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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김재박노력과 이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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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야 성공한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이 말은 현역시절 최고의 야구 선수이며
현대유니콘스팀의 감독인 金在博(김재박·47)씨에게는
야구 인생을 바꾼 최고의 한마디였다.
고교시절 별볼일 없는 야구 선수였던 그는 대학팀이든 실업팀이든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마침 창단을 한 영남대 야구부에 시험을 치르고 합격 해 겨우 진로 걱정은 덜었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엄청난 실력차를 보인 영남대 야구부 시절은 그에게「위기」였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정말 무식할 정도로 고된 훈련을 시키는 배성서 감독을 만났고,
처음 만나는 날 그에게 들은 한마디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배성서 감독의 그 말은 金在博씨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를 악 물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2년간 노력한 결과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어 있었다.
별볼일 없는 선수에게 발빠른 도루왕이 되기까지 배성서 감독의 한마디는 최고의 채찍질이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李時炯(이시형·67) 박사는
미국 예일大 재학 시절 플랙 교수의 냉정한 한마디가 그의 삶에 가장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 무당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심포지엄 발표 후 자신을 사사해 준 플랙 교수가 무당과 풍수설에 대해 물었다.
무당에 관계된 것만 준비한 그가 풍수에 대해 미처 대답을 못하자 플랙 교수가 설명을 대신했다.
열흘 넘게 준비한 게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는 너무 허탈 하고 지쳐 하루를 고열에 시달리며 인사불성으로 지냈다.
그 절망의 시간에 플랙 교수가 냉정하게 한마디를 했다.
『그래도 안 죽는다』
상처를 받고 힘든 줄은 알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애정어 린 충고였다.
李時炯 박사는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의 냉정한 한마디를 떠 올린다고 한다.
소설가 全商國씨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아 소설가가 되었다.
중 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당시 졸업 기념으로 유행하던 사인지를 아이들 끼리 주고받다가
체육 선생님에게 걸려 벌을 받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선생님께
『걔, 이 다음에 문학가가 될 거래요』하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이 대꾸하기를 『문학가? 이 새끼가 그런 거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고 했다.
또 춘천고등학교 2학년 때 문예반 이희철 선생님은 숙제로 해간 全씨의 글을 보고
몇 개의 낱말과 문장에 밑줄 친 것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휘력이 형편없는 놈이 뭔 글을 쓴다고 그래? 문장은 더 엉망이야.
문맥 이 안 통하는 비문을 쓴다 이 말이야』
두 선생님의 말에 全商國씨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상처를 회복할 즈음 그 는 아주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선생님의 악의성 장담은 당시 문학이 뭔지 잘 모르던 그에게
문학 혹은 문학가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였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은 그가 작가가 되는 노력을 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너희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 조선인이 못나서 망 한 것이야』
언뜻 보기에 평범한 이 말은 현역시절 최고의 야구 선수이며
현대유니콘스팀의 감독인 金在博(김재박·47)씨에게는
야구 인생을 바꾼 최고의 한마디였다.
고교시절 별볼일 없는 야구 선수였던 그는 대학팀이든 실업팀이든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마침 창단을 한 영남대 야구부에 시험을 치르고 합격 해 겨우 진로 걱정은 덜었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엄청난 실력차를 보인 영남대 야구부 시절은 그에게「위기」였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정말 무식할 정도로 고된 훈련을 시키는 배성서 감독을 만났고,
처음 만나는 날 그에게 들은 한마디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배성서 감독의 그 말은 金在博씨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를 악 물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2년간 노력한 결과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어 있었다.
별볼일 없는 선수에게 발빠른 도루왕이 되기까지 배성서 감독의 한마디는 최고의 채찍질이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李時炯(이시형·67) 박사는
미국 예일大 재학 시절 플랙 교수의 냉정한 한마디가 그의 삶에 가장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우리나라 무당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심포지엄 발표 후 자신을 사사해 준 플랙 교수가 무당과 풍수설에 대해 물었다.
무당에 관계된 것만 준비한 그가 풍수에 대해 미처 대답을 못하자 플랙 교수가 설명을 대신했다.
열흘 넘게 준비한 게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그는 너무 허탈 하고 지쳐 하루를 고열에 시달리며 인사불성으로 지냈다.
그 절망의 시간에 플랙 교수가 냉정하게 한마디를 했다.
『그래도 안 죽는다』
상처를 받고 힘든 줄은 알지만 죽을 각오를 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애정어 린 충고였다.
李時炯 박사는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의 냉정한 한마디를 떠 올린다고 한다.
소설가 全商國씨는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자극을 받아 소설가가 되었다.
중 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당시 졸업 기념으로 유행하던 사인지를 아이들 끼리 주고받다가
체육 선생님에게 걸려 벌을 받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선생님께
『걔, 이 다음에 문학가가 될 거래요』하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이 대꾸하기를 『문학가? 이 새끼가 그런 거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져라』고 했다.
또 춘천고등학교 2학년 때 문예반 이희철 선생님은 숙제로 해간 全씨의 글을 보고
몇 개의 낱말과 문장에 밑줄 친 것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휘력이 형편없는 놈이 뭔 글을 쓴다고 그래? 문장은 더 엉망이야.
문맥 이 안 통하는 비문을 쓴다 이 말이야』
두 선생님의 말에 全商國씨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상처를 회복할 즈음 그 는 아주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선생님의 악의성 장담은 당시 문학이 뭔지 잘 모르던 그에게
문학 혹은 문학가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였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은 그가 작가가 되는 노력을 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너희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 조선인이 못나서 망 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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