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ome>토론게시판>주제토론방 |
뉴스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
페이지 정보

본문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이등중사 이천우님의 유해를 발굴하여 신원이 확인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5일 오후 4시30분 부산 수영구 망미동 이명덕(61)씨 집에서 이재수 육군 53사단장이 6.25전쟁 때 전사한 고(故) 이천우 이등중사(병장)의 신원확인 통지서를 전달했다. 신원확인 통지서 전달식에는 박현욱 수영구청장, 정환식 부산지방병무청장 등도 참석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서명한 통지서에는 이 이등중사가 지난해 9월27일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백석산에서 유해를 발굴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단장은 신원확인 통지서를 건네면서 "뒤늦게 알려드려 죄송하다"며 고인의 장조카인 이씨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이어 국방부유해발굴감시단장인 박신한 대령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위로패를 비롯해 유해발굴 당시 덮은 태극기와 발굴현장에서 발견한 인식표, 당시 실탄 등 유품을 전달했다.
특히 분실을 우려해서인지 군화끈으로 인식표를 동여매고 있었고 녹슨 실탄 2발과 탄피 1발은 당시 치열했던 전쟁의 참상을 짐작케 했다.
박 단장은 이 이등중사의 유해는 자신보다 4개월 전에 전사한 형 고(故) 이만우 하사 묘가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형과 함께 나란히 안장된다고 유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우편이나 서면으로 이뤄지던 기존의 신원확인 통지 방식이 나라에 목숨을 바친 전사자에 대한 예우로 부족하다는 여론에 따라 지난해 신원확인 통보절차가 방문전달로 개선된 이후 이번이 첫 사례다.
박 단장은 6.25전자사 유해발굴과정을 소개하면서 이씨 형제와 같은 감동적이고 애틋한 사례는 정말 드물다고 말했다.
4남3녀중 3남인 이 이등중사는 낙동강전투의 막바지인 1950년 9월22일 둘째형이 입대한지 한 달 만에 홀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19세의 어린 나이에 자원입대했다.
형은 1사단에 아우는 7사단에 배치돼 서울수복과 평양탈환 등 북진과 후퇴, 다시 북진을 하는 등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치열한 북진전투에 참여한 형이 1951년 5월7일 전사하고 동생도 같은해 9월25일 백석산 탈환을 눈앞에 두고 인근 '무명901고지' 부근 능선에서 안타깝게 전사했다.
박 단장은 "당시 참전용사들이 인식표에 대해 잘 몰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이등중사는 군화끈으로 인식표를 목에 걸고 있었던 덕분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늦었지만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서울현충원에 더이상 안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없지만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형제의 감동적인 사연이 뒤늦게 밝혀져 나란히 안장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13만명의 참전용사들 중에서도 이런 형제가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명덕씨는 "1985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혼자서 우는 모습을 자주 봤다"면서 "두 분의 삼촌을 동시에 찾게 돼 그동안 맺혔던 우리 집안의 한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cho@yna.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