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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패러디 시대
[뉴스메이커 2004.07.23 15:17:14]
비틀자, 뒤집자, 튀기자"정치계 단신입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유시민 의원,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모두 단신입니다. 키가 작습니다. 진짜루...."(헤딩라인뉴스) "요즘 인터넷에 각종 음란-포르노 메일이 무차별하게 쏟아져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음란메일 보내신 분들.... 자~알 보고 있습니다."(언저리뉴스) 뉴스도, 광고도, 정치도 온통 '꽈배기' 세상이다. 비틀고 뒤집고 튀겨내는 것이 속성인 패러디가 온 나라를 지배한다. 패러디 세상에선 대통령도 발가벗겨지고 패러디 포스터 한 장에 청와대 직원들이 해고당했다. 패러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두 개 인용하지 않고서는 직장, 동창회는 물론 가족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울적한 마음을 웃음으로 달래려고 코미디프로그램을 봐도 패러디를 이해 못하면 웃기조차 힘들 정도다. 정부기관에서 패러디작품 콘테스트를 열기도 하고 방송-광고-영화 등 모든 미디어가 패러디란 바다에 빠져 있다. 물론 패러디가 21세기에 등장한 '신인'은 아니다.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어인 '노래(ode)를 따라하다(paral)'가 어원이며 19세기까지만 해도 원작에 해학적 요소를 가미해 개작한 문학과 음악의 기법으로만 알려졌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역시 중세 기사들을 패러디한 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원본에 유머를 가미해 변형하면 넓은 의미의 패러디라고 한다.
인터넷에 '패러디'란 단어를 치기만 해도 관련 사이트가 수백 개씩 줄줄이 뜬다. 패러디문화의 진원지라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를 비롯, 라이브이즈닷컴(liveis.com), 웃긴대학(humoruniv.com), 좋은나라닷컴(okjoa.com), 미디어몹(mediamob.co.kr) 등 인터넷에는 패러디공장이 풀가동 중이다. 정치는 물론 국민연금 등 경제, 만두파동 등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패러디해버려 가히 대한민국은 패러디공화국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문학성이나 미술적 재능, 혹은 특별한 장비를 갖춘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러디가 이제는 대중적인 놀이문화가 되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그동안 댓글 등으로 문자로 의사를 표현하던 네티즌들이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의 대중화로 이미지 합성, 동영상 제작 등 시각효과를 극대화한 패러디로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패러디의 순기능은 답답한 세상에서 웃음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권위 있는 사람, 얄미운 대상이나 딱딱하고 어려운 쟁점을 뒤집거나 양념쳐서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핵심을 부각시켜 비판적 시각을 길러주기도 한다. 특히 그동안 시사에 무관심하던 신세대들이 이런 패러디문화로 인해 정치-경제에 관심과 재미를 느끼게 됐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가 '가면 광고 콘테스트를 열었을 때 뽑힌 당선작들을 보자 .
'국민카드-같이 갚으실래요?' '당신의 빚을 보여주세요-삼성카드' '열심히 빚진 당신, 떠나라' '내게 빚을 주는 나의 LG카드야' '담보보증없이 빌려드림. 갚을 때 피마르게 해드림. 신체포기각서 쓰게 해드림. 드림드림드림 돈패스'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남발하고 무조건 카드를 써서 능력을 과시하라고 광고를 해댄 카드회사들에 대한 패러디는 그 기발함에 놀라면서 반성도 하게 했다. 대우증권의 김정환 연구원이 지난해 밝힌 한국 증시의 현 주소도 그렇다. 해도해'도' 너무 하는'군' 여기서 더 떨어지면 어쩌'리'.
패러디엔 성역이 없다이제 패러디엔 성역이 없다. 대통령선거과 탄핵, 총선 무렵에 거의 폭발적으로 숱한 패러디 작품이 쏟아졌지만 정치는 물론 에로영화 등 저급한 문화부터 무용, 연극 등 고급문화에도 패러디가 주류로 떠올랐다.
미국 〈타임〉지는 한쪽은 맞아 멍든 눈, 한쪽은 여성에게 키스를 받아 립스틱 자국이 있는 모습의 부시 대통령 패러디 사진을 표지로 다루며 그에 관한 찬반시각을 다루기도 했다. 노벨상이 발표될 무렵이면 미국 화학유머잡지는 이그노벨상의 수상자를 발표한다. 이그노벨이란 비열하다는 뜻의 이그노블과 노벨을 합친 조어.
우아한 고전발레에도 패러디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120년이 넘도록 가늘가늘한 여성 발레리나가 추어왔던 백조의 춤을 깃털달린 바지를 입은 남성 백조가 추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전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마크 에츠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대머리 백조들이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춤을 춘다. 고상한 배역도 모두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천박한 애인을 데리고 나타나는 초라한 왕자, 관능적인 왕비, 동성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패션디자이너 이브생로랑은 쿠르베의 〈잠자는 여인〉과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패러디해 에로틱한 패션광고를 만들었다. 〈풀밭 위의 식사〉의 경우 남성들은 정장차림으로 앉아 있고 창녀로 짐작되는 여자들은 옷을 벗고 누워 있는 그림. 그러나 이브생로랑의 광고에서는 여성은 옷을 입고 있고 발가벗은 남성들이 나른한 눈빛으로 누워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고전작품들을 패러디해 내재되어 있는 철학적 진지함과 예술성을 유머와 아이러니로 가볍게 재해석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패러디의 귀재들은 명품도 뒤집어놓는다. 가질 수 없으니 갖고 노는 것. '그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란 카피로 유명한 빈폴(BEAN POLE)은 '그의 구루마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며 빈곤(BEAN GONE)으로 바뀌었다. 스포츠브랜드 푸마(PUMA)는 주인공이 '볶은머리'를 하면 '파마', 당구를 하면 '다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조지는 얼마니', 우산이 그려진 아놀드 파머는 '오늘도 파라솔', 프라다(PRADA)는 '9RADA'란 짝퉁을 갖고 있다. 뉴스도 패러디 열풍이 분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언저리 뉴스 코너가 인기를 끈 후 최근엔 〈시사투나잇〉이란 시사프로그램에서 '헤딩라인 뉴스'란 패러디 뉴스 코너가 등장해 화제다. 이 뉴스에서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며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현장이 있어 긴급 출동해보았다'고 호들갑을 떤 후 식당을 찾아가 "체중이나 식성에 상관없이 똑같은 크기의 비빔밥 그릇을 내놓은 무책임한 식당을 고발한다'고 해 웃음을 떠뜨리게 한다.
거리에도 온통 패러디 간판이 넘쳐난다. 코스닥을 흉내낸 치킨집 '코스닭'과 '위풍닭닭' , 맥도날드를 패러디한 떡볶이집 '떡도날드' 등은 애교스럽다. 조개구이집이 한창 유행할 땐 '불타는 조개' '오빠 나 조개예요' '조개와 숯 사이' 등 기발한 상호가 많았다. 하도 '텔레비전에 소개된 맛집'이란 안내문을 써놓은 식당이 많으니 아예 '텔레비전에 절대 안 나온 집'이란 역설적 간판을 내건 집도 있다. 보신탕 집이다.
그러나 역시 패러디의 왕국은 에로영화 제목과 인터넷의 아이디들이다. 과거에도 '젖소부인'과 함께 〈만두부인 속터졌네〉 〈냄비부인 뚜껑 열렸네〉 〈연필부인 흑심 품었네〉 등 부인 시리즈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불후의 명작〉이란 영화에서 에로영화 감독으로 출연한 박중훈은 극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패러디한 〈마님 사정 볼 것 없다〉를 찍으며 주변에서 〈박하사탕〉을 패러디한 〈박아사랑〉을 찍을 것을 권유받기도 한다.
귀여운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는 〈니 몸을 찾아서〉 〈니 이모를 찾아서〉로, 스님들이 주인공인 〈달마야 놀자〉는 〈달마야 하자〉 〈달마다 하자〉 등으로, 또 〈가을동화〉는 〈가을동거〉 〈살인의 추억〉은 〈삽입의 추억〉 등 다소 부끄럽고 저질스러운 제목으로 패러디되었다. 왜 꼬고 비틀까아무리 아이디어와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패러디가 왜 그렇게 곳곳에서 봇물을 이룰까. 그리고 그 패러디들이 유쾌하고 시원하고 참신하기보다 갈수록 뒤틀리고 아프고 무섭게 변하는 걸까. 왜 점점 국민도 나라도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가는 것일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는 "내제된 불만을 대놓고 직설화법으로 표현하기 힘들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뒤틀어서 하는 것이 패러디"라면서 "그만큼 국민들이 억울하고 답답하고 불안과 욕구불만이 많다는 의미"라고 분석한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도 "패러디는 억압된 상태에서 익살과 풍자 등으로 법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놓고 비판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라며 "코드 안 맞으면 가만 있으라고 하는 참여정부 시대에 코드 안 맞는 이들이 찾는 탈출구이자 반항의 표시"라고 주장한다.
그전에는 구시렁거리거나 술안줏감으로 자근자근 씹어대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젠 모두 비평가이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미디어 시대에 태어나 텔레비전,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등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세대들이 미디어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하고 그 기능에 역습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패러디한 포스터의 작가이며 패러디만화 〈대선자객〉으로 유명해진 신규용씨는 자신이 패러디 세계에 입문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화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비를 걸고 싶고 싸움이 될 리 없지만 타이슨이 귀를 물어뜯는 심정으로 악으로 깡으로라도 달려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처럼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입은 상처의 10분의 1이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결국 난 인터넷이란 경기장에서 '정치패러디'란 종목으로 그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패러디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다. 장애인-노인-여성 등 약자들은 우스갯감으로 만들어 놀리지 말아야 하고 뒤집고 비틀되 목은 졸라 죽이지는 말아야 한다. 이번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패러디가 문제가 된 것은 주인공이 박근혜 의원이란 여성이었고, 평소엔 민원에 그토록 늑장을 부리던 청와대 인터넷 관리자가 그 포스터가 올라온 지 2시간 만에 자신의 근무처를 망각하고 재빠르게 초기화면으로 옮기는 민첩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즐겁고 상쾌하고 위트 넘치는 진짜 패러디를 보고 싶다.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뉴스메이커 2004.07.23 15:17:14]
비틀자, 뒤집자, 튀기자"정치계 단신입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유시민 의원,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모두 단신입니다. 키가 작습니다. 진짜루...."(헤딩라인뉴스) "요즘 인터넷에 각종 음란-포르노 메일이 무차별하게 쏟아져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음란메일 보내신 분들.... 자~알 보고 있습니다."(언저리뉴스) 뉴스도, 광고도, 정치도 온통 '꽈배기' 세상이다. 비틀고 뒤집고 튀겨내는 것이 속성인 패러디가 온 나라를 지배한다. 패러디 세상에선 대통령도 발가벗겨지고 패러디 포스터 한 장에 청와대 직원들이 해고당했다. 패러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한두 개 인용하지 않고서는 직장, 동창회는 물론 가족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울적한 마음을 웃음으로 달래려고 코미디프로그램을 봐도 패러디를 이해 못하면 웃기조차 힘들 정도다. 정부기관에서 패러디작품 콘테스트를 열기도 하고 방송-광고-영화 등 모든 미디어가 패러디란 바다에 빠져 있다. 물론 패러디가 21세기에 등장한 '신인'은 아니다.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어인 '노래(ode)를 따라하다(paral)'가 어원이며 19세기까지만 해도 원작에 해학적 요소를 가미해 개작한 문학과 음악의 기법으로만 알려졌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역시 중세 기사들을 패러디한 문학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원본에 유머를 가미해 변형하면 넓은 의미의 패러디라고 한다.
인터넷에 '패러디'란 단어를 치기만 해도 관련 사이트가 수백 개씩 줄줄이 뜬다. 패러디문화의 진원지라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com)를 비롯, 라이브이즈닷컴(liveis.com), 웃긴대학(humoruniv.com), 좋은나라닷컴(okjoa.com), 미디어몹(mediamob.co.kr) 등 인터넷에는 패러디공장이 풀가동 중이다. 정치는 물론 국민연금 등 경제, 만두파동 등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주알고주알 다 패러디해버려 가히 대한민국은 패러디공화국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문학성이나 미술적 재능, 혹은 특별한 장비를 갖춘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러디가 이제는 대중적인 놀이문화가 되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그동안 댓글 등으로 문자로 의사를 표현하던 네티즌들이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의 대중화로 이미지 합성, 동영상 제작 등 시각효과를 극대화한 패러디로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패러디의 순기능은 답답한 세상에서 웃음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권위 있는 사람, 얄미운 대상이나 딱딱하고 어려운 쟁점을 뒤집거나 양념쳐서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핵심을 부각시켜 비판적 시각을 길러주기도 한다. 특히 그동안 시사에 무관심하던 신세대들이 이런 패러디문화로 인해 정치-경제에 관심과 재미를 느끼게 됐다. 지난해 한 시민단체가 '가면 광고 콘테스트를 열었을 때 뽑힌 당선작들을 보자 .
'국민카드-같이 갚으실래요?' '당신의 빚을 보여주세요-삼성카드' '열심히 빚진 당신, 떠나라' '내게 빚을 주는 나의 LG카드야' '담보보증없이 빌려드림. 갚을 때 피마르게 해드림. 신체포기각서 쓰게 해드림. 드림드림드림 돈패스'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남발하고 무조건 카드를 써서 능력을 과시하라고 광고를 해댄 카드회사들에 대한 패러디는 그 기발함에 놀라면서 반성도 하게 했다. 대우증권의 김정환 연구원이 지난해 밝힌 한국 증시의 현 주소도 그렇다. 해도해'도' 너무 하는'군' 여기서 더 떨어지면 어쩌'리'.
패러디엔 성역이 없다이제 패러디엔 성역이 없다. 대통령선거과 탄핵, 총선 무렵에 거의 폭발적으로 숱한 패러디 작품이 쏟아졌지만 정치는 물론 에로영화 등 저급한 문화부터 무용, 연극 등 고급문화에도 패러디가 주류로 떠올랐다.
미국 〈타임〉지는 한쪽은 맞아 멍든 눈, 한쪽은 여성에게 키스를 받아 립스틱 자국이 있는 모습의 부시 대통령 패러디 사진을 표지로 다루며 그에 관한 찬반시각을 다루기도 했다. 노벨상이 발표될 무렵이면 미국 화학유머잡지는 이그노벨상의 수상자를 발표한다. 이그노벨이란 비열하다는 뜻의 이그노블과 노벨을 합친 조어.
우아한 고전발레에도 패러디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120년이 넘도록 가늘가늘한 여성 발레리나가 추어왔던 백조의 춤을 깃털달린 바지를 입은 남성 백조가 추는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전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다. 마크 에츠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대머리 백조들이 토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춤을 춘다. 고상한 배역도 모두 우스꽝스럽게 비틀어 천박한 애인을 데리고 나타나는 초라한 왕자, 관능적인 왕비, 동성애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패션디자이너 이브생로랑은 쿠르베의 〈잠자는 여인〉과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패러디해 에로틱한 패션광고를 만들었다. 〈풀밭 위의 식사〉의 경우 남성들은 정장차림으로 앉아 있고 창녀로 짐작되는 여자들은 옷을 벗고 누워 있는 그림. 그러나 이브생로랑의 광고에서는 여성은 옷을 입고 있고 발가벗은 남성들이 나른한 눈빛으로 누워 있다. 우아하고 고상한 고전작품들을 패러디해 내재되어 있는 철학적 진지함과 예술성을 유머와 아이러니로 가볍게 재해석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패러디의 귀재들은 명품도 뒤집어놓는다. 가질 수 없으니 갖고 노는 것. '그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란 카피로 유명한 빈폴(BEAN POLE)은 '그의 구루마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며 빈곤(BEAN GONE)으로 바뀌었다. 스포츠브랜드 푸마(PUMA)는 주인공이 '볶은머리'를 하면 '파마', 당구를 하면 '다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조지는 얼마니', 우산이 그려진 아놀드 파머는 '오늘도 파라솔', 프라다(PRADA)는 '9RADA'란 짝퉁을 갖고 있다. 뉴스도 패러디 열풍이 분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언저리 뉴스 코너가 인기를 끈 후 최근엔 〈시사투나잇〉이란 시사프로그램에서 '헤딩라인 뉴스'란 패러디 뉴스 코너가 등장해 화제다. 이 뉴스에서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며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현장이 있어 긴급 출동해보았다'고 호들갑을 떤 후 식당을 찾아가 "체중이나 식성에 상관없이 똑같은 크기의 비빔밥 그릇을 내놓은 무책임한 식당을 고발한다'고 해 웃음을 떠뜨리게 한다.
거리에도 온통 패러디 간판이 넘쳐난다. 코스닥을 흉내낸 치킨집 '코스닭'과 '위풍닭닭' , 맥도날드를 패러디한 떡볶이집 '떡도날드' 등은 애교스럽다. 조개구이집이 한창 유행할 땐 '불타는 조개' '오빠 나 조개예요' '조개와 숯 사이' 등 기발한 상호가 많았다. 하도 '텔레비전에 소개된 맛집'이란 안내문을 써놓은 식당이 많으니 아예 '텔레비전에 절대 안 나온 집'이란 역설적 간판을 내건 집도 있다. 보신탕 집이다.
그러나 역시 패러디의 왕국은 에로영화 제목과 인터넷의 아이디들이다. 과거에도 '젖소부인'과 함께 〈만두부인 속터졌네〉 〈냄비부인 뚜껑 열렸네〉 〈연필부인 흑심 품었네〉 등 부인 시리즈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불후의 명작〉이란 영화에서 에로영화 감독으로 출연한 박중훈은 극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패러디한 〈마님 사정 볼 것 없다〉를 찍으며 주변에서 〈박하사탕〉을 패러디한 〈박아사랑〉을 찍을 것을 권유받기도 한다.
귀여운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는 〈니 몸을 찾아서〉 〈니 이모를 찾아서〉로, 스님들이 주인공인 〈달마야 놀자〉는 〈달마야 하자〉 〈달마다 하자〉 등으로, 또 〈가을동화〉는 〈가을동거〉 〈살인의 추억〉은 〈삽입의 추억〉 등 다소 부끄럽고 저질스러운 제목으로 패러디되었다. 왜 꼬고 비틀까아무리 아이디어와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패러디가 왜 그렇게 곳곳에서 봇물을 이룰까. 그리고 그 패러디들이 유쾌하고 시원하고 참신하기보다 갈수록 뒤틀리고 아프고 무섭게 변하는 걸까. 왜 점점 국민도 나라도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가는 것일까.
신경정신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는 "내제된 불만을 대놓고 직설화법으로 표현하기 힘들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회적으로, 뒤틀어서 하는 것이 패러디"라면서 "그만큼 국민들이 억울하고 답답하고 불안과 욕구불만이 많다는 의미"라고 분석한다. 사회심리학자 최창호 박사도 "패러디는 억압된 상태에서 익살과 풍자 등으로 법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놓고 비판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라며 "코드 안 맞으면 가만 있으라고 하는 참여정부 시대에 코드 안 맞는 이들이 찾는 탈출구이자 반항의 표시"라고 주장한다.
그전에는 구시렁거리거나 술안줏감으로 자근자근 씹어대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젠 모두 비평가이자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미디어 시대에 태어나 텔레비전, 컴퓨터, 디지털 카메라 등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세대들이 미디어의 권위에 도전하기도 하고 그 기능에 역습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패러디한 포스터의 작가이며 패러디만화 〈대선자객〉으로 유명해진 신규용씨는 자신이 패러디 세계에 입문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라 화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비를 걸고 싶고 싸움이 될 리 없지만 타이슨이 귀를 물어뜯는 심정으로 악으로 깡으로라도 달려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처럼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입은 상처의 10분의 1이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결국 난 인터넷이란 경기장에서 '정치패러디'란 종목으로 그들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패러디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다. 장애인-노인-여성 등 약자들은 우스갯감으로 만들어 놀리지 말아야 하고 뒤집고 비틀되 목은 졸라 죽이지는 말아야 한다. 이번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패러디가 문제가 된 것은 주인공이 박근혜 의원이란 여성이었고, 평소엔 민원에 그토록 늑장을 부리던 청와대 인터넷 관리자가 그 포스터가 올라온 지 2시간 만에 자신의 근무처를 망각하고 재빠르게 초기화면으로 옮기는 민첩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젠 즐겁고 상쾌하고 위트 넘치는 진짜 패러디를 보고 싶다.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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