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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지식 논술시험 읽기 자료: 나의 묶은 "머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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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원 중학교 삼학년. 팔십년 십이월에 났으니 이제 만 열다섯 살이고, 서울의 한 중학교 삼학년 학생이다.
지난해부터 올 유월까지 부모와 함께 미국에 머물며 스탠포드 중학교에 다녔다.
“또 하나의 문화” 창작 모임의 동인이다.
내가 처음으로 머리를 길렀을 때의 일이다.
그때에는 머리를 풀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을 못해 자주 물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되묻곤 했었다. 물론 그때에는 어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래 보고 싶어서였다.
그 뒤로 초등학교에서 교사 회의의 결과에 따라 나는 “꽁지” 두 개만을 남기고 머리를 잘랐다. 요새 생각하면 실망이 되지만 그때에는 내가 너무 남녀 차별 사회에 적응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때 쓴 글을 보면 한 걸음 양보한 것일 뿐이라고 써 있지만 요새는 양보가 아니라 “굴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잠시 이 땅을 떠나 있는 동안(부모를 따라 한해 동안 미국에서 거주했다.) 이 사회 적응을 두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볼 기회를 가졌다.
미국에서 지낸 처음 한달 동안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고생이 심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어머니의 실수로 머리가 바싹 깎인 일이었다. 그 날 너무 머리가 어중간해서 조금 “다듬으러” 갔다. “다듬은” 뒤에 어머니가 머리가 조금 길다면서 영점오 센티미터만 더 자르자고 했다. 나는 승낙했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머리 자르는 사람이 내 머리를 영점오 센티미터는커녕 한 삼 센티미터쯤을 자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잡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영어를 못하는 나는 속만 태우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려 애를 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집에 와서 나는 펑펑 울었고 어머니는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내 머리가 최신 유행 스타일이라느니 곧 자랄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누나가 돌아와서 내 머리를 보고 웃었고, 우리 셋은 고민을 시작했다. 마침내 누나의 아이디어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내 머리는 생각처럼 빨리 자라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년에 한 번 찍는 독사진에도 내 머리는 짧게 나와 있다. 몇 달 뒤에 내 머리는 길어졌으나 여전히 엉성했다. 학교에도 머리 긴 학생이 몇몇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모두 나보다 머리가 훨씬 길었다.
머리가 길어지자 나는 곧 중대한 결심을 했다.
머리를 묶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은 그것을 두고 특별히 비난하거나 남녀 차별의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사내애 몇이 내 머리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둥, 내가 게이(동성 연애자)라는 둥, 하긴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재치 있는 대답으로 간단히 넘겼다.
환경 운동 집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긴 머리를 멋지게 묶은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껴서도 머리를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머리 스타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환경 운동가이며 앞으로 환경 과학자가 되어 전문적으로 그 운동을 할 참이다.)
일년이 후딱 가고 나는 한국에 왔다.
공항에서였다. 어머니의 노트북 세관 통과 때문에 지체되어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경비원에게 여쭤보셨다 한다. 그러자 경비원은 두 여자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 두 “여자”는 어머니와 나였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거의 다 다음과 같은 귀납법을 적용한다.
머리를 묶은 사람은 모두 여자다.
저 사람(나)은 머리를 묶었다.
(고로) 저 사람(나)은 여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은 한국인 남자들이 머리를 기른다 그 예로 가수 신성우와 얼마 전에 브라질 친선 경기 때에 선전을 해 준 골키퍼(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있다. 연예인들 덕분에 많은 사람의 의식이 바뀌어 머리를 기른 남자도 정상인으로 인정을 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고교 입시 때문에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에서 내가 겪은 각계(?)의 반응은 흥미롭다.
학생: 선생님, 얘 머리 자르게 안 해요? 학생들 풍기에 문란한 영향을 주는데….
부원장: 어때, 요즘 개성 시대인데,
여기에서도 보듯이 가끔 보수적이지 않은 어른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은 보수적인 발언을 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선생님도 있었고, 며칠 동안 나를 여자로 알고 수업했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차리는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학원에 간 첫날의 우리 학원 주요 화제는 나였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 모두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내가 아는 학생도 몇 명 있기에 나를 일년 새에 잊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내가 이름을 밝히니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다.
어쩌다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여자 전용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도 싶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관두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성희롱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알고 싶었지만 내가 매력이 없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걸리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 것인데….
조선 시대 말부터 남자들의 머리는 억압받아 왔다. 그런데 그 억압이 우리나라의 전통인 양 현대 사회에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왕조 말, 천팔백구십오년의 을미개혁 때에 시행된 단발령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강제로 상투를 잘렸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에 상처를 낸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외래 문화와 일본에 반발하는 마음도 심해졌다. 그 사건이 의병 전쟁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은둔자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남자) 상투가 잘리고 짧은 머리가 보편화되었다. 중, 고등학교들도 일제의 법규에 따라 일본의 학교와 같은 교칙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따른 의무 하나가 단발(사실은 “빡빡”)이다.
광복 후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 특히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남자 머리의 수난 시대가 있었다. 장발 단속으로 많은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며 무자비한 머리 “학살”이 시작되었다.(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에 명동에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렸는데 요새 생각해 보니 그때 왜 자기가 헌법 소원을 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하셨다.) 박정희 군사 독재가 끝나고 나서 새 군인 대통령들은 민주주의 하는 시늉하느라고 장발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 시대라는 오늘도 장발 단속은 학교에서 존재한다. (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그 교칙들은 거의 다가 헌법에 위배되며 얼마나 법적 효력이 있는지가 미지수다.) 일본으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관련된 교칙은 다음과 같다.
남자이면: 눈썹을 가리지 않음, 귀를 덮지 않음. 옷깃에 닿지 않음(관대형), 일 센티미터(통일형), 손에 잡히지 않음(신체형).
여자이면: 귀밑 일 센티미터, 머리를 길러도 단정히 하겠다는 각서를 씀.
이제부터 몇 가지 사항을 들어 그 교칙에 반대하고자 한다.
첫째로, 그 교칙은 인간을 차별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므로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진리이다. 헌법에는 성별, 나이, 종교, 사회 신분 등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씌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는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일까? 이것은 분명한 인간 차별이다. 나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이런 남녀 차별 관행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최근(구십사년)에 민족 대표 삼십삼인에게 많은 기업체가 고용 평등법 위반으로 고소되었다. 한 생명보험 회사의 추천 의뢰서를 보면, “신장 백육십 센티미터 이상, 몸무게 오십 킬로그램 이하, 용모방정.” “용모에 중점을 두어 면접할 예정이니 유의 바람”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소송 뒤로 일부 기업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머리가 긴 학생을 차별하거나 받지 않는(또는 쫓아내는)것도 위법 행위다. 물론 머리야 자르기 쉬우니 타고난 용모와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이 큰 정신적 고통이 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학교는 인간 차별의 온상이다. 최근에야 여자는 가장 과목을, 남자는 기술 과목을 배우는 제도를 폐지하고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고 한다. 여태껏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모교가 될 학교는 남녀 공학을 시킨다면서도 남녀 반이 서로 나뉘어져 있고 사용하는 복도도 다르다.(남녀 공학 학교가 거의 모두 그러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커서도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 남녀 차별의 악습 추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쪽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르치니 그들을 함께 수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둘째로, 머리를 기르는 것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여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겼다. 머리를 깎거나 몸에 상처를 나면 부모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다 머리를 길렀다. 오로지 속세를 등지고 떠난 스님들만 가족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삭발을 했다. 한말에, 일정 때에 상투를 잘리게 된 사람들은 부모를 잃었다하여 펑펑 울었다. 자, 이래도 짧은 머리가 우리의 전통이라 할까?
그때 일본 사람들은 일본식대로 우리나라에 학교를 만들어 세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짧은 머리는 그 학교들의 교칙이 요구하는 것 하나였다. 중학교에서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만을 입는 것도 일정 시대의 유습인 듯하다. 상급생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하고 경어를 써야 하며, 교사에게 턱없이 억울한 매를 맞아도 고발하면 안 되는 것도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그런 교칙의 억압에서 벗어나 머리도 기르고 싶고 여러 금지된 것들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중퇴를 하려는 학생도 생기고 있다. 그 규칙이 그 학생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할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겠다. 광복 오십 주년을 맞아 중앙청 석탑을 제거하고 일제 잔재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은 내버려두고 있다.
셋째,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국민이 신체상 제한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장 없이는 압수, 수색, 구속 등을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것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학생부라는 곳은 학생을 도와 주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태도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패는 곳이다.(이곳이 바로 반장에게 인간 사냥을 시키는 곳이고 그러기를 거절하면 반장을 패는 곳이다.) 학생들은 인권이 무시되고 반항할 자유조차 없다. 학생의 머리에 가위를 들이대고, 학생의 신체의 일부를 무자비하게 자르는, 그런 일이 전인 교육을 한다는, 민주 정신을 키운다는 학교에서 할 일일까? 학교에서(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 머리를 자르고, 때려 패는 것이 법에 저촉되고 있지 않은 것이 기이할 따름이다. 그런 사건들을 신고했을 때에 쫓겨나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되기가 십상이다.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곳이므로 권리보다는 의무가 많아야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는 의무가 이란 사회(단체)보다 적고 권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각해 봐라, 사원이 머리가 길다고 가위를 들고 강제로 자를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는지를. 미국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학생이 다치면 학교가 그 일부의 책임을 진다. 학교에서 폭행을 당했거나 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학교도 책임을 진다. 그런 가해자를 “양성”했다는 죄로…. 하기야 그 학교들도 그 의무만큼 통제권을 갖고 있다.
실제로 교칙을 우리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받은 유인물에는 모발과 복장에 대한 규정이 적혀 있을 뿐이지, 교칙이 있다거나 그 규정의 출처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말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 뒤에도 우리에게 교칙은 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 생활 하는 동안에 “몇 학년 몇 반의 아무개가 교칙 몇 조 몇 항을 어겨 정학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학생이면 누구도 그러한 교칙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교칙의 내용이 잘 알려진 것이라고 치더라도, 거기에서 불만을 느끼고 있으면 학급회의 때에 건의를 해야 하는데,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학급 회의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건의를 해도 담임이 묵살하기 일쑤이다. 겨우 전체 학생 회의에 올라가도 반장이 잊어버리거나 발표할 기회도 가질 수 없고 설혹 반장이 발표를 하고 전체 회의에서 통과가 되더라도 교사 회의에 올라가기는 불가능하기가 예사다.
교칙을 학생의 의사대로 고칠 수 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교칙을 지킬 것이다. 도덕 교과서에 나와 있다. “학생들은 학급 회의에서 참정권의 의미와 민주 시민의 자세를 터득한다”고. 그러나 건의 사항이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어떤 민주 시민의 자세를 배우겠나? 나는 개인적으로 학교에 들어와서 교칙을 나누어준 뒤로 지킬 사람은 서명을 하게 하고, 지키지 않을 사람은 타당한 이유를 제기하게 하고 선생들의 평가로 타당하다 여겨지면 그것을 인정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 학생들은 죄수처럼 규제 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머리를 깎는다. 그래서 탈옥하더라도 대가로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이들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죄를 지어 그 대가로 인권을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외 생활 지도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교는 편의 때문에 인권을 무시한다. 그러나 창의로운 인간을 기르고 싶다면 최소한의 자유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교외 생활 지도”란 청소년을 어른들의 사회와 분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소년의 정의 중에 하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청소년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나?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못하고 사회와도 격리된 청소년은 갈 곳이 없다. 심각한 청소년 문제는 여기에서도 비롯된다. (군대에서의 규제와 폭력도 이와 함께 사라졌으면 한다.
물론 군대는 위계 질서가 중요하지만 인권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기까지에서 단순한 머리 규제만을 가지고 학생의 처지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살펴보았다. 그까짓 머리털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겠지만, 머리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잘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로 짓밟히는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머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 문제로 여러 가지 고정 관념을 깨며 선생들에게 새로운 의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에 초등학교에서는 “모발 일 센티미터 이하”라는 교칙이 있고 그것을 어긴다 해도 그것을 억지로 자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이라 쫓아 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 아니어서 교칙을 어기면 “생활 태도가 나쁨”이라는 이유를 들어 퇴학을 시킬 수 있다. 또 교사가 학생을 때려 팬 경우에도 학생의 의사(학생의 의사라 하지만 들어오기 전에 교칙을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한다 해도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로 학교에 들어왔으므로 교사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무죄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도 정상 참작으로 형이 감량될 수 있다. 꼭 중, 고등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내게 불리한 조건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왜 머리에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들은 아직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나의 삶과도 동떨어진 것이 많다. 이 교육 풍토에서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것으로 교육 제도와 교사들의 의식 문제가 있지만, 그것들을 내가 지금 섣불리 건드려 봐야 상태만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내 주변의 작은 일부터 고쳐 나가며 선생님들의 의식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 교사들의 의식이 바뀔 때에 근본적인 문제들의 해결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사실 학교에서 내 머리털을 지키려는 싸움을 시작하면 교사들보다 더 큰 적은 학생들이 될지도 모른다. 학생들 중에는 다른 학생이 튀는 것을 싫어하고, 그것이 실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며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런 태도를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쪼록 이번 싸움에서만은 다른 학생의 방해보다는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나혼자로서도 벅찰 텐데 방해가 있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나의 주장을 이해하고 생각이 깊은 선생님들이 몇 분이라도 계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 “남자와 여자는 엄격히 다르다.” “학생들은 인권이 없다”하는 가부장적인 인간 계급 사회를 추구하는 교사와 부딪히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만약 이 싸움이 법정까지 간다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근본 정신은 변함이 없다. 현재 목표는 남녀 교칙의 통일이고, 근본 목표는 학생들의 인권 되찾기와 모발의 자유이다. 그리고 학교를 설정한 목표는 학교의 권리 최소화와 의무 최대화이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는 학교 안의 폭행 문제도 함께 다루려 한다. 그 둘은 다른 것 같지만 학생들의 인권을 확보하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교 입시도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이 싸움이 쉽게 끝나고 다른 학교로 전파되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입학 선물로 “인권”을 찾아 주고 싶다.
('샘이 깊은 물' 1995년 9월호에서)
정보출처: 동원고등학교 국어과 (창의력 신장을 위한 수준별 논술 읽기 자료 모음)
지난해부터 올 유월까지 부모와 함께 미국에 머물며 스탠포드 중학교에 다녔다.
“또 하나의 문화” 창작 모임의 동인이다.
내가 처음으로 머리를 길렀을 때의 일이다.
그때에는 머리를 풀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을 못해 자주 물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되묻곤 했었다. 물론 그때에는 어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래 보고 싶어서였다.
그 뒤로 초등학교에서 교사 회의의 결과에 따라 나는 “꽁지” 두 개만을 남기고 머리를 잘랐다. 요새 생각하면 실망이 되지만 그때에는 내가 너무 남녀 차별 사회에 적응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때 쓴 글을 보면 한 걸음 양보한 것일 뿐이라고 써 있지만 요새는 양보가 아니라 “굴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잠시 이 땅을 떠나 있는 동안(부모를 따라 한해 동안 미국에서 거주했다.) 이 사회 적응을 두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볼 기회를 가졌다.
미국에서 지낸 처음 한달 동안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고생이 심했다. 가장 억울한 것은 어머니의 실수로 머리가 바싹 깎인 일이었다. 그 날 너무 머리가 어중간해서 조금 “다듬으러” 갔다. “다듬은” 뒤에 어머니가 머리가 조금 길다면서 영점오 센티미터만 더 자르자고 했다. 나는 승낙했고,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머리 자르는 사람이 내 머리를 영점오 센티미터는커녕 한 삼 센티미터쯤을 자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잡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영어를 못하는 나는 속만 태우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려 애를 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집에 와서 나는 펑펑 울었고 어머니는 자기 책임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내 머리가 최신 유행 스타일이라느니 곧 자랄 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누나가 돌아와서 내 머리를 보고 웃었고, 우리 셋은 고민을 시작했다. 마침내 누나의 아이디어로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내 머리는 생각처럼 빨리 자라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년에 한 번 찍는 독사진에도 내 머리는 짧게 나와 있다. 몇 달 뒤에 내 머리는 길어졌으나 여전히 엉성했다. 학교에도 머리 긴 학생이 몇몇 있었는데, 그 학생들은 모두 나보다 머리가 훨씬 길었다.
머리가 길어지자 나는 곧 중대한 결심을 했다.
머리를 묶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은 그것을 두고 특별히 비난하거나 남녀 차별의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보수적인 사내애 몇이 내 머리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둥, 내가 게이(동성 연애자)라는 둥, 하긴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재치 있는 대답으로 간단히 넘겼다.
환경 운동 집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긴 머리를 멋지게 묶은 이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껴서도 머리를 기르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머리 스타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환경 운동가이며 앞으로 환경 과학자가 되어 전문적으로 그 운동을 할 참이다.)
일년이 후딱 가고 나는 한국에 왔다.
공항에서였다. 어머니의 노트북 세관 통과 때문에 지체되어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할머니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경비원에게 여쭤보셨다 한다. 그러자 경비원은 두 여자가 남아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그 두 “여자”는 어머니와 나였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거의 다 다음과 같은 귀납법을 적용한다.
머리를 묶은 사람은 모두 여자다.
저 사람(나)은 머리를 묶었다.
(고로) 저 사람(나)은 여자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은 한국인 남자들이 머리를 기른다 그 예로 가수 신성우와 얼마 전에 브라질 친선 경기 때에 선전을 해 준 골키퍼(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있다. 연예인들 덕분에 많은 사람의 의식이 바뀌어 머리를 기른 남자도 정상인으로 인정을 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고교 입시 때문에 학원을 다니는데 학원에서 내가 겪은 각계(?)의 반응은 흥미롭다.
학생: 선생님, 얘 머리 자르게 안 해요? 학생들 풍기에 문란한 영향을 주는데….
부원장: 어때, 요즘 개성 시대인데,
여기에서도 보듯이 가끔 보수적이지 않은 어른도 있다. 그러나 많은 선생님들은 보수적인 발언을 한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선생님도 있었고, 며칠 동안 나를 여자로 알고 수업했다가 나중에서야 알아차리는 선생님도 있었다. 내가 학원에 간 첫날의 우리 학원 주요 화제는 나였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 모두 말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내가 아는 학생도 몇 명 있기에 나를 일년 새에 잊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내가 이름을 밝히니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다.
어쩌다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여자 전용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도 싶었지만 별로 내키지 않아 관두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성희롱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알고 싶었지만 내가 매력이 없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걸리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을 것인데….
조선 시대 말부터 남자들의 머리는 억압받아 왔다. 그런데 그 억압이 우리나라의 전통인 양 현대 사회에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왕조 말, 천팔백구십오년의 을미개혁 때에 시행된 단발령에 따라 많은 남자들이 강제로 상투를 잘렸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에 상처를 낸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외래 문화와 일본에 반발하는 마음도 심해졌다. 그 사건이 의병 전쟁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제 시대에는 은둔자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남자) 상투가 잘리고 짧은 머리가 보편화되었다. 중, 고등학교들도 일제의 법규에 따라 일본의 학교와 같은 교칙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 따른 의무 하나가 단발(사실은 “빡빡”)이다.
광복 후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 특히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는 남자 머리의 수난 시대가 있었다. 장발 단속으로 많은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며 무자비한 머리 “학살”이 시작되었다.(내 친구의 아버지는 그때에 명동에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렸는데 요새 생각해 보니 그때 왜 자기가 헌법 소원을 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해 하셨다.) 박정희 군사 독재가 끝나고 나서 새 군인 대통령들은 민주주의 하는 시늉하느라고 장발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민 시대라는 오늘도 장발 단속은 학교에서 존재한다. (나중에 따로 말하겠지만, 그 교칙들은 거의 다가 헌법에 위배되며 얼마나 법적 효력이 있는지가 미지수다.) 일본으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관련된 교칙은 다음과 같다.
남자이면: 눈썹을 가리지 않음, 귀를 덮지 않음. 옷깃에 닿지 않음(관대형), 일 센티미터(통일형), 손에 잡히지 않음(신체형).
여자이면: 귀밑 일 센티미터, 머리를 길러도 단정히 하겠다는 각서를 씀.
이제부터 몇 가지 사항을 들어 그 교칙에 반대하고자 한다.
첫째로, 그 교칙은 인간을 차별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므로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진리이다. 헌법에는 성별, 나이, 종교, 사회 신분 등에 따라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고 씌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는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이고 여자는 귀밑 일 센티미터일까? 이것은 분명한 인간 차별이다. 나는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이런 남녀 차별 관행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최근(구십사년)에 민족 대표 삼십삼인에게 많은 기업체가 고용 평등법 위반으로 고소되었다. 한 생명보험 회사의 추천 의뢰서를 보면, “신장 백육십 센티미터 이상, 몸무게 오십 킬로그램 이하, 용모방정.” “용모에 중점을 두어 면접할 예정이니 유의 바람”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소송 뒤로 일부 기업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머리가 긴 학생을 차별하거나 받지 않는(또는 쫓아내는)것도 위법 행위다. 물론 머리야 자르기 쉬우니 타고난 용모와는 비교 대상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머리를 자르는 것이 큰 정신적 고통이 되는 사람도 있다.
생각해 보면 학교는 인간 차별의 온상이다. 최근에야 여자는 가장 과목을, 남자는 기술 과목을 배우는 제도를 폐지하고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고 한다. 여태껏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의 모교가 될 학교는 남녀 공학을 시킨다면서도 남녀 반이 서로 나뉘어져 있고 사용하는 복도도 다르다.(남녀 공학 학교가 거의 모두 그러하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커서도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어, 남녀 차별의 악습 추방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쪽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인격체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르치니 그들을 함께 수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둘째로, 머리를 기르는 것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하여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겼다. 머리를 깎거나 몸에 상처를 나면 부모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죄다 머리를 길렀다. 오로지 속세를 등지고 떠난 스님들만 가족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삭발을 했다. 한말에, 일정 때에 상투를 잘리게 된 사람들은 부모를 잃었다하여 펑펑 울었다. 자, 이래도 짧은 머리가 우리의 전통이라 할까?
그때 일본 사람들은 일본식대로 우리나라에 학교를 만들어 세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짧은 머리는 그 학교들의 교칙이 요구하는 것 하나였다. 중학교에서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만을 입는 것도 일정 시대의 유습인 듯하다. 상급생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하고 경어를 써야 하며, 교사에게 턱없이 억울한 매를 맞아도 고발하면 안 되는 것도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그런 교칙의 억압에서 벗어나 머리도 기르고 싶고 여러 금지된 것들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서 중퇴를 하려는 학생도 생기고 있다. 그 규칙이 그 학생들의 교육보다 더 중요할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겠다. 광복 오십 주년을 맞아 중앙청 석탑을 제거하고 일제 잔재의 청산을 외치면서도 정작 사라져야 할 것들은 내버려두고 있다.
셋째,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국민이 신체상 제한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장 없이는 압수, 수색, 구속 등을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것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학생부라는 곳은 학생을 도와 주는 곳이 아니라 학생의 태도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패는 곳이다.(이곳이 바로 반장에게 인간 사냥을 시키는 곳이고 그러기를 거절하면 반장을 패는 곳이다.) 학생들은 인권이 무시되고 반항할 자유조차 없다. 학생의 머리에 가위를 들이대고, 학생의 신체의 일부를 무자비하게 자르는, 그런 일이 전인 교육을 한다는, 민주 정신을 키운다는 학교에서 할 일일까? 학교에서(학생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 머리를 자르고, 때려 패는 것이 법에 저촉되고 있지 않은 것이 기이할 따름이다. 그런 사건들을 신고했을 때에 쫓겨나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 되기가 십상이다. 적응을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곳이므로 권리보다는 의무가 많아야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는 의무가 이란 사회(단체)보다 적고 권리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각해 봐라, 사원이 머리가 길다고 가위를 들고 강제로 자를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는지를. 미국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학생이 다치면 학교가 그 일부의 책임을 진다. 학교에서 폭행을 당했거나 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학교도 책임을 진다. 그런 가해자를 “양성”했다는 죄로…. 하기야 그 학교들도 그 의무만큼 통제권을 갖고 있다.
실제로 교칙을 우리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받은 유인물에는 모발과 복장에 대한 규정이 적혀 있을 뿐이지, 교칙이 있다거나 그 규정의 출처가 무엇이라거나 하는 말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 뒤에도 우리에게 교칙은 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학교 생활 하는 동안에 “몇 학년 몇 반의 아무개가 교칙 몇 조 몇 항을 어겨 정학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학생이면 누구도 그러한 교칙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교칙의 내용이 잘 알려진 것이라고 치더라도, 거기에서 불만을 느끼고 있으면 학급회의 때에 건의를 해야 하는데, 입시에 도움이 안 되는 학급 회의는 제대로 열리지도 않을 뿐더러 건의를 해도 담임이 묵살하기 일쑤이다. 겨우 전체 학생 회의에 올라가도 반장이 잊어버리거나 발표할 기회도 가질 수 없고 설혹 반장이 발표를 하고 전체 회의에서 통과가 되더라도 교사 회의에 올라가기는 불가능하기가 예사다.
교칙을 학생의 의사대로 고칠 수 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교칙을 지킬 것이다. 도덕 교과서에 나와 있다. “학생들은 학급 회의에서 참정권의 의미와 민주 시민의 자세를 터득한다”고. 그러나 건의 사항이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어떤 민주 시민의 자세를 배우겠나? 나는 개인적으로 학교에 들어와서 교칙을 나누어준 뒤로 지킬 사람은 서명을 하게 하고, 지키지 않을 사람은 타당한 이유를 제기하게 하고 선생들의 평가로 타당하다 여겨지면 그것을 인정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한다.
우리 학생들은 죄수처럼 규제 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는 머리를 깎는다. 그래서 탈옥하더라도 대가로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이들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학생들은 죄를 지어 그 대가로 인권을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외 생활 지도를 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교는 편의 때문에 인권을 무시한다. 그러나 창의로운 인간을 기르고 싶다면 최소한의 자유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교외 생활 지도”란 청소년을 어른들의 사회와 분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청소년의 정의 중에 하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청소년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나? 아이들과 어울리지는 못하고 사회와도 격리된 청소년은 갈 곳이 없다. 심각한 청소년 문제는 여기에서도 비롯된다. (군대에서의 규제와 폭력도 이와 함께 사라졌으면 한다.
물론 군대는 위계 질서가 중요하지만 인권보다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여기까지에서 단순한 머리 규제만을 가지고 학생의 처지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살펴보았다. 그까짓 머리털이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겠지만, 머리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잘한 것처럼 보이는 그런 여러 가지 것들로 짓밟히는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 것이다. 하기야 머리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리 문제로 여러 가지 고정 관념을 깨며 선생들에게 새로운 의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에 초등학교에서는 “모발 일 센티미터 이하”라는 교칙이 있고 그것을 어긴다 해도 그것을 억지로 자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의무 교육이라 쫓아 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학교는 의무 교육이 아니어서 교칙을 어기면 “생활 태도가 나쁨”이라는 이유를 들어 퇴학을 시킬 수 있다. 또 교사가 학생을 때려 팬 경우에도 학생의 의사(학생의 의사라 하지만 들어오기 전에 교칙을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한다 해도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로 학교에 들어왔으므로 교사는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무죄가 되거나 심한 경우에도 정상 참작으로 형이 감량될 수 있다. 꼭 중, 고등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내게 불리한 조건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왜 머리에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들은 아직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나의 삶과도 동떨어진 것이 많다. 이 교육 풍토에서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것으로 교육 제도와 교사들의 의식 문제가 있지만, 그것들을 내가 지금 섣불리 건드려 봐야 상태만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내 주변의 작은 일부터 고쳐 나가며 선생님들의 의식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 교사들의 의식이 바뀔 때에 근본적인 문제들의 해결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사실 학교에서 내 머리털을 지키려는 싸움을 시작하면 교사들보다 더 큰 적은 학생들이 될지도 모른다. 학생들 중에는 다른 학생이 튀는 것을 싫어하고, 그것이 실은 자기들을 위한 것이며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런 태도를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모쪼록 이번 싸움에서만은 다른 학생의 방해보다는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나혼자로서도 벅찰 텐데 방해가 있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나의 주장을 이해하고 생각이 깊은 선생님들이 몇 분이라도 계시면 큰 도움이 되겠다. “남자와 여자는 엄격히 다르다.” “학생들은 인권이 없다”하는 가부장적인 인간 계급 사회를 추구하는 교사와 부딪히면 많이 힘들어질 것이다.
만약 이 싸움이 법정까지 간다면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근본 정신은 변함이 없다. 현재 목표는 남녀 교칙의 통일이고, 근본 목표는 학생들의 인권 되찾기와 모발의 자유이다. 그리고 학교를 설정한 목표는 학교의 권리 최소화와 의무 최대화이다. 그래서 이 싸움에서는 학교 안의 폭행 문제도 함께 다루려 한다. 그 둘은 다른 것 같지만 학생들의 인권을 확보하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교 입시도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이 싸움이 쉽게 끝나고 다른 학교로 전파되면 좋겠다. 후배들에게 입학 선물로 “인권”을 찾아 주고 싶다.
('샘이 깊은 물' 1995년 9월호에서)
정보출처: 동원고등학교 국어과 (창의력 신장을 위한 수준별 논술 읽기 자료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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