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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실
댓글 0건 조회 1,236회 작성일 05-01-1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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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哲學, philosophy_01 2강좌

korea_icon01.gif철학, 哲學, philosophy_01 2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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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제목: 철학, 哲學, philosophy_01 2강좌

아래 내용은 한국의 토론문화 확대와 토론교육을 위해 인터넷지식검색 자료를 이용해 토론교육을 구성한 것입니다. 무단사용과 배포 전재를 금지합니다. 이 강좌는 지식검색 자료의 모든 내용이 발췌 되었습니다. (유료 구입) 자세한 설명과 보다 많은 토론정보가 필요한 분은 인기포털사이트의 '인터넷지식검색'을 이용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한국의 토론교육을 위한 자료가 부족해 토론실 운영자가 마련한 교육이오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CONTENTS
Ⅰ. 철학이란 무엇인가

Ⅱ. 철학(哲學)

 

turkey_01.gifⅠ. 철학이란 무엇인가?

수년 전 어느 미국 잡지 가십란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고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철학 그것은 알 수 없는 물음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다."

이 말을 좋게 해석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채 뜬구름이나 잡는 못된 철학을 통렬하게 꼬집는 것쯤으로 나는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는 자신의 완숙기에 접어들어 그와 똑같은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뉘앙스가 좀 다르긴 해도 책 제목은 어쨌든< 물음인 없는 수밖에 물음일 영원한 어쩌면 물음은 그 것일까 있는 문제삼고 무엇인지를 철학이 다시금 새삼스럽게 철학자는 이 왜 된다. 무엇인가?로 것은 하는 그것이게 바로 그것을 - ?철학 번역하면 다시 살려 의미를 독일어의 Philosophie였다. die das ist>

 

이하의 글에서 나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완벽한 답을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물음에 대해 평소 생각해 오던 것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식으로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탈레스(Thales)는 만물의 아르케(arche), 즉 근본원리를 물(水)이라고 주장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그것도 열살 먹은 아이들조차 들으면 터무니없다고 웃을 이러한 주장을 했던 이유로 오늘날까지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이유는 진정 무엇일까 철학 교과서에는 Philosophy를 통상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필로스(philos, 지혜)와 소피아(sophia, 사랑)의 합성어에 대한 어원적 해석이다. 그런데고 우리는 Philosophy를 애지학(愛知學)으로 부르지 않고 일본어 번역인 '학문을 밝힌다'는 뜻을 지닌 철학(哲學)으로 부르고 있다. 또 'Metaphysik'을 우리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Metaphysik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학문을 분류할 때 철학을 자연학(Physik) 뒤에(meta) 배치했다는 의미와 더불어, 사물의 현상과 본질을 규명하고 자연학(물리학)보다 더 근원적인 학문이라는 은유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Philosophy를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 해석하는 것과 형이상학이라고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히 큰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철학을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한다면, 철학은 단순한 지식의 울타리를 벗어난다. 오히려 여기에는 지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수양, 그리고 오랜 수행과 체험을 통해 형성된 원숙한 인격과 고매한 인품, 또 실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만약 우리가 철학을 제1철학(protephilosophia)내지 형이상학으로 해석한다면, 이때 철학은 사물의 근원을 탐구하는 순수한 이론 체계로 간주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미 여기에서 철학이란 개념이 결코 간단하게 정의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오늘날 철학이 더 이상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도, 그렇다고 순수한 형이상학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서양철학에서는 이론과 실천이 구별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전통은 사실과 당위의 구별, 그리고 가치 중립이란 명제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왜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는 것인가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최초로 그 당시까지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던 신화를 부정하고 세계의 근원에 대해 일종의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는 당시 모든 이들이 자명하다고 여겼던 신화를 의심하고 회의하는 모험을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감행했던 것이다. 20세기말에 사는 우리들의 일상적 삶을 생각해 보자. 우리들 스스로가 많은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편견과 이데올로기를 쉽게 의문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오히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상식조차도 통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 만약 상식조차 의심하고 산다면 그것은 필경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철학의 정신은 부정(Nagation)에 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도, 베이컨(F. Bacon)의 우상(idola)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이'도 따지고 보면 '부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의와 부정 없이 새로움이란 있을 수 없고, 새로움 없는 놀람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왜 탈레스에서부터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에 대한 정의와 이해가 끊임없이 전개되어 왔는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철학의 정신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No)에 있다.

 

그러나 철학은 무조건 부정하고 No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은 오히려 부정의 근거를 이성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은 현상에 대한 이성적 성찰을 반드시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반성 없는 부정은 파괴적인 허무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성이 매개될 때, 철학은 현상과 기존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적 태도란 '비판적 태도'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칸트의 철학이<순수이성비판과<실천이성비판으로 상징되는 것과 마르크스가<정치경제학비판에서 출발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만약 철학이 이처럼 '비판'으로 해석된다면, 우리는 그 비판이 무엇에 대한 비판인가를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칸트의 비판과 마르크스의 비판이 이 물음에 대한 좋은 답변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단적으로 칸트의 비판은 인식과 학문적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고, 마르크스의 그것은 사회현실에 대한 실천적 비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철학의 비판은 이론과 실천, 이 양자에 대한 비판임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철학이 이론과 실천의 문제에 끝까지 골몰하여 왔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분석철학과 실증주의 철학이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대변해 왔다면, 마르크시즘과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은 이론과 실천의 분리를 반대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비판적 매개에 힘써 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철학이란 이론적 비판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실천적 비판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의 지적 풍토는, 철학을 이론적인 비판 그것도 형이상학적 사유가 아니면 실존철학류의 요청 정도로 간주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철학은 사회현실로부터 철저히 유리된 채 민중의 삶과 고통으로부터 단절된 강단철학으로 전락하였고, 또 그러한 가상이 마치 진짜 철학 행세를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오히려 현실에 관해 말하고 현실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비(非)철학, 반(反)철학적 태도로 매도되었고. 시정의 물가와 사회현실을 모른 채 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적 태도인양 위장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유교 사회에 낳은 하나의 인습일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이 마련한 '교양강좌'() 덕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요인들이 이런 풍조에 기여해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위와 허상은 이제 마땅히 철폐되어야 할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철학은 결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무대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먹고 살면서 노동하고 소비하는 구체적 사회현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적 정치경제적 현실을 떠난 철학이란 무의미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리를 설파한 곳은 학교 강의실이 아닌 시장 바닥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철학이란 현실 사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인 동시에 구체적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이 비판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일 수도, 정의나 평등일 수도, 또는 자유나 행복 같은 이념들의 실현일 수도 잇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의 역사는 이러한 이념들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린다면,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즉 '철학함'(philosophieren)인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평등?정의를 사회에 실현시켜 보려는, 그래서 모든 개인들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는 이성의 실현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철학한다는 것은 이성에 모순되는 것들에 대한 비판과 비이성적, 반이성적인 것들을 해체시키고 타파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그러면 이제 '철학함'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1. 철학은 사물의 근원을 물어가는 학문이다.

이 대답은 '철학'이라는 말의 인상에 걸 맞는, 매우 그럴듯한 대답으로 생각될 것입니다. 하지만 곧 "근원을 물어간다"는 말이 어떤 뜻일까 하고 반문하기 시작하면 그 대답의 내용이 애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물의 근원을 물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사물의 근원을 묻는다는 것이 "이 책"이라는 사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묻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모든 물질들이 원자로, 그리고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근원을 아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러한 내용은 물리학의 내용이지 철학의 내용은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그렇다면 근원을 물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에 대한 한가지 대답이 다음과 같은 대답입니다.

 

2. 철학은 전제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대답은 "근원을 물어간다"는 것은 곧 "그 전제를 물어간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그럼 전제를 탐구한다는 건 뭐죠?"

전제를 따지고 든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언론은 정직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이미 언론이란 무엇인지, 정직하다는 것은 어떠하다는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생각하는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직하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이 묻는 것이 전제를 따지고 물어가는 것에 해당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언젠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같은 표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답답함을 느끼거나 이것을 따져볼 필요성을 느꼈다면 이 '전제를 탐구할 필요성'을 느낀 셈입니다. 예를 들어서 개미집을 들여다보는 아이에게 엄마가 "넌 왜 공부 안하고 엉뚱한 짓을 하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가 "지금 공부하고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면 엄마와 아이가 생각하는 '공부'란 것은 서로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따지게 되는데 이것이 전제를 탐구하는 것이죠.

 

3. 철학이란 우리들의 기존의 생각의 내용이 아니라 생각의 방식 자체를 반성하는 활동이다.

이것은 철학이 전제들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설명과 같은 내용을 주장한 것이며 단지 표현만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생활에서나 혹은 학문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 때 그러한 생각의 방법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을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죠. 두 사람이 어떤 문제를 서로 따지는데 한 사람은 음양오행에 근거한 사고방식으로 문제의 옳고 그름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헤겔식의 변증법적 사고방식에 따라서 문제의 옳고 그름을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두 사람의 주장이 서로 다르다라고. 이런 경우에 서로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이 서로 싸워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판단했다면, 이제 두 사람은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를 따는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사고방식이 옳은지를 따져야 할 겁니다.

 

이 예에서는 음양오행과 변증법을 예로 들었지만, 이른바 (흔한 말로) "논리적"인 사고방식(혹은 서구적인 사고방식)도 반드시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죠. 예를 들어서 현대 의학보다 한의학이 성공적인 분야가 매우 많지만 한의학은 음양오행의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모든 생각의 방법에 대해서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철학이란 삶의 의미를 반성하는 학문이다.

철학이란 우리가 왜 사는가와 같은 아주 근원적인 문제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것이 이 대답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왜 사는가, 즉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세상을 둘러봄으로써, 그래서 화학과 물리학을 배움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밝혀낼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는 인생에서 매우 의미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람의 삶의 모든 것과 연관돼요. 그 이외에도 많은 대답들이 있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이상의 대답들은 비록 서로 다르긴 하더라도, 사실은 서로 같거나 혹은 연관된 대답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사물의 근원을 물어가는 것이 어떤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생각을 논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결국은 전제를 물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즉 언론의 근원이란 어떤 것일까 - 하는 물음은 언론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겁니다.

 

한편 이러한 물음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언론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진실이란 어떤 것인가" 혹은 "의미를 해석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와 같은 물음을 다시 던질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물음을 자꾸 반복해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 그 밑바닥에서는 사람의 삶의 의미와 만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반성하는 것은 이렇게 다른 대답들과 관련되죠. 철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대답은 크게 두가지 극단으로 치닫는 수가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예를 들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정립이라는 입장과 같이 "자기 나름의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똥철학'론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전문적인 철학자들이 하는 학문적인 작업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만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므로 모든 철학들이 서로 모순되는 결과를 유발할 수 있죠. 그렇다면 철학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어지고 말 것이고 실제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한편 철학이란 과학적 지식의 기초를 반성하고 정초하는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지나치게 학구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고 그에 제한해 버리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철학자란 하나의 기술자와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술자가 없으면 기계가 멈추지만, 매우 기계적인 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의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별로 없기 때문에 매우 공허한 것이 될 것입니다. 철학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짐으로써 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또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대답을 얻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철학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설명했지만, 이제 철학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각자 생각해 보세요. 이것을 설문조사나 실험을 통해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렇진 않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철학적 활동의 하나입니다.

 

 

turkey_02.gifⅡ. 철학(哲學)

자연 및 사회, 인간의 사고, 그 지식 획득과정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연구하는 과학이며, 따라서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견해를 나타내는 세계관이다. 또한 논리학 및 인식론을 그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참고1 철학의 어원과 필요성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철학이라는 말은 '지혜(sophia)의 사랑(philos)'을 의미한다 한편 동양에서는 철학이란 말은 사용되지 않았고, 중국 고전에서 경학(經學)이나 도학(道學), 이학(理學) 등이 '궁극적인 진리나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쓰여 왔다. 인간과 인간이 속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가지는 위치나 인간의 가치 등에 관한 포괄적인 이해가 없다면, 인간은 아무리 사실적인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도 본질적으로 이 세계에 종속된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는 한 보다 더 체계적이며 포괄적인 학문인 철학은 필요하다. <참고1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철학과 종교는 인간의 운명과기원, 인간과 우주, 또는 신과의 관계, 영혼의 불멸성, 의지의 자유, 어떤 궁극적 의문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문제 접근방식이나 해결방식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종교는 의문의 해결에 있어서 이성보다는 신앙에 주로 의존하고 철학은 이성에 의존한다. 종교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때에는 이성에 호소하기보다는 신앙에 호소함으로써 부족한 확신을 보충 받는다.

 

철학자는 지적 만족을 추구하는 반면, 종교인은 정서적 만족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과 과학의 공통점과 차이점
과학과 철학은 둘 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과학은 어떤 특정분야에 관한 참된 지식을 존중하며, 또 그러한 지식을 동원하여 더욱 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과학은 매우 실용적이며, 철학은 개별과학의 성과를 종합하여 전체적인 세계상을 구성하고, 개별과학의 탐구에 기초를 제공하여, 개별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는 과학의 기본적 가정이나 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과학보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며, 과학자들은 과학적 탐구가 가지는 어떤 의미보다는 사실의 탐구에 주된 관심을 가지는 반면, 철학자들은 그들의 사고에서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차이가 있다.

 

1. 사전적 정의

필로소피란 말은 원래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 철학(哲學)의 哲이라는 글자도 賢 또는 知와 같은 뜻이다. 이와 같이 철학이란 그 자의(字義)로 보아서도 단순히 지를 사랑한다는 것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직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알 수 없다. 철학 이외의 학문 가운데 그 이름을 듣고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학문은 드물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고, 물리학이라고 하면 물리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의 경우는 그 이름만 듣고는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이 학문의 대상이 결코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철학이 실생활에 직접적인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다루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는 말이다.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갈 것이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며 평등과 자유의 조화를 어떻게 꾀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마련이다. 이처럼 인간, 자연, 사회가 부딪히는 문제들을 가장 밑바탕에서 검토하는 사람들이 철학자이고, 철학은 한 사회가 또는 한 개인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아 주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철학은 자유로운 무전제의 사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은 자연,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두루 진행된다. 그러면서도 철학은 전통적, 종교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실험과 경험에 바탕을 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종교나 자연 과학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학문이다. 또한 철학은 참된 자아의 발견과 가치관 확립을 위해 선현들의 사상적 유산을 관찰하고 바람직한 인간상과 세계관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다른 모든 학문의 기초 학문으로서 우주를 연구하고 인생에 대한 심오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가능한 보편적 원리를 찾으려는 학문으로, 어느 학문보다도 방대한 영역을 공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넓은 독서를 필요로 한다. 철학은 크게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으로 나눌 수 있다. 동양 철학은 중국 철학과 한국 철학을 말하며 다루는 내용 또한 유가, 도가, 불가 철학이다. 그러므로 동양 철학을 연구하려면 우선 한문과 중국어(백화문)를 익혀야 한다. 서양 철학은 주로 고대 그리스와 서유럽 지역에서 발전되어 온 철학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현대 철학까지를 포함한다. 주제에 따라서는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존재론, 역사 철학, 언어 철학, 과학 철학, 윤리학, 미학 등으로 구분된다. 전혀 다른 듯한 이 두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모든 사람이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완벽한 철학은 없으며 단지 철학도는 철학하기를 배우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형식적 정의

철학에는 일정한 대상도 일정한 방법도 없거니와, 철학이 무엇이라는 것을 규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점에 이미 철학의 본질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서 철학은 어떤 대상을 연구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자연이나 신 ?역사 ?인간 ?인식 등 무엇을 연구해도 거기에는 철학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문자 그대로 어떤 대상이라도 연구하기만 하면 철학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하지만 그것이 철학은 아니다. 또 역사학은 역사를 연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철학일 수는 없다. 자연이나 역사 등 다른 과학도 연구하는 대상을 연구하면서 과학 아닌 철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과학과는 다른 철학, 고유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관심이란 인간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대결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이라는 것의 탐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자연은 철학의 대상이 된다. 또한 신에 관한 탐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철학의 대상은 신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철학이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원래 이 철학의 정의는 형식적이고, 그것만으로 철학이 무엇이라는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철학의 대상이 일정한 것이 아닌 이상, 철학에 관해서 이러한 형식적 정의 이상의 것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경우의 정의는 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정의를 좁은 의미로 생각한다면 철학이란 인생관 ?세계관을 탐구하는 학문인 셈이다. 예로부터 철학은 대개의 경우 인생관 ?세계관을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든 철학이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철학은 인생관이나 세계관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도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나 인식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철학이 이런 종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도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역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자는 과학이나 과학적 사고방식이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과학의 기초부여가 인생관 ?세계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의의를 낮게 평가하면서 과학의 기초부여를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연구를 철학의 과제로 생각하는 철학자는 우리가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이라고 하는 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위에서 말한 형식적 정의는 모두 철학에 합당할 것이며, 철학에는 다른 학문의 경우처럼 일정한 대상이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그것은 차라리 철학이라고 하는 것의 성격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3. 대상

철학은 BC 7세기경 그리스에서 비롯된 학문인데, 그 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의 철학사상의 변천과정을 보아도 일정한 연구대상이라는 것이 없다. 각 시대의 철학은 각기 다른 대상을 연구하였다.

 

우선 고대 철학을 보면 소크라테스 이전의 초기 그리스 철학의 연구대상은 자연이었다. 당시 자연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는 상당히 달랐다. 어쨌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철학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BC 5세기 후반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철학의 대상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적인 사상(事象)이 되었다. 그리고 인간 영혼의 선량함이 문제가 되고 윤리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이전의 자연을 대상으로 삼은 철학을 부정하고 자연에 관한 지식은 잘산다는 문제에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은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적인 사상에 관심을 기울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고찰도 병행하여 장대한 철학체계를 구축하였다. 고대철학의 말기, 이른바 헬레니즘 로마시대의 철학에 이르면 철학의 대상이 더욱 한정되어, 어떻게 하여 자기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는가 하는 일상적이며 실천적인 문제가 중심이 되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은 이런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중세에 와서는 철학의 대상이 인간도 자연도 아닌 신이었다. 중세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으므로, 중세철학이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신에 관한 고찰을 중심문제로 삼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세로 오면 철학의 대상은 또 변화한다. 근세는 중세와는 달리 인간이 중심문제로 나타나는 시대이다. 인간이 자기에 대하여 자신(自信)을 가지고,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일체의 문제를 새로이 생각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대 풍조에 따라 철학은 우선 인간의 인식이라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즉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느 정도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인간은 이성적(理性的) 인식에 의해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R.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자와, 인간의 인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경험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인간은 경험을 초월한 사항에 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하는 J.로크를 비롯한 영국 경험론자가 대립하게 되었다. I.칸트의 철학은 이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 통일하려고 한 것이며 여기서도 이 인식이 하나의 중심문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문제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세철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으며,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기간에도 철학의 과제는 제반 과학의 기초부여에 있다고 생각하는 신(新)칸트학파와, 언어라는 것을 분석하여 언어가 가지는 문법적 형식에 속아 우리가 잘못된 사고(思考)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분석철학 등도 역시 인식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적 대상으로 생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근세철학 가운데는 인식이라는 문제를 철학의 중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와는 다른 대상을 다루려 했던 철학도 있었다.

 

이를테면 19세기의 G.W.F.헤겔이나 K.마르크스에게서는 철학의 중심적 대상이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이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헤겔은 이른바 인식론적 철학을 평하여 인식하기 이전에 인식하려고 하는 것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을 익히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F.W.니체, H.베르그송, W.딜타이 등의 이른바 생(生)의 철학은 비합리적인 생을 중시하고 그 생을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S.A.키에르케고르, K.야스퍼스, M.하이데거, J.P.사르트르 등의 이른바 실존철학은 인간을 타인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실존으로 파악하여 인간이 어떻게 하여 자신의 자유에 의해 사는 방법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가 하는 것을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서 고찰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철학사에 나타나는 많은 철학을 보아도 거기에는 결코 일정한 대상이라는 것이 없고, 각 철학은 서로 다른 대상을 탐구하면서 모두 한결같이 철학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학을 그 대상으로서 규정할 수 없으며, 다만 애지(愛知)의 학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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