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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Re..애국가와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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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무
댓글 1건 조회 6,858회 작성일 07-07-19 11:48

본문


인터넷 항해 중에 퍼 온 글입니다. 양해 바람니다.
 
얼마전에 '애국가'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읍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으면 지구는 망합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푸르고 맑도록! 이렇게 불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읍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여호와를 교묘하게, 동양의 한얼님으로 교묘하게 부르게 만들었나? 생각했읍니다.
 
그리고 소나무에 철갑을 두르고 바람 서리 불변하게 부르면
나무가 제대로 자라겠읍니까? 고달픈 나무가 되고 결국 고사되고 맙니다.
차라리 "남산수와 청송죽은 절개도 높으나 / 풍우상으로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대원군도 돌아가시고 명성황후도 시해당하고
고종이 혼자서 일을 제대로 처리를 못하고, 신하들의 압제에 굴욕하고 멍청한 짓을 조금 했읍니다.
경운궁(덕수궁)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을 바꾸고...(경운궁(덕수궁)측은 중국의 한漢족이 하늘 민족이라 합니다. 서울대 모 역사교수의 소리만 듣고 웃기는 소리 많이 합니다. 한漢족과 고조선 고구려가 전쟁을 했다는 것을 모르나 봅니다!)
서울시내 돌아다니다 보면 당시에 잘못 세워진 것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래서 대한제국은 10년 못 넘기고 단명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시간 있으면(시간없더라도 5분만 투자하세요!)
다음사이트 -> 아고라 -> 네티즌청원 -> 바꿔주세요.
한반도에 중요산에 쇠말뚝으로 한민족 정기를 끊으려 했듯이,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저주물을 일제와 영국이 심어 놓았읍니다.
일제 저주물 제거 ( 덕수궁 물개제거 )에 동참해 주세요.
http://agoraplaza.media.daum.net/petition/petition.do?action=view&no=28729&cateNo=243&boardNo=28729
 
 
전에 쓰이던 애국가!
1절 :  동해수와 백두산에 해돋고 달뜨니 / 신민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무궁한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사람 대한에서 길이 충성하세.
2절 : 남산수와 청송죽은 절개도 높으나 / 풍우상으로 불변함은 우리 기강일세.
3절 : 춘하추동 사계절은 분명코 밝으니 / 일편단심 충국성은 우리 가슴일세.
4절 : 천지신민 충성심은 다할길 넓으네 / 자나깨나 애국심은 우리 황제일세.
 
동해수와 백두산에 해돋고 달뜨고... 천지신민 자나깨나 애국심...
 
 
지금 부르고 있는 애국가?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 퍼 온 글 )----------------------------------------
 
대한민국 애국가의 유래와 상제(上帝)문화
 
대한제국이 공식 제정 선포했던 [대한제국 애국가] 와 상제문화
KBS는 지난 2000년 3월 8일 [KBS수요기획 -부르지 못한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를 방송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애국가는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의 '국가'로 공식 제정되었었습니다 [증보문헌비고]와 [알렌 연표(0884-1905)]등의 사료등을 통해, 이 애국가가 50여개국의 각 외국공사에 배포되었으며 그 보다 앞선 1901년 9월 7일 덕수궁에서 열렸던 고종황제 탄신 축하연에서 34마디의 이곡이 처음 연주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또 한국정신 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 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1904년부터는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일의정서가 체결되고 통감부시대로 들어가면서 대중화되기에는 이미 불가능했다고 중앙대 음대 노동은 교수는 위 방송을 통해서 증언하였습니다 .
 
'대한제국'은 1897년 8월 12일부터 1910년 10월 22일까지 불과 십년 남짓 단명했던 조선왕조의 국명이죠 ,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당시에 몰려드는 서양열강의 세력앞에서 우리나라의 국운은 풍전등화와 같았고 러시아, 일본등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해체 되어 버릴지 알수없는 위급한 상황, 이러한 정세하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했었던 '애국가 제정'은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살아남고자 애썼던 역사적 근거중의 하나입니다.
1904년 5월 13일 황성신문에 실린 애국가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상제(上帝)난 우리 황상을 도우소서
성수무강하샤 해옥주를 산갓치 사으소서
위권을 환영(천하란 뜻)에 떨치샤
어천만세에 복록이 무궁케 하쇼셔
상제(上帝)난 우리 황제를 도으소셔
[자료참조 : [한국문화대백과사전]제 14권 '애국가'항목]
 
이 대한제국 애국가를 가만히 읽어보면 한치를 내다볼수 없는 당시 민족적 상황속에서 한많은 우리 백성들은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염원이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애국가'는 우주의 절대자 하나님인 옥황상제님에게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보살펴달라는 간절한 기도문 그 자체였던 것이죠
역대 [애국가]속에서 불리어진 상제님
지금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는 <애국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에 안익태가 작곡한 것인데 , 놀랍게도 현재의 애국가와 똑같은 가사가 <최신창가집>(1914년 만주 광성학교 발간, 일본 외교사료관 보관)에 실려있습니다. 이와 같이 애국가는 구한말부터 불리어오면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기에 , 작사자 미상의 전국민의 노래라고 할수있습니다.
따라서 가사의 변천에 유의하여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수가 있습니다.
원래 애국가란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뜻인데요 애국가가 '국가'로 공식 제정되기 이전에 갑오경장 이후부터 수백 종류의 애국가가 도처에 불렸다고 합니다.
1896년부터 [독립신문]이 나라사랑운동의 일환으로 애국가 제정운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중 1896년 독립신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악보를 보면 애국가의 큰 틀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함을 알수 있습니다.
즉 '상제님께서 우리나라의 국운과 우리 황실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발원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그로부터 3년뒤 1898년 독립협회 개국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부른 애국가(곡은 영국국가 God save the king )역시 내용은 다르지만 '높으
신 상제님,자비론 상제님'하여 영어의 God에 비견되는 최고신, 절대신의 의미에 상제님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불리고 잇는 안익태 작곡 애국가는 해방후, 서양문물과 변화된 사회인식의 영향으로 '상제님'이 '하느님'으로 바뀐것이라 확신을 할수있습니다.
예로부터 상제님은 우주절대자로서 한민족의 민족정서에 면면히 살아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만 보더라도 상제님의 조화권능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뜻에 따르려고 하는 의지와 기대, 희망섞인 바램이 나타나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민족정서였습니다.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
영원히 번영하야/해달이 무궁하도록/
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상뎨여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여좌(如左)하니, 상제(上帝)난 우리/황제(皇帝)를 도으소서/성수무강(聖壽無疆)하샤/해옥주(海屋籌)를 산(山)갓치 사으소서/위권(威權)이 환영(환瀛)에 ㅅ덜치샤/오천만세에/복록(福綠)이 무궁케 하쇼셔/상제난 우리/황제를 도으소셔.'
 
질문의 의도가 혹시 애국가는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지정한 곡이 애국가가 된다는 의미로 보이네요.  맞습니다.  애국가라는 것이 원래부터 꼭 이것이다라고 한 것은 아니죠.  서구문명이 한반도에 들어서면서 나라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애국가의 종류도 10여종에 이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불리고 있는 애국가와 과거의 애국가와는 음계가 상당히 다릅니다.
 
현행의 애국가 가사는 누가 지었는지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는 않지만 윤치호가 지었다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 외에도 민영환,  안창호 등이 지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현행 애국가의 작사가는 미상인 셈이죠. 
 
현행 애국가의 작곡가는 안익태 선생입니다.  안익태 선생이 <한국환상곡>을 1936년에 완성합니다.  안익태선생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베를린올림픽(1936)에 참가한 한국선수단을 만나 처음으로 선수단과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물론 시상식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아닙니다.  안익태선생이 선수단과 만나서 자신의 작곡한 곡에 기존의 애국가 가사를 접목시켜 사석에서 부른 것이죠. 이것이 현행 애국가의 첫 시도이죠.  그 이전에는 현행 가사에다가 스코트랜드의 민요인 <이별의 노래>의 음을 빌려 불렀습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안익태선생이 작곡한 애국가를 국가로 쓰여지게 됩니다.
 
아래 자료에서 애국가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죠.
 
애국가의 역사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한 노래.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인데 비하여, 애국가는 공식.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구분된다.
 
애국가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 음악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즉,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성창되기 시작하여 1896년 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해도 10여 종류에 이른다.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1882년에는 미국,  1884년에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1889년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1892년 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1901년에는 벨기에 등과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와같이 세계 열강국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됨에 따라 개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애국애족의 사상과 더불어 내용이 각각 다른 애국가가 도처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 시대에 나온 애국가를 살펴 보면, 1896년 나필균 작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한명원의 <애국가>,  유태성의 <애국가>,  달성 예수교인들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최병희의 <애국가>,  평양 김종섭의 <애국가>,  배재학당 문경호의 <애국가>,  이용우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배재학당 학도들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1]과 같다. 그러나 1898년 독립협회가 독립문에서 가진 개국 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무관학도들이 부르고, 초10일 태황제 탄신일에 곳곳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 다른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악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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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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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증보문헌비고>> 권 103 악고(樂考)에 1900년 시의 <대한애국가>가 소개되어 있다.
 
이 <대한애국가>는 에케르트 (Eckert, F.)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에케르트는 광무 5년, 즉 1901년 2월 19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그 해 3월 19일에 고종황제를 폐현(陛見)하였고, 1902년 4월 5일에 우리 정부와 용빙계약서(傭聘契約書)를 작성하였으므로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이 아님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의 곡조를 따서 부른 것이고, 1898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영국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 God save the king>의 가사내용과 곡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며,  <<증보문헌비고>>의 <대한애국가>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와 같은 것이다.  에케르트는 독일인으로 그의 한국에 관한 조사보고서 가운데에 이 <대한제국 애국가>의 악보가 첨부되어 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에 에케르트가 작곡한 것이지만, 그 가사는 [악보2]의 <애국가> 가사와 같이 영국 국가 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1904년 5월 13일자 <<황성신문>>에 "학부(學部)에서 각 학교 애국가를 정리하기 위하여 각 학교에 신칙(申飭)하되 군악대(軍樂隊)에서 조음(調音)한 국가를 효방(效倣)하여 학도를 교수하라 하난대 그 국가는 여좌(如左)하니, 상제(上帝)난 우리/황제(皇帝)를 도으소서/성수무강(聖壽無疆)하샤/해옥주(海屋籌)를 산(山)갓치 사으소서/위권(威權)이 환영(환瀛)에 ㅅ덜치샤/오천만세에/복록(福綠)이 무궁케 하쇼셔/상제난 우리/황제를 도으소셔.' 라는 기사가 있다."
 
이와같이 1902년 에케르트 작곡한 <애국가>는 군악대에서 주로 연주되다가 1904년부터는 각급 학교에서 의문적으로 교수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에 가사 내용을 달리한 <애국가>가 나왔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
영원히 번영하야/해달이 무궁하도록/
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상뎨여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이 노래는 국치(國恥)의 을사조약(1905)과 정미칠조약(1907) 이후에 1902년에 에케르트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가사만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무렵에도 4, 5종의 <애국가>가 전파되었는데,그 중에서 현행 <애국가>의 가사와 같은 것은 배종섭 소장 <<창가책>>과 강릉 이기재 소장 <<창가책>> 사본에서 볼 수 있고,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후렴구는 이미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현행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에 이 가사를 붙여 불렀으나,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국가로 준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애국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태극기·애국가의 왜곡된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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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장군 깃발아래선 누구나 평등하다”
 
1882년 조미통상조약을 맺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국기를 제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조정 역할을 맡은 청나라의 마건충은 중국 용기(龍旗)를 모방해 삼각형 청색 바탕에 용을 그리라는 따위의 조언을 했다. 그러면서 황색은 황제의 상징색이므로 속국에서는 이 색을 써서는 안된다고 제언했다.
 
고종은 분개했다. 결국 고종의 지시에 따라 사각형 옥색 바탕에 태극을 적색과 청색으로,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을 표시하는 괘를 붙이게 했다. 그리하여 태극은, 적색의 머리 부분과 청색의 꼬리 부분은 위로 가게 했으며 4괘는 위에 왼쪽부터 손(巽)과 진(震)을, 아래에 왼쪽부터 이(離)와 간(艮)을 배치했다. 최초로 만든 국기였다.
 
마침내 박영효가 조미조약체결의 대표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갈 때 영국 선장의 의견을 참작해 태극과 8괘를 배치하되 태극에는 음양을 나타내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사용하는 기를 만들었다. 
 
조정은 박영효의 보고를 수용하여 1883년 1월27일 전국에 공포했다. 이때부터 공공건물에 국기를 내걸었고, 이를 태극기라고 불렀다. 이 대목에서 한번 따져보자. 자주국가를 표방하면서 왜 하필 중국의 고전인 주역의 원리를 국가의 상징인 국기에 올렸나.
 
비록 주역이 동양의 보편적 사상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상징물로 삼은 것은 가치의 혼돈을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터무니없게도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주장한 마건충의 제의를 일부 수용한 것도 흠이다. 물론 태극과 8괘는 우리의 전통문양으로 널리 쓰여져 왔다. 또 주역사상은 우리의 생활과 의식 속에 깊이 침투해 있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중국 고전인 주역에서 빌려왔다면 우리의 자주의식에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의 원리에도 크게 어긋난다. 우주와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을 중심에 둔 것은 접어두고라도 8괘 중에 4괘만 빌려왔다는 결함을 지적 받을 수 있다. 건곤(乾坤)은 천지와 부모, 감이(坎離)는 물과 불 또는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을 나타낸다. 큰 아들 딸과 막내 아들 딸을 나타내는 괘들은 빠져 버린 것이다.
 
또 국기가 너무 복잡하여 그 뜻을 알기도, 그리기도 어렵다. 대중성이 떨어진다. 원리를 터득하고 제대로 그릴 줄 알려면 상당한 교육이 필요하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므로 단순 명쾌하게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는데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가지 더. 태극기를 처음 사용하고 공식화한 인물이 박영효였다. 그는 초기 개화파로 근대화 과정의 주역이었으나 친일파로 전락했다. 임금의 사위였지만 일제에 협력하면서 온갖 특권을 누리고 살았다. 그의 친일행적을 덮어둘 것인가? 이는 결국 태극기의 상징성을 모독하는 결과를 빚는다.
 
이제 애국가의 제정과정을 알아보기로 한다. 애국가는 1880년대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날 때 지어 불렀다. 서양 국가를 참작해 여러 단체와 개인이 국가의식이나 시가 행진 때 불렀다. 1890년대부터 나돌기 시작한 애국가는 나필균, 전경택, 새문안교회, 배재학당 등에서 지어 부른 것 등 10여종에 이르렀다.
 
이와함께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국가 상징물로 애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01년 의정대신 윤용선에게 국가(國歌) 제정을 명령한다. 이때 왕립군악대 지도자로 초빙된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는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한다.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皇帝)를 도우소서’로 시작되는 이 애국가는 이후 한일합방 때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국가로 사용됐다.
 
1907년 무렵부터는 윤치호 작사의 애국가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윤치호는 여러 애국가를 참작해 다듬어 작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가사는 “우리 대한만세” “바람 이슬 불변함은” 등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오늘날의 애국가 가사와 거의 일치한다.
 
윤치호 작사의 가사 첫 구절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만세”이다.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전지전능한 하나님에게 보호해 달라고 소구(訴求)하는 내용이다.
 
이어 ‘화려강산’을 보존하고 ‘남산의 소나무’를 우리 기상으로 삼고 ‘가을 하늘’과 ‘밝은 달’ 따위 자연 현상을 빌려 ‘일편단심’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뜻을 담았다. 첫 구절부터 동해물이 넘치고 백두산이 솟구쳐 오른다는 기상과는 동떨어진다. 마르고 닳는 퇴영적 소구일 뿐이다. 하나님에게 의타적 소구를 통해 나라를 보호하자고 했다. 인간의 의지는 온데 간데 없다.
 
이 하나님이 우리 민족의 정서에 보이는 ‘하늘님’인지 기독교에서 받드는 창조주 하느님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는 열렬한 감리교도로 기독교적 인생관이 형성된 사람이 아니었던가?
 
다음 자연 현상의 용어들을 사용해서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무시되었다. 열강의 식민지 경영으로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한 현실에 대한 자기 각성과 타개의 용어들이 사라졌다. 그저 막연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고 촉구한 것이다. 인간이 실종되었으며 자주와 독립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인권사상과 평등사상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한’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의미한다. 대한제국은 주권 재민의 국민국가가 아닌 전주군주를 추구한 왕조의 연장이었다. 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을 계승했으나 그 정체는 국민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이 달랐다.
 
아무튼 삼일운동 당시 우리의 강산에는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였다.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와 지사들은 태극기를 내걸고 애국가를 부르며 나라 찾자는 결의를 다졌다. 그 호소력과 전파력은 몇 만개의 총칼보다 위력을 발휘했다.
 
해방 뒤 대한민국 정부는 예전의 태극기와 애국가를 별 생각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사려가 깊지 못했다. 더욱이 애국가의 가사는 물론 그 곡조도 배재학당의 애국가 곡조(오늘날은 안익태 작곡을 사용)를 그대로 사용했다. 민족의식과 민주가치를 너무나 소홀하게 다뤘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작사자 윤치호 역시 교활한 친일파로 부귀를 누리고 살았다.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이 대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욱이 친일부역배 진상규명을 위한 법에 따라 이 두 사람도 그 조사 대상에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들의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면 태극기와 애국가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여기 어설픈 한 역사학자는 이 대목에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 박영효와 윤치호는 누구? -
 
박영효(1861~1939)는 철종의 부마(사위)로 많은 특혜와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초기에는 개화파의 주요 멤버로 꺼져 가는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충만했다.
 
갑신정변에 앞장 섰으며 독립협회의 주역으로 만민공동회를 이끌었다. 개혁을 선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모방하고 일본의 힘을 빌리려는 방법적 모순을 저질렀다.
 
일제식민지 지배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합병에 공로가 있다고 하여 후작(侯爵)과 많은 은사금을 받았다. 또 조선총독부 정책을 자문하는 중추원 고문으로 추대되었으며 조선 사람으로는 드물게 일본 귀족원 의원이 되기도 했다.
 
그는 삼일운동의 33인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친일단체의 모임에는 거의 빠짐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많은 재산을 끌어안고 일본 사람들과 어울려 파티를 벌이거나 요정을 출입하면서 살았다.
 
윤치호(1865~1945)는 박영효보다 더 기교를 부리며 살았다. 젊은 나이에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미국을 시찰하기도 하고 미국 공사의 통역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드물게 영어 회화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그도 학부협판(교육부 차관격) 등 여러 벼슬을 하면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또 독립협회를 조직, 그 회장이 되어 정치·민권운동에 나서기도 했고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05인 사건, 곧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안창호 등이 신민회를 결성하여 민족운동을 벌일 때 여기에 가담했다 하여 10년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이때까지도 민중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실력양성운동을 펴는 온건론자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땅 한 뙈기라도 사는 것이 실력”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외의 여러 민족운동을 부정하는 말이나 같았다. 교묘한 화법이었다. 이런 그의 현실관과 행동방식은 일본 귀족원 의원을 지내는 따위로 식민지 정책에 협조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는 해방을 맞고 나서 죽었다. 죽음을 두고 말이 많았다. 친일파로 규탄을 받자 고민 끝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주변 사람들이 지어냈다는 설이 유력하게 떠돌았다. 열렬한 감리교인인 그가 자살을 죄악시하는 교리를 어길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친일행각을 희석시키려는 잔꾀를 부렸다는 뜻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일이다.
 
<이이화/역사학자>
 
 
 
태극기에 담긴 이야기 대한민국과 제국  
 
앞부분 생략 (용량관계)
 
강화도 사건 이후에 운양호에 일장기를 식별을 하지  못한것도 이웃나라와 교역을 금하여서 생긴 원인이라고 느낀 조선국에서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에 필요성을 비로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국기를 급히 만든 조선국의 국기는 태극도형기(흰바탕에다 중앙에다 청홍 태극문양그림)를 임시로 만들어서 조마조약 당일만 사용하고는 미국과 조미조약을 주선한 중계역할을 맡은 청나라 마건충 대사는 조선국은 대청국의 속국임으로 청나라 국기인 황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속국으로 당연하다면서 청나라국기를 사용하라고 권하였다.
 
그리고는 조선은 대청국의 속국임으로 속국답게 용의 발톱을 한게를 줄이고 청운을 홍운으로 그려서 사용토록 하였으나 김홍집 대감은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는 마건충에게 우리 조선국은 조상들이 악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처럼 사용하는 길표가 있다며 태극8괘도 도안을 내 놓은 것이 최초의 조선국의 국기도안의 근거가 된것이다.
 
 
위의 그림은 당시의 그림과 무관하다
 
 그래서 마건충도 받아 드려저서 김홍집과 마건충의 의견을 걸쳐서 만들어 낸것이 태극8괘도를 그대로 조선8도를 나타내는 밑그림을 만들었으나 원래의 태극8괘도가 흑백이므로 국기로서 어둡다는 마건충의 조언을 참작하여 김홍집과 마건충은 고종의 옷인 홍용포를 하늘이 태양에다 배치하고 태음은 신하들의 관복 색으로 삼아서 군신간의 옷 색으로 조선국기 도안을 그려서 고종의 재가를 받아서  태극문양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조선국의 국기 태극기의 도안을 들고 1882년 여름인 7월에 박영효 수신사 일행이 일본으로 국사를 보러 가는 일본 여객선 메이지마루(明治丸)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가다가 배의 가판에서 조선의 국기도안 태극8괘도를 펴 놓고 박영효가 태극기를그리고있는데 그 배의 영국인 선장이 가판으로 올라왔다가 우연히 박영효 수신시사가 무엇인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고 한다.

열심히 조선국기를 그리는 박영효 수신사에게로 선장이 다가와서 수신사님 지금 그리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국의 국기라고 하자 유심히 보고있던 선장은 빨강과 파랑 동그라미와 8각형의 막대그림 8개를 그리면 바다 멀리서 보아서 모두가 일본의 국기처럼 보일 것이며 구별하기가 어렵다면서 영국인 선장은 8개의 막대그림에서 열십자에 자리한 괘 4개(진괘, 태괘, 손괘,간괘)그림을 빼고 대각선에 있는 건괘 곤괘, 감괘, 이괘인 4괘그림으로 조선의 국기를 그리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선장의 말에 따라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영국인 선장의 조언을 받아 들여서 4괘로 국기를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신사 일행이 묵는 있는 오베 숙소에다 내다 걸은 것이 조선의 국기를 공식적으로 사용을 한 기라고 한다.
그날 세계 여러나라 대사일행들이 고오배 조선수신사가 묵고있는 숙소로 찾아와서 조선의 국기 태극기를 그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1882년 박영효는 이 국기를 고종임금님에세 장계를 보내어 조선의 국기사용을 알렸으며 다음해 고종임금님은 왕명으로 조선팔도육도음에디가 1883년 음력1월17일 조선의 국기라고 왕명으로 공포한것이 태극기다.
 
중략 (용량관계)
 
결국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는 고종황제와 김홍집대감 그리고 청나라사신 마건충과 영국인 메이지마루 선장 그리고 박영효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높히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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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gif



 
고종의 최초로 도안한 태극기라 합니다. 친일파 박영호가 바꿨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태극기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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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님의 댓글

삼무 작성일

원형 태극기의 태극문양은 더욱 급이쳤다는데, 사진 찾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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