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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토론실
댓글 0건 조회 2,646회 작성일 02-12-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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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일대기]
빈농의 아들..청와대 입성까지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아온 56세의 ‘젊은’ 정치인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가 첫번째 대권도전에서 성공해 격랑의 21세기를헤쳐나갈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호남에 지역기반을 둔 민주당의 영남 출신 후보,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탄탄대로의 인생항로를 거침없이 버리면서 ‘국민 통합과 분열 극복’을 외쳐온 ‘우리 시대의 바보’, ‘노짱’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보자던 김해 촌소년. 그가 이제 2개월후면청와대의 주인으로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갈 대임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그의 당선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대와 국민의 요구, 국제사회의 당당한 주역으로 나서라는 민족적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것일 뿐 아니라 그의 단심(丹心)과용기, 그리고 젊은 지도력에 대한 국민적 평가로도 볼 수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한 뒤 고시에 합격해 판사.변호사를 거쳐 군사독재시절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6번의 국회의원과 부산시장 도전에 4번 낙선한그가 국민경선으로 뽑힌 대통령 후보가 되고, 후보가 된 뒤에도 온갖 풍상을 겪다가19일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인생.정치역정은 그야말로 영욕과 부침, 환희와 좌절,냉탕과 온탕이 교차한 한편의 드라마다.

노 당선자는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아버지 노판석(盧判石.76년 작고), 어머니 이순례(李順禮.98년 작고)씨의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과 같은 광주 노씨로 광주파 32대손인 노 당선자의 가계는 부친이 일제때 일본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돈을 벌어 왔으나 사기를 당한뒤 늘 빈한했고, 어머니는 고구마순과 딸기를 이고 30-40리길 마산까지 내다 팔아생계를 이어갈 정도였다고 노 당선자는 기억한다.

넉넉지 못한 가세는 부모의 교육열로 당시 진영읍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다니던형 영현씨(73년 작고)의 학비를 대느라 논.밭.집터가 차례로 팔려가면서 더욱 기울어 총기 넘치던 소년 노무현은 결국 가난때문에 중학 졸업후 일찌감치 대학 진학의꿈을 접고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그의 고교 학적부에 적힌 장래 희망은 늘 ‘은행원’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입버릇처럼 “변호사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2학년 무렵에는 술.담배를 입에 대고기말고사때 머리를 자르러 다닌 훈육주임을 피해 도망치는 등 ‘방황’도 했다.

고교 졸업 뒤 66년 ‘삼해공업’이라는 어망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한달여만에 그만 두고 귀향한 노 당선자는 마을 산귀퉁이에 토담집 ‘마옥당(磨玉堂)’을직접 짓고 고시공부에 들어갔다.

책 살돈이 없어 울산 공사판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중간에 군에 입대해 34개월만에 상병으로 제대한 후 재도전하는 등 수차례의 고배를 마시다 우리나이 서른에늦깎이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시험 공부도중 같은 마을에 살던 지금의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둑길 데이트’로 사랑을 키운 끝에 결혼에 골인하면서 가정적으로도 안정을 갖게 됐다. 결혼말이 오가던 중 장인이 6.25때 부역 혐의로 옥사했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그의 완강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장인 부역 문제는 이후 국민경선과정에서 경쟁자인 이인제(李仁濟) 후보측의 문제제기로 다시 도마위에 올랐지만 그는 “얼굴도 보지 못한 장인때문에 나더러 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는 말로 오히려 인간미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법고시 합격이후 판사에 임용된 뒤 ‘따분하다’는 이유로 7개월만에 그만두고변호사 개업을 한 그는 80년대 초까지만해도 요트를 즐기던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그의 오랜 친구인 문재인(文在寅) 변호사는 “당시 노 변호사는 부산일보 사장을지낸 김지태씨가 대표로 있던 (주)삼화나 조선견직 등 부산의 대표 향토기업의 상속세 등 100억원대의 사건을 맡아 승승장구했다”면서 “승률이 90% 이상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다.

그러던 그가 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다시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부산지역 최고의 인권변호사였던 김광일(金光一)씨의 대타로 시국사건 변호사가 된 노 당선자는 교도소에서 57일간 구금돼 구타와 고문을 받은 한 학생을 만나면 시국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등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고 조영래(趙永來) 변호사 등 부산지역 운동권 인사들과 교류를 시작하면서‘노변(노무현 변호사의 약칭으로 당시 그의 별칭)’은 서민의 애환과 민중의 고통을몸으로 체감하는 인권.노동 변호사로서 변신하게 된다.

 

노 당선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87년 9월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인 규명작업에 나섰다가 3자 개입과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일부 신문에 대서특필되면서부터다.

그는 이 사건으로 변호사 업무 정지처분까지 받고 낭인생활을 하다 88년 4.26총선(13대)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김영삼 (金泳三)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 의해 5공 실세 허삼수(許三守) 후보의대항마로 부산 동구 투입돼 금배지를 닮으로써 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것.

초선의원 노 당선자는 88년 5공 청문회에서 다른 여야 의원들이 깍듯이 예우한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회장 등 힘있는 증인들을 정연한 논리와 송곳 질문으로몰아세워 TV를 시청하던 국민을 열광시키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부상했다.

그러나 89년3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5공 청문회 참석거부에 항의, 의원직을내던졌다가 ‘패기있다’는 격려보다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비난받고 결국 17일만에사퇴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음으로써 정치 현실에서 첫 비애감을 맛보게 된다.

노 당선자는 90년1월 3당 합당 때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심끝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는 김영삼 총재의 합류 권유를 “역사적 반역”이라며 뿌리치는 정치적 소신을 고수했다.

이는 오늘날엔 ‘정체성’과 ‘동서통합’의 이름으로 노 당선자의 최고 자산이 됐지만 당시엔 춥고 배고픈 비주류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의미했다.

꼬마 민주당과 김대중(金大中) 총재의 신민당간 야권통합에 참여한 후 92년 총선에서 ‘김대중 깃발’로 허삼수 후보와 재대결했다가 무릎을 꿇었고, 95년 부산시장도전에서도 민자당 문정수(文正秀)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 창당 때 이번엔 “야권분열”이라며 합류 권유를 거부하고 96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도전했으나 양김을 거부한 처지에서 이길 수는없었다.

노 후보는 15대 총선후 김원기(金元基) 이부영(李富榮) 김정길(金正吉) 김원웅(金元雄)씨 등과 국민통합추진위를 결성, 활동하다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정권교체냐 3김청산이냐’의 논란속에서 ‘선(先) 정권교체와 동서통합’을 명분으로 국민회의를 택했다.

그 덕분에 정권교체후인 98년 7월 보선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종로에 재도전, 오랜만에 금배지를 달고도, 2000년4월 총선에서 다시 지역주의 극복을 내세워 종로를뒤로 한 채 부산(북강서 을) 표심을 두드렸다가 ‘당연히’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후보에게 고배를 들었다. 그러나 이 선거는 노 당선자의 오늘을 있게 한 소중한 패배였다.

당선이 사실상 보장됐던 종로를 버리고 ‘지역통합’을 내세우며 무모하게 부산출마를 감행한 그는 선거판의 돈키호테로 잊혀질 뻔했지만 마침 당시 급속히 확산되고있던 인터넷 초고속망을 타고 네티즌들 사이에 ‘바보 노무현’이라는 호칭으로 애정어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태동이며 오늘의 ‘노풍’을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노 당선자는 그해 8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됨으로써 국정경험을 쌓는 기회를 얻고 여권 대선주자의 한사람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으나 “내가 가장 대중적 폭발력이 크다”는 그의 목소리는 ‘이인제 대세론’에 묻혀, 지난 3월9일 제주 경선때까지만 해도 메아리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그러나 노 당선자는 그 다음주 실시된 광주 경선에서 ‘광주의 선택’으로 불리는경선 1위를 차지하며 ‘이인제 대세론’을 함몰시켰고, 개혁과 변화의 바람을 등에 업고 국민 여론조사 지지율 60%라는 엄청난 ‘노풍’을 만들어냈다.

대선까지 거칠 것 없을 것 같았던 질풍노도의 노풍은 그러나 ‘민주화세력 대통합론’을 내세우며 가졌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급락과 당내 분란 계속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혹독한 6개월의 시련과 단련기를맞게 된다.

특히 6.13 지방선거에 앞서 영남권 전패시 재신임받겠다고 약속하고 8.8 재.보선 후에는 재경선을 공언했다가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자 단일화를 명분으로 내건 당내 반노세력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탈당사태를 겪는 등 곡절을 겪었다. .

그러나 그는 고비고비마다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그가 원칙에 반한 타협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후보로 뽑힌 노무현을 아무런 이유없이 배척하고 냉대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오프 라인을 통해 그의 힘이 돼준 노사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 당선자는 지난 11월 중순 최대 기로였던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수용하며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 끝내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후보단일화 성공이후 선거운동 기간내내 한번도 주요 여론조사에서 뒤지지 않은채 선거전 마지막 날을 맞은 노 당선자는 투표개시를 불과 7시간여 남겨놓은 18일밤 정 대표의 ‘지지철회’로 막판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으나 국민의 변화 욕구와시대정신은 결국 그에게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막을 열게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현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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