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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청나라는 우리의 역사가 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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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이 대화는 “마지막황제”라는 영화의 한 대화이다 아이신지로....愛新覺羅
우리나라말로 읽으면 애신각라이다.
그럼 애신각라의 뜻은 무엇인가? 바로 신라를 생각하고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는뜻이다.
신라하면 바로 떠올릴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중하나인 삼국시대 신라를..
왜 청나라 성씨가 신라를 기억하고 사랑 하라는 뜻일까?
청나라는 신라의 후예가 세운 나란 말인가?
만약에 청나라가 신라의 후예가 세운 나라라면
청나라는 중국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가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중국의 왕조중의 하나인 청나라는 1616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중원에서 멸망시키고건국한 나라이다.
중화역사가 성립된것은 청나라 때부터였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강희제 옹정제 여러황제를거쳐 중국의 안녕과 번영을 꾀했다.
본래 청나라가 처음 건국당시의 이름은 후금으로 누르하치가
자신의 선조인 아골타가 세운 금나라를 계승한다는뜻으로 후금이라하였다.
아골타는 누르하치의 16대 선조로 금나라의 태조이기도하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아골타에대한 자료가 있는데
고려 예종 10년(1115년)의 기록에 의하면,
생여진(生女眞) 아골타가 황제라 일컫고 금나라를 세웠다.
혹은 말하기를 옛적에 우리 평주(平州)땅에 승(僧) 금준(今俊)이
여진으로 도망해 들어가 아지고촌에 거주했으며 이가 금의 시조라 하였고,
또는 평주 승 김행의 아들 극기가 여진 아지고촌에 들어가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고을(古乙)이고 태사가 되었다.
고을이 낳은 아들 활라(活羅)도 태사를 이었다.
활라는 많은 아들을 두어 장자가 핵발리고 계자(季子)를 영가라 했는데
영가가 웅걸이어서 중심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 장자 오야속이 위를 이었고 그가 죽자 아우 아골타가 섰다“
여기서 보면 아골타를 신라의 평주땅에서 건너간 금준의후손이라고되어있다.
즉.신라의 후예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우리나라역사서에 기록된것이라
우리나라의관점에서 쓸수있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서에만 이러한기록이있는것이아니다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에
“금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를 비롯한 3형제의 후손이다.”
또한 송나라 사서 송막기문에는 금의 시조 아골타의 조상은 신라에서왔다.“라는 것이써있다.
이렇게 중국의 역사서에도 아골타를 신라의 후손으로 기록해놓았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를 보았을때 아골타는 신라사람 금준의 후손이며
아골타의 16대손인 청나라를 건국한 누르하치도 신라의 후손.
즉 청나라는 신라민족 즉 우리나라민족의 역사가될수있는것이다.
일찍이 누르하치는 조선을 멸하지않는이류를
" 한수이북은 자신의 선조가 태어난 땅 " 이라 말하였고 삼전도 항복 때는
" 본래 우리는 고려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거늘 어찌하여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 " 하였으며 임진왜라인 발생하였을땐.
조선의 선조에게 이러한 서신을 보내기도했다 "
부모의 나라를 침략한 쥐같은 왜구들을 ...수장시키겠습니다 "
물론 이러한 자료들로만 봐서 청이 신라의 후예가 세운 나라라고 할 수는없지만.
그러한 가능가성이 충분이 있기 때문에 역사서에도 이러한 자료가있는게 아닐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목록

Idler님의 댓글
Idler 작성일
신라의 후예가 몇백년 후에 청나라를 세웠다고 해서
청의 역사가 '우리의 국사'라고 할 순 없죠. 고구려의
유민들이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였는데, 백제의 역사를
고구려의 역사라고 하지 않잖아요.

국동빈티남님의 댓글의 댓글
국동빈티남 작성일
전단지 이렇타는것도있다 그걸보여주기위한 ㅜㅜㅜ

바란님의 댓글
바란 작성일
이런 민족주의적 경향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왕족 혈통의 가능성만으로, 수십억명이 수백년동안 이룩했던 것을 우리의 치하, 우리의 역사라고 치부하는 것은 굉장히 강도질처럼 느껴집니다...

국동빈티남님의 댓글의 댓글
국동빈티남 작성일저같은 어린아이시선으로 쓴거라 ㅈㅅㅅㅈㅅ

하얀색향기님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하지만 우리와 연관이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들 스스로 신라의 후손을 자처했다면 가능한 것 같습니다.

Idler님의 댓글의 댓글
Idler 작성일
그런 식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게되면 중국에서 행하는 역사 왜곡의
논리도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국사는 사실 중국에 조공을
바쳐온 연속인데, 이를 근거로 중국에서 한국의 역사는 중국의 속국이다,
라고 한다면 우리는 받아들일수 없게 되죠.

하얀색향기님의 댓글의 댓글
하얀색향기 작성일그렇다고 해서 그는 신라의 후손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더욱 이상하지 않을까요? 역사가 직계만 기록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분명하다라고 이야기하기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겠지만 신라의 후손을 자처하는 사람이 세운 왕조다라는 이야기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뭐로할까?님의 댓글
뭐로할까? 작성일만약 그렇다면 중국이 우리나라땅이 될수도있는건가요? 그렇게되면 정말 좋을듯

악어각성님의 댓글
악어각성 작성일제 생각에는 작성자님의 말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시점에서 우리나라 땅을 찾기는 상당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사이는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저그렇다고 생각하나 이 상태에서 함부로 발언을 했다가는 사이가 많이 않좋아 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발언하기보다 오히려 조금더 많은 자료를 찾아 설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폭풍간지님의 댓글
폭풍간지 작성일
청나라가 우리의 역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청왕조가 철저히 중화세력권에서 번영했고
역사또한 한족의 명조를 계승했다고 해서 완전히 중국의 역사를 계승했다고 보시면됩니다.
그리고 이분의 말대로 라면; 일본역시 우리의 역사가 되야합니다. 일본의 원주민들을
문명화 시키고 발전시킨것은 한번도에서 넘어간 도래인들이고.. 일본왕실또한 백제와 깊은관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