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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토론 문화를 위하여 3강좌
플래시(예습) ㅣ 동영상교육(준비 예정)
책 제목: 토론의 기술
지은이: 이연택 지음
출판사: (주)북이십일
아래 내용은 한국의 토론문화와 교육을 위해 해당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는 토론교육입니다. 무단사용과 배포 전재를 금지합니다. 이 강좌는 책 내용의 일부만 발췌 되었습니다. 자세한 설명내용과 정보가 필요한 분은 책을 구입해서 보시면 고맙겠습니다.
CONTENTS
제 5장: 성숙한 토론 문화를 위하여
1: 토론에서 만난 사람들
2: 토론가적 리더십의 조건
3: 토론을 학습하는 사회
제 5장: 성숙한 토론 문화를 위하여
- 성숙한 토론문화는 바로 토론 학습의 결과이다. 우리는 토론적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학습되지 않은 토론사회에서는 그러한 지도자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토론을 학습하는 사회는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 사회를 열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방송토론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 지도 꽤 여러 해가 되어 간다. 때로는 토론자로, 때로는 사회자로 다양한 토론을 경험해 왔다. 그 중에서도 국립방송채널 KTV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KTV 정책포럼과 만남은 특별하다. 그 동안 두세 차례 프로그램명이 바뀌었지만, 지금까지 7년 넘게 지속되어 온 사회자로서 경험은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값진 것은 역시 토론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또한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그들의 지식과 주장이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토론의 화두도 많이 변해 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 세계화, 그리고 IMF 경제위기, 남북정 상회담, IT산업,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 등 그 시대의 흐름과 맥을 함께 해왔다.
한마디로, 토론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한 대학의 총장으로 계신 원로학자 한 분은 '토론은 낮게 임하는 것'이라는 것을 토론을 통해 몸소 실천해 보여주셨다. 원로학자로서 젊은 학자들과 토론이 격에 맞지 않아 꺼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 분은 소장 학자들의 반론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강건하게 피력했다. 그리고 논점을 찾아 조정하며,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고 또 설득당해 주믐 아량을 보여 주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부은 대학 총장으로서도 그렇게 '낮게 임하는 포용력'을 보여주고 계시리라 믿는다.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어느 분의 토론에서는 늘 '명쾌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문제도 이 분의 새로운 시각에서는 단순하고 분명한 문제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이 분의 표현은 쉽다. 쉬운 만큼 알아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설득력이 있었다.
얼마 전 다른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토론을 보게 되었는데, 역시 그는 정말 토론 잘 하는 사람이었다. 말을 어눌하게 하면서도 토론을 잘 하는 분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자신감이 있고, 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말이 빨라지고, 말에 욕심을 낸다. 그런데 이 분은 별로 그렇지가 않다. 쟁점 토론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보다는 듣기를 먼저 한다. 그리고 상대 토론자에게 마치 학생처럼 순진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그의 무기이다.
토론에서 제일 어려운 입장에 있게 되는 사람들이 정부 관료들이다. 그래서 관료들 사이에서는 토론에 나와서는 잘 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망한다는 말까지 회자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잘한 일이 있을 때는 부르지 않고,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부르는 것이 토론의 생리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무정책 국장을 맡고 있던 이 분은 자신의 입장을 피하지 않고 충분히 설명하고, 반대 입장을 들어가는 모습에서 신뢰를 주었다. 특히,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는 그의 토론에서는 정부의 일을 그냥 질질 끌려가듯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을 갖고 한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설득력이었다.
토론의 내용은 날카롭고 뜨겁지만, 부드러운 그의 표정은 소위 품격 있는 논쟁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웃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시민단체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그의 활동 모습을 보면서, 부드럽지만 강한 그의 힘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많은 분들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이분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토론을 잘 하는 기술만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수평적 사고,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결단 있게 내려지는 명쾌한 분석과 설득력이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절실히 요구되는 우리의 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토론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2. 토론가적 리더십의 조건
■ 토론가적 리더십을 생각해 본다.
토론하는 사회는 토론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토론가적 리더십은 권위가 아닌 대화로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지도성을 말한다. 모든 구성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또한 토론의 목적이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통해 조정하고 타협하는 데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첫째, 설득의 기술이다.
과거의 대중연설처럼 일방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감동으로 따라오게 하는 힘의 대화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설득의 기술은 서로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단순하면서도 핵심적인 메시지로 전달함으로써 타협하고 조정하여 합의에 이르게 하는 포용의 대화법이다.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정직하지 않으면 적용될 수 없는 대화법이기도 하다.
둘째, 경청의 기술이다.
경청의 기술은 열린 마음에서 출발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의 입장을 수평선 위에 올려 놓는 기술이다.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이념이 같거나 다르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토론의 상대자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본다. 너무 멀 때는 가까운 곳에서, 너무 낮을 때는 고개를 숙여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는 아량이 필요한 기술이다.
셋째 , 토론 문화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토론가적 리더십이 현실화될 수 있는 토론 문화의 조건이다. 아무리 그 사회의 지도자가 설득과 경청의 기술을 갖추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필요성을 알고 그 능력을 인정하는 사회의 풍토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토론하는 사회에서는 토론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3. 토론을 학습하는 사회
토론하는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에 기인한다.
현대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도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간에도 형과 아우 사이에 세대 차이가 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이다. 특히, 이러한 다양성을 가속화시키는 동인으로는 정보화를 꼽고 있다. 인터넷 통신으로 다양한 정보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 기술은 집단간에, 세대간에 정보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시대에 우리는 기회와 위기를 함께 보고 있다. 다양성은 다름을 말한다. 생각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다름을 어떻게 극복하고 통합할 것인 가이다. 다양성의 통합은 이 시대의 위기를 기회로, 그리고 현재의 기회를 더 큰 미래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토론이 그 대안으로 제시된다.
토론은 포용의 대화법이다. 상대의 생각을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논쟁으로 조정하고 타협한다. 그리고 이루어낸 합의는 하나의 의견이 가져오는 성과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큰 시너지 효과가 있게 된다.
인터넷 속의 토론은 새로운 기회이다.
다양한 의견들이 현실 사회의 한계를 넘어 엄청난 힘으로 표출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가능하지 못한 대화도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어느 한 일간지에서는 온라인에서 토론방을 열고, 그 결과를 나중에 지상에 보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기계를 통한 대화의 차가움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에는 쉬우나,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협의하는 소위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토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협의 없는 토론이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토론에서도 문제는 있다.
기존의 방송토론, 공청회 등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빠지기 쉽다. 대개는 전문가의 몫이다. 보통 사람들은 청중으로, 방청객으로 자기의 위치를 정하게 되고, 자신들의 입장을 구경꾼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지적되는 문제는 바로 그들만의 잔치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들의 잔치를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된다. 토론하는 사회는 학습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토론에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인터넷 토론에서 타협하고 조정하며 합의하게 되는 과정을 배워야 한다. 이는 토론의 방법과 형식을 배우는 토론학습을 말한다. 토론 학습의 책임은 개인과 사회가 함께 지고 있다. 토론 학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배우려는 개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토론 학습을 제공하는 학교, 직장, 가정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성숙한 토론 문화는 바로 이러한 토론 학습의 결과이다.
우리는 토론가적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학습되지 않은 토론사회에서는 그러한 지도자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토론을 학습하는 사회는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 사회를 열어 가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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