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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성형시대’에 소녀들은 성형하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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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이나 제목에서 특정 대상을 거론한 것은 단지 일례를 들기 위함이며 그 예에 한정된 논지를 펼치기 위함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외모가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작용함을 인정하면서도 성형에 의한 미?모는 비난한다. 특히 외모를 무기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연예인들은 성형 여부를 숨기면 거짓말쟁이로 비난 당하고, 자의든 타의든 성형 여부가 드러나게 되면 인조인간이라는 오명을 얻는다. 누군가는 용기있는 성형 고백?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까놓고 말해 성형 여부는 감추면 가식이 되고 밝혀지면 불명예가 된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성형에 대한 딜레마를 갖게 됨은 분명 연예인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연예인을 변호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외모 논쟁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놓이기 위해 성형으로서 자신의 외적 스펙을 쌓는 것은 과연 비난받을 일인가? 외모를 통한 이득은 유전자를 타고난 자연 미인만이 차지해야 할 몫인가? 일란성 쌍둥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거의 외모가 흡사한 예로서, 외모는 유전적 요인이 99%라는 전제를 깔면, 노력으로서 외양을 가꿀 수 있다는 조언도 사실은 ‘무근’한 이야기이다.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비판도 현실 도피적이다. 외모와 내면은 서로 함수관계가 없으므로 그런 식의 문제 회피는 논점 일탈일 뿐이다. 외모지상주의 논쟁에서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성형 의료를 원하는 ‘환자?’가 아니라, 그러한 의료의 수요를 증가시킨 원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형을 원하는 심리가 일종의 병적 증상이라면,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할 일이지, 치료받고 나온 ‘환자?’를 까대면 뭐하냐는 것이다.
논리적인 면에서, 외모 비하 발언을 한 대상을 똑같이 외모로 까는 것이 과연 외모지상주의에 반대하는 논리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라. 그 악명 높았던 ‘루저녀’를 까기 위해 '사이버수사대'가 그녀의 성형 여부나 외모적 약점을 들춰냈던 행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합적 측면에서만 봐도, 네티즌들은 문제의 ‘루저 발언’이 가진 위험성을 지적하고 발언 주체의 ‘뇌’가 비어있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 이상은 진도를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외모지상주의자를 비난하기 위해, 외모지상주의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눈에는 눈, 루저에는 루저로 대응한다면, 그런 식의 언쟁은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성형시대'의 외모 차별 정당화 논리의 맷집만 늘어나게 한다. 감정적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논리성을 따져야만 올바른 논리가 도출되고 현실에서 그에 맞는 상식을 통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외모가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작용함을 인정하면서도 성형에 의한 미?모는 비난한다. 특히 외모를 무기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연예인들은 성형 여부를 숨기면 거짓말쟁이로 비난 당하고, 자의든 타의든 성형 여부가 드러나게 되면 인조인간이라는 오명을 얻는다. 누군가는 용기있는 성형 고백?이라는 말로 포장하지만, 까놓고 말해 성형 여부는 감추면 가식이 되고 밝혀지면 불명예가 된다.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성형에 대한 딜레마를 갖게 됨은 분명 연예인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연예인을 변호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외모 논쟁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놓이기 위해 성형으로서 자신의 외적 스펙을 쌓는 것은 과연 비난받을 일인가? 외모를 통한 이득은 유전자를 타고난 자연 미인만이 차지해야 할 몫인가? 일란성 쌍둥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거의 외모가 흡사한 예로서, 외모는 유전적 요인이 99%라는 전제를 깔면, 노력으로서 외양을 가꿀 수 있다는 조언도 사실은 ‘무근’한 이야기이다. 얼굴보다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비판도 현실 도피적이다. 외모와 내면은 서로 함수관계가 없으므로 그런 식의 문제 회피는 논점 일탈일 뿐이다. 외모지상주의 논쟁에서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성형 의료를 원하는 ‘환자?’가 아니라, 그러한 의료의 수요를 증가시킨 원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형을 원하는 심리가 일종의 병적 증상이라면,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할 일이지, 치료받고 나온 ‘환자?’를 까대면 뭐하냐는 것이다.
논리적인 면에서, 외모 비하 발언을 한 대상을 똑같이 외모로 까는 것이 과연 외모지상주의에 반대하는 논리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라. 그 악명 높았던 ‘루저녀’를 까기 위해 '사이버수사대'가 그녀의 성형 여부나 외모적 약점을 들춰냈던 행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합적 측면에서만 봐도, 네티즌들은 문제의 ‘루저 발언’이 가진 위험성을 지적하고 발언 주체의 ‘뇌’가 비어있는 정도를 측정하는 것 이상은 진도를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외모지상주의자를 비난하기 위해, 외모지상주의자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눈에는 눈, 루저에는 루저로 대응한다면, 그런 식의 언쟁은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성형시대'의 외모 차별 정당화 논리의 맷집만 늘어나게 한다. 감정적으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논리성을 따져야만 올바른 논리가 도출되고 현실에서 그에 맞는 상식을 통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댓글목록

라세리느님의 댓글
라세리느 작성일
성형을 적극적으로 지지 하지는 않지만,
외모지상주의의 세상에서 외모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선택은 본인의 몫이겠지만요,

커피한잔의여유님의 댓글
커피한잔의여유 작성일
저는 해도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제 우리사회는 극심한 외모지상주의 입니다 얼굴이 못생겼다면 욕을 먹기 십상인 상태입니다.
선택은 자신의 실이지 남이 간섭할 일은 아니라고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