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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지식 넷티즌 파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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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대중화된 지 5년. 우리는 더 이상 사이버스페이스를 '가상'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미 네티즌은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방금 전까지 검색의 공간, 구매의 공간, 놀이의 공간으로 삼았던 사이버스페이스를 순식간에 공유의 공간, 소통의 공간, 연대의 공간, 실천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담론과 실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네티즌의 사이버파워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재하는 힘으로 거대한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다. 사이버파워는 통신질서법을 저지시켰으며, 학교폭력 특별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게 했고, 전 인구의 1/4을 거리응원전으로 내몰았으며, 사이버정당의 탄생과 온라인 정치자금 모금을 통해 e-politics 실현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시청 앞에서 1만여 개의 촛불을 밝힌 최초의 불씨는 시민단체도, 사건대책위원회도, 정의구현사제단도 아닌 이름없는 한 네티즌의 호소문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 한 구석 조그만 불씨로 시작해 들불로 번지고 마침내 오프라인까지 태워버리는 네티즌의 사이버파워는 도대체 어디에 연원 하는 것일까?
사이버파워, 힘의 물적 토대
사이버파워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존재기반으로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기술적 특장점이 곧 현실을 변화시키는 사이버파워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얘기다. 사이버파워 분출에 탄력을 주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디지털 네트워크는 정보 전달 속도와 범위를 유례 없이 확장시켰다.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을 추모하는 상장달기운동은 단 하루만에 MSN 이용자의 90% 이상을 동참시켰고, 촛불시위가 제안된 지 이틀만에 광화문엔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1만여 추모인파가 운집했다(과거 386세대들의 가두시위 준비기간은 최소 1주일이었다). 동조에서 참여에 걸리는 시간의 단축과 참여 규모의 최대화는 모든 집합행동의 가장 핵심적인 성공요인이며,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이 조건들은 쉽게 만족될 수 있다.
둘째, 디지털 네트워크는 개인미디어 시대를 열어주었다. 매스미디어의 경우, 이를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계층이 지극히 한정적인 반면, 미디어로서 사이버스페이스는 접속이 소유를 대체하는 공간이다. 간단한 게시물만으로도 누구든 여론을 형성하고 여론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수여중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름 없는 한 지역 웹진이 피해자 어머니의 억울한 사연을 인터넷에 게재한 기사와 기사를 읽고 분노한 네티즌이 학교폭력추방여론을 형성한 덕분이었다.
셋째,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경계가 사라진 디지털 네트워크는 집합 행동 참여 비용을 절감시킨다. 현실에서 집단행동이 이루어지려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일정 수의 군중이 모여야만 한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는 언제 어디서든 접속만 하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집단적 행동을 도모할 수 있다. 항의배너달기, 리본달기, 항의글 게시 같은 온라인 시위는 행위자 입장에서는 개별행동이지만 관찰자 입장에서는 집단행동이 된다. 즉 적은 참여비용으로 높은 시위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국면의 전환은 바로 여기부터다. 일단 온라인에서 집단적 힘의 결정적 영향력을 경험한 네티즌은 이후 참여비용이 높더라도 집단행동을 보다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오프라인까지 행동의 반경을 넓히게 되는 것이다.
사이버파워 결집을 위한 세 가닥의 씨실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이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디지털 네트워크의 세 가지 속성들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으로 전화되지만, 어떤 경우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네티즌의 변덕스러움, 사이버공동체의 얇은 연대감을 질타하곤 하는데, 이들은 집합적 힘이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물적 토대 뿐만 아니라 몇 가지 상황적 조건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물적 토대가 날실이라면 상황적 조건은 날실 사이를 가로지르며 온-오프를 넘나드는 거대한 사이버파워를 직조하는데 필요한 씨실인 것이다.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제시된 이슈가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단일하면 단일할수록, 이슈에 동조하는 계층이 넓으면 넓을수록 사이버파워는 탄력을 받게 되고, 오프라인에 미치는 영향력도 극대화된다.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전의 목표는 코리아 승리, 단 하나였으며, 이 목표는 온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이슈였다. 반대로 최초의 사이버정당인 개혁국민정당이 현재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네티즌을 뭉치게 했던 '아래로부터의 정치개혁' 이슈가 복잡한 현실 정치와 당원의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보편성과 대중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 수평적 네트워크와 열린 공동체, 탈중심성, 자율성을 양분으로 꽃 핀 것이 작금의 사이버문화다. 따라서 네티즌은 스스로 집합적 실천에 참여할만한 뚜렷한 현실적 명분 없이는 아무리 권위있는 조직의 거대한 동원전략에도 꿈적하지 않는다. 통신질서확립법 저지 운동의 경우, '질서확립법'이 곧 자신의 사이트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가 네티즌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펼쳤던 클린사이버운동에 썰렁한 반응을 보이거나 세계화 문제에 대한 시민단체의 이슈파이팅 실패도 네티즌의 자발성이 출현하는 맥락을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매스미디어와 결합해야 한다. 개인미디어로서 디지털네트워크는 매스미디어가 도외시한 소수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그것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지만, 사이버파워가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확성기로서 매스미디어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수여중사건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비난성 글게시가 명예훼손사건으로 번지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를 계기로 학교폭력을 반대하는 오프라인 지지자들을 온라인 학교폭력반대운동 세력에 끌어들여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특별법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사이버파워, 네티즌의 힘
온오프를 넘나드는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 추모의 물결 역시 사이버파워가 일시적으로 응축되어 우연한 기회에 폭발한 것이 아니다. 무죄판결의 부당성, 젊은 죽음에 대한 애도는 계층과 성별을 막론한 연대의식으로 이어졌고, 네티즌은 상장달기와 항의글 게시라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한 사이버 집단행동을 통해 연대감을 신속하고도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부당한 죽음이라는 보편적 이슈에 대한 네티즌의 광범위한 자발적 집단행동 참여에 매스미디어가 주목하기 시작하자 일반인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항의집회에 동참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번지기 시작한 애도와 추모와 분노의 들불은 광화문 네거리의 만여개의 촛불로 이어진 것이다. 앞으로 이 움직임이 보다 근원적인 문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정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힘이라는 날줄이 환경적 조건이라는 씨줄과 엮이게 되면 언제든 네티즌의 힘은 디지털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전이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이버파워는 더 이상 가상의 힘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재하는 힘으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지각 삼아 용암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사이버문화연구소, 고려대학교강사 / 최정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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