. 원래 그 곳이 옜날에는 감나무가 많고 거의가 밭이라 동네 명칭이 윗동네 이름은 윗갬밭이되고
아랫동네 이름은 아래갬밭의 명칭이 붙게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래갬밭 이라는 동네인데 내가 어렸을때의 기억으로는 감밭은 그리 많지 않았고 집집마다 몇구루씩 아름드리 정도 대는 크고 굵직한
감나무들이 곳곳에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여름철에는 그곳에 많은 원두막이 세워지고 원두막을 내집처럼 살던 기억이 많이난다.
그 곳에는 의외로 참외 농사가 잘되어 참외를 많이 심고 농사를 보리와 참외,수박 정도로 했던것으로 기억이난다.참외 농사가 잘 되다보니 동네 누구집이라도 가면 참외 정도는 실컷 배가터지도록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창 어린 나이에는 재미삼아 아이들끼리 모여 누구네집 참외서리, 누구네집 수박서리 등등 지금 시대에는 꿈도 꿀수없는 그런 재미도 있었다.
지금 시대에 그런 서리를 했다간 아마도 구치소에서 꽤나 오래살고 참외 하나 서리하고 밭떼기로 물어줄 것이다. 지금 같은 세상에 상상도 하지 못할 일 이었지만 그 때는 누구집 이라도 그런것을 다 이해했고 재미있는것은 자기집에서 짓는 농사거리도 서리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 그게 놀이 이기도하고 재미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누구라도 그런 놀이를 하면 큰 일 나니 하지 말아야 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 고향이 여름만 대면 더욱 가보고 싶고 더욱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동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금강은 어릴적 물놀이의 장소였고 금강을 가로 질러 수영하면서 조개와 다슬기를 잡던 기억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이 시려 오도록 미어지게 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당시로는 국민학교에 재학 중일때 처음으로 고향땅을 지나는 우리나라 역사상 경인고속도로 다음의 고속도로가 생겼는데
그 고속도로가 서울 부산을 오고가는 경부고속도로이다.국민학교 1학년때 처음 공사가 시작되어 3학년 끝날 무렵쯤 공사가 완공되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첫 개통식 행사를 하는 관계로 그 곳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우리는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기쁨의 환영대회를 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대청댐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고, 청주 대전간 국도 확장과 포장으로 많은 변화를 거듭 했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푸근함과 그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내마음의 어머니이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고향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아직도 고향이 이 내마음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어릴적 빡빡머리 꼬마 친구들의 병정놀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속도로로 2시간 정도면 달려 가는 고향이, 더운 여름 참외와 수박으로 씻지않은 과일을 바지 엉덩이쪽에 쓱쓱 문질러 먹었던 그 곳으로 몸 보다 마음이 먼져 달려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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