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ome>커뮤니티>지식정보 |
종교명상 무설(無說)의 교훈
페이지 정보

본문
말로써 경론(經論)을 강설(講說)하는 곳임에도 무설(無說)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 수단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다.
- 경주 불국사의 ‘무설전(無說殿)’ 설명에서
불국사 대웅전 뒤에 무설전(無說殿)이 있습니다.
670년 경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최초로 강의했다고 합니다.
현판에 붙은 ‘무설(無說)’을 보고 처음엔
공부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조용히 해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마치 학교 교실 곳곳에 붙어있던 ‘실내정숙’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무설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써 억지로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로 ‘이것이 진리다’라고 고정해서 말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억지로 정하고 집착해서 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의 말로써는 진리의 깊이를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현판에 새겨진 ‘무설’은
경론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주는 지침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진리인 것처럼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부처님의 뜻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사랑과 미움의 크기를 정확히 재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얼마만큼 미워하는지 그 크기를 알 수 없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그 크기를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느끼는 하늘과 땅의 크기가 말하는 사람의 크기와 다릅니다.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맛’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약수터에서 사람들이 약수를 한 바가지 마시며 ‘물맛 좋다’고 하는데,
좋은 물맛은 어떤 맛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직접 물을 마시고 느끼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말로 표현은 못해도 자신이 좋다고 느끼면 좋은 물맛이기 때문입니다.
‘무설’은 두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먼저, 자신의 주장을 마치 진리인양 상대에게 강요해서 안 됩니다.
진리란 억지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이 옳다고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이 없어도 자연적으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느낌을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도록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에게는 맛있는 물맛이지만, 상대에게는 밋밋한 물맛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무설의 시간을 갖습니다.
내 말만이 정답이라며 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나의 느낌을 남도 같이 느끼라며 강요하지 않았는지 반성합니다.
비록 말은 없지만 크게 깨닫는 아침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