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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안락사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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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ce나그네
댓글 144건 조회 11,228회 작성일 08-04-2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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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 의사 윤리 지침에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안락사를 인정한다면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 중 어느 범위까지의 안락사를 인정해야 하는가?
-소극적 안락사 : 환자의 목숨을 연장시키는 치료의 중단, 죽게 함(letting die)
-적극적 안락사 : 약물 주입 등의 방법으로 안락사 과정에 타인이(의사가) 개입(killing)
 
aa8.gif 여러분은 안락사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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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일단 저는 안락사 반대 입장에 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개 소극적 안락사가 가장 일반적인 의견이겠지요. 그리고, 적극적 안락사를 선택하셔서 토론을 끝까지 끌고 갈만한 분이 안 계신다면, 제가 안락사 반대 입장으로 더 이상 토론을 진행할 수 없을 때는 '적극적 안락사'로 입장을 바꿀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지 않길 빌면서, 가능하면 다양한 의견들끼리 서로 충돌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위 논쟁은 '우만구만'이란 제목의 책에 있던 것입니다. 그 책은 박원우 님께서 지었으며 소담출판사에서 발행한 거죠.
 다시 한번 밝히겠습니다. '안락사 찬성'은 최소한 자살을 방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반대하겠다는 제 주장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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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그럼 소극적 안락사 찬성을 해보지요.우선 님의 말중 최소한 자살을 방조하는것이다를 부연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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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 안락사' 찬성 입장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기왕이면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가 대립되는 상황도 연출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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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있어님의 댓글

뒤에있어 작성일

저도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찬성의 입장을 밝힙니다.
다만 전제적인 조건이 부여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조건은, 당사자의 가족이 더이상 환자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구요.
제가 알기로는 왠만한 병원 중환자실 비용은 정말 생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가격으로 알고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동의가 무조건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기억은 자세히 안나지만 어디에선가 들은바로는 식물인간 환자들중 대다수가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생각하면 안락사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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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첫번째 조건의 경제적 이유'라고 하면, '부모가 빚을 지고 자살하려고 하면, 막지 말아야 한다'도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을 경우에는, '부모와 같이 살 경우'에는 빚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같이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하고, 빚 때문에 따로 살게 되었다면 그 고통 또한 자녀가 집니다. 부모가 자살하고 나면 상속 포기를 통해 자녀는 빚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부담'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윤리적일까요?
 그리고, '부모가'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고, 그리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그걸 피하자고 자살을 인정해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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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있어님의 댓글의 댓글

뒤에있어 작성일

제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자살하는 것에 대해서 글의 비중을 두고 싶은게 아니라,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겁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적어도 안락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실껍니다. 1개월,2개월이아니라
1년,10년 이상이 얼마든지 될 수도 있기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소극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겁니다.
나그네님에게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님께서 안락사에 대해 반대하시는 절대적인 이유가 최소한의 자살을 방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만, 이 경우는 보통의 자살과 다른 문제로 봐야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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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현실을 보십시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에 대해서라면, 제가 위에서 빚을 진 부모의 예시를 들었습니다. 즉, 빚을 지고 갚을 가망이 없이 '힘들게 살아나가야 한다면' 그 역시 힘들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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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있어님의 댓글의 댓글

뒤에있어 작성일

그러므로 입원상태를 지속해서 빚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정도로 쌓이며
, 정신적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이는 것보다는 그 전에 사전의 모두의 동의하에 소극적 안락사로 피해를 최소화 하자는겁니다.
입원하자마자 바로 당장이 아닌, 시간이 필요하겠죠.이게 제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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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ace나그네님의 예시는 직접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빚을 진 아버지의 자살을 방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 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안락사를 허용한다 안한다 하는 것은 법의학 적으로 살 가망이 없다는 사람을 전제하는 것이니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시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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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이 예시를 조금 더 구체화하겠습니다.
 1. <'빚을 지고 자살할 정도'라면> <재정 전문가등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 회생 가능성이 없으며',> <경제적 고난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될 만큼> <당사자들이 고통스러운' 상태입니다.>
2.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할 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면,> <법의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회생 가능성이 없으며',> <병으로 인한 고통이 엄청나서> <'죽는게 낫다고 생각될 때' 안락사를 하게 되죠.>
 위 두 문장을 잘 대비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똑같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상황이고, 두 문장은 각 단락별로 수준이 비슷비슷합니다.'
 유추는 수준이 비슷하고 속성이 비슷한 두 대상을 대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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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과연 그렇게 부적절한 유추일까요?
 '뒤에있어'님도 잘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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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경제적인 문제하고 생명에 관한문제를 어떻게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을 죽게 내 버려두면 자살 방조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락사에 관한 문제는 다릅니다. ace나그네님이 제시한 대로 안락사 대상의 환자는 생명의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살고 싶지 않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고 안락사 대사이 되는 환자는 의식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뇌사와 같은 의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ace나그네님의 예시는 의식이 있는 환자의 경우밖에 설명을 하지 못하므로 역시 적절한 예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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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그렇게 되면 제 예시의 첫 문단을 <'빚을 지고 우울함을 달래려고 술을 마셨는데 취하면 취할수록 비감만 더욱 커져 자살할 정도'라면>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술에 취한 사람'은 현행법상 제대로된 의식이 없는 '의사무능력자'로 취급되고, 님이 지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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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하하, 논의가 재밌어 지는 군요. 술을 마셔서 필름이 끊긴 사람하고 의식도 없고 움직일 수조차 없는 뇌사자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조차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그런지요? 경제적 문제하고 생명에 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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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하지만 '술에 엄청 취한 뒤에는' 의식이 남아있질 않죠. 술이 깰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술 깨기전에 자살하는 그 상황이라면 가능합니다. 또 다른 예시를 들 수도 있지만, 그 예시는 현재 님과의 논쟁에서는 '흐름상' 부적절하므로 다른 님께 써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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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술을 많이 마셔서 의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못 움직이는 않습니다. 취중에 의식만 없다 뿐이지 행동은 합니다. 행동자체를 하지 않는 다면 자살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안락사에 해당되는 환자는 자살을 시도할 수조차 없을 만큰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과 안락사에 해당하는 환자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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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밑에서 답하겠습니다. 그 요지는, '식물인간'이라면 아직 살아있으므로 '안락사 논쟁'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뇌사자'는 죽은 사람이기에 '안락사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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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합니다.
산소호흡기같은 생명연장의료기구에 의존하는 중환자들의 경우에 환자가 여러가지 이유로 더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는경우에, 그리고 의사판단능력을 잃어버린 뇌사상태의 경우 환자가족의 동의절차 과정에 따라서는 소극적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안락사 과정이 생명경시풍조를 유발시킬 수 있으므로 그 절차는 엄격한 법적절차와 의사의 판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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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자살은 자기 의지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겁니다. 그렇다면, 안락사의 경우에도 '의학적 판단'에 의해 자신이 완치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또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으며, 살아있는 동안 겪어야 할 고통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환자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의사들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안락사'이죠. '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기력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자살은 대개 의료진이나 주위 사람이 막죠. 이런 '안락사'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스스로는 목숨을 끊을 능력이 없어서 '자신의 의지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는 것은 모두 자살로 보아 무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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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그럼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자살은 행해서는 안되는 것인가요?생명의 존엄성도 있지만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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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적어도, '자신의 생명권을 포기하는 자살이 옳지 않다. 그래서 반대한다.'는 얘기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즉, '특정한 선택권의 행사'는 감행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옳지 않으므로 권장할 일이 될 수 없다는 얘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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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그렇다면..회생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기 암환자의 경우에 전신에 암이퍼져서 약을 복용해도 고통의 나날이 연속인 사람에 경우 본인이 살기를 포기할때...뇌사판정받은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가족의 치료비 부담이 너무 높아 뇌사판정받은 식구 살리려다 우리가족 다 죽겠다는 말 이 나올정도로 힘이 든경우라면..님이 말하는 특정한 선택권의 행사라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만일 없다면 특정한 선택권의 행사는 어떤경우를 말씀하는지 알려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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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일단 제가 좀 바빠서 님의 질문에는 나중에 답하겠습니다. 그 대신, 우선 이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http://www.cogito.pe.kr/course/bioethics/killing.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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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특정한 선택권'은 자기 목숨을 포기할 권리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뇌사판정'을 받은 사람 때문에 가족이 죽는 이유가 결국 경제적인 이유라면, 위에서 써먹었던 예시를 다시 들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부탁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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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부모가 빚을 지고 자살하려고 하면, 막지 말아야 한다'도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을 경우에는, '부모와 같이 살 경우'에는 빚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같이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하고, 빚 때문에 따로 살게 되었다면 그 고통 또한 자녀가 집니다. 부모가 자살하고 나면 상속 포기를 통해 자녀는 빚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부담'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윤리적일까요?
그리고, '부모가'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고, 그리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그걸 피하자고 자살을 인정해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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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답변드리기에 앞서 특정한 선택권의 행사는 감행한다면 막을 수는 없지만 옳지 않으므로 권장 할 일이 될 수없다는 것에 대해 부연설명 부탁드리지요.정확한 님 의견이 무었인가요? 허용할 수도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인가요..특정한 선택권은 자기 목숨을 포기할 권리를 말한다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음 합니다.어떤예가 목숨을 포기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요.써먹었던 예시를 직접 글로 남겨주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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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수정...써먹었던 예시란 무었을 말씀 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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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간단합니다. (예가 좀 극단적인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이 수단을 씁니다.) 범죄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현실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옳지 않으므로 반대할 수 밖에 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안락사'를 하겠다면 막을 수 없지만 옳지 않으므로 반대한다입니다.
 결론은, '허용될 수 없다'인 겁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안락사 반대 입장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목숨을 포기할 권리'가 있는 상황을 예시로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위에 들었던 예시는 '목숨을 포기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도 목숨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예시입니다.
 다시 한번 그 예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안락사 반대용 예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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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예시)
'부모가 빚을 지고 자살하려고 하면, 막지 말아야 한다'도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살아있을 경우에는, '부모와 같이 살 경우'에는 빚 때문에 부모와 자녀가 같이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하고, 빚 때문에 따로 살게 되었다면 그 고통 또한 자녀가 집니다. 부모가 자살하고 나면 상속 포기를 통해 자녀는 빚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부담'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윤리적일까요?
그리고, '부모가' 자신이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고, 그리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그걸 피하자고 자살을 인정해야 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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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님의 댓글의 댓글

하늘이 작성일

잘 알았습니다. 예시에 대해선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첫째 제시한 예시가 목숨을 포기할만한가는 의문이 듭니다.둘째 뇌사판정자와 부모와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주장을 하는것 같은데요.뇌사판정자의 경우 의사선택권은 일차적으로 그를 돌 봐주는 가족에게 있습니다.본인에게 있지를 않습니다 빛을 진 부모의경우에는 의사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습니다.빛을 지고 자살을 선택하는것은 윤리적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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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고통'은 상당 부분 주관적인 감정입니다. 고통의 종류는 달라도, '끔찍한 고통'을 못 이겨서 자살하는 것은 안락사나 여타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리고, '뇌사판정자'만이 안락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법상 '의사 무능력자'에게는 '법적 대리인'의 의견이 곧 의사 무능력자의 의견으로 간주되니까 결국 본인의 의견으로 봐도 되는 겁니다. 또한 '뇌사판정자'등을 제외한 일반 중병의 경우, '환자'에게 '안락사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빚을 지고 살아있다면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경제적 부담으로 남아있는 등 부작용이 크지만, 죽어버리면 예시에서 말했듯이 '상속 포기'를 통해 '빚을 청산'하고 경제적 여건을 회복시킬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와 비슷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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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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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

멍멍 작성일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병원에서도 치료보다는 생명유지에 중점을 두고 환자가 원할경우에는 적극적인 안락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의사의 주관보단,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는게 우선이겠지만요...
그 기준의 적용이 어렵긴 하겠지만 안락사 자체는 살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됩니다.

최소한의 기준으로, 소생가능성 0%에 가까운 경우, 치료보다는 생명유지에 중점을 두고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도 없으며 환자가 고통을 받고있는경우 정도가 생각나네요.
지금 당장 생각난 기준이 이 두가지란  뜻이지 두가지 기준만 두자는 뜻은 아니니 오해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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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안락사는 '자살'과 거리가 아주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에 든 '채무자' 예시에서 '회생가능성 0%에 가깝고' 절망밖에 남지 않는 상태일 때, 그리고 앞으로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가능성도 없이 당사자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님의 두가지 기준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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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의 댓글

멍멍 작성일

안락사라는 중차대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일만큼, 많은 조건중 두가지를 말씀드린겁니다. 두가지 조건만 필요하단 뜻이 아니였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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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님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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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의 댓글

멍멍 작성일

논점은 안락사에 관한 찬반이지, 제가 생각하는 안락사의 조건이 아닙니다. 청문회 하자는것도 아니고, 지금 ace님 발언은 단순히 말꼬리잡고 시비걸기로 보입니다. 생산적인 토론을 부탁드립니다. 아님 다함께 말꼬리잡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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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안락사가 가능한 조건을 들 수가 없다면, '안락사 찬성'을 더 이상 지지할 만한 근거도 없지 않겠습니까?
 즉, 안락사 찬성을 지지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안락사가 가능한 조건을 들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말꼬리잡기' 차원에서 주장한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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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그림자님의 댓글

안개속그림자 작성일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투표는 [적극적 안락사] 까지 찬성 입니다.

뭐, 사연없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힘들다고 합니다, 죽고싶다고들 하죠...
그런 죽고싶은 심정의 사람들까지 적극적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분은 없으시겠죠?

일단 제 입장이 [소극적]을 넘어서 [적극적]의 입장이니, 소극적은 당연히 포함이 되겠지요...
한가지 설명으로 소극적, 적극적이 모두 포함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문제되면 지적해주시구요.
결국은 의사가 사람을 죽이는 결과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것을 허용 할 수 있느냐!
라는 입장이 어느정도 전까지의 제 생각이였습니다.

하지만, 정말 질병의 치료, 치유를 해야하는 입장인 의사들이 말하길
"기적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죠,

"그럼 기적을 바라며 계속 치료받도록 하겠습니다..."
"어떻든간에, 어떤 가능성이든 간에, 그 가능성이 기적의 가능성 뿐일지라도, 생명은 버릴수 없는것입니다."
후에 비용의 이야기가 나왔고, 빌라와 가게를 팔고 퇴직금을 미리받아, 후에 약한마음 들지 않도록
선지불을 해두고, 추가비용 발생시점부터 다시 지불을 하기로 하고 치료를 시작하고 1년 8개월만에 돌아가셨죠.
그간의 일을 어찌 다 설명하겠습니까만......
아픈사람이 아닌 주변사람이 힘든것도 문제일 터지만...감안하겠다 했던 부분인데
정말 본인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하시더군요.
처음엔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겨주시는것 때문에 저런 말씀을 하시는것이라고만
단정지어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살리겠다는 집념이 강했을 당시엔
사실 어떤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죠, 포기란 없다...할 수 있는한 모든걸 다 한다~!
라면서요...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신후에 3달이 채 안되어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게 되었죠.
힘들다더군요, 회사가......
그렇게 나오고 이일 저일하면서(7개월간)도 빚감당은 안되더군요
그후로 망연자실, 2년하고 4개월을 술로 살았습니다.
어쩌다 아들놈과 노는중에 괜찮은 아이템을 찾아서
위에 말했던 병원비에 들어간돈 외에, 빚 2억 4천을 정리하고(아들놈과 놀다 찾은 아이템으로 딱 24개월만에)
드디어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어갈 즈음, 임플란트를 하러 치과에 갔다가
무슨놈에 진단서를 떼오라 하데요...그놈에 병원갈 시간이 잘 나질 않아서
버티고 있다가 아들놈이 생일선물이랍시고 종합검진을 가자는군요.
그런데 폐가 안좋답니다. 폐암이랍니다 중기는 좀 지났다고 말하더군요...
바쁘게 일하며 살았던 터인지, 아픈줄 모르며 지냈습니다. 그랬는데
병원에선 아픈 사람이라는군요, 병원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가봅니다.
치료를 받다보니 정말 힘이듭니다. 그때 생각이 나더군요. 힘들어, 포기하고싶다시던...
정말 그 심정이 되보았던거죠...하지만 글을 쓰고있으니 죽진 않았는가봅니다~
같은 병이였는데...저는 살아있죠, 그래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더 악화되지 않은,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였던터라 그랬을지 몰라도
정말 치료하는데 힘이 들더군요, 60년생이고 176센티에 86킬로가 나갔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신체검사 했을때죠, 그나마도 일하면서 좀 빠졌던 상태였습니다.
통원치료를 하게 될즈음이 58킬로 나가더군요, 한참 힘들때보다 많이 정상이 됬을 무게죠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주절이게 되었네요
정말 죽고싶을 고통을 주시더군요. 병원에서... 덕분에 살은 케이스지만
허나, 제가 불치의 경우는 아니였기에 그런것이고
그렇게 희망도 없이 병원에 계시는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줄은 잘 압니다.
그래서 제일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 생각이 바뀌게 되었던거구요...


여기까지 하고, 나름은 배웠다는 사람으로써 정치도 경제도 관심이 참 많은데요
아들놈덕에 이런곳을 알게되어 정말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둘러보다가
처음으로 글을 써보게 되었군요...
사람이 어려서부터의 성향과 성격도 있는것일테고, 살아온간의 경험도 있을테니
다른 의견들이 많으실테죠, 활동 좋으신분들 몇분이 눈에 들어오는데
좋은 생각도, 좋은 글솜씨도 가지신분들 있구, 네티켓이라나...실력은 좋아보이시는데
매너가 조금 부족해보이시는 분들도 보이는군요, 저는 어땟을런지요~
이렇게 토론실에서 첫 의견을 남겨봅니다.

좋은 분위기로 진행되어 나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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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첫 인상이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바로 '뭐, 사연없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습니까? 힘들다고 합니다, 죽고싶다고들 하죠... 그런 죽고싶은 심정의 사람들까지 적극적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분은 없으시겠죠?'에 해당하는 사람이겠군요.
 이걸 어쩝니까? 위의 그 예시를 계속 사용할 생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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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저는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안락사 찬성에 대한 전제 요건은 본인이 의식이 있었을 때 안락사에 찬성하는 내용이 있었거나 실질적으로 의사표시가 없는 환자를 대신하여 직계가족이나 친인척의 동의가 전제 되었을 경우입니다. 물론 안락사 찬성에 대한 가장 큰 전제는 환자가 살아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안락사에 찬성하는 근거로는 역시 환자가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에 의지하는 바가 큽니다. 환자의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좀더 냉정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두고 진료를 계속한다는 것은 병원자체로 보았을 때도 손실이며, 환자의 가족에게는 사실상으로 막대한 비용부담을 지우는 동시에 심리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 따릅니다. 도덕성과는 다르게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라면 가족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고 싶습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명예로운 즉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락사를 허용하려면 위와같은 전제요건이 있어야 합니다.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의 차이는  시간의 지연의 차이과 의사의 개입유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사의 개입도 환자의 관계자의 동의를 전제한 것이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는 환자와 환자관계자에게 심적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것이니 저는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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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님의 말씀을 빌리겠습니다. 감정 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 자살 찬성에 대한 전제 요건은 본인이 의식이 있었을 때 자살에 찬성하는 내용이 있었거나 의사무능력자인 본인을 대신하여 법정대리인이나 후견인의 동의가 전제되었을 경우입니다. 물론, 자살 찬성에 대한 가장 큰 전제는 '자살의 원인이 될 만한 본인의 개인적인 상태 또는 주변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2. 자살에 찬성하는 근거로는 역시 당사자의 상태(자살하고픈 요인)가 호전될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에 의지하는 바가 큽니다. 당사자의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좀더 냉정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없는 당사자를 두고 자살을 계속 방지하려 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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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자살방지센터', '정신 병원'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손실이며, 당사자의 가족에게는 사실상으로 막대한 비용부담을 지우는 동시에(빚이 계속 생활고로 작용하니까요.) 심리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 따릅니다. 도덕성과는 다르게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라면 가족들에게 부담을 계속 지게 하느니 제가 죽음으로서 그들이 다시금 재기할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을 허용하려면 위와 같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자살을 방치하는 것과 본인의 부탁을 받고 그를 살해하는 것은 시간의 차이와 타인의 개입유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개입도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한 것이니 크게 문제가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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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않는다 생각합니다.
-완벽한 대응은 될 리가 없겠습니다만, '두 대상의 수준'과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는 본질적 속성을 공유하는데에서 '자살'과 '안락사'는 대응되므로 유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님의 의견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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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어떤 측면에서 복잡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위에 예시를 들면서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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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한 가지만 들고 가겠습니다. 안락사=자살방조라는 의견은 안락사가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는 충분히 설명을 해 주지 못합니다. 자살방조라고 하면 자살하는 사람의 자살할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락사의 다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안락사를 자살방조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법의 문제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살방조로만 보기에는 안락사는 그 보다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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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밑에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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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님의 댓글

지나가다 작성일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합니다.소생가능성이 없는 뇌사판정받은 경우 돌봐주는 가족의 요청이 있을경우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그네님은 채무자가 빛을 자식들에게 대물림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윤리적으로 비판받아야 하므로 안락사에 반대한다고 말씀하십니다.그러나 그것이 적절한 예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이유는 몇억여원의 빛이 과연 뇌사상태와 같은 조건이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나그네님은 통증도 주관적이므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수 있다고 말합니다.이와같이 몇억원의 돈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주관적이 부분인데 뇌사판정같은 객관적 사실과 비교하는것은 비교대상으로 옳지 않다고 봅니다.또한 채무자와 뇌사판정받은 환자와는 본질적으로 비교대상이 안됩니다.돈과 생명의 존재와 비교가 될수 있기 문입니다

설사 비교대상이 옳다고 보고 생각해 봅시다,채무자들이 빛을 가족에게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죽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살아생전에 조금이라도 빛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와마찬가지로 비교가 옳다면 뇌사상태 환자도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에 치료를 더하든가 아니면 안락사를 하든가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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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

멍멍 작성일

환자의 치료비를 이유로 안락사 허용하자는건 국가 복지정책의 문제지 안락사의 가부를 판단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치료비의 부담때문에 안락사를 생각하는게 생명을 경시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안락사에 찬성하는것이지 복지미흡을 위해 안락사에 찬성하는건 아닙니다.
(물론, 환자의 고통에 경제적인 부담도 포함되지만, 환자가 받는 고통의 일부에 경제적인 고통이 있는것이지, 병으로 인한 고통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부담이 심각한건 알고 있지만요.)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맞나요^^;;?) 역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안락사를 도왔을뿐 살인의 명분은 없었다고 하지요.(판결은 유죄성립 했지만)

제 경험상 교통사고를 당한적이 있습니다. 종아리쪽 뼈가 삐져나와서 죽을만큼 아프긴 했지만, 죽을일이 아니라는것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생 그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두말할것 없이 자살을 택했을수도 있지요.
 사담이지만, 사고당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사망한 뉴스를 봤을때라서 무서워서 선택적으로 극소마취만하고(뿌리는 마취약) 수술했는데, 징그럽게 아팠습니다 ^^:;
겨우(?)종아리 뼈 삐져나온것도 그정도로 아픈데, 소생가능성이 없다시피한 시한부적인 질병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지 상상하기 겁납니다.
과연 그런 극심한 고통속에서 생명유지기간 연장이 인간적인 것인지, 고통을 줄여주는게 인간적인 것인지 그것은 환자본인과 가족들에게 달려있는게 아닐까요?

p.s. 종아리뼈가 정강이뼈랑 같은것이였는지 햇갈려서 종아리뼈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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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

TOTM 작성일

저는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합니다. ace나그네 님의 의견에 대해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안락사를 자살과 연결시키시는데. 본인 의사에 의한 안락사가 자살과 유사하죠? 그럼 저도 일종의 자살이라고 보고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안락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회복불가능과 당사자가 죽는게 낫겠다 라고 판단할 정도의 고통과 상황이죠.(물론 충동적 판단이 아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그리고 사회적인 인정)
여기서 ace나그네 님이 위에서 드신 예시를 가져와서 말해보겠습니다.

  <'빚을 지고 자살할 정도'라면> <재정 전문가등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 회생 가능성이 없으며',> <경제적 고난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서 '죽는 게 낫다고 생각될 만큼> <당사자들이 고통스러운' 상태입니다.>
 이 예시를. 회복불가능과 죽는게 나을 고통이라는 두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좀 더 보강해 보겠습니다.
(그러한 경제적 파산이 절대 회복불가이며 죽는게 나을 고통을 준다는게 어렵기 때문에)

 이 사람은 빚을 져서 회생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는 부도 처리등과 같은 경제적 회생 수단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갇혀서 평생 힘든 노동을 해야 합니다. 평생 굶주려야 하고 충분한 수면조차도 취할수 없습니다. 탈출도 불가능 하고요.
 이 사람은 그 상황을 받아 드릴 수 없으며 죽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으로도 납득되는 판단입니다.(그 사람이 죽는게 낫다고 판단할만 상황이라고)

 이 상황에서 이 사람은 자신이 자살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구합니다.(항상 갇혀있고 감시당하기 때문에 자살이 불가능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자살을 금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일까요? 자살을 허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일까요.
 물론 우리는 그사람을 위하는 입장이여야 하고 빚에 대한 책임등은 고려하지 않습니다.(안락사 환자가 사회에 빚을 진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서 저는 그 사람의 자살을 허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 동의에 의한 적극적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것입니다.(물론 충분한 제약조건에 의해서)

저는 안락사 환자의 상황이 제가 위에서 언급한 예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죠. 빚을져서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들과도 차이가 크고요.
 자살의 기도하는 대부분은 회생의 가능성이 있고 정말로 죽을만한 상황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리고 충분히 회생 가능한 방향으로 개선시킬수 있고요
따라서 현실 사회에서 자살이나 자살의 방조가 합법화 되기는 어렵고 회생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죠.

그렇기때문에 안락사는 자살방조이고 자살방조는 불법이고 금지되어 있으니 안락사도 않된다는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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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의 댓글

멍멍 작성일

자살과 안락사는 너무나 다릅니다.
자살은 살수 있지만, 죽음을 선택하는것이고, 안락사는 죽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런 죽음과 편안한 죽음중에 선택하는 문제 아닐까요??
죽을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의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게 자살과 비슷하다고 볼수 없다고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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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TOTM님, 저는 자살방조가 불법이라 반대한다고 말한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자살방조가 '옳지 않고', 안락사도 자살의 범주에 포함되기에 안락사가 옳지 않다는 맥락의 말은 한 줄로 압니다. 그리고, 자살은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기에 현명하지 않다는 언급을 먼저 해두고 싶습니다. '생명체'로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가능한한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으며, 살아 있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의무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멍멍님. 죽을수밖에 없는 상황의 기준이 뭘까요. 30일까지 살 수 있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31일까지 살 수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건가요? 이런 예측불가능성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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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일단 자살로 보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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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ace나그네님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상 자살방조는 명백히 불법입니다. 안락사를 자살방조로만 보기에는 토론진행에 무리가 있으며 안락사에 관한 논쟁자체도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안락사=자살방조라는 식의 논거밖에 없다면 서로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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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라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자살 방조' 또한, 안락사의 경우에는 '사회 상규상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행위'로 인정받아 '정당 행위'(위법성 조각 사유의 한 종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불법'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며, 이 논쟁에서 '안락사의 불법성 문제'에 너무 크게 신경쓰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락사=자살방조'외에 현 상황에서 제가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게다가 위 근거는 아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도 아니니까요. 그 정당성을 부정하려면, '토론을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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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좋습니다. 일단 안락사의 범주부터 명확히 해야 겠습니다. 안락사의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 첫째가 ace나그네님이 염두해 두시는 바와 같이 환자가 의식이 있어 죽고 싶은 경우일 것입니다. 이 경우만 있다면 안락사 허용=자살방조가 성립이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안락사는 환자가 뇌사와 같이 의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환자의 의지대로 죽는 것이 아니니 자살은 아니며 안락사를 시키는 것도 자살 방조는 아닙니다. 따라서 엄격히 본다면 안락사&gt;자살방조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바 입니다. 이같이 안락사를 단순히 자살방조라고만 보기에는 안락사는 그 보다는 더 복잡한 것입니다. 그런데 ace나그네님께서는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는 논거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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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제 글을 인정하신다면 ace나그네님의 안락사 반대에 대한 논거는 더 이상 없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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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의 댓글

멍멍 작성일

ace님 시한부 선고로 소생불가 판정이 죽을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면 뭘까요?? 부채가 수억이래도 사망선고가 내리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1년이든 1개월이든 생명의 한계가 예상될 경우 생존을 선택할수 없지요. 이게 살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십니까?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위암이나 폐암도 초기에 발견된다면 99%소생이 가능하지만, 수술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병원에서 손 놓는다고 하는 말기인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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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님의 댓글의 댓글

멍멍 작성일

생존을 선택할수 없는 상황하에서, 자살과 연관 시키려는 생각이 잘못된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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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박선비'님께서는, 두번째 경우에서 '뇌사'를 드셨는데, 저는 '뇌사'를 죽은 상태로 봅니다. 즉, 죽은 사람을 또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안락사 논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뇌'가 담고 있는 의식 구조야말로, 개인의 개성을 규정하는 것이고, 그 사람 나름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생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식물인간'이 아닌, '뇌사'라면 아예 자살할 수도 없는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 아니, 자살은 안락사를 포함한다는 논거만으로도 저는 이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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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멍멍님께서는 '생존을 선택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닙니다'이죠.
 적어도, 1년이든, 1개월이든 더 살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불사르거나, 지금 당장 편하게 죽느냐의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없다'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숨은 전제하에서 성립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유불가능하다고 손 놓은 환자 중에서' 살아남는 환자의 사례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독하게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지, 죽어나간 사람들을 따라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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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 아니, 자살은 안락사를 포함한다는 논거만으로도 저는 이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분이 말씀하시는 자살이 다른것이지요. 나그네님이 말씀하시는 자살은 사전적인 의미대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행동정도가 되겠지만 멍멍님이 말씀하시는 자살은 사회적인 의미의 자살이지요.
이 둘은 다른 것이죠. 이에 대한 간단한 근거를 들자면 나그네님이 안락사도 자살이다 라고 주장했을때 많은 분들이 안락사와 자살은 다른다는 반론을 하셨지요.(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적의미의 자살에 안락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곳에 달린 몇개의 글로 일반화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논리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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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다만 자살에 대한 개념의 혼란으로 별로 발전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에 해본 말입니다.
본인 의지에 의한 안락사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행동(사전적 의미의 자살)이다 라면 이는 맞는 거겠죠.(아니면..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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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TOTM님께서는 제가 말한 '자살'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멍멍님의 대답을 들어봐야 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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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뇌사를 죽은 상태로 보느냐 아니냐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느데 ace나그네님 생각대로 정의를 해 버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식물인간하고 뇌사가 아주 틀리다고 보는 지요? 어쨌거나 잘 됐습니다. ace나그네님께서도 식물인간은 안락사의 대상으로 포함한다고 분명히 언급하였습니다. 저는 안락사의 경우를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었습니다. 환자의 의식이 있는 경우와 환자의 의식이 없는 경우요. 여기 식물인간의 정의를 들면 '의식이 없고 전신이 경직(硬直)된 채로 대사(代謝)라는 식물적 기능만을 하는 인간.' 본인의 의식이 없는 경우는 자살이 아니죠? 따라서 안락사 =자살은 옳은 근거가 아닙니다. 그런데 ace나그네님께서는 이 근거밖에 없다고 하셨으니 더 이상의 논거는 없는 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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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안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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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그리고 저는 뇌사와 같은 의식이 없는 경우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뇌사가 초점이 아니라 의식이 없는 경우가 초점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안락사의 범주는 ace나그네님도 식물인간을 안락사에 포함시킴으로써 동의한 셈이 됩니다. 이래도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고만 생각하십니까? 분명 그 논거에는 이렇게 모순이 존재합니다. 인정하실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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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여기서 뇌사는 단지 의식이 없는 경우의 한 부분에 들어가는 것 뿐입니다. ace나그님의 말대로 설령 뇌사가 식물인간과 전혀 다르다고 하더라도 안락사의 범주와 ace나그네님의 논리적 모순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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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제가보기에 나그네님이 자살이라고 하는 안락사는 주로 본인 의지에 의한 안락사를 말하신게 아닌가 합니다.(물론 좀더 넓은 범위에 적용시키려 하셨는지도 모르겠으나 뇌사환자에 대한 안락사가 사전적 의미의 자살에 해당하는지 등은 논쟁이 있는 부분이니 본인 의지에 의한 안락사로 제한하는 것이 논의를 진행하는데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같은 경우는 본인의지에 의한 적극적 안락사 까지의 동의이지 타인에 의한 적극적 안락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아마 본인의지가 없을 정도라면 소극적 안락사로 충분하겠지만요 대부분..)
또 안락사를 사전적 의미의 자살로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논의는 아래서 제가 진행시켜 노았으니 계속 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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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제가보기에는 두 의미의 혼동이 계속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제 논의가 자살에 촛점이 맞혀져 있어서 문제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그로 인한 생각 이신듯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자살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잃어버리신체로
 본인 의지에 의한 안락사는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행동이다(o.x)
라는 명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박선비 님께서는 본인의사에 의한 안락사와 타인에 의한 안락사 두가지를 함께 혹은 타인에 의한 안락사에 무게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본인 의사에 의한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나그네 님께서도 그러신것 같고요. 타인의 의사에 의한 안락사는 본인 의사에 의한 안락사와 그 성격도 상당히 다르고 많이 다른방향에서 논의되어야 할것 같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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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자살의 의미를 정의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락사가 무엇인지 밝혀 상대방의 논거를 비판하려고 합니다. 상대방의 안락사 반대에 대한 논거는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판의 논거로 진행된 논의입니다. 자살의 의미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안락사(의학적 죽음) 찬반토론인 만큼 안락사에 초점을 맞추어 범주를 밝힌 후 그 일부인 자살의 의미(사전적이든 사회적이든)를 밝히고 자살할 만한 상황을 논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ace나그네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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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논의는 안락사를 단순히 자살(사전적, 사회적 의미와는 관계 없습니다.)로 간주하는 논거에 대한 비판으로 ace나그네님과 별도로 진행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있으면 저는 물러 날 테니 TOTM님의 논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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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박선비님께 : '의식이 없는 상태'는 신체적 이상징후의 하나입니다. 즉,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안락사'와 같은 자살의 대상이 된다고 보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환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타인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할 망정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의식불명 환자의 생명'을 버리는 것은, '의식 불명'의 환자와 또 다른 '생명'의 선택과 같은 부분에서만 '정당화될 여지'가 있는데, '의식불명의 환자'를 계속 치료한다고 주위 사람들 중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는 등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고려할 부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를 뒤집을 반증 사례가 있다면 좀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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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논의가 이렇게 길어 질 줄은 몰랐네요. ace나그네님은 안락사를 자살과 같다고 하셨고 안락사를 반대하는 논거로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는 논거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ace나그네님께 안락사는 단순히 자살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별도로 진행된 논의입니다. 그런데 위에 TOTM님도 인정하시듯이 안락사는 본인의 의지로 인한 것도 있지만 분명 의지가 없을 때도 안락사로 포함합니다. 다만 논의를 본인의 의지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고 논의를 진행해 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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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그런데 ace나그네님은 그런 합의 없이 자의적으로 단순히 안락사를 자살과 같다고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적합니다만 안락사는 본인의 의지로 인한 것도 있지만 본인의 의식이 없을 경우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제 말이 의심스러우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해도 좋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안락사가 자살과 같다는 ace나그네님의 논거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제가 작성한 글에 대하여 ace나그네님께서는 제 글을 인용하신다고 하면서 적절한 논의 없이 자의적으로 안락사를 자살로 표현하였습니다. 틀려도 한참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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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하긴, '안락사=자살'만으로 안락사 찬반에 관한 모든 것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경우'에 관하여 제가 '박선비님께'라는 글에서 제 입장을 밝혀 놓았습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달리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다시 말해서, '안락사는 단순히 자살과 같지 않다'는 데 대해 님께서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안락사를 근거로 드셨고, 저는 이에 대해 ['의식이 없는 상태'는 신체적 이상징후의 하나입니다. 즉,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lt;게다가 환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아닌데 타인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할 망정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gt;-(단어 좀 바꿨습니다.)] 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답변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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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안락사 중에 환자의 가족의 동의를 얻는 경우가 명백히 존재하잖아요. 왜 환자의 가족의 동의를 전제로 할까요? 본인의 의식이 있다면 환자의 가족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이유는 안락사가 환자가 의식이 없느 경우를 포함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물어보십시요. 명백히 포함하는 범주입니다. 그리고 TOTM님도 인정하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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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그렇다면 저는 의식이 없는 환자의 안락사 문제를 특별한 경우의 자살로 보고자 합니다.
 자기 자신이 의사를 표현할 수가 없다면, 그 누군가가 의사표현을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가족이야말로 이 일에 가장 합당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는 신체적 이상징후의 하나입니다. 즉,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lt;게다가 환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아닌데 결정권을 쥔 가족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할 망정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gt;-(단어 좀 바꿨습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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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ace나그네님은 "그렇다면 저는 의식이 없는 환자의 안락사 문제를 특별한 경우의 자살로 보고자 합니다."이렇듯이 해석이 자의적이라면 토론이 불가능해지죠?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근거를 드셔야죠? 안 그런지요? 그리고 여러 사람이 인정하지 않습니까. 또한 ace나그네님은 "따라서, 회생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식물인간'이 아닌, '뇌사'라면 아예 자살할 수도 없는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라고 언급함에 따라 식물인간은 사실상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식물인간이 뭡니까? 바로 의식이 없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분명 이렇게 의식이 없는 경우도 안락사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원론적인 것인데 이것부터 문제가 되니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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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그렇담, '식물인간'과 같은 경우 자살이 아니란 점을 인정하겠습니다. 제가 이 부분은 잘못 봤군요. 그렇다면 이제 님께서 이 부분을 답변해 주십시오.
 '의식이 없는 상태'는 신체적 이상징후의 하나입니다. 즉,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환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아닌데 결정권을 쥔 가족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할 망정 억지로 끊어버리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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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이것은 정말 기본적인 문제인데 ace나그네님에게는 설명을 요하니 상당히 아쉽습니다. 네이버에서 안락사 식물인간을 한번 쳐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식물인간도 안락사에 포함됩니다. 식물인간은 의식이 없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안락사가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즉,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식물인간과 같이 의식이 없는 경우도 안락사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밑에 글은 ace나그네님의 생각이지 실상은 이렇듯 포함합니다. 논점을 또 흩뜨리시고 있습니다. ace나그네님이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근거로 들면 상대방은 답답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근거로 드셔야 설득력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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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식물인간과 같이 의식이 없는 경우도 안락사에 포함된다'. 저는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안락사 반대'입장에 서 있기에 그 어떤 경우라도 '안락사의 대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는 상황입니다.
 '식물인간'이 안락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안락사의 대상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제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겁니다.
 &lt;'의식이 없는 상태'는 신체적 이상징후의 하나입니다. 즉, '안락사의 대상'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gt;
 그렇다면 님께서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해 주셔야 논의가 진전을 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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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비님의 댓글의 댓글

박선비 작성일

본인이 반대입장에 있더라도 주장에 얽매여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는 잘못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의견을 논하는 토론이 아니라 사실을 설명하는데 중점이 맞추어져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ace나그네님과 토론을 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보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입니다. 의식이 없는 경우를 안락사로 보지 않고 토론을 하자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했어야 했습니다. ace나그네님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때문에 토론은 중심을 못 잡아 분열이 됐고 진전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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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님까지 토론의 진전을 막으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토론에서 지금까지의 토론 진행을 방해한데 대한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이제는, 님께서 아래의 제 답변에 대한 대답을 해 주셔서 토론을 진전시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lt;'식물인간'과 같이 의식이 없는 사람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 스스로 죽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타의로 죽인 경우, 소극적 안락사이든 적극적 안락사이든 '살인(타살)'의 범주에서 취급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우려되는 부작용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제 의견에 대해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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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

TOTM 작성일

그리고 안락사와 자살을 관련 짓는데 관해서.

자살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뜻이지요.
그런면에서 본인 의지에 의한 안락사는 자살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그네님 의견대로)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살이라고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자살할만한 상황이 아닌데 자살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살이 자살할만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나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자살이 잘못된 것이라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할 만한 상황에서 자살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좀 안어울리니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만한 상황에서 생명을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저는 안락사 환자의 상황이 이 생명을 포기할만한 상황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명을 포기할만한 상황이라는게 애매모호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부분에 대해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락사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라. 안락사 환자의 상황이 과연 생명을 포기 할만한 상황인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니면 자살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수 없는 행동이다 라는 주장을 해주시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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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자살할만한 상황이라. 그렇다면, 여행중 사고를 당해 극지방이나, 사막, 열대 우림등에 홀로 남겨진 상황은 어떨까요? 끊임없이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살 마음이 안 남을 수도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이거라면 안락사와 동급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위 상황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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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호오..좋아요. 이제 자살할만한 상황에대한 토의로 넘어가는 건가요.
 자살할만한 정도의 예시는 제가 위에 올려놨어요 우선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님의 예시보다 강하거든요)
그리고 여행중 사막이나 열대우림에서 홀로 남겨진 상황이라면 저라면 살기위해 발버둥 칠것 같네요. 대부분 그렇것 같고요. 살아나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고요. 삶을 포기한다는게 그렇게 쉽지가 않잖아요.. 인간의 삶에 대한 욕망도 있고.
 제가 생각 하는 자살할만한 상황이라는건.
본인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죽는게 낫다고 생각되며
사회적으로도 죽는게 낫다고 공감될정도의 상황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그네님께서는 죽는게 나을만한 상황은 없다고 생각하시는건 아닌지?
★ 그리고 이런거 채팅토론방에서 하면 재미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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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그렇다면 저도 제 예시를 보다 구체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예시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한 것으로 말이지요.
 (출처 : '생존', 로렌스 곤잘레스 지음, 예담 발행)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구명보트에 의지한 채로 다치고 지친 상황이며 저체온증에 시달렸으며 물도 없었다. 그리고 이틀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고통은 짐작도 하기 힘든 정도였고 그중 몇몇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죽게 될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더는 못 참겠어"라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저는 이렇게 '살기위해 발버둥친다는 얘기가 말도 안되는 헛소리같은'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에게 주목할 생각입니다. TOTM님. 제대로 한 번 논쟁해봅시다.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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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대서양에서 조난당황 상황이라는 것은. 물론 힘든 상황이고 고통이지만 구조되면 살아질 일시적인 것이고 충분히 구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고 실제로 구조되지 않았습니까.
회복불가능(안락사의 상황은 사실상 회복불가능이라고 보고 논의하는게 좋겠죠. 의학적으로나..) 이라는 조건에 충족되지 못하는것 같군요.
그리고 나그네님께서는 자살할만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예시보다 자살 할만항 상황에대한 예시를 제시해주시는게 좋을것 같군요.(이런 상황이라면 자살할만하지만 안락사의 상황은 이런점에서 부족하다 이런식으로요) 만약 자살할만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다른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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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문제는,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구조되면 살아질 일시적인 것이고 충분히 구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생존자'들은 바로 님이 말씀하신 '구조되면 살아질 일시적인 것이고 충분히 구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등' 각오를 다지고 생존 수칙을 지켜나갔기에 살아남은 겁니다. 이런 위급 상황에 처한 당사자들이 '구조되면 살아질 일시적인 것이고 충분히 구조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죠.' '상당한 치료노력을 기울였는데도 효과가 없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든' 안락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이 때, 환자가 '버티다 보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등 '안락사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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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위 예시는 당사자가 절망적이라고 생각을 하건 굳은 의지를 다지건 충분히 구조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안락사 환자의 경우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라고 할수 있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말씀드렸다 싶히. 안락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당사자의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과 함께 사회적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요. 님이 제시하신 예시에서 당사자들이 포기하는것은 충동적인 판단이며(절망하지도 않았죠 더는 못 참겠어 라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낮아졌다.라고 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점점 의지가 약해지고 있을뿐이지 결코 절망한 상태가 아닙니다.) 게다가 사회적(대부분의사람이)으로도 생명을 포기할만한 상황이라고 공감하지도 않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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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그리고 안락사의 문제를 위에 상황처럼 회복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라고 보는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회복불가 라고 가정하고 논의하는게 좋겠지요. 밑에 루비콘강님과의 논쟁에서도 말씀드렸다 싶히. 정말 회복이 불가능한가를 따지는게 아니라(의사들이 따질 문제겠죠.)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안락사가 타당한가를 따지는게 중심이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님이 생각하시는 스스로 생명을 포기할만한 상황중 안락사와 가장 가까운 예시를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이런상황이라면 가능하지만 안락사는 이런점에서 부족하다 이런식으로요, 또는 그런상황은 없다 라든지요.) 이런식으로 힘들지만 생존한 상황 어려워보이지만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상황 들만 예시로 제시하는것은 별로 발전적이지 못한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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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출처 : '생존', 로렌스 곤잘레스 지음, 예담 발행)
&lt;깊은 크레바스에 홀로 추락하여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동료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곧 산을 떠날 것이었죠. 그리고, 크레바스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 그는 아직 산의 높은 곳에 있으며 사람들이 있는 캠프장까지는 10킬로미터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게다가 한 쪽 다리는 골절된 상태인데다 지칠대로 지쳤고, 탈수증과 저체온증에 동상까지 걸렸으며, 방금 마지막 아이스 스크루까지 모두 써버렸죠. 뿐만 아니라 그는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을 테니 아무도 그를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었죠.&gt;
 이 사례라면 님이 제시한 조건에 부합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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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죽음을 우습게 본다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 개개인의 의지와 슬픔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인간 개인이 자신이 인간답게 그리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죽음선택한다는 의미에서 본인과 가족의 동의, 전문가인 해당 의사의 동의하에 진행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스스로 방관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무책임하다? 는 논리 제 3자가 과연 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인가요? 전혀요. 회복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는 것보다 정신이 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에 있어서 제3자의 비난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네요. 당신의 인생이나 잘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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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남이 죽는 방법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권리 따윈 당신나부랭이에게 없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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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저도 한마디만 하죠. 해설위원들이 축구선수들의 플레이를 간섭할 권리가 있어서 경기해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인신공격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락사 찬반'에서 님의 의견만 제대로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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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먼저 본의하니게 격한 단어를 쓴 점 사과드립니다만 특정 누구를 지정한 것도 아닌데 인신공격이라고 판단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님을 언급한 것도 아닌데 좀 과민반응이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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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당신의 삶이나 제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이죠. 별걸 다 간섭할 필요는 없죠. 윤리문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한 환자와 가족의 의지가 우습게 보입니까? 윤리적인 관점으로 타인의 선택에 참여할 거라면 당신이나 윤리적으로 살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하고 뜻을 남기고 의식이 없다면 그 뜻을 이어받은 혈육인 가족의 선택은 개인의 선택을 대리이행하는 것 뿐이겠죠. 토론글을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군요. 감히 누가 한 인격적 개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한단 말입니까? 신이라도 됩니까?ㅋ 어이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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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저도 한마디만 하죠. 해설위원들이 축구선수들의 플레이를 간섭할 권리가 있어서 경기해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인신공격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락사 찬반'에서 님의 의견만 제대로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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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살지는 못하지만 이어질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0 죽음을 선택하는 건 죄악이다 라고 말하는 당신들이 그것을 감내할 겁니까? 그 아픔을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압니까?........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종교적, 도덕적 관점에 입각해서 자살은 죄악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 말 자체가 죽음마저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훼손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권리도 없는 주제에 함부로 설교하지 말라는 말은 이런 때 쓰이는 거겠죠. 누가 감히 죽음이라는 자기소멸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들 삶이나 잘 살았으면 좋겠군요.ㅋ 할말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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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저도 한마디만 하죠. 해설위원들이 축구선수들의 플레이를 간섭할 권리가 있어서 경기해설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축구선수들의 고충을 해설위원들이 알기에 해설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은 토론입니다. '안락사 환자'에게 돌 던질 생각같은 것 절대 하지 않지만, 찬반 입장 모두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되는 토론 말입니다.
 그리고, 인신공격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안락사 찬반'에서 님의 의견만 제대로 말씀하시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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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제 요점을 잘못 짚으셨군요. 제 얘기는 바로 그러한 부분들이 안락사 반대론자들의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겁니다. 충분히 근거가 된다고 봅니다만. 단어의 의미를 해석하지 마시고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가의 의도를 해석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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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전쟁영화에서 보면 자기 혼자 남고 적군에 둘러쌓인 상황이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이미 알고 적군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의 목숨을 끊겠다는 것, 잔인하게 총칼에 무자비하게 찔려 죽느니 총 한방으로 죽겠다는 자신의 선택에 있어 왜 그렇게 죽냐고 차라리 싸우다 창칼에 수십군데 난자당해서 죽는게 낫다고 말할겁니까? 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싸우다 개처럼 죽는가 아니면 어자피 죽을 바에 자신의 삶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느냐의 절대적인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개처럼 안싸우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죽는다고 "그게 잘못되었다!" "차라리 싸우다 개처럼 죽는게 낫다"는 비난을 할 구실로 삼을 것인지요.? 예가 좀 격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답답하네요. 자신만이 권한을 가진 절대적인 선택에서 그걸 아무 상관도 없이 전쟁다큐보는 과자먹는 꼬마가 저렇게 죽으면 안되는 거야!! 하고 비난한다는 건 그 사람의 선택에 대한 모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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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지금 토론하면서 '안락사 선택'이 잘 되었다 잘못되었다 하는 것과, 안락사 환자 앞에서 그의 선택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다릅니다. 지금 하는 일은 단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으로 끝내야 하지만, 그 상황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님은 지금 이곳이 '토론 사이트'라는 점을 기억하셔서, 앞으로는 인신공격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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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도대체 어떤 점이 인신공격인지 자꾸 인신공격하시는데 저는 님을 공격한 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스스로 인신공격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뭐 일단 사과는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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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안락사와 자살은 같은 개념이다????????????? 전혀요. 의학적 자살은 안락사를 의미합니다. 그 외의 자살은 충분히 선택가능하고 재활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자살이죠. 안락사는 한 개인의 삶이 삶에 대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으로 그리고 그 과정의 수많은 고통과 침묵의 절대적인 판단하에서 실시하는 개인의 죽음에 대한 절대적인 선택입니다. 충동심리적,생물학적 자살 따위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죠. 그 가치가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것을 말한 사람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의심해보겠습니다. 진정한 삶과 죽음의 선택에 대한 제대로된 구별조차 못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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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제 글이 님에게 인신공격으로 느껴졌으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제 글이 인신공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 이러하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이곳은 토론의 장소 아닌가요? 제 의견이 특정 누구를 비하하거나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것이라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의 의도와 다름없이 글이 공격적인 태도를 지난 것에 대해서 인신공격이라 하신다면 저는 이곳이 국어교실이 아니라 격렬한 토론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님에게 하는 말이 아닌데 왜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이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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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좋습니다. 그렇다면, 님은 '재활의 가능성'을 구분하는 기준을 좀 더 구체화 시켜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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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당연히 환자가 안락사에 동의하더라도 전문가인 의사의 허락이 없이 이뤄져서는 안됩니다. 의사가 기적이 아닌 의학적인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찾은 경우에 있어서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절대적인 권한을 갖습니다. 의무이기도 하죠. 재활의 가능성은 의학적으로 전혀 살 가망이 없을 때 그리고 의사 역시 현재 나와있는 어떤 의학적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는 방법이 없고 단지 몇 달간의 극심한 고통 또는 그에 해당하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이 따른다고 판단했을 경우, 환자가먼저 안락사를 제안할 때 그것에 동의하는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의사가 먼저 안락사를 권하는 것이 아니구요. 즉 어디까지나 의학적으로 최선을 다해본 뒤 그것이 안될 경우 환자의 제안이 있을시에 가족과 환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 최종적으로 의사가 안락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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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제공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겠죠. 현실의 안락사가 어떤 과정적 측면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가 말한 것과 대체로 비슷한 형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이 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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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루비콘강님의 의견(아마 위에부분 일꺼에요.;)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하자면.
루비콘강님께서는 안락사에 대해서 사회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계시진 않은가 싶습니다.
 ('제 3자가 과연 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인가요? 전혀요. 회복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죽는 것보다 정신이 있을 때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에 있어서 제3자의 비난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라는 주장을 볼때)
안락사도 제도이고 일반대중 전체에 적용되게 됩니다. 따라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사회적 영향이 있을 것이고 이에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또한 개별 상황에 모두 맞길것이 아니라. 악용에 여지 만약의 상황까지 고려해서 어느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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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그래서 제가 현대에 존재하는 의학적 처방으로 더 이상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을 때 (기적을 믿고 계속 고통을 감수하며 치료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의사의 선권유가 아닌 환자의 선 제안과 가족의 동의 + 의사의 결정이라는 것을 말한 것 같네요. 그걸로 부족하다면 안락사와 관련된 판단부처를 보건부에 신설해서 그곳에서 안락사요청이 타당한지에 대해 검증하고 생존의 가능성이 있다면 반려하는 뭐 그런 것들이 있다면 충분히 사회적인 악영향을 방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안락사로 인해 생을 마감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본인이 원해도 가족과 의사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안락사는 실시되지 않을 테니까요. 환자 그 자신의 의지와 주변 당사자들의 결정에 달렸기에 쉽게 악용될 리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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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극심한 고통에 쳐해서 죽는게 낫다 라는 생각이 아닌 시한부의 안타까운 환자들이 대부분 안락사를 선택할 것이라 보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붙잡게 되어 있죠. 정말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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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예 잘 읽었습니다. 제 의견을 말해보자면.
루비콘강님께서는 환자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판단의 타당성을 주로 말씀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의사가 생존가능성을 잘못 판단한다 던지요. 그리고 이를 보강하기위해서 보건부의 검증등을 말하시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생각에 이부분은 이 논쟁의 쟁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의사의 판단은 정확했으며 환자는 사실상 100% 회복불가능이 확실하다 라는 가정하에서 논쟁이 진행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루비콘강 님께서는 환자가 회복불가능이 확실하고 본인과 가족이 안락사를 원하는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서 안락사는 아무 문제될것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에서 쟁점은 그러한 상황에서 안락사의 사회적 영향등을 고려했을떄 과연 타당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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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보건부에서 그러한 타당성까지 함께 검증한다고 말씀하신 걸지도 모르겠으나 그걸을 어떻게 검증하느냐 어떤 경우는 인정하고 어떤 경우는 거부하느냐 그것이 바로 이 토론의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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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말씀드렸다시피 "의학적으로 최선을 다해왔는가? 또 다른 현대의학으로 살릴 기술이 정녕 없는가, 도전조차 가능할 가망성이 없는가" 라는 현대에 사용가능하고 검증받은 의학적 기법과 기술수준의 유무가 인정과 거부의 기준이 되겠죠. 도덕적 잣대가 아니구요. 물론 그것을 판단하는 구성원들은 한 국가 내에서 해당질병에 대한 최고 권위자들의 모임이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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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일반의사들끼리 모여서 대충 이뤄지는 판단의 인정과 거부를 의미하는 게 아닌 대단히 높은 수준의 의학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찌되었건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안락사는 그런 강한 조건하에서만 당연히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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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위에서 말씀드린데로. 루비콘강 님께서는 여전히 안락사의 의학적 타당성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전조차 가능할 가망성이 없는가?'등을 검증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이 논의는 의학적으로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하다 라는 가정을 두고 진행되어야 합니다.
루비콘강님께서는 의학적으로 가망이없고 환자 본인이 원하면 안락사는 문제가 될것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계신듯한데. 그러한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 안락사가 타당한가를 논의하는 것입니다.(회복될 여지가 충분하다면 당연히 치료가 이루어져야겠죠)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 논의는 그 환자의 회복이 정말 불가능한가? 어떤 방법으로 가망없는 환자를 가려낼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정말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안락사가 타당한가를 논의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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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생각해보시고 여전히 이해하시지 못하겠다면 제가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글을 써보겠습니다. 물론 저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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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안락사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글을 쓰시려면' 가능하면 이 쪽글 내에서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데 가운데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위 쪽글과 같이 상당히 혼란해지니까요. 이미 TOTM님과 루비콘강님은 '그 환자의 회복이 정말 불가능한가? 어떤 방법으로 가망없는 환자를 가려낼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정말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의 안락사가 타당한가'로 이미 입장 차이를 보이는데, 제가 섵부르게 끼어들면 논쟁이 꼬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이 쪽글에서 루비콘강님과 TOTM님의 논쟁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는, 일단 위의 쪽글로만 TOTM님과 논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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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글쎄요. 제가 말하는 내용을 보신다면 환자의 선제안이라는 조건을 달았기에 굳이 가망이 없는 상태에 대한 안락사의 정당성이라는 문제에 있어 어느정도 예측가능하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보시다시피 최고의 의학적 수준의 가능성을 검토한 뒤에도 가능성이 없다고 할경우 그것의 안락사의 정당성은 환자 개인의 선택에 있습니다. 앞서말한대로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린다는 절대권을 부여받은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도덕적잣대의 여부가 들어갈 여지도 없는 개인의 인간적 권리의 행사이기에 당연히 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말이겠죠. 굳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제가 쓴 글의 주장을 보신다면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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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또한 제가 굳이 의학적 타당성의 조건을 매우!!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환자가 먼저 제안하는 안락사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의학적 타당성은 환자가 스스로에게 제안할 수 있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또다른 절대적인 증거이자 참고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구요. 즉, 이러한 엄격하고 중요하게 치뤄지는 최후의 의학적 판단에 의해서도 생존의 가능성이 없다면 환자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며 그렇기 때문에 안락사는 하나의 절대적인 선택이라는 것에서 존중되어야 할 성질의 문제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죠.
다른 이들이 도덕적 잣대로 타당성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없는 본인의 문제이자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 현실적 타당성은 최고의 의학적 판단으로 충분히 거쳤기 때문이죠. 쉬운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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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되는것 같군요. 간단하게 말해보겠습니다.
 님이 말씀하신대로 의학적으로 회복불가가 명확한 상태에서 죽음에대한 모든 타당성이며 정당성이 환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국가에서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학적으로 회복불가를 정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인가요? 아닐겁니다. 아마도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죽음의 모든 타당성을 개인에게만 두고있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또 개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린다는 절대권을 부여받았다는 것도 회복불가의 상황에서 죽음의 정당성이 전적으로 당사자에게 있다는것도 절대적인 법칙이 아닌 하나의 주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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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그것도 타당하다고 보기 힘든 주장이겠지요. 법을 제정하는 입장에서는 그 제도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회복 불가의 이고 본인이 원하는 상황이라고해도 그 부정적 영향이 막대하다면 허가될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 사회적 영향이 이 논쟁의 최대쟁점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이부분에서 님은 철저한 의학적 판단과 본인의 제안에 의한 안락사면 별 부정적 효과가 없을 것이다. 라고 간단히 주장하시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안락사를 허용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이지요(반대하는 입장은 크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루비콘강 님께서도 개인이 자신의 생명에대한 절대권을 가진다는 생각을 접으시고 토론의 보다 깊은 쟁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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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들어오시는게 어떠실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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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여러 국가의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는 이유는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만큼 우리는 개인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죽음마저 선택할 인권까지는 인식이 미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한다 를 법에서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인 영향을 내포한다 등 님이 주장하신 내용 그대로죠. 님과 저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님은 법적,제도적 보장에서 타당성을 찾으시고 저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라는 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와 법적제한의 갈등사이의 한 부분에서 타당성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영향이 있기에 허락이 안된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중요한 쟁점이다가 아닌 안락사에 있어 개인의 절대권마저 법적 제한으로 막는 것은 안된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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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제 주장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죠. 안락사의 허용과 불허용에 대한 개인적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아는데 법적 구속력 속에서 안락사의 타당성을 사회적 영향력에서 찾자는 님의 의견은 안타깝게도 저와 다릅니다. 물론 법안에서 이뤄져야겠지요. 저는 지금의 법적 제한 또한 제가 제시한 조건하에서 자유로워져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안락사를 허용한다고해도 삶의 끈을 놓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고 말씀을 드렸죠. 또한 그 판단에 있어서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의학적판단에 기초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제가 말하는 타당성이란 바로 이런 기본적인 과정을 거친 사회적 영향력이 받아들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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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애초에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든 번거로운 과정은 필요가 없겠죠. 지금 허용되지 않는 곳이 다반사고 그것은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반대이며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다 라고 님은 말씀하시지만 저는 첫째, 지금의 법이 개인의 선택권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둘째, 안락사를 하는 모든 의학적 판단과 개인의 선택과 실행의 제약은 사회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충분히 납득가능한 것이며 셋째, 그렇기에 그러한 과정을 거친 안락사는 충분히 허용가능한 것일 수 있다. 라는 것이 제 의견의 핵심이 아닐런지요. 또 이것이 쟁점이 아니고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제 주장이 일관되게 안락사 찬성 여부를 묻는 이 전체의 맥락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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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짧게 말해보겠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의학적판단에 기초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는데 제 주장은 의학적 판단으로는 사회구성원 다수의 이해를 얻을수 없다는 것이죠.(안락사에 반대하는 이유가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동의할수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게 아니라 회생이 불가능하다는걸 알지만 동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학적 검증으로는 공감을 얻을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절대권등의 권리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초법적인 것도 절대적인 법칙이 아닙니다.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개인의 생명의 않는절대권에 동의하지 다면 개인이 절대권을 갖는다고 보기도 어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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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그리고 '우리는 개인의 인권을 운운하면서 죽음마저 선택할 인권까지는 인식이 미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라고 하시는데 결국 사회의 다수가 개인이 죽음을 선택한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를 의학적 검증으로 공감을 얻겠다는 주장이 모순되지 않습니까.(앞써 말했듯이 회복불가를 못믿어서 반대하는게 아니죠)
그리고 사회구성원 다수의 인식이 미치는 곳까지가 사회에서 존중되는 인권의 범위라고 봐야겠지요.
 '앞으로 인권의 범위를 확대해 나갸아한다'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모르겠으나 아직 존중되지도 않는 근거로 안락사 찬성을 주장하시는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보입니다.
또 위에서 말한 죽음보다 못한 삶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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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그리고
첫째, 지금의 법이 개인의 선택권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둘째, 안락사를 하는 모든 의학적 판단과 개인의 선택과 실행의 제약은 사회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충분히 납득가능한 것이며
첫째 둘째 하나하나가 근거라기 보다는 논쟁의 대상이네요.
저역시 안락사가 사회적 동의를 얻을수 있다고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의학적 검증을 통해 그 동의를 얻어 낼수 있다는 님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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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의학적판단이라는 것은 환자에 질병에 대한 최종적 판결을 사회구성원들이 그것을 보고 믿고 믿지 않음이 아니라 철저한 의학적 검증이라는 단계적인 절차가 바로 우리가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의학적 포기로 인한 가능성 상실의 오류에 대한 대안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심이 어떨런지요. 안락사의 가장 큰 비판이 님은 공동체의 도덕적 사회적 잣대로 보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직인 의학적 판단의 오류가능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의학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이기에 오판의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안락사라는 것이 올바른 절대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라는 거죠. 그렇기에 반대하는 충분한 근거또한 되는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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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사회적,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느냐, 아니면 의학적인 검증에 대한 불신에 기반하여 반대하느냐는 안락사 반대라는 각기 다른 이유일 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상쇄하는 근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죽음마저 선택할 인권까지 인식이 미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모순이라니요. 지금의 법적제도에 대해서 저는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측면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제 주장의 모순인지 궁금하네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학적 검증이 곧 공감이 아니라 철저한 의학적 검증의 절차 그 자체가 안락사가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하나의 제도적 규약이라고 봐야겠죠. 검증이 공감이라는 건 잘못 이해하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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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아직 존중되지도 않은 근거라뇨. 지금의 현실이 안락사를 반대한다고 해서 인권의 자율적 선택의 측면을 확대해야하고 의학적 검증이 곧 공감이 아닌 검증의 철저한 과정 그 자체가 사회가 납득할 수있을 수준의 제약을 통해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나의 주장이 전제가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어째서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토론의 장소라면 크게 논리에 벗어나고 현실성이 전혀 없지만 않다면 어떠한 주장이라도 설득력은 있다고 봅니다. 제 주장 뿐만이 아닌 다른 어떤 주장도 말이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주장자체가 터무니없는 소리다 라는 것 밖에 들리지 않네요. 토론의 의미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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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제가 언급한 첫째, 둘째의 항목은 안락사를 찬성하는 계속적으로 말하는 주장에 있어서의 근거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구요. 근거를 논쟁의 대상으로 보시기보다 주장과 관련되어 있는 순수한 근거로 보심이 어떠실런지요. 한번더 말씀드린다면 철저한 의학적 검증의 절차 그 자체가 바로 사회적인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검증 자체로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구요. 제가 주장에 있어 왜 굳이 이중삼중의 제한요소를 두었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 듯 합니다. 한번 검증으로 동의를 얻을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중삼중의 의학적인 최고수준의 판단의 과정 그 자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적인 인식 또한 그 과정을 거친 개인의 죽음에 대한 선택에 대해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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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그리고 그뒤에 법이 할 일은 그러한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전제로 개인의 선택 속에서 그 자율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학적판단의 모든 과정은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구하고 구성원 누구나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절차적 방법이구요, 적극적 안락사를 찬성하되 이러한 이유에서 찬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개정하자는 취지도 물론 들어가는 것입니다. 뭐 님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저도 계속 제 의견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근본적인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볼 수 밖에요. 솔직히 전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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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우선 토론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인게 좋지요.(설득력이없다는게 떨어진다는 뜻이지 아예없지는 않다라고 주장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몇번이나 환자의 회복이 불가능한것으로 보고 토의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의학적판단의 오류 문제는 넘어가자는 말이죠. 그걸 찬성측인 님이 의학적 판단이 문제가 된다라고 챙겨주실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님이 주장하시는걸 보면
의학적 오류가 중요한 반대 근거다. 그런데 이건 제도적으로 해결하면 된다.(제 생각에도 제도적으로 해결될 문제죠) 라고 말씀합시다.그래서 그럼 별문제 아니겠네. 하면 님은 다시 그런데 이게 중요한 반대근거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의학적 오류에 대해 반론을 하면 제도적으로 극복됨을 주장하시면서 의학적 오류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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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그리고 인권에대해서
사회의 공감을 얻는 부분까지가 인권의 범위이지요.
예를들어 삼국시대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일들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인권침해인 경우가 많겠죠. 또한 지금 우리의 일들도 미래의 관점에서보면 인권침해가 될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인권이 가장 발달할 머나먼 미래의 인권을 기준으로 인권문제를 판단하는게 옳을까요? 아니겠죠. 지금 현실의 인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게 옳을 겁니다. 다시말해서 님이 인정하신데로 인권의 범위가 개인의 생명의 절대권까지 미치지 않는 지금의 현실에서 죽음의 절대권은 아직 존중받는 인권이 아닌 것이지요. 근거로 설득력을 얻으려면 먼저 대중의 인식과 현실이 바뀌어야 겠지요. 따라서 인권운동가가 인권의 향상을 위해서 그런 주장을 하는것은 타당할지도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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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의 댓글

TOTM 작성일

지금 제도를 제정하느냐 마느냐(지금의 논쟁처럼)의 상황에서는 타당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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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

TOTM 작성일

음..루비콘강님께서는 격렬한 토론장이라고 말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토론하시는 태도가 잘못된것 같네요.
안락사라는 제도와 그 사회적 영향에대 해서 충분히 토론할만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끼어들 문제가 아니니 하며 애시당초 토론할 것도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게다가 위에 글들을 세심히 읽지 않으셨는지 위에서 이미 진행된 논의가 반복되는 것도 별로 좋지 않네요.
(  스스로 생명을 포기함 정도의 사전적 의미의 자살과 사회적 의미의 자살의 혼란으로 인한 논쟁 같은거요.)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위에서 제기된 자살할만한 상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 좋을것 같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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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e나그네님의 댓글의 댓글

ace나그네 작성일

위에 달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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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강님의 댓글의 댓글

루비콘강 작성일

세심히 읽고 다시 개념정리를 한 것 뿐이구요. 말이 거칠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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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M님의 댓글

TOTM 작성일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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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돌이님의 댓글

영감돌이 작성일

적극적인 안락사까지 찬성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안락사의 조건은
일단 치료방법이 없는 환자(또는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

더이상 살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더이상 고통을 주는것은 사람으로서 할짓이 아니기도 하지요
그 것을 보고 있는 가족에게나 그 환자 본인에게도.
경제적으로 할수 있는데까지 다 하고도 어찌 할수 없다면 안락사하는 것도
살아가는 한가지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어찌 됬든 살아남은 사람은 계속 살아나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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